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닉네임 좀비헌터-39화 (39/357)

39화

▷ ‘물어뜯기’의 스킬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Lv.3 → Lv.4)

▷ ‘할퀴기’의 스킬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Lv.2 → Lv.3)

▷ ‘시체 뜯어먹기’의 스킬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Lv.2 → Lv.3)

용주의 발이 다시 땅에 닿자 거대한 물보라가 일었다.

알들을 부화시키고 있던 언노운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참방거리며 헌터들을 괴롭히던 언노운의 유충들은 물길을 따라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퉤!”

입안에 남아 있던 살점을 뱉어낸 용주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공격은 멈추었고, 수상해 보이는 녀석은 쓰러졌지만, 게이트는 아직 클리어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게이트 보스가 아니었나 보네요. 등장은 완전 끝판왕 저리가라였는데 말이에요.”

가장 먼저 합류한 태영이 이야기했다.

그렇게 쉽게 끝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거였다.

“이 녀석이 천장을 기던 소리의 주인일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속단하긴 이를 거다.”

아까 들었던 소리가 이쪽으로 간 건 자신들보다 한발 먼저였다.

즉, 시간적으로 어느 정도 오차가 있단 소리였다.

당장 떠오르는 가능성은 일단 두 가지였다.

녀석이 발소리의 주인이 아니든가.

아니면, 녀석이 다른 곳을 먼저 들렀다 왔든가.

“휘우, 멋진데? 다 도망가 버렸다고.”

한발 늦게 도착한 바람머리 헌터가 휘파람을 불었다.

“그나저나… 그 전투법은 다시 봐도 소름 끼치네. 면전에 대고 이런 말 하기 좀 그렇지만, 기분 나빠. 나 방금 토할 뻔했다고.”

경멸스러운 시선을 보낸 바람머리 헌터가 키득키득 웃어 보였다.

용주는 그의 말에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자신도 분명 같은 생각을 했을 테니 말이다.

“언노운은 무슨 맛이냐? 맛있어? 생긴 것만 봐선 별미일 것 같진 않은데.”

“궁금하면 직접 한번 먹어보지 그래? 백 번 물어보는 것보다 빠를 텐데.”

용주가 물가를 떠다니던 유충의 유해 하나를 집어 던졌다.

“우웩! 농담하지 말라고. 내가 미쳤냐?”

무의식적으로 유해를 잡은 바람머리 헌터는 기겁을 하며 손을 털고 있었다.

“근데 녀석도 좀 이상하지 않았어요? 완전 무저항 상태로 대응 한 번 안 하고. 마치 공격하는 법을 모르는 것 같았어요.”

함께 도착한 물범 문신 헌터가 이야기했다.

보통의 언노운이라면 위협을 감지했을 때 어떤 식으로든 방어태세를 취하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놈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확실히 그건 이상했지. 네 생각은 어때?”

바람머리 헌터가 태영에게 물었다.

“…어쩌면 공격 본능을 제거한 개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부러요.”

잠시 생각에 잠겼던 태영이 이야기했다.

“일부러?”

“대체 누가요?”

“이 게이트의 게이트 보스가요.”

“게이트 보스가? 왜요?”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가설입니다만,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혹시나 모를 상황? 이해하기 쉽게 좀 이야기해달라고.”

바람머리 헌터가 눈썹을 들썩였다.

“언노운들끼리의 역할 분담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겁니다. 개미로 치면, 입구에 있던 녀석들은 병정, 알을 부화시키던 놈은 여왕, 이런 식인 거죠.”

“그렇지만 그렇게 치면 여왕이 보스여야 하는 거 아니야? 방금 녀석은 게이트 보스가 아니었잖아.”

“그건 개미 사회의 이야기고, 여긴 여기만의 법칙이 작용한다는 거겠지.”

용주가 대신 대답했다.

“여기만의 법칙?”

“반드시 여왕이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는 거다. 게다가 우리가 본 건 알을 부화시키는 모습이었다. 알을 직접 낳는 장면을 본 건 아니지. 놈이 여왕이 아니라 보모 같은 역할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는 소리다.”

용주의 이야기에 바람머리 헌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호오, 그거 날카로운 추린데? 설득력도 제법 있고. 근데 그게 녀석이 공격하지 않은 거랑은 무슨 상관이야?”

“알을 부화시킬 수 있다는 건 다시 말해 새로운 권력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자신만의 군단을 만드는 거죠. 게이트 보스는 그걸 사전에 차단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것 외엔 아무런 본능도 남겨두지 않음으로서요.”

태영이 자신의 가설을 제시했다.

“호오…. 언노운들이 그렇게까지 나온다고? 재밌는 가설이긴 한데, 너무 많이 간 거 같은데?”

“카오스 게이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건 없다.”

용주가 대신 반박했다.

“크큭…. 다른 사람도 아닌 네가 그 말 하니까 어째 더 신뢰가 가네. 그래. 아무리 이상해도 언노운 먹방보단 이상하진 않겠지.”

바람머리 헌터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렇다는 건 저런 게 여러 마리 있을 수도 있다는 소리네요?”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물범 문신 헌터가 물었다.

저게 게이트를 구성하고 있는 언노운 중 한 종류에 불과하다면, 그런 추측이 가능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겠지.”

“괜찮을까요? 이번만 해도 큰일 날 뻔했었는데요.”

태영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인지하고 있으니 이번처럼 한가운데에서 당할 일은 없겠지만, 이런 식이라면 게이트 클리어가 곤란한 건 사실이었다.

헌터들이 많았을 때야 별문제 될 건 없었다.

불어나는 속도보다 제거하는 속도가 더 빨랐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인원은 고작 넷.

저 많은 숫자의 유충들이 전부 성충이 된다고 가정하면… 끔찍했다.

“방법이라면 있다.”

고뇌에 빠진 태영의 모습에 용주가 이야기했다.

태영은 용주를 바라보았다.

그의 의견이 듣고 싶다는 눈치였다.

“나! 나나! 나도 마침 그 말 하려던 참이었어. 뭔가 통했네.”

이야기에 끼어든 바람머리 헌터가 손을 들었다.

“일단 물러서고 증원을 요청하자는 말 하려고 했던 거 맞지? 나도 같은 생각이야. 자존심이 목숨 하나 더 주진 않는다고.”

용주에게 다가온 바람머리 헌터가 어깨동무를 시도했다.

그의 손을 가볍게 쳐낸 용주는 작은 날숨을 내쉬었다.

“아니, 내가 생각한 방법은 전혀 다른 거다.”

인벤토리를 활성화한 용주는 주머니에 손을 넣는 시늉을 해보였다.

실체화된 ‘순혈의 결정’은 마치 주머니에서 나온 것처럼 보였다.

“난 이걸 이용해 볼 생각이다.”

“그게 뭔데? 또 이형 어쩌고 하는 물건인가? 처음 보는 종륜데?”

순혈의 결정을 살피던 바람머리 헌터가 이야기했다.

피를 머금은 듯한 붉은 보석은 얼굴이 투과될 만큼 투명했다.

“언노운을 정신 지배 할 수 있는 물건이다.”

이게 언노운을 지배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은 없었다.

조건이 충족되는지 지금으로선 알 방도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충분히 해볼 만한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공하기만 한다면, 게이트 공략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시도해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언노운을….”

“지배한다고요?”

용주의 한마디에 세 사람의 표정이 똑같아졌다.

“푸하핫! 그거 재미있는 농담이네. 좀 웃겼어.”

바람머리 헌터가 뒤늦게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물건이 있었다면, 분명 소문이 크게 돌았을 텐데, 그런 물건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었다.

“지배할 수 있는 건 한 마리뿐이다. 하지만 아까 알을 부화시키던 개체를 지배할 수 있다면, 군단을 만드는 것도 가능할 거다. 물론, 아직 부화하지 않은 알들을 찾는 수고를 해야겠지만,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데 분명 큰 전력이 될 거다.”

용주의 침착한 이야기에 바람머리 헌터의 표정이 굳어졌다.

농담 같은 이야기지만, 어째서인지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바람머리 헌터의 물음에 용주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용주의 눈은 말하고 있었다.

진심이라고.

“하아…. 네 생각은 어때?”

바람머리 헌터가 태영에게 물었다.

“저도 거기 걸어보고 싶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태영이 고개를 숙였다.

바람머리 헌터는 곤란하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무한 신뢰구만. 오케이. 리더가 그러겠다면 따라야지, 뭐 어쩌겠어.”

“그럼 아직 부화하지 않은 알들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는 게 급선무겠네요. 기다리면 부화시키러 올 테니까요. 이거 완전 다른 세상에 온 기분인데요? 언노운 테이밍이라니. 상상도 못 해본 전개라고요.”

물범 문신 헌터가 붕대를 고쳐 맸다.

“유충들이 흩어진 건 총 세 방향이었다. 적어도 그중 하나 이상에는 이곳과 같은 부화장이 있을 가능성이 있겠지.”

“세 방향이라…. 어떻게, 지금이라도 찢어질까?”

“음…. 그럼 이렇게 하죠. 2:2로 팀을 나눠 한 구역씩 우선 수색하는 겁니다. 수색 종료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1시간 뒤. 이곳에서 다시 만나는 걸로 하죠. 나머지 한 군데의 탐색은 그때까지의 정보를 종합해 판단하는 걸로.”

시계를 확인한 태영이 빠르게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웠다.

“오케이. 그럼 그렇게 하자고.”

“팀이야 뭐… 벌써 나눠진 거 맞죠?”

두 헌터가 공감을 표했다.

태영은 용주를 바라보았다.

작은 한숨을 내쉰 용주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 * *

1시간 뒤.

네 헌터는 같은 장소에 모였다.

“어땠어요?”

태영의 물음에 두 헌터가 고개를 저었다.

“꽝. 갈림길을 두 군데나 가봤는데, 이미 다 부화한 뒤였어.”

“누구누구 씨가 세상 요란하게 자빠지는 바람에 손잡고 저세상 갈 뻔했었다고요.”

물범 문신 헌터가 작은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런가요? 저희 쪽은 소득이 있었어요. 꽤 많이요.”

“그게 정말이야?”

“네. 부화장에 알이 제법 많더라고요. 여기서 본 거에 배는 될 거예요.”

“호오, 그거 엄청난데?”

“문제가 있다면, 유충들의 숫자도 보통이 아니라는 거예요. 눈으로 본 것만 그 정도였으니, 수면 아래에 있는 것까지 하면 더 많겠죠.”

“그럼 뭐 어떻게 해. 계획 수정?”

바람머리 헌터가 물었다.

“아니요. 계획은 그대로 실행할 겁니다. 다만 그 중간 과정을 좀 더 구체화하려고 합니다.”

태영은 용주를 바라보았다.

둘이서 이야기를 나눴던 걸 전해달라는 신호였다.

“과정을 구체화해?”

“진입 타이밍과 루트를 잘만 조절하면 전투를 최소화할 수 있을 거다.”

용주가 대답했다.

“진입 타이밍과 루트? 어떻게?”

바람머리 헌터의 물음에 용주는 천장을 가리켰다.

천장에는 언노운이 뚫고 내려온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놈이 저곳에서 내려왔다는 건 저 위쪽에 놈들만이 이용하는 통로가 있다는 뜻일 거다. 부화시키려는 개체가 있다면 높은 확률로 저길 이용하겠지.”

“오호라. 그러니까 네 말은 천장 위에서 매복해 있자는 소리지? 보석을 훔치려는 스파이 요원처럼.”

바람머리 헌터가 손 방아를 찧었다.

확실히 듣고 보니 그럴듯한 작전인 것 같았다.

만약 하이잭킹이라도 성공한다면, 유충들과의 전투를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근데 궁금한 점이 있어요. 매복도 좋고, 다 좋은데 저기까지 어떻게 올라가실 건데요? 날기라도 하시게요?”

이야기를 쭉 듣고 있던 물범 문신 헌터가 물었다.

천장까지의 높이는 상당했다.

막타워의 높이인 11m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었다.

날지라도 않는 이상 저길 오르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목말을 태워서 올라가면 닿지 않을까?”

“네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우리가 무슨 서커스 단원인 줄 아세요?! 저기까지 탑을 어떻게 쌓아요!!”

“에이~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 조크. 내 가벼운 조크였다고.”

가볍게 웃어 보인 바람머리 헌터는 용주를 바라보았다.

“그렇게까지 이야기한다면, 방법도 생각해 뒀겠지? 안 그래?”

“그래. 일단은 이걸 이용해 볼 생각이다.”

용주가 빈 알껍데기를 하나를 들어 올렸다.

“이미 부화한 알? 그걸로 뭐 어쩌게?”

용주는 알의 표면을 잡아당겼다.

누에고치처럼 생겼단 헌터의 말처럼 알의 껍데기는 부드럽게 떨어져 나오고 있었다.

실처럼 얇지는 않았다.

밧줄처럼 동그랗지도 않았고.

납작하고 기다란… 양면테이프가 생각나는 비주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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