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높은 곳을 나는 비행선으로부터 낙하산에 매달린 무언가가 떨어지고 있었다.
‘브로들을 곳곳에 배치하는 것만이 용도의 전부가 아니었던 거냐?’
보급품이 떨어지고 있는 곳은 이곳에서 한참 떨어진 돌산 쪽이었다.
‘거리가 너무 멀어. 내가 도착할 때쯤이면 이미 주인이 정해진 다음일 거야. 여기선 다음 보급품을 기다리는 게 더 현명하겠지. 이제 시작일 뿐이니까.’
빠르게 포기를 결정한 용주는 이동을 시작했다.
보급품 쪽으로 시선이 끌린 지금이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흙길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을 달리던 용주는 급하게 자세를 낮췄다.
저 앞 교차로에서 먼지구름이 이는 게 보였다.
‘뭐지?’
자리를 옮긴 용주는 좀 더 가까운 곳에서 먼지구름을 관찰했다.
교차로를 통과한 먼지구름은 보급품이 떨어진 곳을 향해 쏜살같이 내달리고 있었다.
먼지구름을 일으키고 있는 건 세 마리의 브로.
그들 모두 코뿔소와 비슷한 생명체를 탄 모습이었다.
‘저게 이곳에 있는 이동 수단이라는 건가?’
이곳에 있는 이동 수단.
그건 말도, 차도 아닌 또 하나의 괴생명체였다.
이동 속도는 제법 빠르다고 봐도 좋았다.
적어도 자신이 달리는 속도로는 따라잡기 힘든 속도였다.
‘근데….’
용주의 마음에 걸리는 게 또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세 녀석이 함께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완전히 개인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또 아닌 모양이었다.
‘필요에 따라선 협동하는 개체들도 있다는 건가? 뭐… 둘 다 좋은 소식은 아니군.’
먼지구름이 완전히 지나가기를 기다리던 용주는 교차로를 지났다.
다리의 모습이 저 멀리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다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주변을 살핀 용주는 서둘러 언덕을 내려왔다.
다리 초입에 전투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죽은 브로가 몇 명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부서진 수레가 총 2개.
죽어 있는 코뿔소 같은 생명체 역시 두 마리란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전투는 꽤나 격렬했던 것으로 보였다.
주변에 흩뿌려진 혈흔의 양이 상당했으니 말이다.
수레는 이미 털려 있었다.
남아 있는 건 빈 병 몇 개가 전부였다.
‘승자가 전부 털어간 모양이군.’
수레를 마저 확인한 용주는 다리를 마저 확인했다.
다리는 나무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봤을 때는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정보였다.
폭이 크긴 않지만, 물살은 상당히 거셌다.
물살이 암초에 부딪혀 튕겨 나오는 소리가 마치 바다가 우는 것 같았다.
수영을 해서 건너는 건 적어도 인간의 신체 능력으론 힘들어 보였다.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이 정도인가.’
용주는 이동을 서둘렀다.
이렇게 개방된 곳에 오래 노출돼 있는 것은 사양하고 싶었다.
두어 걸음을 옮긴 용주는 갑작스럽게 자리에 멈춰 섰다.
코끝을 스치는 기름 향이 났다.
‘뭐지?’
주변에 기름 냄새가 날 만한 무언가는 없었다.
그러나 쉽게 무시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만일 기름을 이용한 함정이 있다면 불과 연관이 있다는 소리고.
이곳에서 불이 난다는 건 다리가 무사하지 못할 거라는 소리였다.
‘그런 거라면 다리 한가운데에 설치하는 게 더 효율이 높을 텐데, 왜 이 근처에 설치한 거지?’
최고의 효율을 따지면 역시 의문점이 남았다.
다리 한가운데 설치했으면, 효과도 최상으로 날 테고, 물비린내에 기름 냄새도 자연스럽게 묻혔을 텐데 말이다.
주변을 살피던 용주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기름 냄새가 가장 짙은 건 역시 이곳이었다.
냄새의 근원지를 찾던 용주는 바닥에 손을 올렸다.
끈적거리는 액체에선 진한 기름 냄새가 났다.
‘이거였군.’
액체는 죽은 괴생명체의 입에서 흘러나와 있었다.
생각했던 그런 경우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침이 기름이랑 비슷한 성분인 건가?’
냄새의 정체를 확인한 용주는 수레에 있는 빈 병들을 챙겼다.
계획했던 건 아니었지만, 이걸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병들에 기름을 가득 채운 용주는 다리를 건넜다.
그리고 준비해온 기름을 하나씩 흩뿌리기 시작했다.
병이 비어갈수록 기름 향은 점점 짙어졌다.
기름을 모두 뿌린 용주는 화염병을 꺼내 들었다.
‘다리를 끊어 버리면, 이동에 제약을 걸 수 있을 거야. 저쪽에 고립되어 있는 녀석들은 자기장이 알아서 처리해주겠지.’
기름을 만난 불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바람은 곧장 불길을 키웠고, 다리는 삽시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섬의 중앙 쪽으로 더 깊이 이동한 용주는 붉은 벽돌집 안으로 들어왔다.
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고, 서랍과 수납장들 역시 바르게 정리되어 있었다.
아직 아무도 손대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 것치곤 너무 아무것도 없는데?’
의아함이 들었지만, 그리 크지는 않았다.
지금까지의 파밍도 그렇게 풍요로운 편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끼익!
닫혀 있던 나무문을 민 용주는 방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촤아악!!
하얀 타일을 따라 붉은 피가 흩뿌려졌다.
“……!”
끔찍한 고통 속에 용주의 동공이 움직였다.
매복해 있던 적의 단도는 용주의 경동맥을 날카롭게 베어 낸 뒤였다.
▷ 낯선 이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 번역에 필요한 지능 : 30
- 조건이 충족되어 해당 언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자연스러운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됩니다.
“걸려들었구나. 넌 이제 내 거다!”
뿔로 용주를 들이받은 브로는 다시 한번 단도를 휘둘렀다.
투명했던 창문엔 붉은 줄이 그어져 있었다.
“이제 와서 후회해 봤자 너무 늦었다. 끝났어.”
자신의 어깨를 휘어 감는 손길에 브로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그 순간.
“메에에!!”
창에 선명한 핏자국이 하나 더 늘어났다.
‘잘도 저질러줬겠다….’
브로의 목덜미를 물어뜯은 용주는 그대로 살점을 삼켰다.
녀석이 죽으면 시체 뜯어먹기는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방법은 하나.
즉석 해서 바로 삼키는 수밖에.
고통에 날뛰던 브로는 다시 한번 단검을 휘둘렀다.
칼끝은 정확히 용주의 경동맥을 노리고 있었다.
‘사후 강직!’
하지만 결과는 이전과 달랐다.
단검은 상처를 꿰뚫지 못하고 그대로 튕겨 나왔다.
놀란 브로는 어떻게 해서든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
하지만 놈을 붙잡은 용주의 팔은 녀석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먹잇감을 서서히 늪으로 끌고 들어가는 악어처럼.
용주의 팔은 잡은 걸 절대 놓아주지 않았다.
바람구멍이 생길 때까지 브로를 먹어치운 용주는 녀석을 놓아주었다.
힘없이 쓰러진 브로는 하나의 가죽 보따리로 변해 있었다.
‘젠장…. 방심했어.’
용주는 베였던 왼쪽 목을 짚었다.
출혈은 멎어 있었다.
조심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방금 건 명백한 실책이었다.
‘안쪽에서 매복해 있을 줄이야.’
용주 역시 매복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를 크게 고려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컸다.
전투 속행과 물어뜯기.
사후 강직에, 시체 뜯어먹기.
잠깐 사이에 사용한 스킬만 무려 4개.
자신에게 그런 스킬들이 없었다면, 십중팔구 죽었을 것이다.
‘그나저나 이 녀석들도 언어를 구사하는구만.’
큰 위기였지만, 그만큼 얻은 것 또한 있었다.
뱀파이어들과 마찬가지로 이 녀석들 역시 언어를 구사할 줄 알았다.
무릎을 굽힌 용주는 보따리를 살폈다.
▷ M – 전투 단검
- 예리도 23 내구도 1
▷ 코도의 고삐
- 코도비스트를 조종할 수 있는 고삐입니다.
▷ 연막탄
- 시야를 방해하는 연막을 발생시킵니다.
창에 나온 물건은 크게 세 가지.
단검은 내구도 다 해 거의 활용도가 없었다.
쓸 만한 건 나머지 두 가지.
그 중 ‘코도의 고삐’라는 물건이 특히 용주의 시선을 끌었다.
‘아까 녀석들이 타고 다니던 그 코뿔소 같은 동물의 이름이 코도비스트인가?’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었다.
그리고 녀석들을 조종하는 데 필요한 게 바로 이 고삐고 말이다.
필요한 것들만 쏙쏙 옮겨 담은 용주는 시간을 확인했다.
▷ 제한시간이 경과했습니다. 자기장이 축소됩니다.
자기장은 또 한 번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여기라면 이번 자기장에선 안전하겠지.’
이때를 대비해 서둘러 움직였던 용주였다.
적들 중 상당수는 자기장이 제거해 줄 것.
그러니 자신은….
‘잠깐만….’
창밖을 내다보던 용주는 무언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이 창이 난 방향은 자신이 왔던 곳 정반대 방향이었다.
섬 반대편의 자기장이 벌써 저기까지 다가왔을 리가 만무했다.
‘그럼 저건 뭔데?’
생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한 가지였다.
바깥에서 조여 오는 자기장 외에 불특정 지역을 잠식하는 자기장이 더 생겨난 것이다.
‘이런 젠장!’
뒤통수를 거하게 얻어맞은 용주는 빠르게 집을 탈출했다.
양쪽에서 자기장이 다가오고 있었다.
‘생각할 시간 없어. 일단 뛰어!’
속도를 높인 용주는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섬 바깥쪽에서 다가오는 건 크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위협이 되는 건 원형으로 퍼져 나가고 있는 안쪽 자기장.
저것의 잠식 범위에서 서둘러 벗어나야 했다.
헉…. 헉….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까지 달리던 용주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보급품 타이머가 또 진동하고 있었다.
비행선이 떠 있는 곳은 이제 곧 자기장에 삼켜질 지역.
용주를 기준으로 엄청 가까운 지역이었다.
‘누구 놀리는 것도 아니고.’
저걸 먹으러 간다는 건 불나방이 되겠단 소리나 다름없었다.
보급품은 손에 넣을 수 있을지언정, 자기장에서 허우적거리다 죽어 버릴 가능성이 높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나오시겠다면, 이쪽도 괴물이 되는 수밖에 없다고!’
방향을 꺾은 용주는 근처에 있는 3층 건물을 올랐다.
이 근방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쓸 수 있는 건 총 6분. 되도록 3분 안에 끝장을 봐보자고.’
옥상 문을 발로 차고 나온 용주는 다시 한번 거리를 가늠했다.
3분.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떨어지는 속도를 고려한다면, 충분히 노려볼 만한 시간과 거리였다.
박쥐 망토를 펄럭인 용주는 난간을 뛰어넘었다.
중력을 거스른 몸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었다.
용주가 노리는 건 하이잭킹.
즉, 공중납치였다.
▷ U - 프라이팬
- 파괴력 120 내구도 100
▷ 소형 자기장 발생 장치
- 일정 시간 후 반경 300m 범위에 자기장을 발생시킵니다.
- 이 자기장은 발생과 동시에 범위 내 모든 지역에 영향을 끼칩니다.
보급품 박스에 용주가 다가가자 목록 리스트가 나타났다.
들어 있는 물건은 총 2가지.
눈대중으로만 대충 아이템을 확인한 용주는 서둘러 물건들을 옮겨 담았다.
비행시간은 벌써 2분.
1분 안에 두 가지 일을 해내야만 했다.
하나는 이곳에서 최대한 멀어지는 것.
나머지 하나는 안전하게 착지하는 것.
▷ 다음 자기장 축소까지 남은 시간 : 20분.
자기장에서 벗어난 용주는 팔등의 상태를 확인했다.
마지막 착지에서 자갈밭에 쓸리는 바람에 팔의 상태는 영 좋지 않았다.
‘그래도 뭐, 덕분에 한 번 기회를 남길 수 있었으니까.’
박쥐 날개의 비행 기회는 아직 한 번 남아 있었다.
상처와 비행 기회.
등가교환이라고 생각하면 남는 장사이긴 했다.
이 정도 상처라면 재생의 효과로 알아서 치료될 테니 말이다.
‘그나저나 안쪽에서도 자기장이 생기다니…. 그런 건 미리 말해달라고.’
돌 바위 언덕 위에 잠시 자리를 잡은 용주는 자신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동그랗게 퍼져 나간 자기장은 섬 외곽에 있던 것과 이어져 있었다.
인벤토리를 연 용주는 다시 한번 아이템들을 확인했다.
프라이팬과 소형 자기장 발생 장치.
보급품 상자에서 나온 거라 그런지 지금껏 먹은 것과는 위력 자체가 다른 물건들이었다.
‘그런데 프라이팬이라니…. 정말 이게 맞는 거야?’
프라이팬을 꺼낸 용주는 앞뒤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그냥 평범한 프라이팬처럼 보였다.
옵션 역시 예리도 대신 파괴력이란 옵션이 달려 있었다.
‘하긴, 이렇게 생긴 무기에 예리도가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가?’
프라이팬을 손에 쥔 용주는 돌 비탈길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목적지는 저 아래에 보이는 외딴 건물.
미국 서부 영화에 나오는 그런 선술집 느낌의 건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