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용주의 진격 명령이 떨어지자 언노운들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선봉에 선 건 용주와 무리 어미.
태영을 비롯한 두 헌터는 성체까지 진화한 다른 언노운들을 타고 있었다.
“와이씨! 이거 정말 안 무너지는 거 맞지? 겁나 불안한데?”
바람머리 헌터가 머리에 손을 올렸다.
언노운들이 이동할 때마다 천장에서 부스러기들이 떨어졌다.
“괜찮지… 않을까요? 아마도요.”
물범 문신 헌터가 뺨을 긁적였다.
좁은 곳으로 모인 언노운의 수는 훨씬 더 많게 느껴졌다.
안 그래도 좁은 굴이 출퇴근 지하철처럼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무리를 이동시키기 전에 정찰병이라도 따로 보내보는 게 좋지 않았을까요?”
용주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태영이 물었다.
“정찰병의 존재가 발각되면, 게이트 보스가 자리를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수비 또한 더욱 견고해지겠지. 정보의 공백이 있지만, 기습을 위해선 감안해야 할 리스크다.”
“확실히… 그것도 그렇네요.”
침착한 용주의 대답에 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한 수 앞을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무리는 점액질의 흐름을 따라 한참을 이동했다.
“젠장 안 그래도 좁아터진 게 더 좁아지잖아.”
“폐소 공포증이 없는데도 답답한데요. 그리고 악취도 너무 심하고요.”
그나마 정리됐던 굴은 점점 더 좁고 허름해지고 있었다.
용주는 이 굴의 끝이 가까이 왔음을 직감했다.
자신이 지시해뒀던 게 있었으니 말이다.
“잠깐.”
조금 더 이동하던 용주는 정지 신호를 보냈다.
눈엔 아직 출구가 보이지 않았지만, 귀는 이미 저 앞이 출구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액체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왜?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
“어떤 이슈인가요?”
두 헌터가 물었다.
용주와 달리 두 헌터는 이 작은 소리를 캐치해 내지 못한 상태였다.
대답 대신 용주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정신 지배를 당한 언노운은 불안감을 감지한 듯 더듬이를 떨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뭔가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용주는 짧은 호흡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무리에 전해라. 가서 전부 죽여라.”
거두절미한 한마디를 내뱉었다.
“키이익!!”
무리 어미의 신호가 떨어지자 언노운들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어? 어어어?!”
언노운에 올라타고 있던 헌터들 역시 그 물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으아! 떨어져요! 떨어진다고요!!”
“아니! 무슨 조류도 아니고! 굴을 바닥에서 떨어져서 파는 놈이 어딨어?! 반칙이야! 이건 반칙이라고!!”
좁은 통로를 빠져나간 헌터들은 몸을 끌어당기는 중력을 느낄 수 있었다.
“…….”
침착함을 잃지 않은 태영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십여 마리의 언노운들이 밀집해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가장 후미에 자리 잡은 언노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전갈처럼 날카로운 침을 세우고 있는 일곱 눈의 언노운.
다른 개체보다 훨씬 날카롭게 발달한 붉은색 순각류 언노운이었다.
기습과 동시에 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언노운들이 부대끼며 서로를 물어뜯었고, 수많은 언노운들의 유해가 점액 위를 떠다녔다.
언노운 하나가 쓰러지면 그 위로 개미 떼처럼 유충들이 모여들었다.
적의 후미에 게이트 보스가 자리 잡았다면, 용주 쪽 진영의 후미에 자리 잡고 있는 건 무리 어미 언노운이었다.
총돌격 명령이 떨어졌음에도 무리 어미 주변엔 십여 마리의 아성체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전투력이 전무한 무리 어미를 위한 최소한의 호위 병력이었다.
“아이 진짜! 이렇게 되고 나니까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헷갈리잖아!”
언노운끼리의 충돌에 날아가 버린 바람머리 헌터가 불만을 토로했다.
“게이트 보스만 치면 나머진 알아서 정리될 겁니다. 일반 개체들은 우리 편 언노운들한테 맡기죠.”
바람머리 헌터 옆에 착지한 태영이 이야기했다.
“오케이~ 우리 편이란 말이 영 적응이 안 되지만 좋은 생각이야. 우리 편이 누군지 영 모르겠단 점만 빼면 말이야!!”
“그럼 갑시다!
속도를 높인 태영은 뒤엉킨 언노운의 몸통을 타고 올랐다.
머리에서 머리로 뛰어오르는 태영과 바람머리 헌터.
“근데 다른 두 녀석은? 우리끼리 처리해?”
나선형 미끄럼틀처럼 배배 꼬인 언노운의 몸통을 미끄러져 내려가던 바람머리 헌터가 물었다.
둘을 향해 추가적인 공격이 더 쏟아졌지만, D급 헌터의 역량을 십분 발휘하는 두 사람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왜냐면….”
태영은 칼끝으로 언노운의 꼬리를 그었다.
고통에 울부짖은 언노운의 꼬리는 하늘을 향했고, 태영은 꼬리 끝에서 가볍게 뛰어올랐다.
하늘을 달리는 태영의 눈동자에 한 마리의 언노운이 보였다.
점액질에 반쯤 묻힌 채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는 언노운.
언노운의 머리 위로 용주와 물범 문신 헌터의 모습이 보였다.
“나이스 타이밍! 완전 딱 맞았네요.”
정확히 언노운의 머리 위에 착지한 태영이 이야기했다.
태영을 따라 착지한 바람머리 헌터는 이제야 상황이 파악된 듯 보였다.
“그건 스스로한테 하는 이야긴가 보지?”
용주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타이밍을 맞춘 건 태영이었지, 자신이 아니었다.
“하핫! 뭐 겸사겸사 둘 다죠.”
“이왕 올라탔으면 꽉 잡아라. 떨어져도 책임 안 지니까.”
속도를 높인 언노운은 곧장 게이트 보스에게로 돌진했다.
난리 통에 마크는 전혀 없었다.
“키이엑!!”
머리부터 솟구친 언노운은 곧장 게이트 보스를 덮쳤다.
날카로운 두 앞다리로 언노운을 붙잡은 게이트 보스는 압도적인 턱 힘으로 언노운의 머리를 뜯어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꼿꼿하게 세운 침으로 언노운을 꿰뚫었다.
머리가 잘리고도 언노운은 움직였다.
주어진 명령대로 게이트 보스를 휘어 감으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끈질긴 생명력은 불과 20초도 가지 못했다.
축 늘어진 언노운의 몸통은 그대로 점액질에 담가졌다.
“꼬리에 독이 있는 모양입니다! 주의하세요!”
“독이라니 막판에 귀찮게 됐잖아?!”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은 네 헌터는 동시에 검을 겨눴다.
용주와 태영은 녀석의 눈을 첫 타깃으로 잡았다.
태영은 순식간에 언노운의 홑눈 하나를 찢어놓았다.
하지만 용주는 그러지 못했다.
게이트 보스의 눈은 막에 둘러싸인 액체라기보다는 단단한 고체에 가까웠다.
그것도 용주가 벨 수 없는 강도의.
‘검으로 안 되면… 물어뜯는 수밖에!’
스킬을 발동한 용주는 찢지 못했던 녀석의 눈을 다시 한번 물어뜯었다.
용주의 이가 지나는 곳에선 폭포수와 같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 상태 이상 : ‘마비 독’이 느껴집니다.
- 어지럼증과 구토를 유발합니다.
- 모든 행동 기능이 10% 둔화됩니다.
- 이 효과는 중첩됩니다.
▷ 상태 이상 : ‘중독’이 느껴집니다.
- HP가 5% 감소했습니다.
- 이 효과는 독의 지속시간이 끝나거나 중화될 때까지 지속됩니다.
‘이건….’
갑작스럽게 떠오른 메시지에 용주의 눈이 반응했다.
독이 언노운의 꼬리에 있다는 건 확인한 사실이었다.
당연하게도 꼬리에 찔릴 일도, 스칠 일도 없었다.
하지만 증상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한 가지.
놈의 체액에 독이 있다는 가설뿐이었다.
“우리도 가자고!”
머리에 착지하는 데 실패한 두 헌터는 언노운의 꼬리를 노렸다.
“독침이 있는 녀석들은 말이야.”
“독침만 베어 내면 아무것도 아니죠!”
두 헌터의 검은 침 끝을 정확히 겨눴다.
위와 아래에서 동시에 조여오는 두 개의 참격.
두 헌터는 성공을 확신했다.
하지만.
“아니!”
“이게 무슨?!”
헌터들의 검이 닿기 직전 헌터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독침이 달린 보스의 꼬리가 둘로 갈라진 것이다.
베여서 찢어진 게 아니었다.
파리지옥의 입처럼 그냥 자연스럽게 양쪽으로 벌어진 것이었다.
챙!
두 헌터의 검이 서로 부딪쳤다.
어떻게 멈춰볼 틈도 없었다.
두 사람은 지금 공중에 떠 있었다.
휘익!
두 개로 갈라진 꼬리는 두 헌터를 동시에 가격했다.
침에 꽂히는 최악의 상황은 간신히 피한 두 사람이었지만, 충격에 날아간 두 사람은 점액 속에 그대로 처박히고 말았다.
두 헌터를 떨쳐낸 언노운의 꼬리는 곧장 용주와 태영을 겨눴다.
집요하게 눈을 후벼 파던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한 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꼬리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던 건가요?”
지면에 착지한 태영이 미간을 찡그렸다.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변수였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군.”
용주 역시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아무리 봐도 하나처럼 보였었으니 말이다.
▷ 상태 이상 : ‘중독’이 느껴집니다.
- HP가 5% 감소했습니다.
심장을 옥죄여오는 고통과 함께 용주의 HP가 또 한 번 도려내졌다.
용주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재생의 효과만으론 감소되는 HP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확실히 게이트 보스라 뭔가 다르긴 다르…. 윽…!”
이야기를 이어가던 태영이 급격하게 비틀거렸다.
‘뭐야…?’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건… 설마 독? 꼬리엔 스치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증상으로 미루어 보건대 틀림없었다.
하지만 어디서 독이 주입된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설마….’
떠오르는 가능성을 그나마 꼽자면, 놈의 눈을 베어 냈을 때였다.
그때 뒤집어썼던 안구액.
피와 뒤섞인 거기에 독성이 있었다면, 말이 되긴 했다.
‘꼬리뿐만 아니라, 피에도 독이 있다는 건가?’
태영은 가지고 있던 강철 케이스를 꺼냈다.
상비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조그마한 구급상자였다.
‘잠깐만…. 내가 독에 중독되었다는 건 좀비 헌터도 마찬가지란 소리잖아.’
가지고 있는 해독 주사는 한 방뿐이었다.
그마저도 효과를 장담할 순 없었지만 말이다.
‘어떡해야 하지?’
태영은 잠시 망설였다.
어떤 판단이 옳은 판단인지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냉정하게 생각해. 지금의 최대 전력은 내가 아니야. 게이트를 클리어하려면……’
태영은 케이스를 쥐었다.
옳은 결정이 무엇인지 이제 확실하게 보였다.
하지만.
‘젠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이스를 열 수가 없었다.
손가락이 마비되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덥석!
태영을 둘러멘 용주는 달리기 시작했다.
바로 옆으론 언노운의 집게발이 일으킨 물보라가 일고 있었다.
“녀석의 체액에 독이 있는 것 같습니다.”
태영이 다급하게 이야기했다.
“알고 있다. 그 안에 든 건?”
강철 케이스를 본 용주가 물었다.
“상비약 중에 해독 주사가 있습니다. 효과를 장담할 순 없지만요.”
“개수는?”
“아쉽게도 하나뿐입니다.”
태영이 강철 케이스를 내밀었다.
“보아하니 용주 씨는 독의 효과가 아직 나타나지 않은 모양인데, 미리 사용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것보단 그편이 좋을 것 같거든요.”
“아니, 그건 네가 사용해라. 난 내 나름대로 생각해둔 방법이 있으니까.”
언노운의 공격을 연속해서 피해 낸 용주는 거의 던지듯이 태영의 손을 놓았다.
힘과 속도에 날아간 태영은 무언가에 정면으로 부딪쳤다.
“우왁!”
겨우 다시 일어났던 바람머리 헌터는 또 한 번 점액 속에 처박히고 있었다.
태영은 용주에게 독 기운이 아직 돌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용주 역시 몸에 퍼진 독을 느끼고 있었다.
아직까진 태영보단 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았지만, 독에서 자유롭지 못하긴 마찬가지란 소리였다.
‘시간이 끌리면 불리해. 단숨에 몰아붙인다!’
“호위 병력을 전부 전장에 투입해라! 몇 마리가 희생돼도 좋다! 녀석의 움직임을 봉쇄해라!”
용주의 외침이 떨어지자 무리 어미를 지키고 있던 마지막 병력이 전장에 동원되었다.
호위병들은 다른 개체들은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들의 목표는 오로지 게이트 보스.
점성이 있는 실을 분사한 언노운들은 게이트 보스의 움직임을 둔화시키고 있었다.
두 개의 꼬리를 바짝 세운 게이트 보스는 언노운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기 시작했다.
꼬리에 꿰뚫린 언노운들은 꿈틀거리며 몸을 비틀었다.
목숨과 바꿔 꼬리를 봉쇄할 작정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게이트 보스의 힘이 녀석들보다 한 수 위였다.
게이트 보스는 사정없이 언노운들을 메쳤고, 순식간에 시체가 산을 이루었다.
그렇게 많은 언노운이 달려들었건만, 게이트 보스에게 입힌 피해는 경미한 수준이었다.
“끼엑!!”
하늘을 올려다본 언노운은 타액을 분사했다.
초록 액체가 분수처럼 흩뿌려졌고, 비가 되어 쏟아졌다.
최후의 돌격 명령을 받은 언노운들은 순식간에 전멸 직전이 되었다.
‘다음 한 방으로 끝내야 해!’
마지막으로 합류한 언노운의 머리에 올라탄 용주는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바람머리 헌터와 물범 문신 헌터가 서로 다른 방향에서 달려오고 있는 게 보였다.
“앞만 보고 달려! 한태영 녀석은 괜찮으니까!”
“녀석의 앞다리는 저희한테 맡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