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용주보다 한발 빠르게 게이트 보스에게 달려든 두 헌터는 보스의 집게발에 칼을 맞댔다.
망설임 없이 돌진한 언노운은 게이트 보스를 들이받았다.
충돌의 순간 뛰어오른 용주는 놈의 꼬리를 내려다보았다.
두 개의 꼬리는 정확히 자신을 노리고 있었다.
‘할퀴기!’
손을 타고 흐른 피가 결정이 되었다.
‘할퀴기! 할퀴기! 할퀴기! 할퀴기! 할퀴기!’
용주가 한 번에 지불한 HP는 무려 30%.
결정 위로 흘러내린 피는 또다시 결정이 되었고, 더욱 두텁고 날카로운 손톱이 되었다.
마치 지옥에서 온 야수의 손톱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독에 의해 지속적으로 HP를 잃고 있는 상황이기에 어찌 보면 무모한 선택일지도 모를 결정이었다.
하지만 이 한 방으로 끝내야 했다.
같은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간다! 사후 강직!’
압도적인 날카로움을 무기로 삼은 용주는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신경을 좀먹던 마비 증상도 자연스레 잊혔다.
유연성이나 속도는 이제 필요 없었다.
필요한 건 놈의 일격을 버텨낼 힘.
그거 하나면 족했다.
“키익!”
언노운의 꼬리가 곧장 용주를 꿰뚫을 듯 작렬했다.
하지만.
용주는 꿰뚫리지 않았다.
언노운의 치명적인 독침은 용주의 피부에 구멍을 냈고,
용주의 피부를 끔찍하게 고문했지만, 결코 완전하게 꿰뚫지는 못했다.
“으아아!!”
짧고 강렬한 기합을 내뱉은 용주는 언노운의 독침을 잘라냈다.
그리고.
그대로 언노운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용주의 몸 그 자체가 갑옷이었고, 무기였다.
“키이익!!”
거대한 충격과 함께 물보라가 일었다.
언노운의 괴성이 공간을 흔들었다.
엄청난 양의 피와 점액이 사방으로 흩뿌려졌고, 용주의 온몸을 흠뻑 적셨다.
머리가 세로로 잘린 게이트 보스의 꼬리가 허공을 갈랐다.
침을 잃은 꼬리는 한 번 더 용주를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녀석은 마지막 공격을 끝내 성공시키지 못했다.
급격하게 방향을 잃은 꼬리는 이내 바닥에 늘어졌다.
▷ ‘재생’의 스킬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Lv.3 → Lv.4)
▷ ‘할퀴기’의 스킬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Lv.3 → Lv.4)
▷ ‘사후 강직’의 스킬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Lv.1 → Lv.2)
<새로운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 독 저항(Lv.1)
- 패시브.
- 독에 대한 저항력과 면역력을 얻는다.
- 체내에 침입한 독을 분석하여 해독한다.
▶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맹독 (Lv.1)
- MP 소모량 : 10
- 지속 시간 동안 계승자의 피가 강한 독성을 띱니다.
- 계승자의 피는 적을 ‘중독’상태로 만들며, 일정 시간 동안 지속 피해를 입힙니다.
- 이 효과는 인간에겐 발휘되지 않으며, 인간계에 속한 다른 것들에도 피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게이트 보스가 쓰러지자 여러 가지 팝업창이 동시에 나타났다.
그리고.
▷ 상태 이상 : ‘중독’이 느껴집니다.
- HP가 4% 감소했습니다.
▷ 상태 이상 : ‘마비 독’이 느껴집니다.
- 어지럼증과 구토, 환각과 환청을 유발합니다.
- 모든 행동 기능이 55% 둔화됩니다.
- 이 효과는 중첩됩니다.
이어서 두 개의 메시지가 그 뒤를 이었다.
‘큭…!’
또다시 깎여나간 HP에 용주의 인상이 구겨졌다.
몸속에 퍼진 독은 사후 강직의 효과를 무시했다.
독 저항이란 스킬이 생긴 덕분인지 감소치가 줄어들긴 했지만, 안쪽에서 찢기는 고통은 쉽게 무시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었다.
‘스킬의 보호를 받고도 이 정도인가?’
용주는 복부에 손을 가져갔다.
결정화됐던 손톱은 부서져 사라지고 있었다.
찢긴 옷 아래로 보이는 상처는 생각한 것 이상으로 끔찍했다.
중심이 되는 자국은 총 2개였다.
날카롭게 파인 상처에선 붉은 피 대신 보랏빛의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상처 주변 피부는 괴사해 있었다.
당장 구더기가 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이렇게 된 이상 그걸 하는 수밖에 없는 건가?’
표정을 숨긴 용주는 게이트 보스의 유해를 힐끔 쳐다보았다.
자신은 태영에게 나름대로 생각해 둔 방법이 있다고 말했었다.
그중 하나는 ‘사후 강직’ 스킬이었다.
신체가 굳어가는 마비 증상을 사후 강직의 페널티로 상쇄시킬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얼추 비슷하게 먹혀들었다.
다른 하나는 바로 ‘시체 뜯어먹기’.
다른 스킬을 선보이면서도 끝끝내 망설였던 그 기술이었다.
중독으로 깎여 나가는 HP는 재생만으로 따라갈 수 없었다.
독 저항 스킬이 설명에 적힌 대로 해독 능력이 있다면, 궁극적으론 자체 완쾌가 가능하겠지만, 그 전에 HP가 0이 된다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용주가 이 스킬을 사용하는 데 망설이는 이유는 단순했다.
하나는, 독이 있는 언노운의 유해에 이 스킬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기 때문.
더 중요한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직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유충을 씹어 먹는 것 정도는 보였었다.
하지만 이건 그것과는 심리적으로 또 달랐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 모습을 보이는 순간 인간으로서의 무언가를 놓쳐 버릴 것만 같았다.
“단 일격에 게이트 보스를….”
용주가 만들어 낸 물보라에 휩쓸렸던 태영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게이트를 감돌던 빛은 더 선명해져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공간 전체를 가득 채웠던 점액과 악취.
언노운들이 내지르던 괴성과 사체를 갉아먹는 소리.
산처럼 쌓였던 언노운들의 사체.
게이트 보스의 사체를 제외한, 그 모든 게 전부 사라져 있었다.
‘아니, 내가 태평하게 이런 말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태영은 서둘러 몸을 추슬렀다.
해독제가 다행히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언노운의 체액에 노출된 건 여기 있는 전원.
특히 용주의 경우는 남들보다 몇 배는 많은 체액을 뒤집어쓴 상태였다.
고통의 수위는 자신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것이다.
“짜식, 굉장하잖아?!”
한걸음에 달려온 바람머리 헌터가 검을 어깨에 걸쳤다.
용주의 마지막 일격은 D급 헌터인 자신이 봐도 입이 떡 벌어질 만한 것이었다.
“꼬리가 두 개로 갈라졌을 땐 진짜로 큰일 났다 싶었…. 잠깐만, 너 얼굴 빛깔이 영 안 좋다?”
태평하게 이야기를 계속하던 바람머리 헌터가 말을 멈췄다.
그의 눈에 한발 늦게 용주의 상태가 들어왔다.
용주의 낯빛은 창백했다.
움직임도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결정적으로 용주의 복부에는 심각해 보이는 상처가 있었다.
“너 설마… 꼬리에 찔린 거냐?”
앞다리를 마크하느라 바람머리 헌터는 공중의 상황을 보지 못했었다.
다만, 찔리지 않았을 거라고만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저기 꿰뚫렸다면, 공격을 성공시키는 건 불가능했을 테니 말이다.
“…….”
용주는 말을 아꼈다.
그사이 달려온 물범 문신 헌터는 태연하게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많지 않겠어. 어서 나가서 응급조치를….”
생각을 곧장 행동으로 옮기려던 바람머리 헌터가 비틀거렸다.
빈혈이 온 것처럼 순간적으로 세상이 핑 돌았다.
“왜 그래요? 무슨….”
증상은 물범 문신 헌터에게도 곧장 나타났다.
“웁…. 우웩….!”
무릎을 꿇은 물범 문신 헌터는 속에 든 걸 다 게워내고 있었다.
“젠장…. 뭐야? 갑자기 왜 이래?”
“저도 잘 모르겠어요. 우읍!”
시선을 돌린 바람머리 헌터는 검에 의지해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 보니 아까 한태영 녀석이 독에 중독됐었지. 꼬리에 찔린 건 아니었어. 설마….’
그의 머릿속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한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가설이 맞다면, 독에 중독된 건 자신들도 마찬가지였다.
타다다닥!
태영은 서둘러 세 사람에게로 달려왔다.
세 사람 모두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추측건대 원인은 아까 언노운이 하늘로 뿜었던 액체와 마지막에 죽으면서 흘러나온 체액.
세 사람 다 거기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태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케이스 안에 해독제는 더 이상 없었다.
“세 분 다 조금만 버텨주세요! 제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가만히 있어 봐야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빨리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
태영은 서둘러 용주에게 다가갔다.
“어깨 빌려주세요. 일단 게이트 밖으로 나가는 게 최우선입니다.”
자세를 낮춘 태영이 이야기했다.
“난 괜찮으니, 저 녀석들부터 옮겨라.”
심호흡을 한 용주가 이야기했다.
“말도 안 돼요. 제일 심각한 건 좀비 헌터 당신이라고요!”
태영이 즉각 반발했다.
태영은 조금 전 용주의 시선을 떠올렸다.
용주는 분명 게이트 보스의 유해를 힐끔거리고 있었었다.
‘설마… 이형 결정체를 아직 회수하지 못해서?’
그렇게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게이트가 닫히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게이트 보스가 드랍한 것들은 제가 책임지고 회수하겠습니다. 그러니….”
“내 나름대로 생각해 둔 방법이 있다고 했을 텐데?”
용주가 태영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태영의 눈동자에 용주의 모습이 비쳤다.
머릿속에 한 가지 상황이 떠올랐다.
일자로 늘어선 불과 빛의 길.
그 위에서 뒤로 물러나던 그의 모습이.
“더 말해봐야 소용없을 것 같군요.”
용주의 눈빛에 태영이 한 걸음 물러났다.
A급 헌터인 형만조차 한 수 접게 만들었던 그였다.
그리고 보란 듯이 거기서 살아 나온 그였다.
그가 그러겠다면, 믿는 수밖에.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두 분 먼저 옮기는 걸로 하죠.”
태영이 뒤돌아섰다.
“대신, 다시 돌아왔을 때는 양보는 없을 겁니다. 방법이 있다면, 그사이에 시도해 주세요.”
“그래.”
용주의 대답을 기다리던 태영은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어찌어찌 시선은 돌렸군.’
클리어된 게이트에 혼자 남게 된 용주는 게이트 보스의 유해로 다가갔다.
세로로 갈라진 언노운의 머리에선 물과 피가 아직도 흘러넘치고 있었다.
‘독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모르겠지만….’
찢어진 절단면에 들어선 용주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 처음 계획했던 일을 실현시킬 때였다.
이빨을 드러낸 용주는 놈의 살점을 물어뜯었다.
단단한 갑피와 달리 안쪽의 살은 부드럽고 탱글탱글했다.
용주는 크게 한 입을 더 베어 물었다.
지금껏 먹어 본 음식과 비교하자면 생새우와 비슷했지만, 그것과도 좀 다른 특별한 맛과 식감이었다.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제법 먹을 만하다는 생각까지 드는 맛이었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독이 있는 것들이 더 맛있다고.
‘아니, 내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음식 맛.
아니, 언노운의 맛을 보던 용주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방금 그 생각은 이상했다.
무슨 고독한 미식 프로에서나 나올법한 반응이지 않은가.
‘독에 머리가 어떻게 되기라도 한 거야, 뭐야? 이건 언노운이라고. 난 살기 위해 이걸 먹고… 있을 뿐이고.’
용주는 HP를 확인했다.
시체 뜯어먹기의 효과는 확실했다.
독은 불규칙적으로 계속 HP를 갉아먹고 있었지만, 지금 이 상태라면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배가 터져 죽거나.
아니면 독이 전부 중화될 때까지 말이다.
* * *
“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두 헌터와 함께 게이트 밖으로 이동한 태영은 군용 텐트 밖으로 나왔다.
텐트 안에는 긴급하게 파견 나온 C급 의료 헌터가 두 사람의 치료를 전담하고 있었다.
태영의 다급한 연락에 길드에서 급파한 인원이었다.
‘시간은 이 정도면 충분히 드렸겠죠?’
텐트를 빠져나온 태영은 곧장 카오스 게이트로 향했다.
의료 헌터가 도착하기 전에 용주를 불러야겠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삼킨 태영이었다.
카오스 게이트의 균열은 그사이에 상당히 줄어들어 있었다.
태영의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그리고.
그런 태영의 눈에 게이트를 빠져나오는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좀비 헌터!!”
달리기 시작한 태영은 용주 앞에 섰다.
걸음걸이, 호흡. 상처.
그 모든 게 놀라울 정도로 호전되었다는 걸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어떤 방법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또 한 번 자신의 말을 관철해냈다.
“누가 지은 이명인지는 몰라도, 정말이지, 잘 지은 이명이네요. 안 그래요?”
주먹을 움켜쥔 태영은 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그의 손을 잠시 지켜보던 용주는 할 수 없다는 듯 작은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의 주먹에 주먹을 부딪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