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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25화 (25/357)

25화

* * *

‘뭐지?’

흠칫 놀란 용주는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들려온 소리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갑자기 툭! 하고 사라졌단 느낌은 아니었다.

소리는 멀어지고 희미해지며 사라졌다.

단지 소리가 멀어지는 시간이 말도 안 될 정도로 짧았을 뿐.

뒤로 돌아선 용주는 달리기 시작했다.

목소리로 추측건대 분명 아까 그 두 사람이었다.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 그러는 거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잘 모르겠다였다.

돈을 위해.

그러니까 더 많은 언노운을 쓰러뜨리기 위함이냐고 물으면 그것 역시 잘 모르겠다.

그냥 몸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이해관계나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말이다.

다만, 이 판단이 자신이 내린 것이란 것만은 또렷하게 알 수 있었다.

그래.

마치 그때처럼.

그들과 헤어진 지점까지 돌아간 용주는 곧장 그들의 발자취를 좇았다.

전투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저건….’

급브레이크를 밟은 용주는 자리에 멈춰 섰다.

용주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건.

작은 싱크홀이었다.

‘그렇게 된 건가?’

버려진 담배 한 개비를 밟은 용주는 자세를 낮췄다.

소리가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멀어진 원인을 이제 알 것 같았다.

싱크홀의 경계를 짚은 용주는 벽을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암벽 클라이밍은 전문이 아니었지만, 문제될 정도는 아니었다.

삐죽삐죽 튀어나온 암벽 곳곳에는 날카로운 발톱 자국들이 남아 있었다.

‘저쪽으로 갔나 보군.’

지면에 남은 흔적들을 살피던 용주가 꼬리를 밟았다.

동행한 인간의 흔적 중 하나는 다리를 질질 끌고 있는 것처럼 남아 있었다.

아마 추락의 순간 크게 다친 모양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의문이 생길 것이다.

왜 그들은 이곳에 없는가.

왜 그들은 도움을 기다리지 않고 이동했는가.

답은 여기 있었다.

인간의 것이 아닌 네 개의 발자국은 둘을 뒤따르고 있었다.

‘하나…. 아니, 둘인가?’

네 발자국의 크기는 거의 동일했다.

하나로 보기 힘든 건 그 발자국이 남아 있는 배열과 보폭 때문이었다.

놈이 사족보행을 하는 하나의 개체였다면, 이런 식으로 족적이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이트 보스는 아닌 건가?’

일반적인 게이트 보스라면 한 게이트에 한 마리인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여기 있는 건 두 마리의 흔적이었다.

같은 개체가 두 마리 있다….

이는 여기 있는 게 게이트 보스라는 생각에 걸림돌이 되는 부분이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용주는 왼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벽 귀퉁이엔 수많은 언노운들의 유해가 쌓여 있었다.

적어도 헌터들에 의해 쓰러진 것들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저렇게 깡마른 미라처럼 변해 있진 않을 테니까.

‘안에 든 걸… 몽땅 빨아먹은 건가?’

염소의 피를 빨아 먹는다는 ‘추파카브라’라는 미확인 생명체가 있다.

이건 놈에게 당한 거라고 주장하는 염소의 유해와 비슷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

여러 생각들을 삼켜낸 용주는 다시금 달리기 시작했다.

불규칙적으로 느껴지는 저주파는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었다.

* * *

“막다른 길이에요!”

다급한 목소리의 헌터가 외쳤다.

“젠장! 나도 보면 알아.”

부축을 받던 헌터가 신경질적으로 이야기했다.

헌터의 오른쪽 발목은 거의 직각으로 꺾여 있었다.

“재수가 없다 없다 하더니만, 아주 지랄 맞네. 진짜!”

검을 지팡이 삼은 헌터는 벽에 기댔다.

고통이 발목과 머리에서 동시에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선 폭발음이 들려왔다.

“벌써 바짝 붙은 거 같아요. 트랩이 발목잡이도 못 해준 모양이에요.”

“칫!”

“죄송해요. 제 능력이 부족해서.”

“죄송하긴 개뿔.”

발목이 부러진 헌터가 인상을 구겼다.

정신없이 도망치는 와중에도 할 수 있는 수를 던지긴 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소용없는 일이었던 모양이다.

헌터는 또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두 번째 담배는 성공적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같은 언노운을 잡아먹는 개체인 것만 해도 충분히 희귀한 케이스인데, 거기에 쌍둥이 게이트 보스라니. 그런데 그런 거랑 싸워보기도 전에 다리가 이 모양이라니….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진짜.”

담배를 꼬나문 헌터가 신경질을 냈다.

바짝 선 그의 핏줄은 그가 얼마나 큰 고통을 삼키고 있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어이.”

발목 삔 헌터가 하얀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네?”

“한 대 피울 거냐?”

“이런 상황에 담배 생각이 나요?”

“후. 이런 상황이라 더 맛있는 거다.”

“아… 그런가요? 전 됐어요.”

부지런하게 움직인 헌터는 마지막 트랩을 설치했다.

발목잡이도 못 해준 것 같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어이. D급 상대해 본 적 있냐?”

“있긴 있어요. 일반 개체였고, 다섯 명이 같이 잡은 거지만요.”

“그래? 그럼 저 두 놈 상대로 이길 수 있을 거 같냐?”

“해보는 데까진 해봐야죠. 이기기까진 못하더라도 시간을 벌면 누군가 도와주러 올지도 몰라요,”

“도와주러 와? 누가?”

“좀비 헌터. 그 사람 말이에요. 이형 신호탄 같은 건 없지만, 그 사람이라면 우리 소리 들었을지도 몰라요.”

“퍽이나 들었겠다. 만에 하나 들었다고 해도 녀석이 우릴 도와줄 것 같아? 우리가 그따위로 대했는데? 너라면 그럴 것 같나 보지?”

“그건….”

헌터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담배를 뱉은 사내는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 * *

쾅!!

용주의 귀에 폭발음이 들려왔다.

가까웠다.

흔적을 쫓으며 이미 사용된 몇 개의 트랩들을 발견했었다.

조잡하게 만든 간이형 부비트랩이었다.

트랩이 발동됐다는 건 언노운이 지금 저기에 있다는 소리였다.

“젠장….”

발목 삔 헌터의 무기가 땅에 떨어졌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발악을 해봤지만, 아무래도 여기까지가 한계인 모양이다.

피 칠갑이 된 다른 헌터는 이미 의식이 없었다.

어깨와 가슴이 희미하게라도 움직이는 걸로 봐서는 아직 살아 있긴 한 모양인데….

더 이상의 전투가 가능한 상태는 전혀 아니었다.

“괴물 소고기 따위에 내가….”

사내의 눈에 녀석의 목구멍이 보였다.

다른 한 놈은 저주파를 내지르며 괴상한 춤 같은 걸 추고 있었다.

사내의 머리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마치 단두대 아래 놓인 기분이었다.

사내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우어어어!!!”

일그러지는 언노운의 외침과 함께 공중으로 몸이 내던져지는 것을 느꼈다.

갑작스러운 일에 사내는 눈을 떴다.

그의 눈동자에 비치고 있는 건.

좀비 헌터.

그렇게 불리는 사내였다.

‘아직 둘 다 숨은 붙어 있군.’

언노운의 날개뼈를 꿰뚫은 용주는 녀석의 등을 걷어찼다.

조금만 늦었으면 아마 잡혔을 것이다.

‘쌍둥이 게이트 보스…. 그래. 그런 거였군.’

예상대로 언노운은 두 마리였다.

기본적인 형태는 아까 만났던 E급 개체들과 비슷했다.

다른 언노운 개체와 다른 점이 있다면….

손톱이 낫처럼 길고 예리하게 자라 있다는 것과 두 다리를 제외한 팔이 네 개라는 것 정도.

그리고 두 마리의 부러진 뿔 방향이 반대란 점 정도였다.

언노운은 크게 일반 개체와 특수 개체로 나뉜다고 알려져 있다.

특수 개체는 단일 개체라고도 불리고, 헌터들에 따라선 ‘네임드’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용주가 이전에 E급 게이트에서 만났던 D급 언노운은 일반 개체였다.

그렇기에 D급 게이트에서 같은 개체를 또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 두 놈은 달랐다.

여기 있는 놈들은 특수 개체.

특수 개체는 고유한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일반 개체보다도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게 상식이었다.

‘언노운 쪽에도 상처는 있지만, 경미한 수준이야. 적어도 90% 이상의 전력은 유지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겠지’

E급 헌터 둘을 상대한 것치고 둘의 상태는 멀쩡했다.

트랩에 의한 대미지도 크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헌터 쪽은 둘 다 전투 불능. 도움은 기대하기 어렵겠어.’

우선 저 두 놈을 둘에게서 떼어놓아야 했다.

둘을 보호하면서 두 놈과 싸우는 건 전투를 더 힘들게 만들 뿐이었다.

“좀비 헌터…. 왜? 왜 온 거냐?!”

상체를 간신히 일으킨 사내가 외쳤다.

사내는 일어나려고 했지만, 발목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에 이내 쓰러져 버렸다.

“…….”

용주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용주는 왼손을 가슴 앞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오른손을 교차시키며 자신의 손목을 그었다.

상처를 타고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예리한 것에 찢긴 통증이 신경을 타고 흘렀지만, 용주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그 통증을 참아 냈다.

“우우웅~!”

“우웅!!”

언노운들이 발산하던 저주파는 더 강렬하고 더 빠르게 반응했다.

날카롭게 드러난 녀석들의 이빨은 모기의 침을 연상케 했다.

‘제대로 먹혔나 보군.’

작용에 돌아온 반작용은 확실했다.

두 놈은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체액을 빨려 죽은 언노운들.

그걸 보고 즉흥적으로 떠올린 아이디어치고 나쁘지 않은 반응이었다.

‘그럼 따라오라고!’

자신의 피를 흩뿌린 용주는 달리기 시작했다.

두 마리의 언노운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움직였다.

용주와 언노운의 속도는 비슷비슷.

거리는 좁혀지지 않고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힐끔힐끔 뒤를 바라보던 용주가 멈춰 섰다.

이 정도 거리를 벌렸으면 아마 다른 곳에 시선을 둘 염려는 없을 것이다.

‘자… 그럼 이제부터가 본 게임인데….’

언노운과 헌터의 싸움에서 보통 수적 우위를 점하는 건 헌터였다.

하지만 지금 용주의 상황은 달랐다.

2 : 1.

수적 열세인 건 이쪽이었다.

저 두 놈이 기사도를 따지며 일대일 대결을 신청해올 리는 만무했으니 말이다.

‘어디 해보자고.’

인벤토리를 연 용주는 무언가를 쥐었다.

질풍의 보석.

퀘스트 게이트에서 골드록을 쓰러뜨렸을 때 나온 아이템 중 하나였다.

상대해야 할 건 D급의 특수 개체 2마리.

여유 부리거나 아낄 여유는 없었다.

▷질풍의 보석을 사용했습니다.

- ‘질풍’의 효과가 느껴집니다.

- 모든 행동은 50%만큼 빨라집니다.

- 지속시간 60초.

보석을 깨부순 용주는 곧장 달려 나갔다.

‘가벼워…!’

한 걸음을 내디딘 용주의 눈동자가 반응했다.

몸이 깃털처럼 가벼웠다.

본인도 놀랄 정도였다.

휘익!

언노운의 손톱이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용주가 있는 곳은 손톱과 손톱 사이.

가로로 휘두른 놈의 공격을 가볍게 피해낸 용주는 왼쪽 사선으로 몸을 틀었다.

오른쪽 두 번째 손은 지면을 날카롭게 할퀴며 지나가고 있었다.

놈의 팔등에 칼을 꽂은 용주는 놈을 길게 베어 냈다.

뿜어져 나온 언노운의 피는 용주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남은 손은 두 개.’

지금의 속도라면 남은 저 두 번의 공격도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곤 결정타를 날릴 수 없었다.

질풍의 지속 시간은 시시각각 줄어들고 있었다.

촤악!

용주의 옆구리에 피가 흘렀다.

놈의 손톱은 용주를 찢었고, 연이어 이어진 공격에 찢긴 용주의 살점이 흩뿌려졌다.

놈의 팔을 통과한 용주의 뺨은 반쯤 뜯겨 있었다.

‘물어뜯기!’

심각한 부상이 뒤따를 것을 알면서도 몸을 욱여넣은 용주는 놈을 물어뜯었다.

용주가 선택한 곳은 놈의 울대.

구멍 난 기도를 타곤 꿀렁거리는 기괴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용주의 상처는 빠른 속도로 아물어 가고 있었다.

피 맛을 본 부패한 입술은 놈을 한 점 더 먹자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용주는 곧장 자리를 이탈했다.

조금 더 늦었다면 놈의 손아귀 안에서 옴짝달싹 못 하고 있었을 것이다.

‘치명상이었을 텐데, 그 정도론 쓰러지지 않는다는 거냐?’

울대가 뜯겨나갔음에도 언노운의 움직임은 활발했다.

방향을 튼 용주는 검을 바짝 당겼다.

완전히 다른 방향,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날아온 손톱은 칼날을 날카롭게 긁어내고 있었다.

‘2 : 1…. 확실히 쉽진 않겠어.’

다른 한 녀석의 공격을 막아낸 용주는 빠르게 눈동자를 굴렸다.

자신을 노리는 손은 총 여덟 개.

놈들의 다리와 이빨까지 생각하면 신경 써야 할 건 그 이상이었다.

‘그럼 이건 어떨까?’

미끄러지듯 손톱 사이를 통과한 용주는 다시 한번 언노운을 물어뜯었다.

물어뜯은 부위는 언노운의 손목 안쪽.

유독 많은 힘줄이 꿈틀거리던 지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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