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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52화 (52/357)

52화

‘위험했어. 방금 건….’

용주가 미간을 좁혔다.

방심하진 않았었다.

하지만 하늘에서 저런 식으로 자유롭게 방향을 틀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상처가 안 보이는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발굽에 찍힌 뒤통수의 상태가 어떤지는 안 봐도 비디오였다.

그런 식으로 찍혔으니 두개골이 부서지지 않은 데 감사해야 할 지경이었다.

큰 상처가 갑작스럽게 생기면 역설적이게도 고통은 없는 법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조금 전 상황 같은 건 확실히 위험했다.

전투 속행의 생존력은 확실하지만, 머리만큼은 예외였다.

‘남은 시간은 이제 25초. 승부수를 던져볼 때인가?’

생각을 마친 용주는 달리기 시작했다.

용주가 바라보고 있는 곳은 폭발검이 있는 곳.

이상한 낌새를 곧장 눈치챈 붉은 갈기는 곧장 용주를 앞지르기 위해 움직였다.

“느리다고 했을 텐데?! 배우는 법을 모르는구나!”

단순히 거리만 놓고 보면 용주가 더 가까웠다.

하지만 속도가 달랐다.

만약 이게 수학 문제였다면, 목적지에 먼저 도착하는 건 붉은 갈기 쪽이 정답일 것이다.

“블러드 윙!”

계속되는 용주의 견제 사격도 녀석의 속도를 줄이지는 못했다.

애초에 피할 생각이 없는 적이 그런 걸로 둔화될 리가 없었다.

들고 있던 프라이팬을 휘리릭 돌린 용주는 있는 힘껏 프라이팬을 집어 던졌다.

날아오는 프라이팬에 관자놀이를 정통으로 가격당한 붉은 갈기는 처음으로 비틀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들고 있던 무기로 시간을 끌고, 그사이에 새로운 무기를 취한다. 멍청하지만 그럴듯한 계획이었다. 어차피 지금 이대로는 이기지 못한다고 판단한 거겠지. 하지만 넌 너무 느려.”

그럼에도 먼저 목적지에 도착한 쪽은 붉은 갈기였다.

거대한 뿔을 앞세운 붉은 갈기는 그대로 용주를 들이받았다.

지금껏 이 힘, 이 속도에서 살아남은 이는 없었다.

그런데.

‘뭐지?’

용주를 들이받은 붉은 갈기는 아까와는 뭔가 다르단 걸 깨달았다.

용주의 머리를 찍어 눌렀을 때.

발굽에서 느껴지던 감각은 이런 게 아니었다.

자신의 뿔은 적을 꿰뚫지 못했다.

뿔에 닿은 건 보다 단단한 무언가였다.

‘10초….’

사후 강직의 효과로 공격을 받아낸 용주는 붉은 손톱을 녀석의 아래턱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페이탈리티!!”

피의 말뚝을 녀석의 미간에 찔러 넣었다.

말뚝의 크기는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길쭉했다.

과장을 조금 더하면 용주의 팔목과 거의 같은 크기였다.

프라이팬을 녀석에게 던지고 나서부터 용주는 계속 이 한 방을 준비해 왔었다.

시선을 분산시킬 방법을 여러 가지 동원했고, 쉽게 보이지 않도록 손 안쪽에 숨겨놓고 있었었다.

“……!”

브로의 미간을 꿰뚫은 말뚝은 뒤통수를 뚫고 나왔다.

치명상을 입은 붉은 갈기는 뒤로 두어 걸음을 물러났다.

그리고.

그대로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녀석의 거대한 덩치에 깔렸던 용주는 녀석을 힘껏 밀어냈다.

옆으로 반 바퀴 굴러 대자로 뻗은 브로는 머지않아 보따리가 되었다.

몸을 일으킨 용주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화마에 삼켜졌던 저택은 1층 골조의 일부만을 남겨놓은 채 사라졌고.

그 많았던 브로들 역시 전부 자취를 감추어 버린 뒤였다.

뱀파이어 군주의 보주가 힘을 잃자 주변을 휩쓸던 박쥐들이 삽시간에 잠잠해졌다.

바람이 멎었고, 고요함이 찾아왔다.

특별해 보이는 개체를 쓰러뜨렸지만, 특별히 다른 문구가 나오지는 않았다.

준 경험치도 거기서 거기.

역시 본체는 녀석들이 가지고 있던 아이템이었던 모양이다.

‘시간 안에 어찌어찌 마치기는 했네.’

고개를 돌린 용주는 건너편 저택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철갑 코도가 날뛰던 전장 역시 끝이 나가는 모양이었다.

승자는 당연하게도 철갑 코도의 주인.

녀석의 세력은 닥치는 대로 경쟁자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슬슬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겠지. 지금쯤 숨어 있는 하이에나들이 군침을 뚝뚝 흘리고 있을….’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내던 용주는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어지러웠다.

아무래도 아까 머리를 내려 찍힌 게 원인인 모양이었다.

그러는 사이 작은 움직임들이 일었다.

전투에 개입하지 않고 몸을 숨기고 있던 소수의 이들이 진짜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 용주는 지금 전투 불능 상태였다.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던 폭풍은 사라졌고, 용주의 머리는 반쯤 깨져 있었다.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것도 목격했으니 더할 나위 없는 기회라고 여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화살들이 날아들었고, 각종 투척 무기들이 근처에서 폭발했다.

용주는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았다.

일부 화살과 투창들이 어깨와 팔등 등에 박히거나 스쳤지만, 용주가 한 일이라곤 두 개의 보따리와 프라이팬을 챙긴 것 정도였다.

용주는 보따리를 짊어 멨다.

아이템만을 옮겨 담는 일이라면 이렇게 할 필요가 없었지만, 보여주기엔 이게 더 효율적인 액션이었다.

그리고.

타다다닥!

달아나기 시작했다.

“녀석이 도망친다!”

“부상이 심해서 더 이상 싸울 수 없는 상태인 게 분명해!”

“괴물 같은 두 녀석과 싸운 직후니 당연하지.”

“나보다 약한 새끼들은 다 꺼져! 붉은 갈기도, 폭발검도, 살아 움직이는 자기장도 다 이 몸의 것이니까!”

곧장 추격대가 붙었다.

추격대 역시 개인과 무리가 섞여 있었다.

잦은 다툼과 교전이 있었지만, 그들의 목적은 명확했다.

용주가 힘을 회복하기 전에 용주가 가진 모든 걸 빼앗는 것.

오직 그거였다.

‘이 근방일 텐데….’

계획했던 장소에 도착한 용주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숲은 많은 부분이 불타 있었지만, 이 근방은 불길이 닿지 않았다.

숲 앞쪽으로 흐르는 냇물 덕분이었다.

용주는 프라이팬을 고쳐 잡았다

그리고.

댕! 댕! 댕!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보급품 타이머로 프라이팬을 몇 번이고 때렸다.

그러자.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코도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코도에는 용주와 똑같이 생긴 이가 앉아 있었다.

코도에 올라탄 용주는 양쪽으로 보따리를 고정했다.

인벤토리를 연 용주는 남아 있는 소모품들을 모두 인형에게 넘겼다.

그중에는 ‘소형 자기장 발생장치’가 포함되어 있었다.

용주는 마지막으로 여태 애용하던 프라이팬을 넘겼다.

그리고.

자신의 피를 인형의 얼굴에 묻혔다.

눈앞에 있는 건 영락없는 자신이었다.

“판은 깔아 놨다. 뒤는 맡기지.”

용주의 말에 인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삐를 당긴 인형은 용주가 왔던 방향을 거슬러 올라갔다.

연이어 터지는 연막 속에서 추적자들의 소리는 점점 멀어져가고 있었다.

“후우….”

깊은숨을 내쉰 용주는 나무에 등을 기댔다.

이걸로 마지막이었다.

“저건 뭐냐?”

강철 코도에 올라타 있던 브로가 고삐를 당겼다.

자신이 점령한 언덕으로 무언가 다가오고 있는 게 보였다.

“코도? 쫓기고 있는 것 같군.”

연막 속을 뚫고 나온 건 코도였다.

위에는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강한 적인가?”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진 브로는 언월도를 휘둘렀다.

당당하게 선전포고를 하길래 뭔가 엄청난 적수라도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그였다.

하지만 여기 그런 적은 없었다.

수가 많긴 했지만, 일대일로 자신을 만족시켜줄 만한 적수는 찾지 못했다.

무슨 자신으로 그런 도발을 한 건지 의아할 정도였다.

“아니…. 그런 자가 저렇게 도망 다닐 리 없겠지. 그럼 저자는 왜 쫓기고 있는 거지?”

그가 머리 위에서 언월도를 돌리자 수십 개의 보따리가 바람에 나부꼈다.

“뭐… 쓰러뜨려 보면 알겠지.”

그가 고삐를 당기자 강철 코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주 오는 적을 맞이한 강철 코도가 불을 뿜었다.

“으랏차!”

힘찬 기합을 내지른 브로는 언월도를 휘둘렀다.

인형은 방어를 휘해 프라이팬을 들었지만, 공격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인형의 전투 능력은 제로.

같은 모습, 같은 무기지만 용주와는 많은 부분이 달랐다.

“역시 강한 적은 아니구나.”

도망가려는 인형을 곧장 따라붙은 브로는 또 한 번 언월도를 휘둘렀다.

프라이팬을 들고 있던 인형의 오른팔이 반듯하게 잘려 나갔고, 팔과 함께 프라이팬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래. 저 프라이팬도 보통 물건처럼 보이지 않았었어!”

“일단 저거부터 차지하는 거야! 나머지는 그다음!”

인형을 따라오던 브로들이 일제히 인형의 오른팔을 향해 몰려들었다.

“그런가…. 질 좋은 고기에 모인 승냥이 때인가.”

강철 코도는 인형을 곧장 따라붙었다.

인형은 스파이크 트랩을 뿌리며 추격을 저지해보려 했지만, 강철 코도는 보란 듯이 함정을 짓밟고 달려왔다.

그리고 인형이 타고 있던 코도를 단번에 쓰러뜨렸다.

“…….”

코도에서 튕겨 나간 인형은 뛰고 또 뛰었다.

“부질없는 발악이다.”

인형의 뒤를 잡은 브로는 인형의 왼쪽 허벅지를 잘라 냈다.

‘잠깐만….’

그리고 뭔가 이질적이란 걸 깨달았다.

팔과 다리를 잃은 저자에게선 피가 단 한 방울도 나지 않고 있었다.

한쪽 팔과 한쪽 다리만으로 언덕을 기어 올라간 인형은 뒤돌아 앉았다.

하나뿐이 남지 않은 인형의 팔엔 하나의 물건이 들려 있었다.

소형 자기장 발생 장치.

무표정한 얼굴로 장치를 들어 올린 인형은 장치를 작동시켰다.

지지직!

인형에게서 시작된 자기장은 삽시간에 일대를 집어삼켰다.

“메에에!”

인형을 따라오던 브로들도.

프라이팬 하나를 놓고 살육전을 벌이던 브로들도.

강철 코도를 몰며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던 브로도.

이 자기장을 피할 순 없었다.

“으… 으윽!! 장치를 멈춰라! 이러면 너도 나도 다 죽는다!”

자기장의 엄청난 고통에 코도에서 떨어진 브로가 외쳤다.

“협상을 하자! 네가 이걸 멈춘다면, 널 나와 동등하게 대접해주마. 어리석은 자폭에 남는 건 아무것도 없다!”

있는 힘껏 외친 브로는 언월도를 딛고 일어섰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으아아!!”

앞으로 뛰쳐나간 브로는 인형의 머리를 잘라냈다.

경사면을 타고 굴러가는 인형의 표정엔 전혀 변함이 없었다.

브로는 곧장 소형 자기장 발생 장치를 베어 냈다.

하지만 자기장이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젠장…! 이럴 순 없어!”

브로의 시선이 먼 곳으로 향했다.

자기장은 시야 끝까지 퍼져 있었다.

‘성공했나 보군.’

갑작스럽게 생겨난 푸른 장벽.

용주는 자기장을 올려다보았다.

소형 자기장 발생 장치로 생성된 자기장은 두 개의 저택을 모두 집어삼켜 버렸다.

용주가 직접 처리하거나 꿰어낸 건 두 저택 중 하나 분량의 적이었다.

나머지 한쪽에서는 누가 승자가 되든지, 몇 명이 살아남든지 상관없었다.

생각한 위치에서 자기장이 펼쳐지면 전부 다 끝날 테니 말이다.

두 저택과 인근의 숲까지 커버하기엔 자기장의 범위가 부족했다.

하지만 둘 중 하나라면 부족할 것 없었다.

▷ 브로(BROO)를 쓰러뜨렸습니다.

▷ 경험치가 상승했습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메시지는 계속 나타나고 있었다.

‘꿰어낼 수 있는 적들은 전부 꿰어냈어.’

적어도 지금 머릿속에 후회나 아쉬움은 없었다.

이 정도 했는데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자가 있다면, 다른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자기장에 집어삼켜지지 않은 구역은 극히 한정적.

아직도 몸을 사리고 있는 자가 있다면, 남은 시간 동안 부지런히 움직이는 걸로 전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역 내 모든 적들이 사라졌습니다. 최후의 1인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던 용주의 앞에 한 가지 문구가 나타났다.

그리고.

▶ 퀘스트를 클리어했습니다.

▶ 퀘스트 클리어 보상으로 대항력이 2 상승했습니다.

▶ 출구가 활성화되었습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강철 코도 소환서’를 획득했습니다.

▷ ‘붉은 갈기’를 획득했습니다.

▷ ‘폭발 수정’을 획득했습니다.

▷ ‘붉은 사막 지도’를 획득했습니다.

각종 메시지들이 그 뒤를 이었다.

나무에 등을 기대고 있던 용주는 스르르 주저앉았다.

퀘스트 클리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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