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정리 완료!”
몇 번이고 안전을 확인한 예나가 환풍구를 내려왔다.
땅에는 피가 잔뜩 묻은 렌치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살아 있는 사람은 그 자살한 경관님 하나인 줄 알았는데, 그럼 이 사람은 산 채로 여기 갇힌 건가?’
자세를 잔뜩 낮춘 예나는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창으로 다가갔다.
바깥쪽이 보이는 창은 아니었다.
창 너머로 보이는 건 또 다른 방.
가구의 배치나 분위기 등으로 봐선 취조실인 모양이었다.
‘그럼 내가 있는 곳은 영화에나 나오는 그 거울방인 건가?’
예나가 기억하기로 설계도상 여긴 한 칸짜리 방이었다.
경찰서로 용도가 변경되면서 추후에 공간을 나눈 모양이다.
거울방의 문은 열려 있었다.
취조실의 문도 마찬가지로 열려 있었다.
복도는 어두웠고, 고요했다.
‘잠깐만. 생각해 보니, 용주 오빠 안쪽 구조나 그런 거에 대해선 한마디도 안 해줬지?’
깜빡하고 말을 안 해줬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보다 가능성이 높은 건 말하지 않아도 자신이 안쪽의 구조를 대략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
‘그렇다는 건 주원 오빠 말대로 날 믿었기 때문이란 거네.’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집사를 제외한 다른 헌터가 자신을 그렇게 대해준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아니,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잠시 생각에 빠졌던 예나가 고개를 저었다.
입구까지 가려면 복도를 나서 우측으로 좀 더 가야만 했다.
“버티, 그럼 우리도 조금만 더 힘 내볼까? 오빠들한텐 아직 비밀로 할 거지만 말이야.”
예나가 인형을 품에 꼭 안았다.
그리고.
인형을 가볍게 놓아주었다.
“가자, 버티. 우리들의 시간이야.”
예나의 말이 떨어지자 곰 인형의 모습이 순식간에 팽창하기 시작했다.
보통의 인형이라면 땅에 떨어지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예나의 인형은 그렇지 않았다.
예나보다도 더 커진 버티는 두 발로 땅을 디디며 서 있었다.
“스킬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오빠 혼자만이 아니라고, 용주 오빠?”
소리 없는 웃음을 삼킨 예나는 취조실을 빠져나갔다.
예나의 곁을 지키는 버티는 마치 보디가드를 보는 것만 같았다.
“쿠웨엑!”
발소리가 들리자 좀비들이 하나둘 다가오기 시작했다.
빠르진 않았다.
달리지도 않았고, 장애물을 뛰어넘지도 않았다.
촤악!
제자리에 멈춰 선 예나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다가오는 좀비들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좀비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얼추 정리된 건가?”
움직이던 마지막 좀비를 처리한 예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복도에는 자판기 하나가 빛을 내고 있었다.
‘보고 있으니까 갑자기 목마른 것 같잖아.’
자판기의 음료들을 올려다본 예나가 걸음을 멈추었다.
뽑아 먹고 싶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버티, 방금 그 소리 들었어?”
혼잣말을 중얼거린 예나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방금 딱딱한 단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확인해 봐야겠어.’
예나는 뒤로 서너 걸음을 물러섰다.
자신이 움직이고 정확히 3초 뒤.
단화 소리는 자신이 움직인 만큼 따라오고 있었다.
‘이거 혹시….’
예나의 머릿속에 아까 봤던 유서의 내용이 떠올랐다.
자살한 그 경관이 들었다는 발소리.
그 발소리가 이거였던 모양이다.
‘가서 용주 오빠한테도 알려줘야겠어.’
예나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자신이 여기에 들어서면서 또 뭔가 트리거가 작동한 게 분명했다.
지금까지의 수순대로라면 머지않아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다.
“크에엑!”
예나가 다시 걸음을 서두르자, 자판기의 사각에 누워 있던 좀비가 예나를 공격했다.
예나보다 한발 먼저 나선 버티는 좀비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완전하게 둘로 찢어 버렸다.
살과 피가 튀었고, 절단면을 타고 내장이 쏟아졌다.
둘로 찢긴 좀비의 머리를 밟은 버티는 있는 힘껏 머리를 짓이겼다.
“고마워, 버티. 큰일 날 뻔했어.”
버티를 툭툭 두드린 예나는 코너를 돌았다.
복도엔 수많은 좀비들의 신체 조각이 나뒹굴고 있었다.
* * *
“으~ 눈부셔.”
문을 연 예나가 눈을 찡그렸다.
갑자기 마주한 빛에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예나야! 어디 다친 곳은 없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주원이 예나의 구석구석을 살폈다.
“저기… 그렇게 쳐다보면 저라도 부담스러운데요.”
“아! 미안, 미안! 그래도 다친 곳은 없는 모양이네. 음! 다행이야!”
“걱정할 거라면 처음부터 같이 가줬으면 좋잖아요.”
예나가 고개를 저었다.
버티는 예나의 품에 꼭 안겨 있었다.
“아하핫! 미안, 미안. 사과했으니까 이제 이것 좀 치워줄래? 장난이라도 좀 무서운데….”
주원의 이마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예나의 검은 주원의 어깨 근처에 머물고 있었다.
“안쪽 상황은?”
용주가 물었다.
“좀비들이 더 있어요. 창을 통해 더 들어오는 것 같진 않았는데, 아마 더 있을 거예요.”
“좀비. 그러고 보니까 안쪽에도 시체 천지네. 저거 다 예나 네가 정리한 거야?”
문 안쪽을 들여다본 주원이 물었다.
좀비들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머리를 세지 않는 이상 정확히 몇 구였는지도 알아내기 힘들 정도였다.
“아니요. 이쪽 복도에 있는 건 제가 정리한 게 아니에요.”
예나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이 상태였단 말이야?”
“네. 제가 발견했을 때는 이미 이 상태였어요. 저기 돌아서 있는 복도에 있는 건 제가 정리한 거지만요.”
예나가 용주를 올려다보았다.
“그보다, 오빠. 발소리가 났어요. 위층에서요.”
예나가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용주의 시선은 천장 쪽으로 향했다.
지금은 그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발소리? 아무것도 안 들리는데?”
주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진짜 들렸었다니까요! 조금 전까지도 절 따라왔었다고요!”
“음… 그렇구나.”
주원이 예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저… 오빠, 제가 잘못 들었다고 생각한 거죠? 무서워서 자기 발소리를 착각했다고.”
꿍한 표정의 예나가 물었다.
주원의 목소리와 표정.
그것만 들어도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응?! 아아아니야! 설마 내가 그런 생각을 했으려고.”
“못 믿겠으면 들려드릴게요. 제가 이렇게 걸으면…!”
일부로 큰 발소리를 낸 예나가 중앙홀로 나왔다.
예나가 낸 발소리 이외에 다른 발소리는 없었다.
“뭐야? 왜 안 따라오는 건데?!”
당황한 예나가 더 큰 소리를 냈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어라? 이럴 리가 없는데….”
예나의 불안한 눈빛이 용주를 향했다.
“거… 거짓말 아니에요! 진짜였다니까요!”
“그래. 네가 들었다면, 들린 거겠지.”
예나를 지나친 용주는 안쪽으로 들어섰다.
소리에 집중한 용주는 복도를 거닐었다.
정확히 네 발자국.
용주가 딱 네 발자국을 걸었을 때 뒤쪽에서 따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발소리… 진짜 나잖아?”
“제가 말했잖아요. 저 거짓말 안 했다고요! 무서워하지도 않았고요!”
“악!”
주원의 발을 콱 밟아준 예나가 용주를 쫓았다.
“근데 오빠 어디서부터 찾아볼 거예요? 흩어지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은데요.”
“안쪽에 까마귀 열쇠로 열 수 있는 방이 하나 있다. 일단은 거기부터 조사해볼 생각이다.”
“괜찮은 생각이네요.”
예나가 기억하기로 까마귀 열쇠가 그려진 방은 제법 안쪽에 있는 서브 전시홀 3이었다.
“그러니까 전시홀로 가려면 여길 지나야 한단 말씀이시죠?”
목소리를 낮춘 주원이 물었다.
세 사람이 숨어 있는 복도 끝에 보이는 건 메인 전시홀로, 메인 전시홀엔 수많은 좀비들이 방황하고 있었다.
“다른 곳을 조사한다 해도 처리해두면 좋을 거야. 그렇지, 오빠?”
대답 대신 검을 뽑아 든 용주는 선두에 섰다.
발소리가 다가오자 좀비들의 움직임에 변화가 생겼다.
한곳으로 모여드는 좀비의 물결.
우측 세 마리의 머리를 연달아 날려 버린 용주는 날카롭게 세운 손톱으로 뒤를 노리는 좀비의 아래턱을 찢었다.
좀비들의 전투력은 뛰어나지 않았다.
스피드도 근력도 일반인 이하.
수적 우위와 질긴 생명력을 빼면 헌터들에게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었다.
“머리 날리는 거 잊지 마요!”
“그럼, 그럼!”
곧장 뒤따라온 예나와 주원 역시 전투에 동참했다.
선봉에 나선 건 용주와 주원.
보다 넓은 시야를 가진 예나는 두 사람에게 위협이 될 만한 적들을 우선적으로 처리하고 있었다.
‘잠깐만. 뭔가 좀 이상한데….’
전투가 계속되던 그때.
예나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좀비의 입장에서 보면 앞선 두 사람은 똑같은 위협일 것이다.
근데 좀비가 몰려드는 빈도에 있어서 두 사람은 똑같지 않았다.
좀비가 몰려는 빈도는 대략 7:3.
7의 좀비는 용주를 노리고 있었다.
‘어째서지?’
예나의 시선이 용주를 훑었다.
딱히 눈에 띄는 점은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말이다.
‘용주 오빠 왼손… 피투성이야. 물린 건 못 봤는데?’
용주가 허용한 공격은 단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어째선지 용주의 왼손엔 상처가 가득했다.
‘스킬… 때문인가?’
확신할 순 없었다.
스킬 때문에 스스로 피를 흘린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었으니까.
하지만 생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그것뿐이었다.
그렇다면 용주 쪽으로 더 많은 좀비들이 몰리는 것도 어느 정도 설명이 되었다.
좀비가 신선한 피에 반응한다는 것 정도야 흔하디흔한 설정이었으니까 말이다.
‘용주 오빠한테 조금 더 집중해 주는 게 좋겠어. 물릴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예나의 시선이 용주에게 쏠린 그때.
예나는 자신의 목에 무언가가 휘감기는 걸 느꼈다.
너무 순식간이라 반응하지도 못했다.
‘커흑…!’
예나의 두 다리가 허공을 휘적거렸다.
겉은 끈적하고 안쪽은 매끈한 기분 나쁜 촉감이 예나의 숨통을 조여 왔다.
‘숨이….’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목소리도 나지 않았다.
의식을 집중한 예나는 검을 움직였다.
최대한 빨리 이걸 끊어내야만 했다.
하지만.
탱! 대래랭!
예나의 검은 끝내 예나에게 도달하지 못했다.
말 그대로 순식간에 예나의 의식은 날아가 버렸다.
검이 떨어짐과 동시에 용주는 고개를 돌렸다.
“끼긱!! 끼기기긱!!”
천장에서부터 길게 내려온 무언가가 예나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저런 것도 있었던 거냐….’
용주가 미간을 좁혔다.
천장에 인간 비슷한 것이 네 발로 매달려 있었다.
혀를 길게 늘어뜨린 채 말이다.
“뒤로 물러난다! 교전은 피해!”
고함을 지른 용주가 자신의 검을 집어 던졌다.
원을 그리며 날아간 용주의 검은 변종 좀비의 혀를 잘라 냈다.
“알겠습니다. 근데 왜….”
이유를 물으려던 주원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뒤를 봐주고 있던 예나가 풀썩 쓰러져 있었고, 그 위엔 생전 처음 보는 이상한 게 매달려 있었다.
“예… 예나야!”
쏜살같이 달려간 주원이 재빨리 예나를 끌어안았다.
예나는 의식이 없었다.
“물러난다! 따라와!”
예나의 검을 챙긴 용주가 메인 전시실을 빠져나갔다.
“짐짝처럼 들어서 미안해. 아파도 조금만 참아.”
주원은 예나를 어깨에 걸쳤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기를 놓을 순 없었다.
* * *
“아…. 아….”
조금씩 떠오르는 의식 속에서 예나가 목소리를 냈다.
“도와줘, 버티. 도와줘, 승우 오빠.”
의식을 잃기 전에 마지막으로 생각했던 것들이 이제야 입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
눈을 뜬 예나는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양쪽엔 용주와 주원이 모습이 보였다.
주원은 자신을 보고 있었다.
표정이 얼마나 가관인지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았다.
용주는 다른 곳을 경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감정이 없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차가운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