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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54화 (54/357)

54화

* * *

아침 일찍 일어난 용주는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김치와 장조림.

거기에 감자볶음과 브로콜리를 상에 올려놓은 용주는 계란 세 개를 꺼냈다.

“하암~ 좋은 아침.”

거실로 나온 예은이 인사를 건넸다.

식탁에 앉은 예은의 눈은 반쯤 감겨 있었다.

“세수라도 하고 오는 게 좋지 않겠어?”

잘 말은 계란말이를 접시에 담은 용주가 물었다.

아침이면 항상 보는 장면이었다.

“음… 그럴까? 완전 피곤해….”

자리에서 일어난 예은이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사이에 용주는 쌀밥과 콩나물국을 마저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모두 용주가 직접 한 음식들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냉장고를 연 예은은 보리차 한 병을 꺼냈다.

컵과 수저를 마저 챙긴 예은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자리에 앉은 예은이 젓가락을 들었다.

찬물로 세수를 했음에도 여전히 눈은 반쯤 감겨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저번에 오빠가 말한 그 날이던가? 뭐랬지? 헌터 시험?”

계란말이 하나를 오물거리던 예은이 물었다.

“응. 아마 늦게 들어오거나, 못 들어올 거야.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집에 올 때 사와.”

“오늘 안에 안 끝날 수도 있다는 소리네? 뭐 하는 시험이길래?”

“뭐… 자세한 건 가봐야 아는데, 공부해서 머리로 보는 시험은 아닐 거야.”

“음…. 그러면 뭐 기본적인 실력이라든가, 그때그때 적절한 상황 대처를 할 수 있는지… 그런 것들 위주일 수도 있겠네.”

“아마 그러지 않을까?”

용주가 물 한 모금을 머금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났지만, 테스트에 관한 건 여전히 불확실한 부분이 많았다.

정확하게 공지된 건 일시와 시작 시각에 관한 정도.

몇 명이 모이는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기타 등등의 그런 중요한 정보들은 공지되지 않았다.

“음… 근데 그런 게 있었어? 엄마랑 아빠한테도 그런 이야기는 한 번도 못 들었던 거 같은데.”

“이번이 처음이라고 그러더라고.”

“음, 그래? 그럼 합격하면 1기인 거네? 케이크라도 잘라야 하나?”

“벌써 합격한 것처럼 말하는 것 같네, 어째?”

“그럼~ 누구 오빠인데.”

예은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지 마. 부담되니까.”

“히힛, 알았어. 그래도 걱정이네. 원래 국가 고시도 1기 시험이 제일 준비하기 어렵다잖아. 기출 문제도 없고, 출제하는 사람들이 난이도 조절을 할 수 있는 기준도 없고 하니까.”

“그런 걱정할 시간에 한 수저라도 더 먹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데?”

용주가 시계를 가리켰다.

시간을 확인한 예은은 헐레벌떡 남은 밥은 처리하고 있었다.

“그럼 잘하고 와. 너무 무리하진 말고.”

교복으로 갈아입은 예은이 먼저 문을 나섰다.

“그래. 너도 차 조심하고.”

동생을 배웅해준 용주는 빈 접시들을 치웠다.

헌터 시험 당일이 되었지만, 딱히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시험에 통과해야겠다는 의지는 있었지만, 뭔가 무감각했다.

어쩌면 시간 제약과 성공 유무가 달려 있던 퀘스트를 계속해서 수행해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불합격은 곧 죽음.

그런 조건이 달려 있는 시험은 정상적인 루트로는 접할 수 없는 시험일 테니 말이다.

설거지를 마친 용주는 옷을 갈아입었다.

이제 출발할 때였다.

* * *

집을 나선 용주는 한 건물 앞에 도착했다.

헌터 길드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장소였다.

‘헌터 길드 본부….’

본부를 마주한 용주는 복잡한 심경이었다.

헌터로서의 부모님을 지워 버린….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자들이 여기 어딘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후…. 일단은 접어두자.’

헛구역질이 날 정도의 역겨움을 삼킨 용주는 길을 따라갔다.

입구부터 세워진 안내판은 한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와글와글….

안내판이 가리킨 장소에 도착하자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했음에도 그 숫자가 적진 않았다.

“저거 혹시… 좀비 헌터 아니야?”

용주의 모습을 확인한 누군가 이야기했다.

“저거라니…. 사람한테 부르는 호칭인 거 맞아, 그거? 실례인 거 같은데….”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한번 봐보래도.”

두 사람의 이야기에 몇몇 시선들이 용주를 향했다.

E급 헌터들 사이에선 그래도 제법 유명한 용주였기에, 딱히 이상한 반응은 아니었다.

“좀비 헌터면… 약하기로 소문난 그 헌터잖아. 싸울 때마다 좀비 몰골이 된다는.”

“그런데 저 불길한 사람이 왜 여기 있는 거지? 길드가 제시한 조건에 맞는 사람들만 여기 올 수 있는 거 아니었나?”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용주의 등장에 대부분의 반응은 비슷했다.

용주가 최근 활약했다고 해도, 전국구에서 모인 소수의 사람들에게 정보가 닿았을 리가 만무했다.

시선들을 무시한 용주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섰다.

다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고, 뭐라고 생각하든 상관없었다.

이 자리에 모인 전원은 E급 헌터이자, D급 언노운을 쓰러뜨린 경험이 있는 자들.

다른 말로 경쟁자들이었다.

견제를 당하는 것보단, 차라리 무시를 당하는 게 이쪽으로선 더 환영하는 바였다.

‘생각한 것보단 많은걸.’

같은 조건을 충족시킬 인원이 얼마나 될지.

용주 역시도 궁금하던 참이었다.

모인 인원은 최소 300명 이상.

E급 헌터의 비율로 따지면 소수 정예 중에서도 소수 정예였지만, E급 헌터 중에 그 조건에 해당하는 자가 이만큼 있다는 게 놀라웠다.

“차가운 눈의 소년.”

눈동자를 굴리던 용주에게 한 사내가 다가왔다.

순백의 턱시도를 입고 있는 사내였다.

장소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복장이었지만, 그에 대한 트집은 다른 부분에 금방 가려져 버렸다.

사내가 한 피에로 분장 때문이었다.

“…….”

사내의 물음에 용주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에게 눈길을 주고 있을 뿐이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거 한 번만 던져봐 줄 수 있겠어?”

사내가 손을 내밀었다.

사내의 손엔 12까지 적힌 주사위가 들려 있었다.

‘주사위?’

주사위를 마주한 용주는 의아함이 들었다.

이자가 헌터임은 확실했다.

하지만 이자의 의도가 뭔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경계하는 눈이네. 그것도 엄청.”

용주의 무반응에 사내가 주사위를 움켜쥐었다.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돼. 큰 뜻이 있는 건 아니니까. 그냥 오늘 운세 본다 생각하고 던져보라고.”

사내가 주사위를 떨어뜨렸다.

주사위의 눈은 12.

나올 수 있는 눈 중 가장 높은 숫자가 나와 있었다.

“관심 없다.”

용주가 퉁명스럽게 이야기했다.

굳이 어울려줄 필요도 느끼지 못했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그거 재밌겠는데요?”

용주가 거부 의사를 표한 그때.

한 헌터가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그 운세라는 거, 저도 한번 던져볼 수 있게 해달라고요.”

금발의 사내가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금발 소년. 한번 굴려봐.”

손을 움켜쥔 사내가 다시 한번 손을 내밀었다.

사내의 손에는 조금 전까지 땅에 떨어져 있던 주사위가 들려 있었다.

“와~ 마술도 하시나 보네요. 괜히 피에로 분장을 하신 게 아니었나 보죠? 그런데… 금발 소년이라니, 그게 제 이름인가요?”

생전 처음 보는 12면체 주사위를 건네받은 금발 사내가 물었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특징을 콕 짚어 놓으면 이름보다 기억하기 쉬우니까.”

“음, 그런가요. 뭐, 아무튼 제 이름은 ‘이주원’이라고 해요. 기억할 일 있으시면 이름도 같이 기억해 주시라고요. 저 이제부터 엄청 유명해질 사람이니까!”

이름을 밝힌 주원이 오른손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강한 자신감을 표했다.

“생각해 볼게. 아무튼 던져 봐, 소년.”

“그러죠.”

주사위를 쥔 주원은 힘껏 주사위를 던졌다.

주사위의 눈은 8.

눈을 확인한 주원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8이라. 뭔가 좋아하기도 애매하고, 싫어하기도 애매한 숫자가 나와버렸네요.”

주원의 반응을 살피던 용주는 피에로 분장을 한 사내를 흘겨보았다.

숫자가 나왔을 때.

순간이지만 그의 안면 근육이 실룩였었다.

뭔진 모르겠지만, 순간 무슨 생각이나 감정을 느꼈던 게 분명했다.

“실망할 거 없어. 그 정도면 충분히 나쁘지 않은 숫자니까. 그리고 8엔 무한대란 의미도 있잖아. 좋은 숫자라고 말해 둘게.”

“그런 의미도 있어요? 와, 이거 갑자기 뭔가 파이팅 넘치는데요?!”

주원이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런데 아저…. 아니, 형은 이름이 뭐예요? 형도 슈퍼스타 H에 참여하려고 온 헌터인 거 맞죠?”

주원의 물음에 사내가 반대편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청하는 것 같은 그의 제스처에 의문을 표한 주원은 손을 맞잡으려 했다.

‘응?’

그 순간.

주원은 자신의 손가락 사이에 무언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손가락 사이에 있는 건.

다름 아닌 트럼프 카드였다.

“‘조커’ 지금은 일단 그렇게 기억하면 돼.”

“조커?”

주원은 카드를 뒤집어 보았다.

카드에 그려져 있는 건 흑백의 조커였다.

“자~ 어때? 이제 마음이 생겼어?”

고개를 돌린 조커가 물었다.

“관심 없다고 했을 텐데?”

용주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방금 그걸 보고 할 마음이 생겼을 리가 없었다.

오히려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진해졌지.

이름까지 숨긴 상대가 뭘 더 숨기고 있을지 알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 그거 유감이네.”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용주를 바라본 조커가 뒤돌아섰다.

“그럼 먼저 실례. 두 사람 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인사를 건넨 조커는 다른 헌터들에게 다가갔다.

주원의 손에 들려 있던 카드는 장미꽃잎이 되어 떨어지고 있었다.

“조커라…. 신기한 헌터네요. 그쵸? 마법… 아니, 마술을 쓰는 헌터는 저 처음 봤어요.”

주원이 이야기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오는 그였다.

“…….”

용주는 딱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노골적인 무시였지만 주원은 딱히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이것도 인연인데, 서로 이름이라고 알고 지내죠. 정식으로 다시 소개할게요. 전 이주원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혼자 막 이런저런 말을 한참 동안 쏟아내고 있던 주원이 인사를 건넸다.

용주는 잠시 동안 그와 눈을 마주쳤다.

맑고 순수하다 못해 바보 같아 보이기까지 하는 주원의 얼굴이었다.

“어라? 제 목소리가 너무 작았나요? 안녕하세요!!”

한동안 반응이 없자 주원이 다시 한번 인사를 건넸다.

쩌렁쩌렁 울리는 그의 목소리에 이목이 끌리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용주. 그렇게 부르면 된다.”

용주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바보 같아 보인다고만 생각했는데, 어쩌면 정말로 조금 모자란 친구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키키킥, 뭐야. 저 열혈 바보도 왔었네?”

“바보는 고쳐지지도 않는다는데, 쟤도 참 안타깝다.”

“아까 보니까 웬 인형 들고 다니는 초등학생도 있던데, 라인업이 너무하잖아. 이거, 정말 D급 게이트 출입 자격이 걸려 있는 시험인 거 맞아?”

용주의 귀에 주원에 대한 험담들이 들려왔다.

이주원.

이 헌터에 대한 평가는 대략 그런 느낌인 모양이다.

약속했던 시간이 되자 출입문이 잠겼다.

그와 동시에 찾아온 적막감.

사람들의 눈동자는 방 구석구석을 경계하고 있었다.

“뭔가 시작되려나 보네요. 벌써부터 막 두근두근하는데요?!”

아직도 용주 곁에 붙어 있던 주원이 제자리에서 발을 굴렀다.

흥분돼서 미쳐 버릴 것만 같다는 표정이었다.

용주는 강당의 무대에 시선을 두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모두의 앞에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내의 모습을 확인한 용주는 놀란 눈동자를 깜빡였다.

저기 있는 이는….

“만나서 반갑다. 난 이번 시험의 감독을 맡게 된 ‘박형만’이라고 한다.”

형만이었다.

“박형만?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박형만이면 혹시 샐러맨더 아니야?”

“맞아! 샐러맨더! 불꽃을 다루는 A급 헌터!”

“A급 헌터가 감독관?! 대박!!”

“대체 얼마나 힘든 시험이길래?!”

형만의 등장에 장내가 들썩였다.

이 자리에 모인 그 누구도 A급 헌터의 등장을 예상하진 못했었다.

‘그래도 설마 아는 얼굴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한 명 정도를 제외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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