64화
* * *
“발소리 계속 따라오네.”
예나가 위를 올려다보았다.
좀비들 때문에 잠시 잊고 있었는데, 발소리는 여전히 자신들을 따라오고 있었다.
“중앙홀을 지날 땐 안 따라왔었지?”
“그랬던 거 같아. 거긴 발을 디딜 바닥이 없으니까.”
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브 전시홀 3’에 도착한 용주는 문을 열었다.
전시홀 내부에 좀비는 없었다.
보관되어 있는 작품은 대부분 초상화와 풍경화.
크기는 제각각이었지만, 모두 액자형 작품들이었다.
“으~ 냄새. 나 코가 마비된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봐.”
방 안에 들어선 주원이 코를 틀어막았다.
전시홀엔 지독한 악취가 가득 차 있었다.
“다 참고 있잖아. 애처럼 굴지 말라고, 오빠.”
예나가 꾸지람을 놓았다.
안으로 들어선 용주는 왼쪽에 놓인 안내판을 살펴보았다.
[관람 시 관람 수칙을 준수해 주십시오.
1. 작품을 관람하실 때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여 주십시오.
2. 작품 배치는 작가님의 이름순으로 되어 있습니다.
3. 같은 작가님의 작품은 작품의 이름순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4. 작품을 만지지 마십시오.
5. 음식물의 반입 및 섭취를 금지합니다.
6.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안내문을 접한 용주는 다른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액자의 오른쪽 모퉁이엔 작품의 제목과 작가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작가의 이름순으로 배치되어 있다고?’
관람 수칙에는 분명 그렇게 적혀 있었다.
하지만 실제 여기 있는 작품들은 그렇지 않았다.
“뭐, 특별할 거 없는 평범한 안내문 같은데.”
까치발을 든 예나가 이야기했다.
“경찰서면 경찰서고, 박물관이면 박물관이고. 하나만 했으면 더 쉬웠을 것 같은데 말이야.”
안내문을 살핀 주원이 내부를 둘러보았다.
“근데 이 냄새는 어디서 나는 걸까?”
악취가 날 만한 무언가는 보이지 않았다.
그럴 만한 장소 역시 보이지 않았고 말이다.
“글쎄. 이제부터 찾아보면 되지. 그치, 오빠?”
예나가 용주를 바라보았다.
왼쪽으로 방향을 꺾은 용주는 덮개 하나를 걷어내고 있었다.
벽에 기대어져 있던 덮개 아래엔 또 다른 그림이 놓여 있었다.
푸른 바탕에 고성과 별이 그려진 아름다운 절벽의 모습이었다.
“전시되지 않은 것들도 있었네.”
용주에게 다가온 예나가 다른 덮개를 치웠다.
그리고.
“으악!!”
까무러치며 뒤로 자빠졌다.
“왜? 무슨 일이야?!”
깜짝 놀란 주원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림… 안에 그림이…!”
“그림?”
의문을 표한 주원이 덮개를 다시 걷어냈다.
안쪽에 있는 작품은 누군가의 초상화였다.
초상화의 상태는 기괴했다.
기괴하다고 느낀 첫 번째 이유는 털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머리카락은 물론이고, 눈썹도 없었다.
두 번째로 기괴함을 배가시킨 건 인물의 피부였다.
인물의 피부는 백색도 흑색도, 그렇다고 살구색도 아니었다.
인물의 피부는 붉은색.
살가죽이 통째로 벗겨진 듯한 끔찍한 빛깔이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기괴한 요소는 인물의 표정이었다.
고통에 울부짖는 것 같은 입과 눈.
그가 무엇을 봤는지.
어떤 것을 경험했는지.
그건 알 수 없지만, 이 그림 속 인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상태에 있었는지는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좀비도 시체도 안 무서워하면서, 이런 건 무서워하는구나?”
주원이 덮개를 완전히 걷어 냈다.
“무… 무서워하긴 누가 무서워했다고 그래? 그냥 좀 놀랐을 뿐이라고.”
예나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작품 이름이 그러니까…. ‘A-0003’. 뭐 이런 이상한 이름을 붙였대?”
주원이 작품의 이름을 읽었다.
이름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이름이란 생각이 들었다.
죄수 번호나, 실험이나 사건 넘버 같은 게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었으니 말이다.
“…….”
곁으로 다가온 용주는 마찬가지로 작품을 살펴보았다.
작가의 이름은 ‘맥윈 예커’.
낯이 익은 이름이었다.
“맥윈 예커? 왠지 들어본 것 같은 이름이네?”
고개를 들이민 예나가 물었다.
“자살한 경찰의 이름이 맥윈 예커였다.”
“아, 그랬었지. 그럼 이건 그 사람 작품이란 건가? 경찰이 화가라니, 뭔가 멋지네.”
개인적으로 멋진 작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개인에 대한 평가를 그렇게 내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지.”
“아닐 수도 있다니?”
“동명이인일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뭐, 어느 쪽이 정답이든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겠지만.”
용주가 생각하기에 둘이 동일 인물이냐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었다.
여기서 중요하게 봐야 하는 건 같은 이름이 등장했다는 그 자체.
다른 그림들과 차별화되는 무언가가 이 작품에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럼 이것도 무슨 단서인 걸까, 오빠?”
“지금으로선 그렇게 생각해야겠지.”
용주는 덮개가 씌워진 다른 작품들도 살피기 시작했다.
50개가 넘는 작품 중 맥윈 예커라는 작가의 작품은 총 5개였다.
작품들의 제목은 처음 발견한 것과 비슷한 구조로 A-0001~A-0006 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빈 숫자는 5.
이유는 모르겠지만 5라는 제목이 건너뛰어져 있었다.
“와~ 모아놓고 보니까 이거 꿈에 나올까 무서운데요.”
일렬로 세운 작품들을 본 주원이 부르르 떨었다.
처음 봤던 작품을 기준으로 왼편의 2개는 상대적으로 상태가 양호했다.
하지만 뒤에 오는 2개는 더 이상 사람이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첫 번째 그림에는 한 남성이 그려져 있었다.
피부도, 머리도 건강해 보였고, 눈에 생기도 있고, 표정도 밝았다.
두 번째 그림에도 마찬가지로 남성이 그려져 있었다.
얼핏 봐도 동일 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다크서클이 두껍게 내려앉았고, 피부에 생기도 없었다.
얼굴엔 거뭇거뭇한 반점 같은 게 생겨 있었다.
얼핏 보이는 입 안은 붉게 묘사되어 있어, 마치 피가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딘가 많이 아파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여기까진 사람의 모습이었다.
문제는 아까 봤던 세 번째 그림부터.
“오빠, 근데 이거… 아까 봤던 그 특수 좀비 닮지 않았어?”
네 번째 그림을 유심히 보던 예나가 물었다.
A-0004라는 제목을 가진 이 그림에 그려져 있는 건 거대한 외눈을 가진 생명체였다.
“그렇게 말하고 보니까 그렇네. 눈이 달린 위치는 좀 다르지만.”
주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만났던 특수 좀비는 눈이 배 부분에 달려 있었다.
하지만 이 그림의 외눈은 얼굴에 달려 있었다.
세 번째 그림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했다.
그나마 사람과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던 눈코입의 배치가 네 번째에선 사라져 버렸으니 말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 그림은 유일하게 전신이 그려진 그림이었다.
네 개의 팔을 가진 기괴한 생명체의 몸 여기저기엔 눈이 붙어 있었다.
“근데 A-0005라는 제목은 왜 비어 있을까?”
예나가 물었다.
“그러고 보니 그렇네. 난 당연히 이게 5라고 생각했는데, 6이었구나?”
“빼먹은 그림은 없는데….”
이름 자체가 이상한 작품이긴 했지만, 그래도 넘버를 매길 거면 순서대로 하는 게 보통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 5는 없었다.
일부러 빼먹은 건지.
아니면 작품이 있는데 분실한 건지.
지금으로선 알 방도가 없었다.
달그락!
모든 그림들을 살펴본 용주는 걸려 있는 그림들을 하나씩 내리기 시작했다.
“응? 뭐 하시게요?”
주원이 물었다.
“규칙에 맞게 물건들을 재배열할 거다. 물론, 여기 다섯 작품도 포함해서.”
“규칙에 맞게?”
“오빠도 아까 읽었잖아. 안내판. 거기 적혀 있던 거 생각 안 나?”
예나가 대신 대답했다.
“어… 물론 기억하지! 먹을 거 먹으면 안 된다고 했고, 사진도 안 된다고 했고.”
“그런 거 말고. 그림 전시 순서 있었잖아.”
“아~ 이름순으로 정렬돼 있다고! 근데 왜?”
“용주 오빠는 이 전체가 일종의 퍼즐이라고 생각한 걸 거야. 안내판이 그 퍼즐을 풀 힌트고. 그치, 오빠?”
예나가 용주를 바라보자 주원이 손 방아를 찧었다.
용주가 뭘 하려는지 이제 좀 알 것 같았다.
“아~ 그렇구나. 잠깐만. 근데 작품 만지지 말라고 써 있지 않았어? 그럼 규칙 위반 아니야?”
의문점이 생긴 주원이 물었다.
“어… 음… 그건….”
예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확실히 거기엔 그런 규칙도 적혀 있었다.
“준비 중인 전시물엔 해당 사항 없을 거다. 누군가의 손이 닿지 않는 한 영영 전시될 일이 없을 테니까.”
용주가 하나의 작품을 왼쪽으로 옮겼다.
“그럼 일단 화가 이름 순서대로 쭉 모아보는 걸로 할까, 오빠? 작품 이름 순서대로 배열하는 건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으니까.”
예나가 이야기했다.
“그래.”
“그럼 오빠, 이건?”
예나가 방금의 그 작품들을 가리켰다.
“맥윈 예커라는 이름, 아무리 봐도 외국 사람이잖아. 그럼‘ㅁ’이 아니라 ‘M’으로 시작하는 거 아니야? 알파벳은 어디로 가야 할까?”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작가들의 이름은 국적이 뒤죽박죽인 듯 보였다.
러시아 이름 같은 것도 있고, 한국 이름 같은 것도 있었다.
어떤 언어를 기준으로 정렬할지에 따라 결괏값이 아마 크게 달라질 것이다.
“일단은 한글 표기법 순서대로 해볼 생각이다.”
용주가 또 하나의 그림을 옮기며 대답했다.
“한글? 왜? 오빠 성격에 그냥은 아닐 거 아니야.”
“이유는 총 세 가지다.”
“세 가지?”
“그래. 하나는 안내판의 언어, 거기 적혀 있는 글자는 한글뿐이었다.”
용주의 이야기에 예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확실히 안내판에 적혀 있는 건 한글뿐이었다.
일반적으로 박물관이라고 하면 영어 정도는 병기되어 있는 게 보통인데도 말이다.
“둘째는 여기 적힌 이름. 여기에도 마찬가지로 영문은 적혀 있지 않다. 마찬가지로 작품 이름 또한 대부분 한글로 적혀 있다. 알파벳과 숫자로 표기된 건 이 맥윈 예커의 작품뿐이지. 녀석의 카테고리 안에서만 숫자로 정렬하면 될 거다.”
“그게 세 번째 이유라는 거네?”
“그래.”
용주의 풀이에 예나가 액자 하나를 살폈다.
확실히 외국 작가들의 작품들 역시 한글명이 기재되어 있었다.
가령 ‘The Starry Night’ 이라는 작품이 있다고 하면 ‘별이 빛나는 밤’으로 되어 있는 식이었다.
“결정 났으면 후딱후딱 해보자고요! 탈락해 버리기 전에!”
파이팅 넘치게 외친 주원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빠! 그거 거기 아니야! 더 뒤라고!”
잠깐잠깐 약간의 해프닝도 있었지만, 작품들은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갔다.
“읏차! 그럼 이걸로 마지막!”
주원이 마지막 그림을 걸었다.
드르륵!
변화는 곧장 나타났다.
첫 번째 그림이 걸려 있는 왼편부터 차례대로 바닥이 꺼지기 시작했다.
벽면을 따라 점점 더 깊게 내려간 계단은 코너를 돌아 계속되었다.
“이야~ 이게 다 뭐래? 완전 영화잖아, 영화!”
주원이 감탄을 표했다.
살면서 설마 이런 걸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내려가 봐요, 우리!”
금방 신이 난 주원이 앞장서 내려갔다.
하지만 그 즐거움은 오래 가지 못했다.
한 계단 한 계단을 내려갈수록.
점점 짙어지는 악취 때문이었다.
“으… 냄새.”
코맹맹이 소리를 낸 주원은 가장 아래층까지 이동했다.
거기서 주원이 마주한 것은.
하수도였다.
“악취의 원인이 이거였나 보네.”
뒤따라 내려온 예나가 곰 인형을 끌어안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심하네, 우리 버티한테 냄새 배겠어.”
예나가 기억하기로 설계도면에 이곳에 대한 건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즉, 제아무리 용주라고 해도 길이나 상황을 예측할 수 없다는 소리였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출발 지점이 갈림길이 아니란 것이었다.
서 있는 곳을 기준으로 왼쪽으론 두꺼운 쇠창살이 처져 있었다.
갈 수 있는 건 오른쪽뿐.
사람 두 명이 간신히 걸을 좁은 길 옆으론 더러운 구정물이 흘러가고 있었다.
하수도로 내려온 용주는 곧장 길을 걷기 시작했다.
딱히 멈춰 있을 이유도, 시간도 없었으니 말이다.
“아! 오빠, 같이 가!”
“우왁~! 밀지 마! 떨어진다고! 떨어져!”
간신히 중심을 잡은 주원이 마지막에 섰다.
하마터면 물속에 처박힐 뻔한 주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