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그걸로 어쩌시게요?”
물범 문신 헌터가 물었다.
알껍데기를 길게 풀어헤친 거랑 방법이란 게 어떤 연관이 있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알 하나에서 나오는 길이는 얼마 되지 않지만 여기 있는 걸 동원하면 제법 긴 줄을 만들 수 있을 거다. 여러 개를 만들 수도 있고.”
몇 개의 알을 더 뜯어낸 용주는 줄을 길게 만들었다.
“설마… 그걸 타고 올라가잔 말씀은 아니시겠죠?”
“그 설마다.”
곧바로 돌아온 대답에 물범 문신 헌터가 자신의 뺨을 꼬집었다.
특전사도 아니고, 무슨 헌터가 로프 타기를 하느냔 말이다.
“음… 충분히 버텨줄까요?”
용주는 대답 대신 줄 끝을 태영에게 던졌다.
태영과 용주는 동시에 힘을 주었다.
제법 힘을 줬음에도 줄은 끊어지지 않았다.
“한두 사람 매달리는 정도로는 끊어지지 않을 것 같은데? 저 정도면.”
“아… 좋아요. 거기까진 이해했어요. 근데 이걸 어떻게 저 위에 거시려고요?”
줄을 타고 올라가려면 일단 줄을 고정해야 했다.
누가 위에 있다면 또 모를까 지금 상태론 영 쉽지만은 않아 보였다.
“아…. 그게 설명하는 것보단 직접 보시는 게 이해하시기 편할 거예요.”
태영이 머리를 긁적였다.
용주의 발상에 경악했던 게 불과 얼마 전이었다.
용주는 점액을 떠다니는 언노운 유충 하나를 집었다.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었지만, 유충은 아직까지 살아 있었다.
녀석들의 신경 반사는 간단했다.
근처에 잡히는 게 있다면 무조건 붙잡고, 무조건 물었다.
용주는 유충을 고치에 묶었다.
끈끈한 점액질을 뱉어내고 있는 유충은 힘껏 발버둥 치고 있었다.
용주는 줄 끝을 빙글빙글 돌렸다.
이윽고 천장을 향해 날아가는 유충의 상반신.
일자로 뻗은 줄 끝은 위쪽 공간으로 사라졌다 몇 번이나 다시 돌아와 버렸다.
용주는 그 작업을 계속했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걸리는 게 있긴 한데….’
작은 홈이나 기타 무언가에 이게 걸리면 무게를 버텨줄 힘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다.
쇠사슬 하나로 철길을 오르는 것과 같은 원리였다.
하지만 뭔가가 더 없다면 이 방법은 써먹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걸리는 건 있었지만, 고정이 되지 않았다.
“소름 끼치게 기똥찬 발상이긴 했는데, 아무래도 2% 부족한 모양인데?”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바람머리 헌터가 위를 올려다보았다.
구상 자체는 신박했지만, 아무래도 테스트를 끝낸 상태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러게요. 그것만으론 안 될 것 같아요.”
“…….”
잠시 생각에 잠겼던 용주는 가지고 있던 걸 태영에게 맡겼다.
그리고.
같은 작업을 또다시 반복했다.
“어떻게 하시려고요?”
태영이 물었다.
태영이 아까 의견을 주고받았던 건 여기까지였다.
“하나로 부족하면, 수를 더 늘려봐야지.”
같은 걸 세 개 더 만든 용주는 네 개의 줄을 하나로 묶었다.
십자 갈고리 끝에는 쇠붙이 대신 언노운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오우 쉣! 나 토할 것 같은데, 잠깐만.”
바람머리 헌터가 고개를 돌렸다.
하나도 충분히 끔찍했는데, 그게 네 개가 합쳐지나 충격이 곱 연산으로 늘어났다.
바람머리 헌터의 반응을 무시한 용주는 바닥에 고인 점액질에 줄을 푹 적셨다.
그리고.
다시금 줄을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다.
“우왁! 잠깐만! 다 튀잖아!”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점액에 바람머리 헌터가 고개를 돌렸다.
용주는 다시 한번 줄을 던졌다.
구멍 안쪽으로 들어간 줄은 쓸려 내려오는 듯하더니, 이내 움직이지 않았다.
용주는 힘껏 줄을 잡아당겨 보았다.
한번 고정된 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걸린 건가요?”
“그런 것 같군.”
허리를 숙인 용주는 알껍데기 하나를 들었다.
안쪽에서 넘치다 만 점액이 고여 있었다.
“그걸로 뭐 하시려고요?”
물범 문신 헌터가 물었다.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전부 동원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로 게이트를 이탈하는 건 그 나름대로 억울할 테니.”
“동원할 수 있는 거?”
용주는 손을 앞으로 뻗었다.
반동에 반응한 액체는 잔잔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설마… 그걸 손에 묻히자는 말씀은 아니시겠죠?”
“묻히지 말아야 할 이유라도 있나?”
용주가 역으로 물었다.
역도, 체조 등의 종목에서 사용하는 탄산마그네슘과 비슷한 역할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분이 영 찜찜할 수는 있지만 뭐 그게 대수겠는가.
“아….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손이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고나 할까….”
스윽!
알을 내려놓은 용주는 시범을 보였다.
초록 액체가 주는 시각적 자극은 썩 좋지 못했다.
“먼저 올라가지. 뭔가 있으면 신호를 보내겠다.”
두 손을 최대한 바짝 붙인 용주는 오른 다리로 줄을 한 바퀴 휘어 감았다.
WRAP METHOD.
안정적인 등반을 위한 기술 중 하나였다.
용주의 등반 실력은 썩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기술도 머리로만 어느 정도 아는 수준이지 실전 경험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기술이 부족하다고 못 올라갈 것도 없지 않은가?
악으로 깡으로 오르면 그만인 것을.
* * *
“후~ 꽤 힘든데요, 이거.”
마지막으로 정상에 도착한 태영이 손을 대충 닦아냈다.
올라가는 건 한 번에 한 명씩이었다.
줄의 강도는 한 번 확인했지만, 확신할 순 없었으니 말이다.
“힘든 건 둘째라고. 진짜 이 냄새 어쩔 거야.”
“촉감도 최악이었어요. 생각한 거 이상으로요.”
두 헌터가 각자의 소감을 이야기했다.
“아하하. 이해해요.”
짧게 웃어 보인 태영은 용주를 바라보았다.
가장 먼저 올라온 용주는 내부를 살펴보고 있었다.
위층의 공간은 아래쪽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두운 감이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먼 곳의 시야는 상당히 제약되어 있었다.
공간은 상당히 넓었다.
폭도 높이도 인간의 규격으로 생각한다면 4차선 터널 정도는 되어 보였다.
“방향이랑 거리를 조절하는 게 생각보다 쉽진 않겠는데요?”
용주에게 다가간 태영이 이야기했다.
이곳의 구조는 아래와 동일하지 않았다.
이 상태에서 자신들이 발견했던 부화장 근처까지 가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불가능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지난번 용주가 보여줬던 능력을 태영은 잘 알고 있었으니까.
용주는 말없이 걷기 시작했다.
태영은 두 헌터에게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우리 정말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아?”
뒤따라 걷던 바람머리 헌터가 물었다.
직선이 아닌 통로를 따라가다 보니, 방향감각은 이미 엉망이 되어 있었다.
아래쪽과 비교해 어느 정도 위치에 온 건지 파악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게요. 꽤 많이 걸은 거 같은데…. 혹시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돌고 있는 건 아니겠죠?”
물범 문신 헌터가 거들었다.
걷고는 있었지만, 풍경의 변화는 없었다.
그나마 타고 올라온 로프가 보이지 않는 게 위안이었지만, 그것만 가지고 판단하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용주는 자리에 멈춰 섰다.
이동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멈춘 걸음이었다.
“다 온 건가요?”
태영이 물었다.
“그래. 우리가 봤던 부화장은 이 아래에 있다.”
“그게 정말이야?”
“그걸 어떻게 가늠한대요? 혹시 스킬 중에 투시력이라도 있는 거예요?”
용주의 대답에 두 헌터가 물었다.
“그럼 여기서 매복해 있는 걸로 하죠.”
용주 대신 태영이 대답했다.
백문이 불여일견.
백 번 설명하는 것보다 눈으로 직접 보는 게 이해하기 더 쉬울 테니 말이다.
“몸을 숨길 만한 곳이 많진 않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니 일단은….”
이야기를 이어가던 태영은 갑작스럽게 한 곳을 바라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빠르게 기어 오는 것 같은….
분주한 다리의 따닥거림이.
“이게 무슨 소리야?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은데?”
“땅도 조금씩 울려요. 혹시 이게 아까 들었다던 천장의 소리인 거예요?”
경계심을 바짝 세운 두 헌터는 검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앞에 거대한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 쌍의 앞다리가 유독 발달한 거대한 개체.
아까 알을 부화시키던 바로 그 녀석이었다.
“왔다! 녀석이다! 역시 한 마리가 아니었어!”
“어떻게 해요? 리더! 이제 우리 어떻게 움직여야 해요?”
“녀석의 움직임을 막아야 합니다. 이 아래가 부화장이라면 절대 아래로 내려가게 해선 안 돼요. 또한 사살은 물론이고, 부상을 입히는 것도 가급적 피했으면 합니다. 놈이 정말로 공격 능력을 상실했다면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두 헌터의 물음에 태영이 즉답했다.
“오케이!”
“어디 해보자고요.”
세 명의 D급 헌터는 삼각형으로 녀석을 포위했다.
갑작스러운 침입자의 등장에 언노운은 당황한 듯 위협적인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먼저 공격해오지는 않았다.
오히려 어떻게든 도망가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안 되지, 안 돼. 우리가 먼저 찜한 구역이라고!”
바닥을 찢으려는 언노운의 다리를 저지한 바람머리 헌터가 씨익 웃어 보였다.
“지나갈 거면 통행료를 내라, 뭐 그런 소리인가요? 완전 양아치들이나 할 만한 대사인데요?”
물범 문신 헌터가 곧장 반대편 팔을 저지했다.
옆구리를 밟으며 뛰어오른 태영은 곧장 놈의 머리를 찍어 눌렀다.
무게중심이 무너진 언노운은 앞으로 꼬꾸라지고 있었다.
순혈의 결정을 쥔 용주는 곧장 놈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 ‘순혈의 결정’을 사용했습니다.
- 현재 계승자의 지능 : 50
- 대상이 된 적의 지능 : 17
- 순혈의 결정의 효과로 해당 개체의 정신을 지배했습니다.
- 계승자의 언어와 행동이 해당 개체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의 언어로 변환되어 전달됩니다.
용주의 손을 떠난 순혈의 결정은 언노운의 미간 사이에 자리 잡았다.
언노운은 더 이상 발버둥 치지 않았다.
그저 길들인 개처럼 가만히 앉아있을 뿐이었다.
“뭐야? 성공한 거야?”
바람머리 헌터가 물었다.
“그런 것 같은데요?”
물범 문신 헌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화려한 이펙트나 그런 것도 없이 끝나 버렸네. 그나저나 정말 그런 게 가능하다니, 완전 물건인데 그거?”
“그러게요. 어디서 구하신 거예요? 저도 좀 탐나는데요.”
두 헌터가 물었다.
“대답할 의무 없다.”
그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은 용주는 언노운의 머리 위에서 뛰어내렸다.
순혈의 결정의 효과는 성공적.
이제부터 본격적인 공략의 시작이었다.
“쩨쩨하게 굴기는…. 그래. 그런데 녀석한테 어떻게 명령할 건데? 언노운이 사람 말을 알아듣지는 못할 거 아니야.”
“그러게요. 생각해 보니 그런 문제도 남아 있었네요.”
언노운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 상대에게 이쪽이 원하는 걸 전달하는 게 커다란 걸림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쪽에도 다 방법이 있으니.”
용주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지배에 성공했단 메시지엔 언어에 대한 부분이 언급되어 있었다.
녀석이 초음파를 쏘든, 페르몬을 뿜든 용주에겐 별로 문제 될 게 아니었다.
“일어나.”
언노운을 마주 본 용주가 한마디를 내뱉었다.
“어이… 진심이냐?”
용주의 한마디에 바람머리 헌터가 곧장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어나라니….
무슨 강아지도 아니고.
“언노운에게 말로 명령을 내린다니.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이야기를 이어가던 바람머리 헌터는 두 눈을 깜빡였다.
너무 놀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자신의 눈앞에 있던 언노운이 다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