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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29화 (29/357)

29화

야광초 사이에 몸을 숨긴 용주는 숨을 죽였다.

여자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지건….’

먼 곳에서 다가오는 여러 개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중 하나는 유독 거대했다.

물론, 상대적으로 그런 거지 실제로 거대한 건 아니었다.

제일 큰 실루엣의 키는 대략 160 정도.

그 뒤를 따라오는 6개의 실루엣들은 30~50cm 정도로 아주 작았다.

거리가 좁혀지자 형태가 점점 또렷하게 보였다.

30cm 정도의 키를 가지고 있던 실루엣들은 아까 봤던 인형이었다.

똑같이 생긴 건 아니었다.

하지만 같은 사람의 다른 작품 같다는 인상을 주었다.

“꺄핫!”

“꺄르륵!”

웃음소리의 주인은 저 인형들이었다.

처음 보았던 버려진 인형과 달리 저 인형들은 움직이고 있었다.

한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지만, 개개의 행동은 자유로워 보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거대한 실루엣은….

‘인간?’

말도 안 되지만 그렇게 보였다.

신체의 구조와 비율.

그 어딜 봐도 인간과 비슷했다.

입고 있는 의복은 중세 시대 귀족들의 드레스와 비슷했다.

챙이 넓은 모자와 양산. 그리고 펑퍼짐한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래도 굳이 보통의 인간과 조금 다른 점을 꼽으라면.

피부색이 시체처럼 창백하다는 것과 붉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얼핏얼핏 보이는 송곳니가 상당히 발달해 있다는 점이었다.

▷ 여인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 번역에 필요한 지능 : 10

- 조건이 충족되어 해당 언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자연스러운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됩니다.

“웃고 떠드는 건 좋지만, 너무 멀리 가면 안 돼요. 말 안 듣는 인형은… 말 안 해도 알죠?”

여인의 한마디에 인형들의 움직임이 순간 둔화됐다.

여인은 양산을 펼쳤다.

햇빛 같은 건 전혀 없었지만, 여인은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전 너무 조용한 것도 싫답니다. 처신 잘해요.”

인형들의 웃음소리에 둘러싸인 여인은 우아하게 언덕을 내려갔다.

잠시 말을 잃었던 인형들은 다시금 웃으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건 또 어떻게 이해해야….’

여인과 인형들이 충분히 멀어지기까지 자리를 지키던 용주는 눈썹을 기울였다.

자신의 상식과 생각에서 벗어난 일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말았다.

큰 쪽도 작은 쪽도 ‘인간’이라는 카테고리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언어를 구사했다.

단순한 소리가 아닌 언어를 구사한 이는 여인뿐이긴 했다.

하지만 그녀의 한마디에 인형들이 반응한 것으로 보아 그들 역시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되는 모양이었다.

용주에 입장에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퀘스트 게이트에서 만날 적들도 언노운의 정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언노운은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들은 때때로 협동할 줄 알고, 산개하거나, 기습을 펼치기도 한다.

하지만 언노운들은 언어로 소통하지 않는다.

적어도 자신이 알고 있는 상식으론 그랬다.

처음 마주했던 지난번 게이트에서 그랬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 버렸다.

‘인간과 닮았어. 그렇지만 인간은 아니야.’

여인의 목소리가 들리기 바로 직전.

용주의 앞엔 한 가지 메시지가 출력되었었다.

지능 스탯이 충족되어 언어가 통하게 됐다는 메시지.

자신의 귀엔 한글로 들렸지만, 저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와는 다르단 뜻이었다.

‘능력치에 그런 효과도 있었군.’

새로 얻은 정보였다.

그렇다는 건 특정 능력치의 필요량을 요구하는 게 장비뿐만이 아니란 소리였다.

‘조금만 뒤를 밟아볼까?’

위험도가 있는 생각이긴 했다.

하지만 위험을 감수할 가치는 충분하다는 게 용주의 판단이었다.

웃음소리는 계속되었다.

저택이 가까워질수록 몸을 숨기는 게 쉽지 않았다.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기대 이하라는 말도 아까울 정도였다.

‘이 이상 따라가는 건 무리겠어.’

여인보다 조금 높은 곳에서 지리를 살피던 용주였다.

이 이후론 숲이라기보다는 거의 평야.

더 따라가는 건 위험을 감수하는 정도가 아닌 자살행위였다.

파드드득!

용주가 추격을 포기한 그때.

한 무리의 박쥐 떼가 나타났다.

용주가 숨어 있던 방향이 아닌, 저택 쪽에서 날아온 박쥐 무리였다.

저공비행을 펼친 박쥐 떼는 여인의 곁으로 모여들었고, 이내 하나로 합쳐졌다.

박쥐는 또 다른 사람의 형상이 되었다.

남성이었고, 여인의 것보단 훨씬 초라해 보이는 옷을 걸치고 있었다.

계급 사회의 기준으로 놓고 보면 훨씬 낮은 계급의 복장처럼 보였다.

‘박쥐가 인간으로?’

용주가 눈썹을 기울였다.

‘그렇다는 건 혹시….’

인간의 모습과 박쥐와 모습을 병행할 수 있는 존재.

가능성의 영역에서 보면 떠오르는 존재가 하나 있었다.

창백한 피부를 가진 밤의 귀족.

뱀파이어.

만화나 영화를 통해 묘사되는 그들의 모습은 저것과 흡사한 것이었다.

“고귀하신 남작 부인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사내가 정중하게 손을 내밀었다.

“군주님께서 세세한 곳까지 신경을 써주셨군요. 설마 에스코트가 있을 줄은 몰랐네요.”

“정중히 모시라고 몇 번이나 강조하셨습니다.”

“어머, 그런가요?”

사내의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여인이 큰 소리로 웃어 보였다.

“여섯…. 지난번보다 인형이 조금 준 것 같네요.”

주변을 뛰노는 인형들을 바라본 사내가 이야기했다.

“불량품은 버리는 게 상책이지 않겠습니까? 고장 난 것도 마찬가지고요.”

“그러셨군요.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잘 안 들려….’

용주의 입장에선 답답한 상황이었다.

뭔가 의미 있는 정보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타이밍이 영 좋지 않았다.

‘그래도 조금 정도는….’

조금 더 욕심을 내보기로 한 용주는 수풀을 헤쳤다.

“지난번 군주님께서 선물해주셨던 인형도 망가지고 말았답니다. 멋대로 도망이나 치려고 하고…. 정말 슬픈 일이에요.”

“정말 안타까운 이야기군요. 군주님께선 자애로우신 분이시니 이해해 주실 겁니다.”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는데 말이에요. 다른 인형들이랑 똑같이 처분하기도 좀 그렇고 해서, 잘 묻어놨어요. 동쪽 언덕에 있는 ‘안개의 마을’에요.”

희미하지만 이해할 정도의 목소리가 용주의 귓가를 스쳤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용주의 예상을 깬 작은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투둑!

용주가 딛고 있던 지반 중 일부가 쓸려 내려간 것이었다.

용주가 숨어 있던 곳은 수풀 사이에 숨겨진 작은 벼랑이었다.

벼랑이라고는 했지만 높이 2m 남짓한 지형이었다.

용주의 움직임은 아주 작았다.

고작 몇 걸음을 더 움직였을 뿐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건은 일어나고 말았고, 용주가 어떻게 해 볼 방도는 없었다.

“안개의 마을이라…. 정말 멋진 장소를 고르….”

부드럽게 이어지던 대화가 끊어졌다.

두 사람의 시선은 같은 곳을 향해 있었다.

“…우리 말고 여기 뭔가 더 있는 것 같군요.”

“큰 문제는 아닐 테지만, 살펴보는 게 좋겠습니다.”

사내의 이야기에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얘들아, 가서 뭐가 있는지 알아 와. 어서!”

“꺄르르륵!”

여인의 명령이 떨어지자 인형들이 각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박쥐의 모습으로 변한 사내는 하늘 위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이런, 젠장!’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직감한 용주는 바짝 엎드렸다.

여길 벗어나면 박쥐들의 눈에 100% 발각된다.

반대의 경우도 상황이 좋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지만, 다른 선택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만약 발각되면….’

용주는 최악의 수를 생각했다.

용주가 생각하기에 발각될 가능성은 최소 90%.

저들의 강함은 미지수였다.

지난번 놀과 비슷한 수준일 수도 있지만, 그 이후의 퀘스트인 만큼 더 강할 확률 또한 적지 않았다.

게다가 이번 미션은 잠입이었다.

잠입의 특성상 보초나 경비가 굉장히 강하게 설정되어 있을 가능성이 컸다.

발각되면 어차피 끝이었다.

퀘스트는 실패하게 될 거고, 자신은 죽을 것이다.

진짜 무서운 건 이 두 놈이 아닌 자신의 심장을 움켜쥐고 있는 자.

바로 그 자였다.

‘어떻게 해서든 전부 죽여 버려야 해.’

목격자가 없으면 잠입이다.

목격자가 없으면 암살이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지만 지금은 거기 거는 수밖에 없었다.

모든 스킬과 모든 마나를 쏟아부어서라도 그렇게 해야 했다.

파드드득!

박쥐들의 요란한 날갯짓 소리가 숲을 가로질렀다.

아주 가까운 곳을 지난 박쥐들은 다른 곳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초음파가 같은 건 일단 없는 모양이군.’

불행 중 다행인 부분이었다.

더 다행인 건 자기 발밑에서 시작된 붕괴가 좀 더 넓은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행운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히히힛!”

탐색에 나선 인형들.

녀석들이 점점 포위망을 조여오고 있었다.

‘제발 저리 가라….’

인형 중 하나는 붕괴가 시작된 그 벼랑 아래에 있었다.

다른 한 명은 땅을 파고 있었고, 또 다른 한 명은 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

“꺄핫!”

밝은 웃음소리와 함께 용주가 있던 수풀이 헤쳐졌다.

키 작은 인형의 눈은 정확히 용주의 두 눈을 보고 있었다.

‘젠장!’

바짝 엎드려 있던 용주는 몸을 일으켰다.

들통 난 이상 전투는 불가피.

무슨 일이 있어도 전원 입막음해야 했다.

“꺄랏!”

일촉즉발의 순간.

인형에게 달려들려던 용주의 앞에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특유의 웃음소리를 머금은 인형의 손이 움직인 것이다.

입술에 딱 붙인 검지.

누가 봐도 저건 조용히 하라는 수신호였다.

‘!’

용주의 움직임이 순간 멈칫했다.

붉은 눈동자를 깜빡인 인형은 수풀을 원래대로 돌려놓고 있었다.

“그래요. 뭐라도 찾았나요?”

한가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여인이 물었다.

그녀의 곁으로 돌아온 인형은 용주를 발견했던 바로 그 인형이었다.

인형의 두 손에는 무언가 들려 있었다.

“음? 아하하핫!”

인형의 손에 들린 걸 건네받은 여인이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여인의 웃음소리에 몰려든 박쥐들이 하나로 합쳐지고 있었다.

“뭐라도 발견하신 겁니까?”

“그래요. 아주 엄청난 걸 발견해 버렸지 뭐예요?”

“엄청난 거?”

의문을 표하는 사내에게 여인은 손을 내밀었다.

여인의 손에는 거대한 쥐 한 마리가 들려 있었다.

엄청난 거라는 여인의 말이 반어법이란 걸 사내는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먹이를 찾으려고 여기저기 파낸 모양이죠? 덕분에 그 소동이 있었던 거고요.”

이빨을 드러낸 여인은 쥐를 떨어뜨렸다.

자유를 되찾은 쥐는 서둘러 달아나고 있었다.

“슬슬 움직이죠. 군주님께 전해드릴 아주 소소한 이야깃거리도 생겼으니 말이에요.”

“알겠습니다. 함께 가시지요.”

고개를 끄덕인 사내는 여인을 에스코트했다.

‘왜지?’

두 사람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용주는 몸을 일으켰다.

아까 인형이 보인 행동이 여전히 이해되지 않았다.

인형들은 당연히 여인과 한편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행동은 그것과는 전혀 상반되는 것이었다.

‘혹시 한쪽이 일방적으로 다른 한쪽을 구속하고 있는 관계인 건가?’

그녀가 했던 말과 인형들이 보인 행동.

그 두 개로 미루어 보면 그런 해석이 가능했다.

‘직접 물어보는 게 제일 정확하겠지.’

흙먼지를 털어낸 용주는 동쪽을 바라보았다.

위험한 순간도 있었지만, 정보는 제법 얻었다.

여인이 잘 묻어두었다는 선물 받은 인형.

여인은 그걸 망가졌다고 말했지만, 용주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여인이 인형이 망가졌다고 말한 근거는 멋대로 도망가려 했다는 것.

여인에게 있어 자신의 말에서 벗어난 행동을 한 인형은 다 망가졌거나 불량품일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보면 자신을 발견했던 인형 역시 불량품이겠지.

‘동쪽 언덕에 있는 안개의 마을이라고 했던가?’

만약 묻어두었다는 인형이 작동을 멈추지 않았다면, 추가적인 정보를 더 얻어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여인이 말한 군주는 분명 테이고른 일 것이다.

그렇다면 인형은 저택 내부에 있었던 존재.

이번 퀘스트를 위해선 인형이 가지고 있는 정보가 꼭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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