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복도 끝에 다다른 용주는 문을 열었다.
문 건너편은 여전히 긴 복도였다.
다만, 밝은 중앙과 달리 문 안쪽은 상당히 어두웠다.
“그러고 보니, 바깥 풍경은 밤이었죠?”
복도 끝 창을 바라본 주원이 물었다.
딱히 신경 쓰고 있지 않았는데, 막상 이렇게 보니 분위기가 엄청 으스스했다.
“귀신이라도 나올 것처럼 생겼네요.”
주원이 마른침을 삼켰다.
“오빤 귀신 무서워하는가 보네요?”
“당연히 무섭지!”
“오….”
주원의 당당함에 예나가 놀라움을 삼켰다.
“응? 왜? 내가 이상한 말이라도 했나?”
“응. 아니, 보통은 부정하는 게 평범한 반응이지 않은가 싶어서요.”
“부정해? 왜?”
“…….”
주원의 물음에 예나는 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런 반응은 생전 처음이었다.
한 걸음 먼저 안쪽으로 들어선 용주는 기역 자로 꺾인 코너를 돌았다.
복도를 다섯 개의 창이 나 있었고, 총 2개의 문이 있었다.
문의 위치는 복도 끝에 하나, 중간에 하나로, 중간에 있는 쪽의 문이 좀 더 거대했다.
‘잠겼어.’
중앙문의 손잡이를 돌려본 용주는 몸으로 문을 밀어봤다.
문은 안쪽에서 단단히 잠겨 있었다.
‘다른 쪽은….’
복도 끝으로 걸음을 옮기던 용주는 마지막 창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왜 여기만 이렇게 해둔 거지?’
다섯 번째 창은 널빤지로 밀봉되어 있었다.
창은 곳곳이 깨져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바깥에서 깨졌어.’
바닥에 흩어진 유리 조각들을 살핀 용주는 다시 한번 창을 바라보았다.
‘침입자가 있었고, 그걸 막기 위해 누군가 여길 막았다…. 그게 아니라면 바깥에서 들어온 누군가가 뒤따라오는 자들을 저지하기 위해 여길 막았다. 그 정도가 일단 자연스러운 해석인가?’
지금으로선 어느 쪽인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판자와 못의 위치에선 당시의 다급함이 느껴졌다.
판자는 정리되지 않은 채 급하게 덧대어 있었고, 못 역시도 위치나 대칭 등을 고려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박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역시 이상해.’
같은 조건이라면 다른 창문들 역시 깨지거나 막혀 있었어야 했다.
다섯 개나 되는 창 중 이거 하나만 막아서는 아무것도 달라질 게 없었으니까.
하지만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창은 이것만 봉쇄되어 있었다.
‘하나만 봉쇄한 특별한 이유…. 그런 게 정말 있는 건가?’
“오빠,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고 있어요?”
용주를 따라잡은 예나가 물었다.
“아무것도.”
걸음을 옮긴 용주는 마지막 남은 문에 귀를 가져갔다.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없었다.
두 사람에게 눈짓을 보낸 용주는 손잡이를 붙잡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돌렸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
문을 연 용주를 가장 먼저 반긴 건 냄새였다.
오래되어 썩고 부패한 무언가의 악취.
뭔가 있음을 직감한 용주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방 안쪽은 일종의 사무실이었다.
초승달 모양의 테이블이 하나 있었고, 캐비닛과 금고 같은 몇 가지 가구들이 더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방 한구석에 무언가 있었다.
심하게 부패된 사람의 시신이.
“괘…! 괜찮으세요?!!”
용주보다 한발 늦게 들어온 주원이 놀라 외쳤다.
뛰쳐나가는 주원을 막은 용주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저건 산 사람이 아니었다.
“죽은 사람…. 저 사람이 그 일지의 주인일까요?”
인형을 끌어안은 예나가 물었다.
“글쎄…. 자세한 건 더 조사해 봐야 알겠지만, 지금 상황으로만 봐선 아닐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고 싶다.”
“음. 어째서요?”
“녀석의 복장. 일지의 주인은 경찰이었다. 아마 높은 확률로 경찰복을 입고 있었겠지.”
“음, 확실히 그렇겠네요.”
차분하게 대화를 이어가는 두 사람 사이에 주원이 끼어들었다.
“두… 두 사람 다 어떻게 그렇게 침착해요?! 사람이 죽었다고요! 어서 경찰에 신고를…!”
“진정해라. 저것도 어차피 다 만들어진 허상일 뿐이다.”
“허상….”
마른침을 삼킨 주원이 한 걸음 물러났다.
자세를 낮춘 용주는 시신을 살펴보았다.
정확히 언제 죽었는지는 몰라도 상당히 오래전에 죽은 것만은 확실했다.
피부는 검은색이었고, 상당히 많은 양의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여기서 총에 맞아 죽은 뒤에 방치된 걸까요?”
시신의 이마를 바라보던 예나가 물었다.
이마엔 선명한 탄흔이 있었다.
“총에 맞은 뒤 방치된 건 맞지만, 아마 여기서 그런 건 아닐 거다.”
“어째서요?”
“여기서 총을 맞고 머리가 터졌으면, 엄청난 양의 혈흔이 남아 있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여기 그런 건 없어.”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탄피도 없는 것 같고.”
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혹시 좀비 아닐까요?”
두 사람을 지켜보던 주원이 이야기했다.
“좀비?”
“왜 영화 같은데 보면, 나오잖아. 살아 움직이는 시체. 생긴 것도 완전 판박이고. 그거면 머리에 총을 맞은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아? 경찰이 아무한테나 발포하진 않았을 거 아니야?”
팍!! 파박!
주원이 검지를 세워 보인 그때.
바깥에서 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소리야?”
“바깥에서 들리는데요? 우리가 왔던 복도 쪽이에요!”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뛰쳐나간 용주는 복도를 확인했다.
쨍그랑!
바깥쪽에서 깨진 유리창 안으로 부패한 누군가의 손이 불쑥 들어와 있었다.
아까 안쪽에서 보았던 시신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뭔가 일어나고 있음을 직감한 용주는 빠르게 복도를 질주했다.
그리고.
스릉!
진입하려던 녀석의 팔을 단번에 베어 냈다.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한발 늦게 용주를 쫓아온 주원이 외쳤다.
급변하는 상황을 쫓아가기가 힘들었다.
“오빠가 말한 좀비가 진짜 나타난 모양인데요.”
“뭐?! 이렇게 갑자기? 지금까진 아무런 일도 없었잖아.”
“저 시체를 발견하는 게 일종의 스위치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스위치?”
“응. 이 사건이 발생하는 트리거 말이에요.”
“트리거? 뭐야 그게. 왜 점점 어려운 말로 변하는 건데.”
주원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무튼 우리도 도와줘야 해요!”
한발 먼저 달려 나간 예나는 좀비를 베어 냈다.
예나의 검은 손에 들려 있지 않았다.
예나의 검이 위치한 곳은 허공 한가운데.
하늘을 자유자재로 누비는 검은 폴터가이스트 현상을 연상케 했다.
“검이 허공에?!”
주원이 놀라움을 삼키기도 전에 또 다른 창이 깨져 나갔다.
검을 뽑아 든 주원은 창밖을 주시했다.
눈으로 보이는 것만 얼핏 다섯.
타오르는 거리를 걸어오는 좀비들의 숫자는 셀 수도 없을 만큼 엄청났다.
‘그래. 그런 건가?’
“이주원! 가서 판자랑 박을 것들 가져와! 어서!”
상황이 급박하다는 걸 직감한 용주가 외쳤다.
좀비들이 들어오려고 시도하는 건 다섯 창 중 네 개뿐이었다.
깨진 창으로도 좀비가 모여들긴 했지만, 판자를 긁어내거나 뜯어내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저기 있는 좀비 무리가 여기 도착하면 진입을 막을 수 없게 된다.
그 전에 어떻게든 해야만 했다.
“네? 그렇지만 그런 거라면 예나가 가는 게….”
주원이 반박했다.
위험한 곳을 자신이 지키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일을 예나가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 말 할 시간에 뛰었으면 벌써 반은 갔겠다고요, 오빠.”
창밖으로 날린 검으로 좀비들을 베어낸 예나가 이야기했다.
720도 회전한 검은 또 다른 좀비의 머리를 날려 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연약한 팔로 그 무거운 걸 어떻게 다 들고 와요? 그런 건 오빠가 해야 한다고요.”
“시간 없어! 서둘러!”
“아…! 알겠어요!”
두 사람의 이야기에 주원은 방향을 틀었다.
아까는 이렇게 긴 것 같지 않았었는데, 복도가 엄청 길게만 느껴졌다.
열린 문을 통과한 주원은 밝은 조명 아래로 들어섰다.
‘그러고 보니 창은 여기에도 있었잖아. 여긴 괜찮은 거야?!’
불길함이 스친 주원은 창을 바라보았다.
다행히도 창밖에 좀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럴 때가 아니지!’
급하게 판자들을 챙긴 주원은 나머지 것들 역시 챙겼다.
같이 놓여 있던 인형은 난리 통에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가져왔어요!”
다급하게 달려온 주원이 두 사람에게 합류했다.
두 사람의 분전에도 창은 거의 벌집이 되어 있었다.
“으에~.”
예나의 검이 안쪽으로 들어오려던 좀비를 두 동강 냈다.
쏟아진 창자가 문틈을 타고 흘러내렸고, 절단된 상반신이 건물 안쪽으로 떨어졌다.
검을 회전시킨 예나는 다른 좀비를 노렸다.
“꺄악!”
그 순간.
예나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상반신만 간신히 안쪽으로 떨어진 좀비는 그 상태로 예나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칫!’
좀비의 머리에 박아 넣었던 검을 뽑아낸 용주는 망설임 없이 검을 집어 던졌다.
회전 없이 날아간 검은 이빨을 드러낸 좀비의 뒤통수에 그대로 처박혔다.
“확실하게 머리를 날리기 전까진 방심하지 마라!”
충고의 메시지를 동시에 날린 용주는 오른손을 날카롭게 치켜올렸다.
사선을 그린 용주의 붉은 손톱.
머리가 반쯤 찢긴 좀비는 그대로 쓰러지고 있었다.
“고… 고마워요.”
자리에서 일어난 예나는 전투를 이어갔다.
예나의 한쪽 눈은 붉은 손톱을 휘두르는 용주를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
“뭘 꾸물거리고 있어! 빨리 막아!”
바로 옆 창문까지 커버한 용주가 외쳤다.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던 주원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다시 움직였다.
“어… 어디서부터…!”
“예나가 있는 곳부터 막아! 나한테서 먼 곳부터!”
“아… 알겠어요!”
급하게 움직이다 판자들을 우당탕 쏟은 주원이 급하게 필요한 만큼의 분량을 챙겼다.
“팔 안 물리게 조심해요, 오빠.”
“안 그래도 엄청 조심하고 있다고.”
판자를 갖다 댄 주원은 급하게 망치를 두드렸다.
대칭이나 안정감 같은 걸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탱! 대래랭!
필사의 사투가 한창인 그때.
힘껏 못을 박던 망치가 바닥을 뒹굴었다.
‘뭐야, 이게…!’
망치의 손잡이는 아직도 주원의 손에 들려 있었다.
날아간 부분은 손잡이를 제외한 망치의 몸통과 머리.
“오빠! 망치가!”
“괜찮아!”
쑥하고 빠져 버린 망치 머리를 집어 든 주원은 망치질을 이어갔다.
“하나 박았고!”
곧장 또 다른 판자를 집어 든 주원은 그 위로 판자를 덧대었다.
“크에!”
그때.
창 아래에서 불쑥 튀어나온 손이 주원의 손목을 붙잡았다.
쩍 벌린 좀비의 입은 주원을 물어뜯으려 하고 있었다.
“이런!”
망치를 뒤로 돌린 주원이 장도리로 녀석의 미간을 내려찍었다.
“오빠!”
그와 동시에 다급하게 움직인 예나의 검이 좀비의 손목을 잘라냈다.
시야의 사각에서 나온 적이라 미처 대비하지 못했다.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장도리를 뽑아낸 주원은 두 번째 판자를 마저 박았다.
* * *
“하아하아…. 이제 괜찮은 걸까요?”
마지막 창의 박음질을 끝낸 주원이 물었다.
“그래. 적어도 지금은 괜찮을 거다.”
용주가 대답했다.
좀비들의 모습이 드문드문 보였지만, 안쪽으로 들어오려는 시도는 없었다.
“그래도 용케 알아내셨네요. 이렇게 하면 좀비들이 들어오지 않을 거라는 걸.”
이마를 닦은 주원이 이야기했다.
말 그대로 땀이 비 오듯이 내리고 있었다.
“정답이 대놓고 있었으니까.”
용주가 다섯 번째 창을 바라보았다.
“마지막 창이 그렇게 돼 있던 게 힌트였다니…. 패닉에 빠져서 상황판단이 늦었거나, 판자 같은 걸 미리 발견해 놓지 못했거나, 완전 따로따로 움직였으면, 큰일 날 뻔했었네요.”
고개를 끄덕인 주원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마음 놓는 건 좋은데요, 오빠. 그 팔찌는 이제 버려도 되지 않겠어요?”
곰 인형을 끌어안은 예나가 물었다.
“팔찌?”
의문을 표한 주원이 자신의 팔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반듯하게 잘려나간 누군가의 팔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우….! 우와악!!”
깜짝 놀란 주원이 팔을 흔들었다.
하지만 팔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시… 실례합니다!”
손목을 붙잡은 주원은 팔을 강제로 떼어냈다.
주인 잃은 팔은 창밖으로 내던져지고 있었다.
“실례할 게 뭐 있어요. 먼저 허락도 없이 잡은 건 그쪽이었는데. 그리고 어차피 팔은 소리 못 듣는다고요, 오빠.”
예나가 피식 웃어 보였다.
“아… 듣고 보니 그렇네. 너 엄청 똑똑하구나?”
“오빠가 조금 특이한 게 아닐까 싶은데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예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