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같은 공간에 있던 두 헌터를 제외한 다른 헌터들의 모습도 보였다.
얽히고설켰던 게이트는 하나가 되어 있었다.
“무… 무사하세요?”
멀리서 다가오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형 결정체를 회수하는 용주의 앞엔 두 헌터가 다가와 있었다.
게이트 보스에게 쫓기던 두 사람이었다.
용주의 모습은 피에 절여졌다는 말이 아깝지 않았다.
승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었다.
“뭐… 그런 것 같군.”
용주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잠깐 사이에 HP는 제법 많이 잃은 상태였다.
할퀴기에 지불한 것도 있었고.
녀석에게 맞고, 입에 던져지며 난 손실도 있었으며.
피의 물결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잃은 것도, 녀석이 만든 바람에 찢겨 잃은 HP도 있었다.
누가 봐도 무사한 상태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용주의 표정은 한결같았다.
“제대로 보진 못했는데, 아까 손톱에 그거 혹시 스킬….”
“어이!”
헌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용주는 날아오는 물체를 붙잡았다.
담배 한 개비였다.
“좋아하냐?”
발목을 다친 헌터가 물었다.
그의 손에는 엉망으로 구겨진 담뱃갑이 들려 있었다.
“아니.”
“그래? 생긴 건 완전 꼴초같이 생겨가지곤.”
부러진 담배의 일부를 잘라낸 헌터는 불을 붙였다.
원래 길이의 1/4.
필터도 없는 담배를 꼬나문 헌터는 깊은 한 모금을 들이마셨다.
“후. 그래서 왜 온 거냐?”
연기를 뱉어 낸 헌터가 물었다.
가장 근본적인 물음이었고, 가장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었다.
“아! 맞아!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깜빡했네요. 아깐 죄송했어요. 악담하는 거 말렸어야 했는데….”
하나를 떠올리며 다른 하나를 잊어버린 헌터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런 헌터에게 무언가 날아왔다.
헌터의 머리에 맞고 떨어진 것 또한 다름 아닌 담배 한 개비였다.
“사과받을 일도, 감사받을 일도 한 기억 없다.”
“네? 그게 무슨….”
“헌터에게 위험은 곧 돈이다. 내가 거기 갔던 건 누굴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날 위해서였다.”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던진 용주는 입가에 묻은 피를 대충 닦아냈다.
정확한 이유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거면 충분히 설득력 있는 설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자신을 설득시키는 이유로도 말이다.
“칫! 거 밥맛이구만. 재수 없게시리.”
불만을 표한 헌터는 담뱃불을 비벼 껐다.
“그래도 완전 대단했어요. 두 마리 다 혼자 처리하신 거잖아요! 저는 한 방도 제대로 먹이지 못했는데.”
“대단하긴 개뿔. 내 다리가 이렇게 되지만 않았어도 내 사냥감이었다고.”
성질을 낸 헌터가 어깨동무한 팔에 힘을 주었다.
대단하다.
물론,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두 다리가 멀쩡했어도 아마 혼자 두 놈을 때려잡진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입이 그렇게 움직였다.
어쩌면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걸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그토록 무시하고 혐오하던 사내에게 목숨을 구원받았다는 것을.
자신의 실력이 그자보다 못하다는 것을.
“가자. 병원까지 확실히 모셔가라고.”
“에? 저 근데 아까 하셔야 할 말 있으시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랬나? 난 기억에 없는데. 헛것이라도 들었나 보지.”
시치미를 뗀 헌터가 먼 곳을 바라보았다.
이 토벌팀의 리더였던 헌터는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된 듯 보였다.
“게이트 클리어…. 게이트 보스는….”
리더를 맡았던 헌터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정답을 찾는 데까진 오래 걸리진 않았다.
다르게 생긴 개체가 저기 떡하니 쓰러져 있었으니 말이다.
피투성이가 된 세 사람과 함께.
“괜찮으십니까?”
웅성거리는 헌터들을 뚫고 달려온 리더가 물었다.
세 헌터 중 한 명은 상대적으로 경상이었지만, 나머지 둘은 상태가 제법 심각해 보였다.
“네 눈엔 이게 괜찮아 보이나 보지?”
다리를 다친 헌터가 자기 다리를 가리켰다.
농담과 진담이 적당히 섞인 그의 목소리에 리더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래도 세 분이 성공적으로 처리하신 모양이네요. 고생하셨습니다.”
“세 분? 칫! 웃기지 말라고.”
혀를 찬 헌터는 어딘가를 흘겨보았다.
할 일을 마친 용주는 그저 묵묵히 게이트를 빠져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좀비 헌터…. 그렇군요. 세 분이 아니라 여기 계신 두 분이 처리하신 거였군요.”
가장 심한 중상을 입은 자.
그자의 정체를 한발 늦게 파악한 리더가 이야기했다.
저자에 대해선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단독 행동을 보일 때에도 간섭하지 않았었다.
게이트를 클리어한 이는 여기 있는 두 사람.
좀비 헌터의 부상은 아마 일반 E급을 상대하며 생긴 것일 것이다.
자신의 말에 언짢아하는 이유도 아마 그런 것일 테지.
“아니. 게이트 보스를 쓰러뜨린 건 좀비 헌터, 저 자식이다.”
“네?”
그러나 돌아온 대답에 리더 헌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귀가 먹었나? 게이트 보스를 쓰러뜨린 건 저기 저 녀석이라고.”
“좀비 헌터가? 에이, 저 놀라시는 거죠?”
리더 헌터가 손을 저었다.
자신이 아닌 여기에 있는 누구에게 말했어도 아마 같은 반응이었을 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는 알겠는데요, 다 사실이에요. 쌍둥이 보스를 사냥한 건 좀비 헌터라고요. 우린, 어… 비유하자면, 통발에 들어간 게였다고나 할까요?”
“통발에 들어간 게는 무슨! 넌 그냥 입 다물고 있어.”
발목을 다친 헌터가 팔에 힘을 주었다.
이상하게 잘 매칭되어서 더 기분 나쁜 비유였다.
반쯤 목이 졸린 헌터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음? 잠깐만요? 쌍둥이 게이트 보스라고요?”
두 사람을 잠시 지켜보던 리더가 놀라 물었다.
“그래. 이 게이트. 쌍둥이 개체가 유지하고 있었더라고. 같은 언노운을 잡아먹는 개체인 것 같던데.”
“쌍둥이 개체? 그걸 좀비 헌터가 혼자 쓰러뜨렸다고요? 정말로… 정말로 저보고 그걸 믿으란 소린 아니시겠죠?”
“믿기 싫으면 믿지 말든가. 어쨌든 난 본 그대로 다 말했다고. 길드에 뭐라 보고하든 맘대로 해.”
“…….”
리더 헌터의 눈이 다른 곳을 향했다.
누구보다 심한 부상을 안고 있으면서, 모든 헌터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는 한 사람의 뒷모습.
좀비 헌터라 불리는 사내의 고독함이 그의 눈동자에 비치고 있었다.
* * *
“이럴 때만 참 말 잘 들으시네요…. 정말정말 감사하게도 말이에요.”
은정이 미간을 짚었다.
좀비 소동에 거리는 또 한 번 난리 법석.
카운터를 보던 간호사 한 명과 간병인 3명이 졸도하는 바람에 병원도 한 차례 난리 법석을 겪어야 했다.
두 사람이 있는 곳은 병원 내에 위치한 회복실로 헌터들의 고통 완화와 빠른 회복을 위한 특별한 공간이었다.
회복실의 중앙엔 새장같이 생긴 물건이 자리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새장이지만 최첨단 기술이 총동원된 보안 용품으로, 핵폭탄이 터져도 안에 있는 건 멀쩡하다는 소리가 나오는 물건이었다.
새장의 안쪽엔 은은한 빛과 연기에 감싸인 구체가 들어 있었다.
이게 바로 이곳에서 빠른 회복이 가능한 이유로, 저 구체의 정체는 정제된 A급 이형 결정체.
의료 헌터의 스킬이 기록되어 있다는 물건이었다.
“상처는 좀 어때요? 아픈 건 좀 덜 하시고요?”
대답 없는 용주에게 은정이 물었다.
직접 그를 진료한 그녀가 보기에 용주의 상태는 썩 좋지 못했다.
몸 여기저기에 자상이 가득.
특히 오른손은 거의 넝마가 되어 있었다.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면 손등, 손목과 달리 손가락 쪽은 멀쩡하다는 것 정도.
추측건대, 손이 이 지경이 될 때 주먹을 쥐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것 같군.”
말을 아끼던 용주가 대답했다.
용주에겐 ‘재생’이란 스킬이 있었다.
은정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상처는 회복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실제로 시간이 좀 더 넉넉하게 있었다면 아마 이곳에 들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용주에겐 조금이라도 더 빨리, 더 많은 상처를 회복할 필요가 있었다.
폭군 테이고른의 저택 개방까지 남은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찢어진 상처를 꿰맨 실들은 상처가 아물면 저절로 녹아서 사라질 거예요. 붕대는 제가 내일 새로 감아드릴 테니까 그전까진 절대 풀지 마시고요. 샤워는 당연히 금지. 손 씻는 것도 안 돼요. 아시겠어요?”
용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일어나죠. 여기 더 있고 싶으시겠지만, 너무 오래 있으면 부작용이 있을지도 몰라요.”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인 용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어진 상처의 봉합과 회복실 이용.
현재로서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다 동원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남은 건 이제 ‘재생’ 스킬의 몫.
병원에 더 있을 필요는 이제 없었….
꼬르륵!
다음 일에 대해 생각하던 용주의 귀에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매우 작은 소리였지만, 적막 속에 울린 소리는 확성기를 단 듯 선명했다.
“…….”
은정은 자신의 배에 손을 올렸다.
그녀의 얼굴은 홍당무처럼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요… 용주씨 배고프신가 보네요.”
급하게 뒤로 돌아선 은정이 이야기했다.
“내가 배고픈 게 아닌 것 같은데.”
“…….”
돌아온 냉담한 목소리에 은정의 표정이 더 딱딱하게 굳어졌다.
민망함과 원망이 섞인 눈으로 용주를 쳐다보던 은정은 머리를 긁적였다.
“이… 이게 다 용주 씨 때문이라고요! 용주 씨 때문에 제대로 저녁도 못 먹고 그러고 있었던 거잖아요! 착한 거짓말 하실 줄 아시면 이럴 때도 좀 해주시면 어디 덧나요? 진짜 못됐어요!”
까치발을 세운 은정이 목소리를 쏟아냈다.
“그런 이유에서 용주 씨가 한턱내요. 물론, 제가 먹고 싶은 걸로!”
“내가 왜….”
“쏘실 거죠?”
“…….”
앙칼지게 뜬 은정의 두 눈을 마주한 용주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개방까지 남은 시간이 많진 않았지만, 그 정도 여유 시간 정도는 있었다.
허기가 지는 건 이쪽도 마찬가지기도 했고, 막상 저런 표정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조금은 들기도 했으니 말이다.
걱정되는 게 하나 있다면 메뉴가 그녀가 먹고 싶은 메뉴란 것.
‘너무 비싼 거면 안 되는데….’
초밥? 한우? 스테이크? 참치? 코스 요리?
의사인 그녀가 홧김에 선정한 메뉴라면 뭐일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돈이라면 남부럽지 않게 벌 테고, 돈에 대한 판단과 기준이 거기에 맞춰져 있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었다.
이번 달 수입이 평소보단 많았지만, 사치는 지양하고 싶었다.
* * *
“어디까지 갈 생각인 거냐?”
용주가 물었다.
병원을 나서고도 제법 걸은 것 같은데, 은정은 아직 멈출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음식점이라면 병원 인근에 제법 많았다.
하지만 은정은 어느 한 곳에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아마 정해놓은 가게가 있는 모양이었다.
“거의 다 왔어요. 조금만 더 가면 돼요.”
은정을 따라 도착한 곳은 도시 한가운데 있는 곳이라기엔 약간은 특이해 보이는 어느 골목이었다.
크고 높은 건물 그림자에 가려진 허름한 골목.
인근의 다른 곳과 비교하면 여긴 80년대에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같았다.
골목길을 따라 들어간 은정은 한 건물 앞에 섰다.
붉은 벽돌길 사이에 자리한 오래된 유리문이 그녀를 반겨주고 있었다.
“다 왔어요. 여기예요.”
“여긴….”
고개를 든 용주는 유리문 근처를 둘러보았다.
간판은 보이지 않았다.
고급진 느낌도 전혀 없었다.
식당은 맞는 건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까지 들었다.
“제가 좋아하는 식당이에요. 들어가요!”
유리문을 옆으로 당긴 은정은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의 안쪽은 상당히 레트로한 느낌이지만, 깔끔하고 단정했다.
식당의 테이블은 4인 상 2개와 2인 상 1개가 전부.
모두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물건들이었지만,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카운터 겸 부엌으로 보이는 작은 공간엔 노부부의 모습이 보였다.
“어서 와요. 의사 아가씨.”
TV를 시청하고 있던 할머니가 은정을 반갑게 맞이했다.
할아버지는 말없이 손을 씻고 계셨다.
“잘 지내셨어요? 어디 아프신 곳은 없으시고요?”
“아프면 장사부터 접어야지. 장사하는 동안은 저 양반이나 나나 팔팔하다는 소리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하하. 알겠어요. 아무 데나 앉아도 되죠?”
“그럼요, 아가씨.”
은정은 4인 테이블 중 하나에 자리를 잡았다.
용주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용주의 시선은 벽에 걸린 하나뿐인 메뉴판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