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골드는 없고, 아이템만 들어온 건가?’
잠시 숨을 고른 용주는 인벤토리를 확인했다.
▷ 강철 코도 소환서
- 불을 뿜는 강철 코도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
- 코도는 HP가 다하거나 지속 시간이 만료되면 소멸합니다.
- 지속 시간 : 1시간.
▷ 붉은 갈기
- 사용자의 신체 능력을 강화합니다.
- 사용자의 모습이 ‘붉은 갈기’의 모습으로 변화합니다.
- 힘, 민첩, 체력이 상승하는 대신 지능이 감소합니다.
- 지속 시간 동안 무기와 소모품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 폭발 수정
- 수정을 장착한 무기에 특별한 능력을 부여합니다.
- 참격 시 폭발이 발생하며, 이 피해는 시전자에게 대미지를 주지 않습니다.
- 지속 시간이 만료되거나, 수정이 파괴되면 효과는 종료됩니다.
▷ ‘붉은 사막 지도’
- 붉은 사막 분쟁 지역의 위치가 표시된 지도.
- 개방까지 남은 시간 : 128시간.
- 개방 후 3시간 이내 입장 거부 시 실패로 간주됩니다.
새롭게 들어온 아이템은 총 4가지였다.
용주는 순서대로 아이템을 확인했다.
‘폭발검은 본체가 검이 아니라 보석이었던 건가?’
위에 세 가지는 마지막에 보거나 싸워 봤던 브로들이 사용하던 것들이었다.
아이템들은 모두 소모성 아이템이었다.
다만, 안에서 습득했던 다른 물건들과 달리 여기서만 사용할 수 있다는 제약은 달려 있지 않았다.
세 가지 아이템들을 확인한 용주는 지도의 위치를 확인했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특정 위치가 기록되어 있었다.
‘다음은… 속초인가?’
지금까진 수도권 중심으로 퀘스트 게이트가 열렸었다.
하지만 이번에 표시된 곳은 그보다 훨씬 먼 강원도.
한번 가려면 꽤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거리였다.
‘시간으로 치면…. 다행히 겹치진 않는군.’
용주는 곧장 시간을 비교했다.
게이트 오픈까지 남은 시간과 헌터 시험.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 ‘자기장의 땅 지도’가 소멸했습니다.
▷ ‘보급품 타이머’가 소멸했습니다.
▶ 새로운 퀘스트가 부여되었습니다.
▶ 분쟁 중인 두 세력 중 하나를 택해 승리로 이끄십시오.
- 자신이 선택한 세력의 패배 시 퀘스트는 실패합니다.
용주가 아이템을 확인할 즘 새로운 메시지들이 나타났다.
‘저번에 얻은 것들은 깔끔하게 다 털어 버렸군.’
인벤토리에 테이고른의 저택에서 얻은 물건들은 더 이상 없었다.
적재적소에 적절하게 사용했으니 아쉬움은 없었다.
그것들이 없었다면, 지난번 카오스 게이트도, 이번 퀘스트 게이트도 지금처럼 끝낼 수는 없었을 거다.
‘그나저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일에 익숙해져 버린 건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하지만 다음 퀘스트 문구에도 이젠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히 올 게 왔다는 기분이었다.
목숨이 걸려 있기에 강제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 결과로 자신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스킬의 도움을 받아야 하긴 하지만, 하나 처리하기도 힘들었던 D급 언노운들을 상대로도 제법 괜찮은 전투를 벌일 수 있게 되었다.
배신자들의 왕.
그자의 목적은 아직도 불분명했다.
비밀의 방 이후에 모습을 드러낸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자의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이런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이용해, 더 많은 경험을 쌓으며, 더 빨리 성장할 수 있는 기회임에는 부정할 수 없으니 말이다.
‘뭐…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 지금은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자.’
자리를 털고 일어난 용주의 표정이 구겨졌다.
뒤통수에서 강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통각이 이제야 다친 걸 인지한 모양이다.
‘또 한 소리 듣겠군.’
걸음을 옮긴 용주는 포탈 앞에 섰다.
머리가 이렇게 반쯤 터진 채로는 집에 들어갈 수 없었다.
갈 곳은 정해져 있었다.
* * *
“슬슬 끝이 보여 가는 느낌이네유.”
C급 게이트.
토벌 작전의 마지막을 준비하던 전돌이 어깨를 풀었다.
박전돌.
C급 헌터인 그는 지금 이 게이트의 리더 역할을 맡고 있는 인물이었다.
“돌쇠 형님, 마음은 알겠는데, 조금만 쉬엄쉬엄하자고요.”
전돌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을 부른 헌터가 두 다리를 쭉 뻗었다.
전돌을 부르는 다른 이름은 돌쇠.
그의 이름, 그의 말투, 그의 생김새.
그 모든 게 어우러져 이름보다 더 잘 어울리는 별명이 되었다.
“그래요. 마음의 여유를 찾아줄 달콤한 티타임 정도는 괜찮잖아요? 아니지 전돌 씨한텐 구수한 숭늉 한 그릇이 더 어울리려나요?”
“하하하하!!”
여성 헌터의 농담에 한 바탕 웃음꽃이 피었다.
“어유 숭늉 좋지유. 그런데 지금은 막걸리 한 잔이 더 생각나네유. 일 끝나고 먹는 막걸리 한 사발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는데 말여유.”
놀리는 걸로 들릴 수도 있는 이야기에도 전돌은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의 성격이 잘 나타나는 대목이었다.
“크으~! 막걸리, 그거 좋네요!”
“막걸리 하니까 생각난 건데, 저 이 근방에 잘 아는 맛집이 하나 있는데…. 어때요? 일 끝내고 막걸리에 두부김치 한 판?”
“두부김치?! 완전 나이스한데, 그거?”
“어휴~ 벌써부터 군침이 흐르네유. 이거 일을 더 빨리 끝내야 할 것 같은데유?”
전돌이 침을 닦는 시늉을 해 보이자 또 한 번 웃음바다가 되었다.
“아~ 전돌 씨 진짜 웃겨. 어때요? 이참에 저희 집 마당쇠로 들어와 보시는 건?”
“어휴 저야 좋지유. 많이 먹는다고 구박만 하지 마셔유.”
가벼운 농담이 오가던 와중 한 헌터가 고개를 돌렸다.
“어라? 방금 무슨 소리 못 들었어요?”
“소리? 어떤 소리 말여유?”
전돌이 물었다.
“뭔가 움직이는 소리 같았는데요. 사람 발소리 같은 거요,”
“발소리?”
“그럼 다른 조가 온 모양이네유. 그쪽은 꽝이었던 모양이쥬?”
목소리를 높인 전돌이 외쳤다.
메아리는 쩌렁쩌렁하게 울리고 있었다.
“아무런 대답도 없네요?”
“이상하네. 대답하지 않을 양반이 아닌데.”
상황을 좀 더 지켜보던 전돌이 고개를 기울였다.
자신이 한 말이지만 뭔가 이상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네유.”
“이상하다니 뭐가요?”
“방금 들으셨다는 발소리가 다른 조의 발소리였다면 지금은 왜 들리지 않을까유?”
전돌의 물음에 다른 헌터들도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확실히 이상하네요.”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져야 정상인데, 사라진 건 부자연스러워요.”
의미심장한 눈으로 통로를 바라보던 전돌은 검을 뽑아 들었다.
“확인해 봐야겠어유.”
“아! 그럼 저도 같이 가요!”
“나도 갈 거야. 뒤가 구린 건 질색이어서 말이야.”
다른 헌터들은 전돌을 따랐다.
통로를 지난 전돌은 자신들이 정리했던 공간으로 돌아왔다.
그곳엔….
“…….”
까마귀 가면을 쓴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역병 의사 가면?”
“할로윈 서프라이즈예요, 뭐예요?”
“카오스 게이트에서 이런 장난을 치다니… 저질이라고요.”
두 사람의 모습을 확인한 헌터들이 이야기했다.
저기 서 있는 두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장난의 질이 그다지 좋지 못한 건 확실했다.
“놀랄 만큼 놀랐으니까 이제 가면 좀 벗어주지 그래요? 누군지 얼굴 좀 보자고요.”
검을 집어넣은 한 헌터가 그들에게 한 발 다가갔다.
그리고.
“응?”
전돌이 급하게 그를 제지했다.
“가면 안 돼유.”
“가면 안 된다니…. 그게 무슨 뜻이에요?”
“저 두 사람… 보통내기들이 아니에유. 오늘 여기 모인 사람들 중에 저 정도 기운을 가진 사람은 없었어유.”
선봉에 선 전돌은 두 사람에게 무기를 겨눴다.
저 둘의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게이트에 함께 들어온 일행은 아니었다.
“호오~ 마나를 느낄 줄 아나 보네? 다른 놈들보단 좀 쓸 만하겠는걸?”
까마귀 가면을 쓴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왔다.
전돌은 낯선 남성의 목소리에 경계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저는유, 이번 카오스 게이트 토벌의 리더를 맡은 박전돌이라고 해유. 길드를 통해 전달받은 목록엔 두 분에 대한 정보가 없었는데, 무슨 용무로 게이트를 찾아오셨쥬?”
두 사람이 헌터임에는 분명했다.
하지만 통상적인 이유로 길드에서 헌터를 파견했다면, 저런 가면 같은 걸로 정체를 숨길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저 두 사람에겐 뭔가 불길함이 풍겼다.
“C급 게이트의 리더. 그래. 역시 그랬군. 너라면 다른 녀석들보단 좀 더 날 재밌게 해줄지도.”
거친 한 걸음을 내디딘 사내는 곧장 검을 휘둘렀다.
“키힛! 놀아보자고!”
“……!”
놀란 전돌은 급하게 가드를 올렸다.
둘의 충돌이 만들어낸 충격은 게이트 내부를 때리고 있었다.
“진짜 죽이려고 노렸어…!”
“세상에! 미친 거 아니야?!!”
둘의 충돌에 다른 헌터들은 기겁을 했다.
헌터가 헌터에게 칼을 휘두르다니….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카오스 게이트 안에서 헌터가 헌터에게 칼을 겨누다니…. 제정신이 아니군유.”
까마귀 가면의 두 눈을 노려본 전돌이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길드에서 이 사실을 알아차리면 가만있지 않을 거예유. 뭐 땜시 그러는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도 그만두셔유.”
“끼히힛! 너희 길드 놈들이 어찌 나오든지 나랑은 상관없지. 난 그저 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거면 족해.”
“즐거움이라고유?”
살기가 담긴 참격을 연속해서 받아낸 전돌이 상대를 발로 걷어찼다.
뒤로 밀려난 사내는 옷에 묻은 발자국을 털어냈다.
“확실히 여기 있던 다른 놈들보단 쓸 만하네. 근데 보아하니 사람을 직접 베어본 적은 없는 모양이지? 기회를 줬는데도 베지 못한 걸 보니.”
“당연한 걸 물으시네유. 근데 방금 그 말은 그냥 넘어가지 못하겠는데유? 여기 있던 다른 놈들이라니…. 그거 설마….”
“끼히힛! 설마는 무슨 설마야. 네가 들은 그대로지. 생각보다 재미는 없긴 했는데, 놀란 표정 하나는 일품이었어. 지금도 짜릿짜릿하다고.”
“…제 동료들은 지금 어디 있지유?”
전돌이 물었다.
그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글쎄~? 나야 모르지. 어쩌면 좋은 곳에 있지 않을까? 아닐 수도 있고.”
빠드득!
사내의 한마디에 전돌이 발끈하며 뛰쳐나갔다.
선공에 나선 전돌의 눈엔 살기가 어려 있었다.
“끼히힛! 뭐야. 제대로 휘두를 줄 알잖아?”
위에서 아래로 찍어 누르는 전돌의 참격을 받아낸 사내가 곧장 반격에 나섰다.
순식간에 오간 세 합.
둘의 검이 충돌할 때마다 확산하는 진동은 섬뜩할 정도로 날카로웠다.
“길드에 함께 가주셔야겠어유. 많이 거칠 거예유.”
꽈악!
왼쪽 옆구리를 찌르는 참격을 회피한 전돌은 사내의 멱살을 쥐었다.
그리고.
엄청난 힘으로 그를 반대편으로 패대기쳤다.
균열이 생긴 가면 사이론 백색의 머리카락이 힐끗 보였다.
“어… 어떡해요? 어떡해야 해요?”
점점 치열해지는 둘의 싸움을 지켜보던 한 여성 헌터가 벌벌 떨며 외쳤다.
“누군진 몰라도 때려눕혀야지.”
“그러니까 그 말은… 사람을 상대로 싸우자는… 그런 말씀이시죠?”
“그렇게 되겠지.”
“마… 말도 안 돼요! 어떻게 언노운도 아닌 사람한테 검을…!”
“…모두에게 그러란 말은 아니야.”
짧은 침묵은 삼킨 헌터는 한 걸음을 내디뎠다.
“짊어질 각오가 된 사람이면 충분해.”
지면을 후벼 판 헌터는 속도를 높였다.
그가 보고 있는 건 전돌과 싸우고 있는 자의 뒷모습.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해야만 했다.
목표는 사살이 아닌 제압.
그 뒤에 일은 길드에서 처리할 것이다.
챙!
거칠게 이어지던 발소리는 이윽고 강한 충격음으로 바뀌었다.
“…….”
그를 막아선 이는 또 한 명의 역병 의사.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그자는 여유롭게 헌터를 날려 버렸다.
그리고.
쫙 펼친 다섯 손가락을 앞으로 쭉 뻗었다.
“망상 – 심연.”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
감정이 전혀 실리지 않은 목소리는 사막의 모래처럼 메말라 있었다.
‘스킬?!’
영창이 끝나자 완전한 어둠이 헌터를 집어삼켰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자리에 있던 전원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남아 있는 자는 단 두 명.
전돌과 그가 상대하고 있는 역병 의사뿐이었다.
“키힛! 안 그러는 척하면서 실은 나보다 더 즐긴단 말이야, 저 녀석.”
전돌의 표정에 사내가 히죽 웃어 보였다.
스킬의 발동에 제법 놀란 모양이었다.
“놀라긴 이르다고. 이쪽도 이제 기어를 올릴 거니까!”
자신감을 표현 사내가 왼팔 소매를 걷어 보였다.
사내의 팔엔 빛을 발하는 문신들이 새겨져 있었다.
“트랜스 폼 - 모랄타크!”
사내가 영창을 외치자 그의 손에 한 자루의 검이 추가로 나타났다.
황금색과 붉은색이 적절하게 조화된 검이었다.
“끼-햐!!!”
특유의 흥을 표현한 사내는 저돌적으로 질주했다.
몰아치는 사내의 공격에 전돌은 점점 뒤로 밀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