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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61화 (61/357)

61화

“음…. 경찰수첩이랑 유서. 거기까진 알겠는데 나머지 두 개는 뭘까요?”

“다음에 해야 할 뭔가에 대한 힌트겠지.”

용주는 다시 한번 쪽지를 살펴보았다.

“똑같은 악기가 4개. 크기만 좀 다르네요.”

어느샌가 돌아온 주원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오빠 이럴 때만 조용조용 신속하네요. 쓸데없이.”

“그럼! 나야 언제나 기민하지! 근데… 마지막에 뭔가 이상한 게 섞여 들어간 거 같은 건 기분 탓이지?”

“아마 그럴걸요~ 오빠.”

예나가 능청스럽게 웃어 보였다.

돌아온 주원은 빈손이었다.

아무래도 특별한 단서는 찾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핫! 그렇지? 근데 왜 악기들에 줄이 다 없을까요? 줄이 없으면 연주할 수 없는데.”

호탕하게 웃어 보인 주원이 그림들을 하나하나 짚었다.

같은 모양의 악기가 그려진 네 개의 그림.

네 개 모두 줄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았다.

“확실히.”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오빠 웬일로 예리했네요. 다시 봤어요.”

“하핫! 그럼, 그럼! 응? 근데 다시 보다니! 나 어떻게 보이고 있었길래?!”

“어떻게 보이긴요. 오빠처럼 보였죠.”

어렵지 않게 대답한 예나는 용주를 바라보았다.

용주는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소리를 낼 수 없는 악기…. 어느 부분이 힌트인 거지? 어디에 쓸 힌트인 거냐고?’

까마귀 모양의 열쇠로 큰 복도의 문을 열 수는 없었다.

다른 통로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다른 열쇠가 필요.

진행을 위한 아주 중요한 단서임은 분명한데, 쉽게 감이 오지가 않았다.

“근데 이 똑같이 생긴 바이올린들 왜 다 크기가 다른 걸까요? 이것도 다 힌트인가?”

주원이 물었다.

“똑같이 생긴 바이올린? 아니에요, 오빠.”

예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라고?”

“응. 똑같이 보일 수도 있는데, 왼쪽부터 순서대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전혀 다른 악기라고요.”

“응? 그런 거야?!”

“그럼요! 비올라가 바이올린보다 조금 더 커요! 첼로는 그보다 더 크고, 콘트라베이스는 첼로보다 더 크고.”

“우와~ 예나 너 되게 똑똑하다! 어떻게 그런 걸 다 안대?!”

“부모님이 그런 쪽으로 관심이 좀 있으셨거든요. 유명한 오케스트라 공연에도 많이 가봤고, 배운 악기도 많아서 악기 진열하는 방만 따로 있을 정도니까요.”

“…….”

입이 떡 벌어진 주원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말로만 듣던 금수저.

아니, 금수저 중에서도 금수저인 다이아몬드 수저란 게 이런 건가 싶었다.

‘전혀 다른 네 개의 악기?’

예나의 이야기에 힌트를 얻은 용주는 쪽지를 집어 들었다.

뭔가 단서가 잡힐 것 같았다.

“참고로 각 악기들의 현의 개수는?”

용주가 물었다.

“다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전부 똑같이 4개예요.”

“…그래?”

자리에서 일어난 용주는 방문을 나섰다.

용주의 단독 행동에 두 사람은 급히 용주를 쫓았다.

좀비의 시체가 있는 사무실로 들어간 용주는 구석에 있던 금고로 다가가고 있었다.

“뭐 하시려고요?”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다.”

금고에 다가간 용주는 다이얼을 돌렸다.

처음 맞춘 숫자는 4.

그다음 숫자도 역시 4였다.

4444.

4개의 숫자가 연속해서 나열되자 딸깍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 열렸다!”

주원의 목소리를 뒤로한 용주는 금고를 열었다.

금고 안에는 파이프 렌치 하나가 들어 있었다.

“그게 금고 힌트였나 보네요.”

“그렇지만 왜 그런 이상한 암호로 되어 있던 걸까요? 금고 비밀번호를 따로 적어둘 수는 있지만 그런 이상한 암호로 적어둘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요.”

주원이 턱을 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라. 그냥 일방통행으로 놓인 퍼즐인 거야. 이성적인 논리로 따져봤자 이쪽만 피곤해질 뿐이다.”

용주는 파이프 렌치를 살펴보았다.

특별하다고 할 만한 건 보이지 않았다.

“그걸로 좀비 머리통이라도 박살 내라, 그 말일까요?”

주원이 물었다.

“아마 아니겠지. 무기를 허용한 시점에서 그런 걸 제공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그럼 그건….”

용주는 다시 한번 설계도면을 살펴보았다.

복잡해 보이는 도면 속엔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문이 아닌 또 다른 통로가.

“일단은 중앙 홀로 돌아가자.”

용주가 발견한 것들을 챙겼다.

“아! 그럼 저 방에 있던 것들도 챙겨야죠! 잠시만요!”

서둘러 달려 나간 주원이 경찰관의 유해가 있던 방으로 들어갔다.

주원의 손에는 빨간 소화기 하나가 들려 있었다.

“소화기?”

“아까 내가 들어갔던 쪽방 구석에 있더라고. 필요할지도 모르잖아.”

만족스러운 표정의 주원이 용주를 쫓았다.

판자로 막힌 창밖으론 좀비들이 어슬렁거리는 게 보였다.

* * *

“다음엔 어떻게 할 거예요, 오빠?”

중앙홀로 돌아온 예나가 물었다.

찾은 열쇠로 다른 문들을 열 수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다른 쪽 통로로 진입해 봐야지.”

“열쇠 안 맞잖아요. 아니에요?”

“열쇠가 없다고 못 들어간단 법은 없으니까.”

용주가 땅에 떨어져 있던 인형을 집어 들었다.

아마 주원이 판자들을 챙기며 떨어뜨린 모양이었다.

‘뭐지?’

뭔가 이질적인 걸 발견한 용주는 인형의 뒤통수를 주물럭거렸다.

인형의 안쪽에 무언가 들어 있었다.

인형의 뒤통수를 양손으로 잡은 용주는 인형의 천을 찢어 나가기 시작했다.

“요… 용주 형?! 갑자기 머리를 왜….”

“뭐라도 있어요?”

용주는 안쪽에 든 걸 확인했다.

안쪽에 들어 있던 건 얇게 편 구리로 만들어진 명함 크기의 판넬이었다.

판넬에는 세 가지 동물이 조형되어 있었다.

왼쪽부터 뱀, 사자, 까마귀였다.

“인형 안에 이상한 게 들어 있었네요? 완전 모르고 있었어요.”

예나가 이야기했다.

저 인형을 발견한 건 자신이었지만, 저런 게 들어 있단 것까진 눈치채지 못했었다.

“왜…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건데요?!”

자신을 향한 주원의 시선에 예나가 물었다.

“아니, 혹시 그 곰 인형 안에도 뭐가 들어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

“우리 버티한텐 저런 이상한 거 없어요! 화낼 거예요!”

날카롭게 주원을 쏘아본 예나는 곧바로 용주도 쏘아보았다.

으르렁거린다는 표현이 참 잘 어울리는 예나의 얼굴이었다.

시선을 피한 용주는 뚜벅뚜벅 어딘가로 걸어갔다.

용주가 향한 곳은 막혀 있는 출구가 있는 방향.

출구 앞에 선 용주는 아까 발견했던 까마귀 석판을 꺼내 들었다.

“그걸로 뭐 하시려고요?”

용주는 석판을 가져갔다.

세 개의 홈 중 가장 우측이었다.

홈에 다가간 석판은 홈 안쪽으로 빨려들어 갔다.

마치 다른 극을 띤 자석이 서로를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마침맞게 들어간 석판은 서서히 회전하더니 이내 멈추었다.

“그러니까. 그게 출구 열쇠였단 거네요. 구리에 그려진 건 순서에 대한 단서고요.”

용주에게 다가가던 예나가 까치발을 들었다.

“뱀이랑 사자, 두 개만 더 찾으면 탈출이네요. 그래서 아까 다른 곳으로 들어갈 방법이란 건요?”

“아! 나 알 것 같아! 강제로 부수자는 거죠?”

주원이 대신 대답했다.

그의 어깨엔 둔기로 용도가 변한 소화기가 올라가 있었다.

“보통이라면 먹히겠지만, 여기서 아마 강제적인 방법은 통하지 않을 거다.”

문에 기댄 용주가 대답했다.

그런 물리적인 방법만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면, 이미 오래전에 창문을 깨고 탈출했을 것이다.

“그러면….”

주원을 뒤로한 용주는 걸음을 옮겼다.

세 사람이 멈춘 곳은 환기구가 있는 벽 앞이었다.

“우리한테 있는 단서로 생각할 수 있는 진입로는 두 군데다.”

렌치를 꺼낸 용주가 이야기했다.

“두 군데?”

“그래. 하나는 저기 있는 커다란 환기구.”

용주가 석상 뒤편을 가리켰다.

계단 뒤편으론 제법 큰 규모의 환기구가 뚫려 있었다.

“다른 하나는 여기 있는 조그마한 환기구다.”

용주는 너트를 풀기 시작했다.

아래 두 개는 용주의 키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었지만, 위쪽 두 개는 용주도 까치발을 들어야 간신히 닿았다.

“응? 결국에는 둘 다 똑같은 환기구네요?”

주원이 환기구 뚜껑 내리는 걸 도와주었다.

“그래. 하지만 문까지 도달하는 거리엔 큰 차이가 있지.”

“그래도 여긴 너무 작은 것 같은데요. 어린애가 아닌 이상에야 이렇게 작은 환기구로 들어갈 수 있을 리가….”

뭔가를 깨달은 주원이 예나를 바라보았다.

“설마 저보고 거길 혼자 들어가란 말 아니죠, 오빠들…?”

불길함이 스친 예나가 자신을 가리켰다.

아무리 봐도 저 눈빛은 그러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설마다.”

“아니! 어째서 그렇게 된 건데요! 최소한 제 의견은 물어보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용주의 한마디에 예나가 즉각 반발했다.

“이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란 건 너도 잘 알리라 생각하는데?”

“그… 그건 그렇지만….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요!”

고개를 돌린 예나가 이번에는 주원에게 SOS 신호를 보냈다.

“오빠도 설마 같은 생각인 건 아니죠? 네? 그렇죠?”

“음…. 하하하핫!”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주원이 시선을 피했다.

“왜 고개를 돌리는 건데욧?!”

“아니, 예나 편을 들어주고 싶긴 한데, 용주 형이 그러기로 했으면, 한 번 그래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예나는 좀비든, 귀신이든, 시체든 하나도 안 무서워하잖아. 헌터니까!”

“윽…!”

예나가 쓰디쓴 침을 삼켰다.

자신이 했던 말과 행동들이 족쇄가 되어 돌아오고 있었다.

무서운 건 아니었다.

하지만 뭐가 있을지도 모르는 곳에 혼자 간다는 게 영 꺼림직했다.

그것도 저런 더럽고, 비좁은 환기구로.

“알았어요. 가면 되잖아요. 오빠들도 참 너무한다. 그치, 버티?”

예나가 인형을 들어 올렸다.

“저한테 무슨 일 생기면, 어떻게 해서든 오빠들도 탈락시킬 거예요. 저랑 버티한테 물릴 준비 하시라고요!”

검집에서 빠져나온 검이 허공을 갈랐다.

“그래.”

“그래…. 그게 다예요? 다른 건요?!”

용주의 성대모사를 한 예나가 버럭 외쳤다.

“용주 형이 그만큼 믿고 있고 있다는 거 아니겠어? 파이팅이야! 나도 믿고 있다고!”

예나의 어깨에 손을 올린 주원이 엄지를 치켜올렸다.

“믿는 걸로는 도움이 안 된다고요.”

한숨을 삼킨 예나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용주가 팔을 뻗어야 할 높이가 예나에게 만만할 리 없었다.

“타. 올려줄 테니까.”

자세를 낮춘 주원이 어깨를 내주었다.

“정말 눈물 나게 고맙네요. 오.빠.”

“에이~ 당연한 걸 가지고. 그렇게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고.”

목말을 태운 주원이 안정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예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조금 머리가 아픈 것 같았다.

“오빠, 근데 반대편에 도착해선 어떻게 해요?”

용주를 본 예나가 물었다.

문을 여는 건 여는 건데, 반대편도 마찬가지로 환풍구가 막혀 있지 않겠는가?

너트로 그렇게 조여 있으면, 발로 차는 정도로는 부서지지 않을 텐데….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갈 수 있게 됐을 거다. 지금까지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설계한 사람이 그 정도로 빡빡하게 굴진 않을 거다.”

“음… 알았어요. 대신 안 열리면 바로 돌아올 거라고요!”

“그래.”

꿍한 표정을 지은 예나가 환기구로 건너 탔다.

“아이! 거미줄! 완전 짜증 나!”

비좁은 환풍구를 기어가던 예나가 혼자 신경질을 냈다.

눈에 보이는 거미줄은 칼로 다 쳐내면서 왔는데, 코너를 돌면서 묻은 거미줄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응?”

예나의 눈에 출구가 보였다.

출구는 세 개의 너트가 풀린 채 달랑거리고 있었다.

“용주 오빠 말대로 진짜 열려 있잖아?”

칼을 먼저 내보낸 예나는 출구 끝에 최대한 바짝 붙었다.

내려가기 전에 주변을 살피고 싶었다.

아래쪽엔 사다리가 하나 넘어져 있었다.

그리고.

사다리 주변엔 세 마리의 좀비가 방황하고 있었다.

‘좀비가 안쪽에도 있잖아? 저게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단 거겠지?’

검을 회전시킨 예나가 세 좀비의 머리를 차례대로 베어 냈다.

좀비들은 나름의 반격을 시도해봤지만, 살도, 피도, 발소리도 없는 검에 좀비가 위협적일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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