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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56화 (56/357)

56화

* * *

“후우~ 이거 대체 언제까지 하는 걸까요?”

비 오듯이 쏟아지는 땀을 닦아낸 주원이 물었다.

시험이 시작되고 벌써 몇 시간이 지났다.

그리 빨리 움직이고 있지도 않은데도 이 정도라면 처음부터 뛰쳐나갔으면 이미 녹다운됐을 게 분명했다.

“필요한 만큼의 탈락자가 나오면 끝나겠지.”

“필요한 만큼? 그게 얼마인데요?”

“나야 모르지.”

용주가 무심하게 대답했다.

단순히 걷기만 한 것치고는 체력 소모가 심했다.

아마 산소량을 조절하는 등의 장치를 더 해둔 모양이다.

탈락자를 더 빨리 만들어내기 위해서 말이다.

“물이라도 한 모금 마셨으면 소원이 없겠는데 말이에요. 이럴 줄 알았으면 아침에 한 잔이라도 마시고 올걸….”

개처럼 혀를 내민 주원이 손부채질을 했다.

마라톤을 해도 주기적으로 수분을 보충할 수 있는 곳이 있는데, 여기엔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은 용주는 인벤토리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냈다.

상큼상큼 감귤 주스.

랜덤 상자에서 나왔던 쓸데없는 물건 중 하나였다.

“이거라도 마시든지.”

용주가 음료 한 캔을 건넸다.

물보단 못하겠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을 거란 생각이었다.

“와아, 잘 마실게요! 근데 감귤 주스면 당도 때문에 역효과가 아닐지….”

“거기 옆에 적혀 있는 문구.”

“문구? 어디, 어디. ‘신개념 無당! 이온 주스! 운동 후 상큼함이 부족한 당신에게’. 이온 주스라니, 이거 팔리긴 하는 제품인 거 맞죠?”

말과 달리 마개를 개봉한 주원은 순식간에 캔을 비워 버렸다.

캔의 위아래를 곱게 접은 주원은 그걸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그냥 버리지 그래?”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제가 만든 쓰레기는 제가 처리해야죠!”

히죽 웃어 보인 주원은 급하게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조금 남아 있던 주스가 주머니에서 샌 모양이었다.

그런 주원의 모습에 용주의 머릿속엔 딱 한 가지 말이 떠올랐다.

조금 모자라지만 착한 친구.

어딘가에서 들어본 그 말이 딱 이 녀석을 위한 말인 것 같았다.

“그런데 주머니에 이런 걸 넣고 계셨는지는 꿈에도 몰랐어요. 혹시 형도 마술할 줄 아시는 거예요?”

“글쎄….”

용주가 정확한 답변을 회피했다.

엄밀히 따지면 마술은 아니긴 했다.

하지만 딱히 밝힐 생각은 없었다.

삐이!!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윽고 또다시 변화하기 시작한 풍경.

시야 끝에서부터 서서히 잠식해 나간 풍경은 모두를 다시 강당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뭐야? 난 분명 한참 앞으로 뛰어갔는데.”

“뭐가 어떻게 된 거야? 테스트는?”

“무슨 버저 음 같은 게 들렸는데.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다시 강당으로 끌려 나온 헌터들이 우왕좌왕하는 소리가 들렸다.

용주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쳐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몇몇 있었다.

탈락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탈락자들을 위한 공간은 별도로 마련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시험 종료. 살아남은 걸 축하한다.”

팔짱을 끼고 있던 형만이 앞으로 나왔다.

남아 있는 인원은 약 150.

절반 정도의 사람들이 사라진 만큼 강당은 허전해 보이기까지 했다.

“시험 종료라니…. 그럼 저희 합격한 건가요?”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한 헌터가 물었다.

“그래. 합격이다.”

형만의 한마디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얏~호!! 합격이래! 합격이라고!”

“D급 게이트에 마음대로. 이형 결정체 하나만 주워도 돈이 몇 배야?!”

“내 실력이 이제야 인정받네.”

몇몇 헌터들은 서로 얼싸안고 뛰기까지 했다.

친한 사이인가 아닌가는 딱히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근데, 나 힘들어서 중간부턴 완전 뒤에 처져 있었는데, 어떻게 합격한 거지? 선착순이 기준이 아니었던 거야?”

“알게 뭐야! 붙었단 게 중요한 거지.”

그들의 즐거움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1차 시험은.”

형만의 다음 한마디가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1차 시험?! 그게 무슨 소리예요?!”

“설마 다음 테스트가 있다는, 그런 말씀이신가요?”

“들은 적 없는데요.”

형만의 한마디에 여기저기서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쾅!

누군가가 힘껏 걷어찬 문이 바깥쪽에서부터 부서졌다.

“이봐, 이봐, 이봐! A급 헌터 양반! 장난이 좀 지나치다고 생각하는데?!”

문을 부수고 들어온 근육질의 헌터가 공격적으로 이야기했다.

이 헌터의 이름은 ‘김도준’.

폭력적인 성향으로 유명한, 자존심 강한 헌터였다.

그의 곁엔 50명 이상의 헌터들이 격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안으로 난입한 그들은 곧장 형만에게로 향했다.

“탈락한 애송이들 주제에. 입은 살았군.”

“애송이? 난 시험 종료 직전까지 1등으로 달리고 있었어. 처음부터 끝까지 1등이었다고!! 그런 내가 왜 탈락이야! 왜 내가 떨어진 거냐고?!”

“맞아요. 다른 건 몰라도 저도 선두에서 달리고 있었다고요.”

“저도입니다.”

“저도요!”

불만을 제기하는 헌터들을 훑어본 형만은 무대 위에서 뛰어내렸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위압감에 헌터들은 순간 주춤거리고 있었다.

“왜 탈락했냐고? 알고 싶나?”

“그래! 시원하게 어디 들어나 보자고! A급 헌터고 뭐고 할 말은 해야겠어!”

도준이 목에 핏대를 세우고 이야기했다.

“그거야 간단하지. 네가 그냥 앞으로 가라는 간단한 명령 하나조차 이행하지 못하는 애송이이기 때문이다, 애송아.”

형만이 발을 구르자 강렬한 화염이 폭발했다.

충격에 날아간 헌터들이 땅을 굴렀고, 공포에 분노가 사그라든 인원들은 헐레벌떡 도망가기 시작했다.

엉덩방아를 찧은 도준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은 아직도 분노에 젖어 있었다.

“여기서 날 체력적으로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어. 가장 오랜 시간 달렸고, 가장 빠르게 달렸고, 가장 멀리 달렸어. 체력을 측정하고 싶었다면, 합격해야 하는 건 바로 나란 말이야! 저기 저 떨거지들이 아니라!!”

용주를 비롯한 다른 합격자들을 삿대질한 도준이 외쳤다.

“그래서 네가 애송이란 거다, 애송아.”

“애송이, 애송이, 아까부터 거 겁나 거슬리네. 진짜! 그럼 말해보라고. 내가 왜 애송이인지.”

“가장 오래, 가장 빨리, 가장 멀리, 내가 언제 그러라고 했지?”

“뭐… 뭐?”

“내가 제시한 건 멈추지 말고 계속 가란 것뿐이었다. 체력 테스트?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지?”

“…….”

권위적이고 압도적인 형만의 말에 도준의 이마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그건 네가 만든 너 혼자만의 기준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말에 동조되어 자기 판단을 잃어버린 너희들 역시 전부 애송이다. 지금 여기 애송이는 필요 없어. 전부 꺼져라.”

형만의 이야기에 그나마 남아 있던 헌터들의 대부분도 달아났다.

시선을 피했던 도준은 손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나… 난 인정 못해! 이런 테스트는 무효야! 무효라고!!”

다시 한번 큰 소리로 외쳤다.

“이 시험은 잘못됐어. 겨우 이딴 걸로는 아무것도 분별해낼 수 없다고! D급 게이트에 갈 인원을 선별할 거라며! 체력! 전투력! 배짱과 리더십! 그런 걸 테스트해야 하는 거 아니야?”

고개를 돌린 도준이 모두를 향해 외쳤다.

“이 시험으로 검증한 게 대체 뭐야?! 뭘 기준으로 인원을 추린 거냐고!”

합격한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기란 쉽지 않은 외침이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가 보고 있던 풍경이 180도로 뒤집혔다.

쿠쾅!

그와 동시에 강한 충격음이 강당을 채웠다.

강당 중앙 쪽에 있던 도준은 왼쪽 벽에 처박혀 흘러내리고 있었다.

“정확한 판단력 그리고 잘못된 말과 행동에 휩쓸리지 않는 침착함. 그게 전제되지 않으면, 체력도, 전투력도, 아무것도 아니다, 애송이. 헌터에게 필요한 건 피지컬이 전부가 아니란 말이다.”

한 손만으로 순식간에 도준을 제압한 형만은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켰다.

그의 신호를 받고 들어온 몇몇 헌터들은 그를 이곳에서 배제하고 있었다.

“…딸꾹!”

순식간에 일어난 일들에 놀란 주원이 딸꾹질을 했다.

A급 헌터의 움직임은 제대로 보기가 힘들 정도로 빠르고 예리했다.

“과연 A급 헌터는 노는 물부터가 다르네요! 완전 멋져요! 완전 카리스마 넘친다고요! 안 그래요?”

“…….”

주원의 물음에 용주는 대답을 아꼈다.

그가 언노운과 싸우는 걸 직접 본 입장에서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계속하겠다.”

소란을 진정시킨 형만이 합격자들을 보며 이야기했다.

조금 전 소란이 마치 없었다는 듯 침착한 그였다.

“2차 시험은 지금으로부터 2시간 뒤에 진행된다. 간단한 식사가 제공될 예정이며, 의료 헌터의 도움이 필요한 자는 바로 건너편에 보이는 방에서 적절한 조치를 받으면 된다.”

형만이 부서진 강당 문을 가리켰다.

“저… 2차 시험은 어디서 진행됩니까?”

조심스럽게 손을 든 한 헌터가 물었다.

“시험 안내는 이 장소에서 그대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엔 어떤 테스트가 진행되나요?”

“2차가 마지막인가요? 아니면 그 뒤로도 더 있는 건가요?”

“시험관은 그대로 진행되는 겁니까?”

하나의 질문이 끝나자 여러 질문이 이어졌다.

“테스트에 대한 세부적인 사항들은 알려줄 수 없다. 다만, 시험관은 바뀔 예정이다. 내가 맡은 건 이번 1차 선별뿐이다.”

단호하게 선을 그은 형만은 차렷 자세로 섰다.

“선별 시험에 반드시 합격자가 나와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이번엔 절반만 걸러냈지만, 모두가 쭉정이라면, 전부 걸러질 거다. 정신 바짝 차리고 애송이처럼 굴지 말길 바란다.”

그대로 뒤돌아선 형만은 강당을 빠져나갔다.

형만의 마지막 시선은 정확히 용주를 향해 있었다.

“2차 시험은 뭐려나요?”

접시 가득 음식을 담아온 주원이 물었다.

길드에서 마련한 식사는 뷔페식으로, 먹고 싶은 걸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는 구조였다.

음식은 한식, 일식, 양식.

크게 분류하면 이렇게 세 가지로 나뉘어 있었고, 각 음식의 퀄리티도 여느 전문점 못지않을 정도로 뛰어났다.

간단한 식사라고 하기엔 사치스러울 정도였다.

“글쎄, 나야 모르지.”

“음… 역시 그렇겠죠.”

고개를 끄덕인 주원은 닭 다리 하나를 통째로 입에 넣었다.

아무래도 휴식시간 내내 떨어질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음냐~ 음어우어!”

“입에 넣은 거 다 먹고 말해. 부탁이니까.”

신나서 뭔가를 외치는 주원에게 용주가 이야기했다.

아마도 ‘끝내주게 맛있다’라는 말을 하려던 것 같았다.

“저기 있잖아요! 오빠들! 괜찮으면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어요?”

두 사람이 식사를 막 시작한 그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두 사람의 시선은 같은 곳을 향했다.

거기 있는 건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뭐데 마마 해 도아주 테니까.”

“배고픈데, 밥 받기가 힘들어서요. 높이도 너무 높고, 식판도 너무 크고 무겁고…. 좀 도와주시면 좋겠어요. 안 될까요?”

주원의 말을 용케 알아들은 소녀가 곰 인형을 꼭 끌어안았다.

입에 든 걸 순식간에 삼킨 주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물론 도와줘야지! 나랑 가자! 먹고 싶은 거 말만 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주원이 대답했다.

“와아~ 고마워요! 누구한테 부탁해야 할지 엄청 망설이고 있었는데….”

“망설이긴 뭘 망설여. 어려운 것도 아닌데. 그런데 넌 어디서 왔니? 엄마나 아빠 따라온 거야? 지금 어디 계셔?”

주원이 보기에 이런 어린 애가 헌터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내부 규정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부모님 중 누군가를 따라오지 않았을까 싶었다.

“두 분 다 여기 안 계세요.”

“응? 그럼 여기 어떻게 들어왔어?”

“어떻게 들어왔냐니요? 그냥 저 문으로 들어왔는데요.”

소녀가 출입문을 가리켰다.

“아니, 아니, 여기 시험장인데.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응? 네! 저도 시험 보러 온 거예요. 슈퍼스타 H, 저도 엄연한 헌터라고요.”

U넥 사이로 손을 집어넣은 소녀가 은시계를 꺼내 보였다.

“헌터라고? 네가?”

주원이 놀란 눈동자를 깜빡였다.

은시계를 확인했음에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럼요!”

순진무구한 미소를 지어 보인 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 이름은 예나예요. 서예나! 그리고 얘는 ‘버티’고요.”

예나가 인형의 손을 흔들었다.

“아! 난 주원! 이주원이야! 이쪽은 이용주 형. 만나서 반가워. 아… 그리고 어리다고 무시해서 미안해. 헌터 아닌 줄 알았어.”

“괜찮아요. 익숙하니까. 그보다 빨리 밥 가지러 가요. 배고파요.”

예나의 손길에 주원이 질질 끌려갔다.

예나의 뒷모습을 보던 용주는 눈썹을 기울였다.

이 많은 사람 중에 하필 자신들에게 접근해 온 부분이 영 찝찝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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