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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42화 (42/357)

42화

* * *

“키이익!”

갑작스러운 기습으로 전투는 시작되었다.

점액질의 물가를 나온 유충들은 이동 속도가 더욱 더뎌졌지만, 문제 될 정도는 아니었다.

다른 공간들과 이어진 중앙공간엔 20마리 가까운 언노운들이 모여 있었다.

태영이 말한 것보다 조금 더 큰 규모였다.

언노운들은 새로운 무리의 등장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성체를 필두로 한 유충들의 공격이 시작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아성체들이 언노운들을 공격하기 시작하자 수많은 유충들이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용주의 무리는 수적으로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눈으로 보이는 모습은 전황을 압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성체들은 언노운들의 목덜미를 순식간에 물어뜯었고, 유충들은 언노운의 몸을 빼곡하게 뒤덮었다.

마치 수면 위를 가득 메운 장구벌레들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언노운의 움직임은 전혀 사그라지지 않았다.

언노운이 한 번 발악할 때마다 수십의 유충들이 나부꼈고, 그중 몇몇은 짓이겨져 터져 버렸다.

기습을 당하지 않은 언노운들 역시 이상을 감지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언노운들은 유충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기 시작했고, 점액질의 실을 뱉어내며 아성체들의 움직임을 제약하려 시도했다.

“우리 차례인 것 같네요.”

아성체의 머리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태영이 검을 빼 들었다.

언노운의 머리 위로 뛰어든 태영은 언노운의 눈알들을 모두 도려냈다.

유충들의 머리 위로 언노운의 체액이 쏟아졌고, 유충들은 그걸 게걸스럽게 마셨다.

“그 말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고.”

“본업으로 돌아가 보자고요, 어디.”

태영이 활동을 개시하자 다른 이들 역시 사냥에 나서기 시작했다.

바람머리 헌터와 물범 문신 헌터는 아성체들을 포박한 점액질을 끊어 냈고, 마크가 붙지 않은 언노운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비켜! 비켜! 비켜! 내 발에 깔려 죽어도 책임 안 진다고!”

발밑을 기는 유충들을 적당히 짓밟고 달려나간 바람머리 헌터는 왼쪽 벽에 붙은 언노운을 격추시켰다.

휘리리릭!

순간의 틈을 놓치지 않고 손바닥 위에서 검을 회전시키는 바람머리 헌터.

언노운의 입안으로 검을 쑤셔 넣은 바람머리 헌터는 게의 입을 따듯 칼날을 비틀었다.

엄청난 양의 체액을 쏟아낸 언노운은 고통에 발버둥 치고 있었다.

“여기도 언노운, 저기도 언노운. 그런데 이건 아군. 저건 적군. 아 정말 혼란스럽네요.”

언노운의 공격을 정면에서 받아친 물범 문신 헌터는 언노운의 다리를 하나씩 잘라내기 시작했다.

몸통에서 떨어져 나온 다리들은 사방에서 꿈틀거렸고, 순식간에 유충들에게 둘러싸였다.

‘물어뜯기!’

공격을 개시한 용주 역시 언노운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흡혈량이 HP의 100%를 초과했을 경우 발생하는 스킬인 ‘가시지 않는 식욕’.

공격력 상승의 효과를 받은 용주의 공격은 언노운의 갑피를 부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한 마리의 언노운을 쓰러뜨린 용주의 곁에 순식간에 두 마리의 언노운이 따라붙었다.

태극문양을 그리듯 용주를 포위하고 도는 두 마리의 언노운.

녀석들의 다리는 톱날과 같았고, 1초도 어긋나지 않은 정확한 시간에 동시에 공격해오는 두 개의 꼬리는 사냥감을 노리는 작살과 같았다.

‘사후 강직!’

새로운 스킬을 테스트해 볼 기회라고 생각한 용주는 스킬을 발동시켰다.

두근!

발동과 동시에 거대한 심장의 고동이 느껴졌다.

몸 전체가 빠르게 굳어가는 감각이 돌았다.

마치 단단한 갑옷을 걸친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촤악!

그와 동시에 언노운들의 꼬리가 용주의 앞뒤를 강타했다.

입고 있던 옷이 찢어졌고, 그 아래로 약간의 피가 튀었다.

하지만 옷의 상태에 비해 상처는 깊지 않았다.

고작 해봐야 피부를 약간 긁어낸 정도.

D급 언노운의 공격이 아니라 철조망에 약간 긁힌 정도의 상처처럼 보였다.

‘방어 성능은 대략 이 정도인가?’

사후 강직 상태를 유지한 채로 용주는 움직임을 시도했다.

몸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갑옷을 입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건 갑옷이 아니라 맞춤 제작한 석고상 안에 들어와 있는 거에 더 가까워 보였다.

움직여야 할 관절들의 움직임이 제법 심하게 제약을 받고 있었다.

‘생각한 것보다 움직이는 게 더 힘들잖아?’

한 차례의 공격을 더 받아낸 용주는 사후 강직을 해제했다.

방어 쪽에서의 성능은 확실히 탁월했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할퀴기!!’

긴박한 순간 속에서도 시야를 넓게 잡은 용주는 상황을 분석했다.

헌터들이 쓰러뜨린 언노운을 먹어치운 유충 중 일부는 변태를 시작하고 있었다.

시간은 자신들의 편이었다.

* * *

“이거… 생각한 거 이상으로 기분이 묘한데?”

바람머리 헌터가 검을 집어넣었다.

전투는 승리로 끝났다.

분명 그러했다.

하지만 전혀 이겼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언노운을 쓰러뜨렸는데, 언노운이 늘어났다라…. 생각할수록 침 아이러니하네요.”

물범 문신 헌터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언노운의 유해마다 엄청난 수의 유충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처음 쓰러뜨린 언노운의 경우는 이미 갑피 한 점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전투 중에 사망한 유충들 또한 먹잇감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먹이를 먹고 탈피한 아성체들의 숫자는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기존에 있던 아성체 중 일부 또한 성체로 탈피를 완료했다.

자신들은 지금 언노운들 무리 한가운데에 있었다.

절대적인 군단의 수는 줄어들었지만, 전투력은 전투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승해 있었다.

‘이형 결정체는 거의 안 나오는 수준이군.’

소모한 MP를 회복하고 있던 용주는 눈썹을 기울였다.

헌터들끼리만 진행했던 첫 전투에서도 이형 결정체의 드랍률은 현저하게 낮았었다.

물론, 게이트 보스가 아닌 일반 언노운이 100% 이형 결정체를 드랍하는 건 아니긴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A나 S급의 가격이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까지 가지는 않았겠지.

E급의 경우 드랍률이 상당히 높은 편으로 알려져 있다.

거의 100%라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하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그 확률이 현저하게 줄어든다는 이야기는 들었었다.

‘그걸 감안해도 이게 정상인 건가?’

D급 게이트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은 용주로서는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힘든 부분이었다.

지난번 D급 게이트에선 곧바로 얻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다른 세 헌터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딱히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다음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검에 묻은 언노운의 피를 닦아낸 태영이 물었다.

용주는 에너지 음료 비슷한 걸 마시고 있었다.

“그 전에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네. 말씀하세요. 제가 대답해 드릴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D급은 원래 이형 결정체가 이렇게 안 나오는 거냐?”

용주의 물음에 태영이 어깨를 들썩였다.

약간은 뜬금없는 타이밍이라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충분히 할 수 있는 질문이란 생각도 들었다.

아등바등 이형 결정체 하나에 악착같이 얽매이던 용주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잘 안 나오는 편이긴 하죠. 이번 게이트는 평소보다 좀 심한 것 같긴 하지만요.”

새롭게 부화시킨 언노운들의 드랍률은 0%였다.

적어도 태영이 본 사례들로선 그랬다.

“…그래?”

용주는 다 마신 MP 포션 병을 버렸다.

“그래서 다음 계획은요?”

“유충들과 아성체의 비율을 더 줄이고, 성체를 늘려야지. 아직 탈태하지 못한 개체들이 더 많으니까.”

“한마디로 다른 언노운 무리를 더 찾아서 없애자는 소리네요.”

“그래. 일단 돌아가자. 이 녀석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건 내가 아니니까.”

용주의 의사와 상관없이 언노운 무리는 이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들이 따르는 건 어디까지나 무리 어미.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건 분명 자신이었지만, 자신은 이들에게 직접 명령을 전달할 수 없었다.

“…….”

무리 어미가 있는 부화장으로 돌아온 태영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부화장에 시체가 들끓고 있었다.

무리 어미는 다행히 무사한 듯 보였지만, 살아 있는 개체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난리가 나 있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대체?”

“게이트 보스 쪽에서도 이상을 감지한 거겠지.”

용주가 대답했다.

두 헌터와 달리 용주의 반응은 침착했다.

유충들 사이론 성체들의 유해 일부가 보였다.

지면에 몇몇 구멍이 뚫려 있는 걸로 봐선 아래쪽에서 튀어나온 모양이었다.

고여 있던 점액 웅덩이는 아래로 계속 흘러 나가고 있었다.

“게이트 보스 쪽에서 이상을?”

“그렇다는 건 배신자를 제거하기 위해 저 언노운들을 급파하기라도 했다는 건가요?”

“그렇다고 봐야겠지.”

용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되리란 걸 알고 계셨단 반응이네요?”

용주의 반응을 살피던 태영이 물었다.

“그럴 가능성도 있을 거라곤 생각했었다. 다만, 아직 이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었었다.”

“그렇다는 건?”

“내가 생각한 것보다 게이트 보스가 더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 이번 기습은 시작에 불과하겠지.”

“음…. 시간이 생각한 것만큼 많지는 않다는 소리네요.”

태영이 턱을 괴었다.

부화장의 위치를 알고 있는 건 당연히 저쪽이었다.

더 많은 무리 어미를 동원해 더 많은 개체 수를 확보할 수 있는 것도.

더 많은 언노운을 보유하고 있는 것도 역시 저쪽이었다.

“아니, 오히려 잘된 걸지도 모른다.”

걸음을 옮긴 용주는 구멍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래쪽에 있는 길은 위쪽에 나 있던 길과는 달랐다.

정돈도 되지 않은 채 급하게 판 굴은 여길 끝으로 막혀 있었다.

“생각을 듣고 싶은걸요?”

“이 아래 통로는 보다시피 일방통행이다. 녀석들이 어디서 왔는지 역추적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거다.”

“계속하세요.”

“크기로 보나, 상태로 보나 저건 원래 있던 통로가 아니다. 녀석들이 온몸을 비비적거리며 즉석으로 만든 기습로지. 녀석들이 게이트 보스의 지시를 받고 움직였다면….”

“저 길을 따라가면 게이트 보스 근처까지 갈 수도 있다는 소리겠네요.”

“그래. 무리의 힘을 더 키운다는 계획은 접어야겠지만, 지금까지 간 칼날을 정확한 곳에 찔러넣을 순 있을 거다.”

태영의 이야기에 용주가 고개를 돌렸다.

“무리를 정비해라. 성체와 아성체들 일부는 차출해 아래에 있는 길을 정비하도록 해라. 무리가 이동해도 무너지지 않도록. 단, 출구 근처론 다가가지 마라. 절대로.”

용주의 한 마디에 무리 어미가 반응했다.

“그런데 정말 이 무리로 게이트 보스를 제압하는 게 가능할까요?”

전력을 분석하던 태영이 물었다.

군단의 규모는 확실히 굉장했다.

하지만 성체까지 자라난 개체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이전 전투에서 이들의 전투력은 대강 파악했다.

헌터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병력의 반도 건지지 못했을 것이다.

유충의 비율이 줄고 아성체의 비율이 늘었으니, 힘 자체가 강해진 건 맞겠지만, 이것으로는 아직 부족해 보였다.

“내가 이 녀석들로 게이트 보스를 제압한다고 한 적이 있던가?”

“아니었나요?”

용주의 물음에 태영이 안경테를 올려 썼다.

“녀석들은 게이트 클리어를 위한 전력일 뿐이다. 좀 더 단순하게 말하면 일종의 도구에 불과하지.”

목소리를 낮춘 용주가 이야기했다.

“악당이나 할 법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도 하시네요.”

“그럼 내가 언노운들에게 다른 마음이라도 품었을 것 같았나?”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 정도로 야박한 평가를 내리고 계셨을 줄은 몰랐네요.”

“애지중지 키워봤자 게이트가 클리어되면 전부 사라질 놈들이다. 녀석들의 역할은 게이트 보스의 전력 약화. 그리고 난입하는 언노운들의 저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잔인하시네요.”

“왜? 그사이에 이 언노운들이랑 정이라도 들었나 보지?”

용주가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들었을지도 모르죠. 저기 있는 벽이랑요.”

가벼운 농담을 던진 태영이 어깨를 들썩였다.

집결을 마친 언노운 무리는 명령만을 기다린 채 대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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