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카오스 게이트에 들어서자마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숨 쉬는 것도 버거울 정도로 증상이 심각했다.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저 앞에.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그 문이 또 있을 것만 같다는 공포가 옥죄여 왔다.
‘젠장….’
머리와 따로 노는 공포에 태영은 스스로를 다그쳤다.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리더 무슨 일 있어요?”
“한태영이라고 했던가? 안색이 엄청 안 좋은데. 하얗게 떴다고.”
움직이지 않는 태영의 모습에 두 헌터가 물음을 던졌다.
“앞장서지.”
태영의 상태를 지켜보던 용주가 태영을 지나쳤다.
“…….”
태영은 손에 힘을 주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손가락 사이에는 식은땀이 흥건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희도 가죠.”
숨을 고른 태영이 앞으로 나아갔다.
손의 떨림이 조금은 멎은 것 같았다.
다시 선봉을 맡은 태영이 정지 신호를 보냈다.
“무슨 일이에요?”
두 사람을 뒤따르던 헌터가 물었다.
“언노운입니다. 눈으로 확인한 건 3마리 정도지만, 소리로 보아하니 제법 많은 것 같군요.”
“순각류 언노운이면, 지네처럼 생긴 거 맞지?”
“그렇게 생각하면 거의 비슷할 겁니다.”
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할 거야? 전부 죽여 버리면 돼?”
“길은 여기 한 군데뿐이었습니다. 돌파하죠.”
“오케이 그럼 어디 게이트 맛 좀 봐볼까?”
“처음부터 무리하시는 건 좋지 않습니다. 아마 장기전이 될 테니까요.”
“알고 있다고. 걱정하지 마.”
태영의 판단이 서자 바람머리 헌터가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그 순간.
칼을 뽑아 든 누군가가 먼저 뛰쳐나갔다.
뛰쳐나간 이는 E급 헌터인 용주.
용주의 독단적인 행동에 두 헌터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갔다.
“완전히 개인주의구만.”
“저 사람이랑 좀 알고 지낸 사이이신 모양인데, 늘 저런 식이에요?”
두 헌터가 각자 목소리를 냈다.
두 사람은 D급 게이트에서 일어난 ‘비밀의 방’ 사건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건의 생존자들이 여기 있다는 건 인지하고 있지 못했다.
팀의 리더였던 A급 헌터 형만 외의 멤버들은 세간에 그렇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긴 하죠. 그래도 괜찮은 사람입니다.”
“실력도 없는 주제에 저렇게 나대는데도?”
“두 분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자유지만, 전 그가 실력 없는 헌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래전에 죽었겠죠.”
태영이 침착하게 반박에 나섰다.
“이기는 놈이 강한 게 아니라, 살아남는 놈이 강한 거다. 뭐, 그런 말이라도 하고 싶은 거야?”
“아마 비슷할 겁니다.”
검을 움켜쥔 태영은 서둘러 달려 나갔다.
용주의 실력은 그사이에 성장했을 거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런 활약상이 귀에 들어오지는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여긴 D급 게이트였다.
그가 그사이에 아무리 성장했어도 결코 쉬운 전투가 될 리가 없었다.
편성 인원 중 의료 헌터는 없었다.
한 명 한 명의 부상은 전력에 치명적.
장기전에 될 수밖에 없는 이 토벌전에서 전력 유지는 공략에 필수적인 요소였다.
까드드득!
수많은 관절이 딱딱이는 소리 속으로 들어온 용주는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위협을 감지한 놈들은 주둥이에 달린 두 개의 이빨을 부딪치며 위협적인 소리를 내고 있었다.
참격은 정확하게 녀석의 미간을 꿰뚫었다.
하지만, 녀석의 움직임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D급을 상대로 부릴 여유는 없어. 다른 사람 시선 같은 거 신경 쓰지 마.’
손등을 타고 흐른 피가 날카로운 손톱으로 굳어졌다.
‘할퀴기!’
놈의 머리를 고정한 용주는 발버둥 치는 놈의 머리 마디를 빗겨 그었다.
시작부터 전력을 쏟아붓는 용주.
스킬을 동원한 용주의 공격은 위력적이었지만, 언노운이 즉각 반응한 탓에 완전한 절단엔 실패했다.
잘려 나간 건 목의 3/4 정도.
‘물어뜯기!’
곡선을 그리며 꿈틀대는 놈을 따라잡은 용주는 절단면의 갑피를 쥐어뜯었다.
달랑거리던 놈의 머리는 그대로 뜯겨나가 체액을 흩뿌리고 있었다.
‘젠장…. 예상은 했지만 맛도 기분도 아주 끔찍하군.’
똥 씹은 표정의 용주가 입안에 남은 살점과 갑피 조각을 뱉어냈다.
머리 잃은 언노운의 몸통은 곧장 용주를 덮치고 있었다.
‘마디마디의 신경을 모두 끊어내지 않는 이상. 죽여도 한동안은 죽은 게 아닌 건가.’
머리를 뜯어냈음에도 저항은 엄청났다.
날카롭게 선 다리들은 마치 칼날 같았고, 육중한 몸과 갑피는 그 자체만으로도 위협적인 무기였다.
쉬이이익!
D급 언노운들과의 전투에 바짝 긴장하고 있던 용주의 손등에 낯선 감촉이 느껴졌다.
가늘고, 끈적하고, 나풀거리는 촉감이었다.
‘뭐지?’
용주의 시선이 잘려 나간 언노운의 머리를 향했다.
정확히 자신을 보고 있는 언노운의 네 개의 눈.
벌어진 녀석의 입에선 가느다란 실 가닥 같은 게 나풀거리고 있었다.
‘입에서 실이….’
손톱을 세운 용주는 곧장 실 가닥을 잘라냈다.
높은 점성은 이게 실보다는 거미줄에 가깝다고 말하고 있었다.
‘머리를 잘라내는 것만으론 해결되는 게 아니란 건가?’
잘려 나간 몸통이 순식간에 용주를 휘어 감았다.
둥근 원을 그리며 회전하기 시작하는 언노운의 몸통.
움직이는 바깥쪽 다리들과 달리 안쪽 다리들은 뻣뻣하게 서서 일종의 회전 톱날처럼 변해 있었다.
‘칫!’
도약하기엔 짊어져야 할 리스크가 많았다.
그렇다고 저 회전을 힘으로 막기에도 역부족.
‘다른 방법은….’
머리의 빈자리를 빠르게 캐치한 용주는 회전 속도에 맞춰 몸을 쑤셔 넣었다.
그리고.
타악!
바깥쪽 다리를 타고 놈의 몸통에 올랐다.
열차 지붕에 오른 괴도처럼 언노운의 갑피를 달리는 용주.
갑피와 갑피 사이의 틈을 노린 용주는 언노운의 마디마디를 잘라내기 시작했다.
머리를 잃고, 신경이 잘렸음에도 마디에 붙은 다리들은 곧장 정지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직된 움직임은 더 이상 없었다.
용주가 마지막 꼬리의 신경을 잘라냈을 때 언노운은 더 이상 움직이고 있다고 할 수 없었다.
죽어가는 파리처럼 다리를 꿈틀거릴 뿐이었다.
“저 녀석 뭐야?! 지금 뭘로 싸우고 있는 거냐고?!”
전황을 지켜보던 바람머리 헌터가 놀라 외쳤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게 사실이라 믿어지지 않았다.
놈이 무기로 삼고 있는 건 이빨과 손톱.
양쪽 모두 그가 휘두르는 검의 위력을 상회하는 걸로 보였다.
“스킬… 같죠? 아무리 봐도. 평범한 무기라고는 보이지 않는데요.”
물범 문신 헌터가 대답했다.
“손톱이야 그나마 그렇다 쳐도, 저 물어뜯는 건 뭔데? 저것도 스킬이라고?”
“어… 글쎄요. 그렇지만 그렇게 보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요? 상식적으로 인간의 치아와 악력으로 언노운을 물어뜯을 수 있다는 게 말이 안 되니까요.”
“언노운을 이빨로 물어뜯는 시점에서 이미 상식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는데?”
“어… 음… 그것도 그렇네요.”
물범 문신 헌터가 곤란함을 표했다.
물어보기에 자기 생각을 말했을 뿐, 그 역시도 지금 상황이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스킬이라면 영창이라고 하나? 스킬명을 외치는 게 기본이잖아. 난 못 들었는데, 혹시 들었냐?”
“저도 못 듣긴 했어요. 근데 뭐 엄청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거나 한 거 아닐까요? 꼭 동네방네 다 소문낼 정도로 크게 외치라는 법은 없잖아요.”
“음…. 그렇지만 E급 헌터가 스킬이라니. 들어본 적 없다고.”
“그러게요. 엄청난 금수저처럼은 보이지 않았는데…. 선천적으로 습득한 케이스려나요?”
“나야 모르지.”
바람머리 헌터가 태영을 바라보았다.
태영은 그의 시선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세상에….’
용주의 전투에 놀란 건 태영도 마찬가지였다.
태영은 다른 이들보다 용주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었다.
좀비 헌터가 구사할 수 있는 스킬이 있었다면, 언노운을 상대로 몸이 그렇게 찢기기 전에 꺼내놨을 거다.
그랬다면 분명 자신이 알고 있었겠지.
하지만 그에게서 그런 게 관찰됐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D급 언노운을 상대로 펼치는 저 전투력은 대체….
저게 정말 자신이 알고 있던 그 좀비 헌터란 말인가?
‘아무래도 제가 완전히 잘못 판단하고 있었던 모양이네요.’
용주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태영은 용주를 이 토벌의 주요 전력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태영이 기대한 그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PTSD를 극복하기 위한 도우미 역할.
전력으로서 그에게 건 기대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성장했을 거란 건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건 제가 예상한 것 이상이네요. 좀비 헌터. 그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그가 성장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지난번 사건 전까지의 자신에게 같은 걸 물어본다면 전혀 다른 대답을 했겠지만, 지금의 대답은 그러했다.
하지만 그 성장의 폭이 갑작스러워도 너무 갑작스러웠다.
이건….
마치 진 각성을 경험한 헌터 같지 않은가?
“합류하죠. 혼자 상대하기엔 적이 많습니다.”
입술을 깨문 태영이 검을 꽉 움켜쥐었다.
D급의 세 헌터 역시 전투에 들어서고 있었다.
타다닥!
용주는 급격하게 방향을 틀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실 세례는 생각한 것 이상으로 까다로운 방해였다.
바닥을 구르고 있는 언노운의 머리로 달려든 용주는 놈의 미간을 다시 한번 꿰뚫었다.
그대로 놈을 찢는 용주의 손톱.
세로로 5등분 된 언노운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투욱!!
바로 그때.
언노운 중 하나의 머리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뒤이어 떨어지는 놈의 몸통.
떨어지는 언노운의 머리를 잡아 찢은 용주는 옆을 흘겨보았다.
작은 흙먼지를 날리며 착지한 태영은 검에 묻은 피를 흩뿌렸다.
“단독 행동도 좋지만, 위가 텅 비어서야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태영은 곁눈질로 용주를 바라보았다.
농담 섞인 가벼운 물음이었다.
그런데.
“!”
용주와 눈이 맞은 그 순간.
태영은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찰나의 순간.
그의 눈동자엔 광기 비슷한 무언가가 서려 있었다.
“맡긴 거다. 놓친 게 아니라.”
“그렇…습니까?”
용주에게 등을 맡긴 태영이 전방을 주시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침착했다.
눈동자에 서려 있던 무언가도 눈 녹듯이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방금 그건 뭐였던 거지?’
마음속 의문을 한켠으로 밀어낸 태영은 검을 바로잡았다.
“11시 쪽으로 한 마리 돌았어요!”
“오케이! 확인했다고!”
본격적으로 날뛰기 시작하는 언노운과 헌터들.
언노운의 끈질긴 생명력 덕에 전투는 점점 난장판이 되어갔지만, 태영의 페이스는 점점 더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상황 종료.”
마지막 언노운의 운동 반사가 완전히 멎은 것을 확인한 태영이 숨을 내쉬었다.
언노운들은 모두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다.
“하아…. 젠장, 벌써 힘들잖아.”
털썩 주저앉은 바람머리 헌터가 땀을 털어냈다.
“그러게요. 하나하나는 그렇게 강하진 않았지만, 죽인 것 같은데도 살아 있으니 까다로웠어요. 좀비도 아니고 뭐가 그렇게 끈질긴지, 원…. 그런 주제에 이형 결정체도 별로 안 주고.”
검을 집어넣은 물범 문신 헌터가 언노운의 다리를 걷어찼다.
이미 절단된 다리는 망가진 장난감처럼 뒹굴고 있었다.
“좀비라고 하니 생각나는 게 있는데, 이용주라고 했던가?”
바람머리 헌터가 용주를 주시했다.
“너 뭐냐? 언노운을 물어뜯는 헌터가 있다는 건 여태껏 들어본 적 없는데.”
용주의 전투.
거기에 바람머리 헌터는 큰 충격과 혼란에 휩싸였었다.
누군가 자신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줬다면 절대 믿지 않을 것이다.
철 지난 만우절 장난 하지 말라며 크게 비웃었겠지.
“물어뜯었었죠, 분명? 이상한 손톱 같은 걸로 할퀴기도 했고요. 스킬이라고 하기엔 뭔가 이상하고, 스킬이 아니라고 하기엔 더 이상하고, 대체 그건 뭐였어요?”
물범 문신 헌터가 거들었다.
용주가 E급 헌터란 걸 알았을 때 그는 이 게이트를 3명이 공략해야 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조금 전 전투에서 그가 보여준 전투력은 결코 E급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