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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33화 (33/357)

33화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오와 열을 맞추고 있는 이들의 모습은 마치 진시황릉 병마용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병마용의 병용과 저들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저들의 키와 체형, 얼굴의 모양 등이 전부 똑같다는 것.

‘그렇다는 건….’

저기 있는 건 실제 뱀파이어들이 아니었다.

저기 있는 건 실물 크기의 인형들.

딱 한 사람을 모델로 한 같은 예술가의 작품이었다.

‘테레사는 없는 건가?’

용주는 테레사의 모습을 알고 있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그녀가 여성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적어도 여기에 여성은 없었다.

“…….”

용주의 시선은 보다 높은 곳으로 향했다.

하늘엔 관이 하나 떠 있었다.

고풍스럽게 생긴 검은색 관.

인형들의 곁을 맴돌던 테이고른의 정수는 그 관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감히 군주에게 도전장을 내밀다니… 내 친히 그 육신에서 영혼을 분리해주마.”

분노에 일그러진 사내의 목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넌 죽여달라 애원하겠지. 난 거부할 테고.”

스르르 열린 관뚜껑이 지면으로 떨어졌다.

관속에서 수직으로 일어난 사내는 용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게 테이고른….’

겉으로 보이는 테이고른의 모습은 40대 중반 정도의 남성이었다.

키는 대략 2m 정도.

검은색 바탕에 붉은 선들이 장식된 고풍스러운 옷과 그에 어울리는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인간의 시점으로 보기에 절대 수명이 끝나 가는 자의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네 영혼은 영원히 고통받을 것이다.”

허공에 발을 올린 사내는 뚜벅뚜벅 걸어 내려오기 시작했다.

사내의 발걸음마다 생겨난 박쥐 떼는 그의 곁을 맴돌고 있었다.

지면에 발을 올린 테이고른은 어깨를 툭툭 털었다.

그리고.

오른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블러드 윙!”

테이고른의 한마디가 떨어지자 새롭게 생겨난 한 무리의 박쥐 떼가 일제히 사출되었다.

왼쪽으로 몸을 던진 용주는 박쥐 무리를 흘려보냈다.

바닥에 충돌한 박쥐 무리는 작은 폭발을 일으키고 있었다.

테이고른의 손은 곧장 용주를 따라붙었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용주와 그를 겨누는 테이고른의 손.

연속해서 날아오는 정밀한 조준 사격은 쉽사리 접근을 허용해주지 않고 있었다.

‘일반적인 헌터의 스킬처럼 외쳐서 발동하는 타입인가 보군.’

헌터의 스킬 발동 방식은 크게 2가지였다.

박형만처럼 스킬을 외쳐 발동하는 방식과 안수지처럼 외치지 않고 효과를 발동하는 타입.

후자의 경우는 의료 헌터 정도만이 해당한다는 게 일반적인 지식이었다.

자신 역시 스킬 이름을 외치지 않고 발동하지만….

이건 예외라고 봐야 할 것이다.

헌터로서의 스킬이 아니니 말이다.

이곳에서 본 마법이라 함은 테레사가 보여준 것이 대표적이었다.

테레사가 변신 인형을 만들 때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걸 봤었다.

그때는 그저 혼잣말을 하는 거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던 거다.

인형에게 걸려 있던 세 가지 마법.

변신, 융화, 혼란.

그녀는 그때 자신의 마법을 사용하고 있던 거였다.

‘놀과 뱀파이어, 우두머리 골드록과, 군주 테이고른…. 같은 퀘스트 게이트여도 그 세부적인 구성의 차이는 카오스 게이트 이상이군.’

급격하게 방향을 꺾은 용주는 일렬로 늘어선 원형 기둥들을 가로질렀다.

테이고른이 만든 폭발은 기둥과 바닥에 피 칠갑을 하며 따라오고 있었다.

‘인형들이 전혀 반응하지 않아. 왜지?’

테이고른의 모습을 본뜬 인형들은 처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자리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아직도 출입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테이고른의 영혼이 직접 깃들었던 인형도 움직이지 않았지.’

그때는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자외선에 노출되었었던 다른 인형들은 멀쩡하게 잘 움직였다.

겁을 먹거나 하긴 했어도 움직이는 것 자체에는 아무런 지장도 없었다.

하지만 테이고른의 몸은 달랐다.

인형은 움직이지 않았다.

같은 테레사의 작품이지만, 두 인형은 뭔가 달랐다.

‘인형의 크기를 키우면서 뭔가 부작용이 생긴 건가? 아니면 테레사의 정수가 빠져나가면서 뭔가 힘에 하자가 생긴 건가?’

어느 쪽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저 인형들이 정말로 단순한 인형일 뿐이라면, 경계하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속도를 높인 용주는 직각으로 방향을 급선회했다.

‘어디, 어떤 식으로 나오는지 한번 볼까?’

좁고 빠른 보폭으로 속도를 유지한 용주는 테이고른을 향해 돌진했다.

전광석화로 파고드는 용주.

테이고른은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지만, 용주를 저지할 수는 없었다.

거리는 빠르게 좁혀졌다.

둘 사이의 거리는 이제 불과 5m.

뻗었던 손을 거두어들인 테이고른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팬텀 베일.”

움켜쥐었던 손안에서 회오리바람이 솟아올랐다.

회오리는 테이고른을 휘어 감았고, 바람에 섞인 박쥐 떼는 칼이자 동시에 방패가 되었다.

폭풍은 순식간에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빠른 속도로 내달리던 용주였지만, 진짜 바람에 섞여 부는 박쥐 떼의 공격을 전부 피해 내는 건 불가능했다.

‘잠깐 사이에 10%나 갈렸군.’

폭풍에 삼켜진 용주의 몸에 상처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이번 박쥐는 아까 ‘블러드 윙’의 박쥐와 달랐다.

블러드 윙의 박쥐는 닿으면 폭발하는 방식이었지만, 지금 이건 할퀴고 찢는 방식.

박쥐 하나하나는 움직이는 칼날이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전방위적인 기술이라면 소모값도 적지 않을 거야.’

돌파를 강행하느냐, 빠지고 다음을 도모하느냐의 선택의 기로였다.

용주의 선택은 GO.

살을 찢기며, 강행 돌파에 성공한 용주는 테이고른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붉은 피를 흘리는군. 하등한 짐승의 색이야.”

용주의 칼날을 붙잡은 테이고른은 면전에서 박쥐 떼를 폭발시켰다.

폭발에 피격되기 직전.

검 손잡이를 놓은 용주는 빠르게 테이고른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할퀴기!’

날카로운 일격이 테이고른을 강타했다.

HP까지 지불하며 발동한 강력한 일격이었다.

하지만….

“철붙이를 휘두르나 했건만, 휘두르는 건 결국 짐승의 손톱이구나. 피에 잘 어울리는 야만적인 방법이야.”

용주의 손톱은 테이고른을 찢지 못했다.

용주는 계속해서 공격을 이어 갔다.

허벅지와 손등.

겨드랑이와 아킬레스건.

돌려 깎으며 여러 포인트를 찔러 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찢을 수 있는 건 테이고른이 입고 있는 옷가지 정도뿐이었다.

“페이탈리티.”

용주의 손목을 낚아챈 테이고른이 오른손으로 용주의 가슴을 내리찍었다.

그의 손에서 나타나는 피의 말뚝.

가슴 정중앙을 꿰뚫린 용주의 입에선 두 갈래의 붉은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하찮구나.”

말뚝이 박힌 용주를 밀쳐낸 테이고른은 가볍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와 동시에 퍼져 나가는 강렬한 충격파.

막강한 바람에 용주의 몸은 붕 떠올랐고, 저항이 사라진 몸은 그대로 기둥에 메다 꽂혔다.

말뚝과 기둥.

그 사이에 놓인 용주의 모습은 마치 저주 인형 같았다.

‘큭….’

가슴에 박힌 말뚝을 붙잡은 용주는 맨정신으로 그걸 뽑아냈다.

예상외로 고통은 크지 않았다.

너무 갑작스럽게 입은 상처였고, 너무 깊은 상처였기에 그런 모양이다.

심장을 피해 가지 않았다면, 아마 이 정도로 끝나진 않았겠지.

‘젠장. 골드록보다 더 까다롭잖아.’

흘러내리듯 지면에 착지한 용주가 입안에 고인 피를 뱉어냈다.

거리만 좁힐 수 있으면 무조건 타격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불의의 일격만 당하고 말았다.

‘혹시 내가 잘못 판단한 건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것도 혹시 인형의 육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관 속에 안치된 육체.

거기로 급하게 돌아간 영혼의 정수.

방 안을 채운 인형 육체들.

그런 정황들을 보며 지금의 테이고른이 원래의 육체를 취한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과연 그게 맞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용주의 눈에 테이고른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

용주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강하게 꽂혔다.

자신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크으으윽…!”

테이고른은 고통스러운 듯 심장을 부여잡고 있었다.

얼마나 세게 잡았는지 구겨진 옷이 구겨지다 못해 찢겨 나갈 지경이었다.

‘그런 건가?’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달리 테이고른은 임종 직전이었다.

본래의 육체는 이미 한계.

그 상태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전투를 이어갈 수 없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자신이 그를 쫓아 이 방에 들어왔을 때.

테이고른의 빛은 인형들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들어가고 싶었지만, 들어갈 수 없던 것처럼 보였다.

돌고 돌아 마지막에 들어간 곳이 관이었다.

이렇게 많은 인형을 준비해 두고도 그가 왜 다시 인형의 몸으로 들어가지 못했는가?

해답에 대한 가능성은 여럿 있었다.

정수가 자외선에 노출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정수가 검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일 수도.

그것도 아니면 테레사가 옆에 없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정답이 뭐든지 간에 용주에겐 희소식이었다.

자신보다 강한 적이 가장 약해져 있는 지금이 쓰러뜨릴 절호의 기회였다.

“으윽! 으아악!”

극심한 고통에 경기를 일으키던 테이고른은 급하게 어딘가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용주는 곧장 그의 뒤를 쫓았다.

생명에 위협을 느낀 그가 찾아갈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테이고른은 위협 사격을 하기는커녕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1분 1초가 급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테이고른이 향하고 있는 곳은 본래 벽장이 가득 채우고 있던 벽면.

폭풍에 비틀린 책장 너머로는 빈 공간이 보였다.

파드드득!

수백 마리의 박쥐 모습으로 분화한 테이고른은 벽장을 넘어갔다.

앞이 가로막힌 용주는 서둘러 벽장을 밀어냈다.

어둠 속에 깔린 계단은 아래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 * *

나선형의 계단을 타고 도착한 곳은 또 다른 방이었다.

수많은 인형의 신체 조각이 걸려 있고, 나뒹구는 음산한 공간.

숨겨진 이 공간엔 테이고른과 자신.

그리고 죽은 눈동자를 하고 있는 창백한 뱀파이어 여성 한 명이 있었다.

테이고른에게 붙들린 여성의 곁엔 방금 막 급하게 조립한 거 같은 허술한 인형 한 구가 있었다.

“커헉! 어째서… 어째서 안 되는 거야!”

피를 쏟은 테이고른이 테레사의 뺨을 후려갈겼다.

그의 힘에 쓰러진 테레사는 다시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빨리 제대로 하지 못해? 시간이…. 윽!”

이를 악문 테이고른의 호통에 테레사의 손이 움직였다.

테이고른의 영혼 결정은 육체에서 빠져나와 인형의 곁을 맴돌았다.

하지만 들어가지 못했다.

그의 영혼은 다시 원래 육체로 되돌아갈 뿐이었다.

“다급해 보이는군. 생명이 꺼져 가는 게 느껴지나 보지?”

용주의 한마디에 테이고른이 뒤를 돌아보았다.

테이고른의 얼굴 중 일부는 파편이 되어 흘러내리고 있었다.

“테레사의 힘으로도 인형으로 옮겨갈 수 없나 보지?”

용주의 말에 테이고른의 눈빛이 변했다.

“하등한 네가 어떻게 그런 걸….”

“글쎄? 이제 와선 딱히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 않나?”

테레사의 힘으로도 녀석의 정수는 옮겨지지 않았다.

생각했던 세 가지 가능성 중 하나가 지워지는 순간이었다.

테레사의 정수와 테이고른의 정수.

이전 테이고른의 정수와 현재 테이고른의 정수.

두 정수의 차이는 무엇일까.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용주가 내린 답은 이거였다.

지금 테이고른의 정수는 온전하지 못했다.

“끝이다.”

“군주는 영원하다. 나 또한 영원하다.”

무언가를 결심한 듯 이를 악문 테이고른이 테레사의 턱을 들어 올렸다.

테이고른의 두 눈은 아주 가까운 곳에서 테레사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용주는 거기에 대해 곧장 알 수 있었다.

인형이 안 된다면 살아 있는 다른 육체에 영혼을 넣고 싶은 거겠지.

지금 자신이 원래의 육체로 돌아온 것처럼.

그게 되는지 안 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저지해야 했다.

‘그렇겐 안 되지.’

빠르게 패널을 활성화한 용주는 질풍의 보석을 손에 쥐었다.

이미 한 번 사용해본 물건이기에 어느 정도의 효력을 발휘하는지는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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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못난 아버지군. 미안하지만, 이 녀석은 내가 데려가겠다.”

마우스 투 마우스 (Mouth to Mouth)를 시전하려는 테이고른.

보랏빛이 감도는 테이고른의 입술이 테레사에 입술에 닿기 바로 직전, 두 사람 사이로 파고든 용주는 몸을 던져 테레사를 낚아챘다.

테레사의 상체를 꼭 끌어안은 용주는 자기 몸으로 충격을 받아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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