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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47화 (47/357)

47화

* * *

노량진의 작은 포장마차.

컵밥 하나로 끼니를 때우던 용주는 시간을 확인했다.

오픈까지 남은 시간은 약 15분.

슈퍼스타 H니 뭐니 하는 건 이 일부터 처리하고 생각해도 늦지 않았다.

“배고팠나 보네…. 자! 학생 이거 하나 더 먹어. 내가 우리 아들 같아서 주는 거야.”

용주를 지켜보던 포장마차 아주머니가 잘 구운 햄과 김치를 접시에 담아주었다.

주인아주머니의 호의에 용주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학생 소리 듣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나이로만 치면 아직 학생 소리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긴 하지….’

용주의 나이 이제 22.

헌터 일을 하지 않았다면, 보통 대학생이었을 나이였다.

그게 아니라면 삼수, 사수 정도 한 수험생.

혹은 공무원을 준비 중인 고시생일 수도 있는 나이.

노량진이라는 지역적 특성이 자신을 그렇게 보이게 만들어 준 모양이었다.

‘예은이 성적에 재수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세상 일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어디선가 본 자료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들어가는 재수 비용은 약 30,000,000원이라고 한다.

당연하게도 용주에게 그만한 돈은 없었다.

최근 들어 상대적으로 큰돈을 쥐고 있긴 했지만, 그걸로도 아직 부족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적어도 돈 때문에 꿈을 포기하게 할 수는 없지.’

용주는 접시를 깨끗하게 비웠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래. 공부 열심히 하고. 배고프면 언제든 또 오고.”

포장마차를 나온 용주는 손을 앞으로 뻗었다.

한 방울씩 비가 떨어지고 있었다.

‘비 온다는 뉴스는 없었는데….’

기상청에서는 구름이 좀 많지만 비는 오지 않을 거라고 했었다.

아무래도 오보인 모양이다.

‘당장 막 퍼붓는 것도 아니니. 괜찮겠지.’

퀘스트 게이트에 진입하면 바깥 상황이 어떻든 상관없었다.

그 뒤의 상황은 클리어하고 나온 뒤에 생각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방울을 피해 용주는 한 편의점 천막 아래로 들어왔다.

여기서 남은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아이, 갑자기 비가 오고 난리야?”

“뭐, 상관없잖아?”

“그래. 이참에 우산도 하나 새로 장만하고 잘됐지, 뭐. 그치, 은희야?”

용주의 앞을 지난 네 명의 여학생이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인근의 재수생들인 모양이었다.

여학생 중 한 사람은 안경을 들고 있었다.

두께로 보나 굴절되는 시야로 보나 돋보기가 확실했다.

눈동자를 굴린 용주는 편의점 안을 흘겨보았다.

구입한 우산은 총 세 개.

계산하는 카드는 한 장이었다.

용주가 보기에 카드의 주인인 은희라는 학생은 다른 세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ATM기 취급당하며 이리저리 불려 다니는 그런 괴롭힘 말이다.

한 여학생이 손에 들고 있는 돋보기안경 역시 은희라는 여학생의 안경일 것이다.

자기들 말 안 들으면 부러뜨려 버리겠다느니 하며 협박 도구로 이용되고 있는 거겠지.

은희라는 여학생의 표정은 상당히 어두웠다.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의 표정처럼 보였다.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괜한 참견이려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생각도 들었다.

만약 저기 있는 게 자신의 동생이라면… 하는 그런 생각이.

편의점에 들어온 용주는 카운터로 다가갔다.

우산을 구입한 네 여학생은 아직 편의점 안에 있었다.

이왕 온 김에 뭐라도 좀 먹을 참인 모양이었다.

세 여학생은 한가로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도시락과 컵라면의 조리는 오로지 은희 담당이었다.

컵라면 하나를 결제한 용주는 카운터에서 메모지 몇 장과 볼펜을 빌렸다.

그리고.

전자레인지와 보온 통이 있는 조리 공간으로 다가갔다.

스윽.

은희와 나란히 선 용주는 메모지 한 장을 옆으로 밀었다.

갑작스러운 용주의 행동에 은희는 용주를 흘겨보았다.

용주는 자신에게 눈길 하나 주고 있지 않았다.

“…….”

잠시 머뭇거리던 은희는 메모지를 확인했다.

안경이 없었기에 글을 읽는 게 쉽진 않았다.

[누군가 도와줬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나?

‘그렇다’라면 숟가락을. ‘아니다’라면 젓가락을 집어주길 바란다.]

간신히 확인한 메모지엔 이렇게 두 줄이 적혀 있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여학생들의 목소리를 듣던 은희는 조심스럽게 숟가락에 손을 올렸다.

그녀의 손끝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대답을 확인한 용주는 메모 두 장을 더 건네고는 먼저 자리를 떴다.

두 장의 메시지를 확인한 은희는 꾸깃꾸깃 구긴 메모장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아~ 배부르다. 그나저나 편의점 우산도 꽤 비싸네.”

“왜? 그럼 그냥 비닐우산이나 사지 그랬어?”

“미쳤냐? 내 돈 쓰는 것도 아닌데, 그런 싸구려를 왜 사?”

“그런 싸구려를 왜 사?!”

편의점 밖으로 나온 세 사람이 키득키득 웃어 보였다.

“이제 안경 돌려주면 안 될까? 나 공부하러 가야 하는데….”

용기를 낸 은희가 물었다.

“아~ 그러니까 우리랑 같이 노는 게 싫다 이거지?”

“와~ 진짜 김은희 실망이다. 난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실망이야. 실망.”

셋 중 하나가 어깨동무를 하자 두 사람이 호응했다.

“마음대로 해. 대신 안경은 압수야. 듣기로 엄~청 비싼 주문 안경이라고 했지, 아마?”

“그럼 공부 열심히 해. 근데 너 진짜 그러는 거 아니다. 고등학교 친구가 평생 친구라는 말 몰라?”

“안경은 압수! 그러는 거 아니다!”

“…….”

고개를 푹 숙인 은희는 그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은희?”

그리고 그런 은희의 귀에 낯선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든 은희는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그곳에 서 있는 이는 아까 봤던 그 사람이었다.

“맞네. 잘 지냈어?”

용주가 자연스럽게 물었다.

어떤 식으로 개입할까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했던 용주였다.

차라리 폭력배 쪽이면 일이 더 간단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그냥 싹 다 때려눕히면 일이 끝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상황이 좀 더 복잡했다.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의 개입은 NO.

근본적으로 해결될 가능성도 낮았고, 시간도 부족했다.

부모님의 개입 역시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은….

스스로 사슬을 끊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겠지.

이런 낯부끄러운 연기는 썩 내키진 않았지만 말이다.

“뭐야? 아는 사람?”

여학생이 물었다.

“완전 내 스타일인데? 누구야? 응? 누구야?”

“아는 오빠? 친구? 동생은 아닌 것 같고.”

다른 여학생들의 물음에도 은희는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자신이 받았던 메모장의 내용대로.

“옆에 있는 애들은 친구인가?”

“아!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흰 은희 고등학교 친구들이에요.”

여학생 중 하나가 대답했다.

“그래? 고등학교 친구들이란 말이지?

“네! 저희 완전 친한 베스트 프렌드들이에요! 그치?”

“그럼, 그럼! 소개팅을 하면 1순위로 소개시켜 줄 정도로 완전 친하지.”

“완전 친하지.”

“그래? 근데….”

말끝을 늘어뜨린 용주가 눈빛을 싹 바꾸었다.

“그거 은희 안경 같은데, 왜 너희가 가지고 있는지 설명 좀 해주겠니?”

용주의 물음에 여학생들의 표정이 싹 굳어졌다.

“아~ 이거요? 비가 오길래. 잠깐 맡아줬었어요.”

“응응!!”

“맞아요! 맞아요! 비 맞으면 아무것도 안 보이잖아요. 얼룩도 생기고.”

안경을 가지고 있던 여학생은 서둘러 안경을 돌려주었다.

“정말이니?”

용주가 은희를 바라보았다.

은희는 메모의 마지막 문장을 떠올렸다.

[도와주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다. 하지만 해결할 수 있는 건 너 자신뿐이다.]

‘말해라. 용기를 내서.’

주머니에 손을 넣은 은희는 꾸깃꾸깃 구겨진 종이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아니요!”

은희의 단호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놀란 세 사람의 눈동자가 은희를 향했다.

참아 왔던 목소리를 낸 은희는 가슴 속에서 무언가 뻥 뚫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거짓말이에요!”

안경을 쓴 은희가 한 번 더 외쳤다.

세 여학생의 눈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안경을 가져간 건 쟤들이 멋대로 그런 거예요! 돌려받고 싶으면 하라는 대로 하라고 했어요. 오늘로 벌써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다고요!”

“…….”

은희의 이야기에 용주는 세 여학생을 노려보았다.

차갑게 식은 용주의 눈빛에 세 사람의 낯빛은 창백해져 갔다.

그건 절대 일반인이 할 수 있는 눈이 아니었다.

“야! 너 갑자기 왜 그래?”

“그래, 그래. 무섭다, 얘.”

“우리 친구잖아. 친구끼리 그런 가벼운 장난이야 애교잖아.”

“친구? 웃기지 마! 친구는 누가 친구야?!”

자신을 만지려는 손길을 뿌리친 은희가 소리쳤다.

“난 너희 같은 얘들이랑 엮이기 싫어! 난 그냥 내 공부를 하고 싶다고!”

은희의 외침에 적막감이 흘렀다.

“그래? 그럼 한 마디로 여기 이 세 사람한테 은희가 신세를 졌다는 소리네. 그런 주제에 나한텐 뻔뻔하게 거짓말이나 하고.”

목덜미를 짚은 용주는 좌우로 고개를 까딱였다.

“옛날 생각나네. 은희를 괴롭혔던 애들이 너희 말고도 더 있었거든. 덕분에 고생 좀 했었지.”

어딘지 모를 공포 분위기는 주변을 잠식해 나가고 있었다.

“아…. 저… 그게….”

“신세를 졌으면 갚아 줘야 하지 않겠어?”

“아니…. 그게… 그러니까….”

“다신 건드리지 못하게. 아주 따끔하게 말이야. 그때 그 애들처럼.”

점점 다가오는 용주의 발걸음에 세 여학생이 우산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야! 튀어!”

편의점 문을 밀고 들어간 여학생들은 다른 출입구로 총알같이 튀어 나갔다.

용주는 그녀들을 따라가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 말이다.

“저기….”

도망가는 세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은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쟤들도 이제 다신 못 괴롭힐 거예요. 근데… 왜 절 도와주신 건가요? 전 그쪽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꾸벅 고개를 숙인 은희가 물었다.

“피차 모르긴 마찬가지지. 무언가를 바라고 접근한 건 아니었다. 그냥 내가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냥?”

“그래. 그리고 일을 해결한 건 내가 아닌 너다. 네가 아무런 용기도 내지 않았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용기…. 왠지 셰익스피어 소설에 나올 것 같은 멋진 말이네요.”

왼손을 움켜쥔 은희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데 지금 사용하시는 말투가 원래 말투이신 거예요?”

은희가 물었다.

용주가 건넨 메모들은 지금 같은 말투로 적혀 있었다.

하지만 조금 전엔 아니었다.

조금 더 친근한….

조금 더 따뜻한 그런 말투였었다.

“그래.”

“그런가요….”

“왜? 어디 이상한 점이라도 있나?”

“아니! 이상하다니 당치도 않아요. 그냥 처음 들었던 말투가 왠지 더 편안했어서….”

용주의 물음에 은희가 손을 허우적거렸다.

“아! 저기… 혹시 성함이랑 연락처 여쭤봐도 될까요?”

“연락처?”

“아! 제가 지금은 뭐 해드릴 돈도 능력도 없는데… 대학 합격하면 아르바이트 열심히 해서 제가 이 은혜 꼭 갚을게요. 그러니까….”

이야기를 이어가던 은희는 더 이상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머리 위로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됐다.”

은희의 머리를 토닥여 준 용주가 무뚝뚝하게 이야기했다.

“그… 그렇지만…!”

“됐다니까. 사람 피곤하게 할래?”

눈 쪽으로 다가오는 손길에 은희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세상은 좀 더 깨끗하고 선명해져 있었다.

“다른 생각 말고 달리는 데만 집중해. 하면 할 수 있잖아.”

은희의 안경을 닦아준 용주는 그녀의 이마를 콕 찔렀다.

“네… 네!!”

은희의 눈빛을 확인한 용주는 그대로 자리를 뜨려 했다.

버려진 우산 중 하나를 집어 든 은희는 용주의 손에 우산을 쥐여 주었다.

“우산… 쓰고 가세요. 저 혼자 세 개 쓰긴 많으니까.”

“그래. 그럼 거절하지 않고 고맙게 받지.”

우산을 펼친 용주는 은희를 등졌다.

은희는 용주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결국, 도움만 받고 이름도 못 들었네.’

은희는 주머니에서 꺼낸 종이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하면 할 수 있다.

이름 모를 은인이 해준 그 말이 지친 마음을 치유해주는 것 같았다.

* * *

‘3… 2… 1.’

용주의 카운트다운이 끝나자 주변 풍경이 안개 속에 묻혀 갔다.

방울방울 떨어지던 물방울은 더 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용주는 쓰고 있던 우산을 접었다.

‘어디 가보자고.’

대충 털어낸 우산을 인벤토리에 보관한 용주는 안개가 걷히길 기다렸다.

시야를 가리던 안개는 빠르게 물러갔다.

그리고.

“!”

용주는 발을 잡아당기는 엄청난 중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윽고 느껴지는 엄청난 속도감.

떨어지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이게… 뭐야?!’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용주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래로 커다란 섬의 전경이 보였다.

자신이 있는 곳은 하늘 위였다.

고도가 몇 미터 정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은 그곳에서 저 아래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온몸을 때리는 바람에 숨쉬기가 힘들 정도였다.

‘이런 미친! 적어도 땅에서 시작하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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