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여기도 꽝인가?’
산마루에 선 용주가 머리를 긁적였다.
동쪽 언덕이라는 막연한 명칭에 의존해 수색을 계속하고 있건만….
안개의 마을을 찾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높은 곳에서 보면 멀리서도 한눈에 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안개의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짐작건대 마을 전체에 안개가 가득 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안개가 머물고 있다면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기에 찾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을 거라고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이번에도 꽝.
안개는 고사하고 마을이라 할 만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남은 시간은….’
퀘스트 제한 시간은 이제 9시간 정도 남아 있었다.
적은 시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여유 있는 시간도 아니었다.
‘시간에 쫓기지 말자, 급하면 될 일도 안 되는 거야.’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한 용주는 반대편 비탈길을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용주의 수색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2시간이란 시간을 투자하는 동안에도 안개의 마을은 발견되지 않았다.
‘녀석이 말한 동쪽 언덕이 여기가 아닌 건가?’
숨을 고른 용주가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동쪽 언덕이라 생각한 곳은 저택을 기준으로 동쪽에 위치한 곳.
하지만 그녀가 말한 그게 여기란 보장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슬슬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음?’
그렇게 생각하던 용주의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용주는 비탈길을 타고 내려갔다.
나뭇가지에 나뭇잎 대신 무언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이건….’
인형이었다.
창가에 달린 맑음이 인형처럼 교수형에 처한 인형.
한두 개가 아니었다.
인형의 상태는 상당히 좋지 않았다.
낡고 깨져 흉물스러운 모습이었다.
‘왜 이런 게 여기 있는 거지?’
가까이서 보니 나무 위뿐만이 아니었다.
주변 수풀에도 인형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조각난 신체의 일부…. 그러니까 팔, 다리, 눈알 같은 게 흙 사이에 섞여 있기도 했다.
‘좀 더 조사해봐야겠어.’
뭔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용주는 수풀을 헤치며 나아갔다.
숲 안쪽으로 들어선 용주의 곁엔 하얀 안개가 머물고 있었다.
“어찌어찌 제대로 찾아오긴 한 모양이네. 다행히 말이야.”
안개 속을 한참 거닌 용주가 있는 곳은 폐허 한복판이었다.
건물은 모두 무너졌고, 인형들이 여기저기 버려져 있었다.
숲에 머무는 안개의 존재는 미스터리였다.
외곽에선 전혀 보이지도 않고, 숲을 빠져나가지도 않았다.
흐름은 있었지만, 그건 이 숲 내부에 한정되어 있었다.
“이젠 그 인형을 어떻게 찾느냐는 건데….”
마을의 크기는 결코 작지 않았다.
최소한 인형들을 위해 설계한 도시는 아니란 게 용주의 생각이었다.
용주는 파헤쳐진 흔적에 집중하며 움직였다.
여인은 인형을 잘 묻어놨다고 했었다.
묻었다면 분명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다.
‘저건….’
수색을 계속하던 용주의 눈에 유난히 식물군이 적은 구역이 보였다.
널브러진 인형도 없었다.
주변 다른 곳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장소였다.
한걸음에 달려간 용주는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토양 아래에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관 하나가 묻혀 있었다.
‘관?’
뚜껑만을 간신히 드러나게 한 용주가 손을 뻗었다.
그리고….
쿵쿵!
용주의 손에 반응하듯 안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용주는 관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관뚜껑의 무게는 용주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혼자 여는 건 무리겠어. 그렇다면….’
열 수 없단 걸 직감한 용주는 손톱을 세웠다.
할퀴기의 발동과 함께 흘러나온 피는 새로운 무기가 되고 있었다.
“이봐. 왼쪽 구석탱이에서 최대한 바짝 엎드려라. 경고했다.”
관 안에 있을 인형에게 이야기한 용주는 곧장 관뚜껑을 할퀴었다.
잘 설계된 관뚜껑은 한 번에 잘려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집요하게 후벼파는 용주의 손길에 균열이 생겼고, 결국 약해진 부분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무너져 내린 관뚜껑 너머론 바짝 엎드린 인형 하나가 보였다.
“어이. 이제 일어나도 돼.”
용주가 이야기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인형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엉덩이를 실룩거린 인형은 상체를 일으켰다.
유독 화려한 프릴 레이스가 용주의 눈에 들어왔다.
인형은 용주에게로 다가왔다.
무너진 뚜껑의 잔해로 올라선 그녀는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고 있었다.
마치 자신을 꺼내달라는 듯 보였다.
“경계하지는 않는 거냐?”
두 손으로 인형을 잡은 용주는 그녀를 뚜껑 위에 올려놓았다.
세상 밖으로 나온 그녀는 안심이 좀 된다는 듯 땀 닦는 시늉을 해보이고 있었다.
“뭐, 됐다. 너, 말은 할 수 있냐?”
인형과 눈높이를 맞춘 용주가 물었다.
성대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킨 인형은 고개를 젓고 있었다.
아마 목소리가 안 나온다는 소리겠지.
“그럼 글은 쓸 줄 아냐?”
고개를 끄덕인 인형은 석조관 위에 무언가 쓰기 시작했다.
그 글자는 적어도 용주가 아는 글자는 아니었다.
‘이건 또 번역해주지 않는 거냐?’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이왕 해준 김에 전부 해줘도 좋은 거 아니냔 말이다.
‘이렇게 되면 그냥 입 모양을 보고 해석하는 수밖에 없겠어.’
“물어본 입장에서 미안한 이야기지만, 네가 쓴 글자. 내 능력으론 해석할 수 없는 글자인 것 같다.”
용주의 이야기에 인형은 다시 한번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한 글자 한 글자 더 또렷하게 쓰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았다.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그냥 네가 쓰는 글자가 내가 사용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의미였다.”
용주의 이야기에 인형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냔 의미 같았다.
“이제부터 대답할 말이 있으면 그냥 입으로 뻐끔거리면 된다. 알아서 해석할 테니.”
인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일 쉬운 것부터 시작하지. 이름은? 혹시 없나?”
용주의 물음에 인형의 입이 움직였다.
인형은 딱 세 글자를 말하고 있었다.
‘테레사.’
“테레사…. 내가 제대로 해석한 거 맞나?”
인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테레사. 내가 알기론 넌 백작 부인이란 자에게 버려졌다는데, 사실이냐?”
‘응.’
“백작 부인이란 자에게 가기 전엔 테이고른의 저택에 있었고?”
‘맞아.’
“그래. 그럼 다음 물음이다. 테레사. 너흰 정체가 뭐지? 평범한 인형은 아닌 거 같은데.”
용주의 물음에 테레사가 잠시 말을 아꼈다.
뭔가 생각 중인 모양이다.
가볍게 던진 물음이었지만, 용주의 입장에선 꼭 답을 알아야 하는 물음이기도 했다.
자신을 발견하고도 숨겨주었던 인형의 태도.
어쩌면 거기에 대한 단서가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건 나에 대한 물음이야, 아니면 인형 전반에 대한 물음이야?’
둘의 경계를 확실히 나누는 테레사의 물음.
아무래도 이 녀석은 자신과 다른 인형들을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양쪽 모두 말해주면 고맙겠군.‘
‘알았어. 그럼 그 인형들에 대해 먼저 말해줄게. 인형들은 다 내가 만든 작품들이야. 말 잘 듣는 귀여운 아이들이지.’
“네가 만들었다고?”
‘맞아.’
“인형이 인형을 만들었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용주의 물음에 테레사가 고개를 저었다.
‘나 지금은 이런 몸뚱이지만, 원래는 이렇지 않았어.’
“그럼 네 정체는 뭐지? 왜 인형의 모습이 되어 있는 거냐.”
‘인형 제조사 테레사. 난 군주 테이고른의 딸이자, 권력의 꼭대기에 있던 뱀파이어야.’
테레사에 대답에 용주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설마 이런 답변을 듣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네가 폭군의 딸이라고?”
‘폭군? 아, 아빠를 그렇게 부르나 보구나? 이해해. 배급량을 줄인 것도, 측근들에게 작위를 독점시킨 것도 다 부당한 결정이었으니까.’
고개를 끄덕인 테레사의 어깨가 축 처졌다.
“…그래. 근데 그런 자가 왜 그런 모습이 된 거지?”
‘아빠가 내 육체를 지배했거든. 내가 나로서 존재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어.’
“왜 딸인 네게 그렇게 한 거냐?”
‘영생을 위해서.’
테레사의 한마디에 용주의 눈썹이 기울어졌다.
“영생이라고?”
‘응. 뱀파이어는 수명이 길어. 하지만 영원한 건 아니야. 아빠 역시 불멸에 가까운 생명을 누려왔지만, 그것도 이제 한계야. 아빤 영생을 위한 방법을 모색했어.’
“네 육체가 지배된 게 그것과 무슨 관계인 거냐? 혹시 네 육신을 빼앗기라도 했단 거냐?”
‘아니. 아빠에게 필요한 건 내가 가진 힘과 지식이었어. 영혼을 옮기는 이 힘과 인형에 대한 지식. 그 두 가지를 이용해 자신의 생명을 인형에 이식하면 영원불멸의 삶을 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지.’
“이해가 되지 않는군. 그런 강제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방법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맞아. 아빠도 처음엔 부탁했어. 하지만 난 거절했지. 내 인형은 행복을 주기 위한 것이지 영생을 위한 도구가 아니거든.’
“그러다가 네가 인형이 되었다?”
‘맞아. 참 아이러니하지? 여차여차해서 저택에서 빠져나온 거까진 좋았는데, 탈출하려다 걸려 버렸지 뭐야. 버릴 거면 그냥 곱게 버리든가. 왜 묻어 버리는 거야?’
테레사가 화를 냈다.
생매장당한 게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 것치고는 인형들의 처지가 말이 아니더군. 말만 다르지 그냥 광대나 다름없던데? 너흰 귀여운 아이들을 그렇게 다루나 보지?”
용주가 냉담하게 물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야. 다만 내가 뭔가 잘못됐단 걸 인지했을 땐 너무 늦은 뒤였어.’
용주는 그녀의 다음 대답을 기다렸다.
‘아빠가 내 몸을 지배했다고 한 거 기억하지? 그거, 한순간 팍하고 일어난 일이 아니야.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잠식하듯 진행된 거지. 어느 시점부터의 내 생각과 판단들은 실은 내가 한 게 아니었던 거야.’
이야기를 끝마친 테레사의 팔이 파르르 떨렸다.
인형은 감정이 없다고 하기에 그런 테레사의 모습은 이질적이었지만, 동시에 가련했다.
“탈출을 시도한 건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냐?”
‘복수 같은 게 아니야. 다만, 잘못된 걸 바로잡고 싶어.’
테레사의 이야기를 해석한 용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형들이 왜 자신을 도와준 건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테레사가 테이고른과 가까운 사이란 걸 들었을 땐 질문을 실수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았어도 되는 모양이다.
“그럼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지. 내가 널 찾은 이유는 네가 내게 필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보?’
“테이고른의 저택에 들키지 않고 잠입할 방법이 필요하다. 혹시 생각나는 방법 있나?”
‘저택에? 왜?’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가능하냐 불가능하냐, 넌 그것만 말하면 돼.”
왜라고 물어도 용주도 딱히 대답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 받은 임무는 저택에 잠입하라는 내용뿐.
잠입한 후에 뭘 해야 하는지는 아직 미지수였다.
‘음…. 내가 말하는 재료를 구해다 주면 가능할지도 몰라. 할 수 있겠어?’
▷ 사이드 퀘스트 - 테레사의 의뢰
- 인형이 된 테레사가 세 가지 재료를 모아와 달라고 합니다.
- 수락하시겠습니까?
용주의 앞에 새로운 알림이 깜빡였다.
사이드 퀘스트란 이름의 알람이었다.
“그래. 그걸로 잠입할 수 있다면.”
용주는 퀘스트를 수락했다.
테레사는 세 가지 그림을 그려 보였다.
인형 하나와 식물 두 개였다.
‘인형은 여기 있는 것 중에 아무거나 써도 될 거야. 식물들도 안개의 마을 안쪽에 다 있을 거고.’
고개를 끄덕인 용주는 그녀가 말한 식물을 찾기 시작했다.
무슨 방법인진 모르겠지만, 이걸 위해 투자한 시간이었다.
성과를 내야 했다.
▷ 테레사의 의뢰를 완료했습니다.
- 약속한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세 가지 물건을 모두 모은 용주는 그녀에게 재료를 건넸다.
테레사는 혼자 중얼거리며 잘 으깬 식물들을 인형의 안쪽에 집어넣고 있었다.
‘자, 받아.’
테레사에게 인형을 건네받은 용주는 인형을 이리저리 살폈다.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의 특별함은 없는 것 같았다.
인벤토리창을 연 용주는 아이템을 확인했다.
▷ 테레사의 변신 인형
- 1시간 동안 인형의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습니다.
- 변신 중에는 인형이 가진 힘에 귀속되므로 주의를 요합니다.
‘변신 인형이라고?’
그 행동 어디에서 이런 게 탄생한 건지 의문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 봤을 땐 그냥 애들 소꿉놀이 하는 것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다.
‘저택에 귀족 중 누군가가 들어갈 때 슬쩍 끼어들면 될 거야.’
“바로 들킬 거라고 생각하는데?”
테레사의 이야기에 용주가 즉각 반박에 나섰다.
상식적으로 인형의 숫자가 늘어나면 의심하지 않겠는가.
‘내가 건 마법이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마법?”
‘존재를 융화시키는 마법. 누가 됐든 처음부터 거기 있었다고 생각하게 될 거야.’
테레사가 자신감을 표했다.
입술을 실룩인 용주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믿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