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오빠들…. 여기는….”
“예나야! 정신이 들어?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어디 아픈 데는 없어?”
주원이 예나를 꼭 끌어안았다.
그의 눈에선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아… 나 기절했었구나.’
예나는 그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았다.
“울지 말아요, 오빠. 저 괜찮으니까.”
예나가 주원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조금 바보 같긴 하지만, 안쓰러울 정도로 좋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근데 여기 어디에요? 좀비들은요?”
예나가 다시 한번 물었다.
지금 있는 곳은 자신들이 있던 메인 전시실은 아니었다.
“맥윈 예커. 그 경찰관의 시신이 있던 곳이다.”
용주가 대답했다.
“좀비들은 다 정리하지 못했다. 널 공격했던 그 변종 녀석도 아직 살아 있지.”
“그렇군요….”
예나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분한 감정이 들었다.
“죄송해요. 제가….”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예나의 말을 가로챈 용주가 두 가지 물건을 밀어주었다.
하나는 예나의 검.
다른 하나는 버티였다.
“미안하다니…. 오빠가 저한테 왜 사과해요.”
“녀석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한 건 명백한 내 실책이었다. 이상을 좀 더 빨리 감지하지 못한 것도 내 실책이었고.”
용주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경계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결과가 증명하지 못하는 한 과정은 변명일 뿐이었다.
‘용주 오빠도 걱정해주고 있었구나.’
자신의 품에 버티가 없다는 걸 그제야 깨달은 예나는 버티를 꼭 끌어안았다.
‘전혀 안 그런 얼굴인데… 자상한 부분도 있었네.’
“…근데 저 얼마나 이러고 있었어요?”
주제를 돌린 예나가 물었다.
“아마 1시간 정도 됐을 거야.”
“1시간이라고요?!”
주원의 대답에 예나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마 그렇게 오래 기절해 있었을 줄이야….
“어떡해. 저 때문에 시간 부족해진 거 아니에요?”
예나의 얼굴에 미안한 감정이 스쳤다.
정확한 판단으로 아무리 정답을 쫓아간다 해도 시간은 정해져 있었다.
지금까지의 진행은 한없이 순조로웠다.
다른 조의 상태가 어떤진 몰라도, 절대 뒤처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1시간이라는 큰 공백이 생겨 버렸다.
정답만을 쫓아가도 이제 시간이 부족할 수 있단 소리였다.
“걱정할 시간이 있다면 움직이면 된다. 뒤처졌다면 쫓아가면 그만이다.”
용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처졌다’라는 표현은 사실 정확한 게 아니었다.
이건 절대 평가지 상대 평가가 아니니 말이다.
그냥 서두르자는 말의 다른 표현이었다.
“…네!”
예나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차갑고 냉정한 사람이라고만 비쳤는데, 함께 있으면 있을수록 실은 속 깊고, 따뜻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 표현은 잘 안 하지만….
“저기, 예나야.”
눈높이를 맞춘 주원이 예나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응? 뭔데요? 갑자기 목소리도 소곤소곤.”
“아까부터 계속 승우 오빠란 사람을 찾던 데 누군지 물어봐도 돼?”
“……!”
예나가 놀란 눈을 깜빡였다.
“내가… 아니, 제가 그런 말을 했다고요?!”
예나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응. 버티랑 승우 오빠란 사람 찾았어.”
“…….”
예나가 머리를 긁적였다.
혼자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니….
왠지 창피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에요.”
귀까지 빨개진 예나가 시선을 피했다.
승우 오빠….
임승우.
그건 집사의 본명이었다.
“음? 반응이 뭔가 이상한데?”
“기… 기분 탓이에요! 기분 탓! 무고할 정도로 평범했다고요!”
“음… 그런가?”
주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하핫! 그렇다고요!”
어색하게 웃어 보인 예나가 고개를 돌렸다.
용주는 바리케이드로 썼던 책장을 치우고 있었다.
‘어라?’
용주를 바라보던 예나는 뭔가 허전하다는 걸 느꼈다.
용주의 검.
그가 가지고 다니던 그 검이 사라지고 없었다.
“저기, 용주 오빠!”
용주가 예나를 돌아보았다.
“오빠 검 어디 갔어요?”
“이제 돌려받으러 가야지.”
용주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돌려받으러? 그럼….”
“아까 예나가 공격받았을 때, 용주형이 자기 무기 던졌었거든. 용주 형이 예나 건 다 회수했는데, 자기 검까진 못 돌려받았어.”
“…….”
예나의 머릿속에 한 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상반신만 창을 넘어온 좀비가 자신을 물어뜯으려 했을 때.
용주는 그때도 자신을 검을 던졌었다.
아무런 고민도.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그랬었군요….”
말끝을 흐린 예나가 용주의 팔을 낚아챘다.
“오빠 무기는 제가 책임지고 찾아 드릴게요. 꼭이요!”
“그 정돈 스스로 돌려받을 수 있다. 무기가 없어도 전투를 이어갈 수 있으니.”
“그런 걱정을 하는 게 아니라고요! 오빠 그 손톱 만들면 다치잖아요! 지금도 이렇게…!”
예나가 용주의 손을 펼쳤다.
원래대로라면 분명 상처가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상처는 어디에도 없었다.
“어라? 상처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우리 중에 의료 헌터는 없었다.
애당초 의료 헌터가 E급에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1시간.
길어봤자 1시간밖에 안 되는 시간에 상처가 아무는 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문제 될 거라면 쓰지도 않았을 거다.”
용주가 예나의 손을 뿌리쳤다.
“천장을 기어 다니던 녀석…. 맡겨도 되겠지?”
정면을 주시한 용주가 이야기했다.
예나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물론이에요!”
“좋다. 그럼 더 이상 지체할 시간 없다. 단번에 돌파한다!”
HP를 소모한 용주가 다시 한번 붉은 손톱을 만들어냈다.
문 앞에 수많은 좀비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 * *
빠른 속도로 중앙홀까지 수복한 용주 일행은 메인 전시홀이 있던 복도로 진입했다.
칼을 먼저 사출한 예나는 전방에 보이는 좀비들을 베어 냈다.
예나가 우선적으로 타기팅한 건 움직임이 없는, 눕거나 엎어져 있는 녀석들.
걸어 다니는 녀석들은 어차피 별다른 위험이 되지 않았다.
“그 이상하게 생긴 녀석은 아직 안 보이네요.”
자판기를 두드리고 있던 좀비를 베어 낸 주원이 이야기했다.
천장을 쭉 신경 쓰고 있었는데, 아직까지 녀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좀비들은 자신들을 따라오려는 것 같은 동선을 그리고 있었는데 말이다.
“멀리 떨어지지 마라. 아까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싫으면.”
자신을 붙잡으려던 좀비의 목을 붙잡은 용주는 그대로 녀석의 안면을 찢었다.
메인 전시홀은 이제 코앞이었다.
“저기! 메인 전시홀이 보여요!”
복도를 질주한 주원이 메인 전시홀로 들어섰다.
바깥쪽으로 분산된 덕분에 좀비들의 수는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아까 그 녀석은….’
주원의 시선이 천장을 향했다.
녀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주원 오빠! 뒤!”
목소리와 동시에 날아온 예나의 검이 주원을 스쳐 지나갔다.
불과 7cm.
목 울대와 불과 7cm의 거리였다.
간담이 서늘해진 주원은 뒤를 돌아보았다.
바닥에는 방금 막 잡은 미꾸라지 같은 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저건 아까 봤던….’
주원의 시선이 혓바닥을 역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끼긱! 끼기긱!”
천장이 아닌 벽면.
출입문과 가장 가까운 시야의 사각에 녀석이 있었다.
“제가 처리할게요!”
뒤로 돌아선 예나가 검을 겨눴다.
기습에 실패한 특수 좀비는 도망가려는 듯 움직이고 있었다.
“어딜 도망가려고!”
예리한 직각을 그린 예나의 검이 좀비의 머리를 꿰뚫었다.
성공적인 일격이었다.
하지만.
“끼긱!”
눈썹 위쪽이 떨어진 특수 좀비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모서리를 지나 천장을 통해 도주를 계속하고 있었다.
‘머리는 분명 꿰뚫었는데….’
“움직여요! 움직인다고요!”
놀란 건 예나뿐만이 아니었다.
용주와 주원 역시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내가 놓칠 줄 알고?!”
90도로 방향을 꺾은 예나의 검은 녀석의 왼쪽 팔을 잘라 냈다.
한쪽 팔을 잃은 특수 좀비는 그대로 땅으로 떨어져 버렸다.
“끝이야!”
직각으로 떨어진 예나의 검이 다시 한번 놈의 미간을 관통했다.
하지만.
녀석은 배를 위로한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가 반으로 갈린 채.
“으으…! 완전 공포 영화가 따로 없잖아?!”
주원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눈앞에 있는 좀비들도 충분히 공포감을 조성하는 요소였지만, 저거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었다.
‘저건….’
용주의 눈에 한 가지 특이점이 들어왔다.
지금껏 숨겨져 있던 녀석의 배 아래에 눈알이 하나 달려 있었다.
어쩌면….
타다닥!
재빠르게 움직인 용주는 무리 속으로 사라지려는 녀석을 쫓았다.
“방해다.”
자세를 낮춘 용주가 놈들의 다리를 잘라냈다.
머리를 베는 것처럼 죽일 수는 없었지만, 빠르게 많은 적을 따돌리기에는 이게 더 적합했다.
“용주 오빠!”
뒤에서 들려오는 예나의 목소리를 따라 두 가지 소리가 다가왔다.
빠르고 날카롭게 회전하는 바람 소리와 피와 살점이 쏟아지는 소리.
“오빠 뒤! 뒤 좀 봐요!”
발목 높이에서 회전하는 예나의 검은 일직선상에 놓인 좀비들의 다리를 모조리 절단하고 있었다.
“좀 보라고!”
답답함에 예나가 소리쳤다.
급한 김에 아무 말이나 튀어나와 버린 예나였다.
‘3… 2… 1.’
속도를 소리로 계산한 용주는 정확한 타이밍에 뛰어올랐다.
“!”
검의 진행 방향을 선회하려던 예나는 급하게 작전을 철회했다.
용주를 통과하는 예나의 검.
발밑과 바닥 사이의 좁은 틈으로 검을 흘려보낸 용주는 검의 뒤를 쫓았다.
검은 믹서기처럼 좀비들의 다리를 갈아 나가고 있었다.
“말했잖아. 놓치지 않겠다고!”
속도를 더욱 높인 예나의 검이 특수 좀비를 앞질렀다.
팔다리에서 분리된 좀비의 몸통은 땅에 뚝 떨어지고 있었다.
때를 놓치지 않은 용주는 녀석을 덮쳤다.
날카로운 손톱에 찢긴 눈동자에선 하얗고, 붉은 액체가 쏟아지고 있었다.
* * *
“하아. 간신히 정리했네요.”
주원이 이마를 닦았다.
메인 전시홀엔 좀비의 사체만이 가득했다.
“오빠! 들었으면, 들었다는 시늉이라도 해줘야지! 놀랐잖아!”
용주에게 다가간 예나가 따지듯이 이야기했다.
필터링은 없었다.
생각보다 감정이 더 앞서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한테 맡긴다면서! 왜 끝까지 믿어주지 않은 건데?! 이 거짓말쟁이!”
예나가 용주를 삿대질했다.
믿어준다고 그랬으면서.
괜스레 배신감이 들었다.
“천장을 기어 다니던 녀석은 너한테 맡겼었다. 내가 쫓은 건 땅을 기는 녀석이었고.”
용주가 눈을 마주치며 대답했다.
목소리, 눈빛, 표정.
그 어디서도 차분함이 느껴졌다.
“뭐라고?! 이 오빠가 어디서 되도 않는 말장난을…!”
“자아, 진정, 진정.”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주원이 예나를 달랬다.
예나가 왜 이렇게 삐졌는지도.
용주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도.
전부 이해할 수 있었다.
“흥!”
진한 콧소리를 낸 예나가 검 한 자루를 내밀었다.
방 한구석에 버려져 있던 용주의 검이었다.
“저기… 건넬 사람을 잘못 정한 거 같은데, 예나야?”
“용주 오빠한테 전해줘요.”
“아니, 그러니까 바로 앞에 있는데 왜 전달을….”
곤란한 듯 머리를 긁적인 주원이 예나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지 말고, 둘이 화해해요. 자! 악수!”
용주의 손을 마저 잡은 주원이 양쪽을 보며 웃어 보였다.
두 사람 다 딱히 웃을 만한 표정은 아니었기에, 주원의 미소는 참 쓸쓸하게 느껴졌다.
용주와 기 싸움을 벌이던 예나는 작은 숨을 들이마셨다.
“…책임지고 찾아 줬으니, 약속은 지킨 거예요. 전 오빠랑 다르다고요!”
“그래.”
“그리고 저도 이제 말 편하게 할 거예요! 오빠도 말 가지고 마음대로 했으니까, 나도 마음대로 할 거라고! 흥!”
예나가 고개를 돌렸다.
“뭐, 그러시든지.”
용주가 자신의 검을 손에 쥐었다.
어찌어찌 화해가 된 것 같은 분위기에 주원은 두 사람을 놓아주었다.
“근데 이거, 처음 만났던 거랑 다른 개체인 걸까요?”
특수 좀비의 유해를 바라본 주원이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오빠?”
예나가 대답했다.
선언한 걸 곧장 실행으로 옮긴 예나였다.
“아니, 아까 분명 혀를 잘라냈었거든. 근데 잘린 혀를 보면 절단면이 하나뿐이어서. 한 번 잘리고 안쪽에 그만한 길이가 더 있었다면, 양쪽 끝이 다 절단면이어야 할 것 같은데.”
바뀐 예나의 말투에도 주원은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쪽이 더 예나한테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성이나 호흡이 훨씬 자연스랍다고나 할까?
“그것도 그렇네.”
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저기 잘린 혀의 한쪽 끝은 뭉뚝했다.
“녀석 같은 개체가 더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정도로 해두면 될 거다. 지금은.”
용주가 대답했다.
인지하고 경계하면, 아까 같은 불의의 기습은 당하지 않을 것이다.
시야의 사각에서 들어오는 기습 외에는 그렇게 위협적인 개체는 아닌 것 같으니 말이다.
“머리가 날아가도 움직였었죠? 완전 무서웠었다고요.”
“나도 그건 좀 놀랐어. 오빤 용케도 알아냈네. 녀석의 약점. 어디 단서 같은 게 적혀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예나가 찢긴 눈동자를 내려다보았다.
“그 정도로 노골적이면 눈치채지 못하는 게 더 이상한 거겠지.”
용주가 앞장섰다.
1시간이나 넘게 지체됐지만, 이제라도 가려던 길을 밟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