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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24화 (24/357)

24화

‘진(眞) 각성.’

그건 헌터가 어느 순간, 어떤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그릇을 깨는 것을 의미했다.

E급, D급의 헌터가 A급, B급 헌터와 맞먹는 힘과 MP를 뿜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진 각성을 경험한 헌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용주의 머릿속에 자신의 스테이터스창이 떠올랐다.

자신의 처음 MP는 15였다.

그리고 그건 헌터로 각성했을 때 계측되었던 자신의 수치이기도 했었다.

현재 자신의 MP 최대치는 19.

티르의 손과 상태창의 수치가 동일한 것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진 각성을 경험했다고 하기엔 마나의 상승 폭이 너무 미미했다. 진각성을 경험한 헌터가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경험한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 없고.

게다가 계승자니 뭐니 하는 괴현상에 휩싸인 직후에는 변화가 아예 전무하지 않았던가.

“그럴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게 상부의 판단이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동제는 나머지 하나를 건넸다.

티르의 손을 모두 건네받은 용주는 눈을 감은 채 호흡을 편안하게 했다.

힘을 줄 필요도 없었고, 뭔가를 더 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티르의 손엔 동시에 하나의 숫자가 표시되었다.

15.

용주가 처음 받았던 그 수치 그대로였다.

수치를 확인한 용주는 티르의 손을 내려놓았다.

티르의 손이 계측한 MP의 최대치는 스테이터스가 말하는 MP와 동일하지 않았다.

“15…. 그렇군요. 기록했습니다.”

티르의 손에 적힌 두 개의 숫자를 확인한 동제는 서류를 덮었다.

“조사는 여기까지입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집까지는 바래다 드리겠습니다.”

“…그래.”

용주는 티르의 손이 계측한 자신의 수치를 한 번 더 확인했다.

15.

자신은 여전히 E급 헌터였다.

* * *

“후우….”

쉬지 않고 움직이던 두 다리를 멈춘 용주는 가빠진 호흡을 정리했다.

용주의 주변에서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던 블록들을 제자리를 찾아 돌아가고 있었다.

헌터 길드에 마련되어 있는 상황 대처 및 반응 속도 훈련 장치였다.

실전에서 별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이 많아서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경험 없는 초짜 헌터라느니, 허접이라느니, 겁쟁이라느니, 애송이라느니, 그런 꼬리표를 붙이는 헌터들도 있었으니 이용률은 더욱 저조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물론, 용주는 그런 이야기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기록은 평소보다 잘 나와 있었다.

놀들이 있던 그곳을 처리하고 벌써 3일이 지났다.

‘폭군 테이고른의 저택 지도’가 가리키는 교대역을 미리 가봤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 거기 적혀 있던 개방 시간이란 조건 때문인 것 같았다.

‘개방시간까지는 앞으로 10시간 정도.’

계승자니 의무니 그래도 자신은 헌터였다.

그리고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는 가장이었다.

이른 시간에 이곳에 온 것도 다 그 때문이었다.

용주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핸드폰엔 부재중 전화와 함께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두 번호는 동일한 것이었다.

‘문자?’

용주는 문자를 확인했다.

혹시 뭔가 미납되거나 만료된 게 있나 싶었다.

[안녕, 나 수지.

형만 아저씨한테 연락처 받았어.

전화 안 받아서 문자 남겨.

퇴원 축하해.

퇴원 전에 한 번 들르려고 했는데, 시간이 안 맞았네.

전해주고 싶은 게 있는데 시간 정해 줘.]

하지만 그런 용주를 기다리고 있던 건 생각과는 전혀 다른 메시지였다.

‘안수지. 녀석이 왜….’

익숙한 메시지는 아니었다.

예상했던 메시지는 더더욱 아니었고.

‘전해주고 싶은 거란 건 또 뭐지?’

핸드폰이라면 이미 건네받았다.

녀석이 자신에게 줄 거라곤 분명 이것 말고는 없을 것이다.

‘치료비라도 청구하고 싶은 건가?’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오래가진 않았다.

녀석의 목적이 돈이었다면, 자신이 아니라 헌터 길드에 청구하는 편이 더 빠르고 정확했을 것이다.

사적인 의뢰라면 자신이 아닌 형만이 했으니, 뭔가를 청구하고 싶다면 그쪽으로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고.

‘뭐가 됐든 만나보면 알겠지.’

손가락을 움직인 용주는 전송 버튼을 눌렀다.

전송을 마친 핸드폰은 곧장 주머니로 들어가 있었다.

용주는 훈련장을 빠져나갔다.

자신의 헌터 등급은 여전히 E급이었다.

D급 게이트에 출입할 수 있는 조건 중 충족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E급 카오스 게이트 소탕.

오늘 여기 온 주된 이유는 거기에 참여하기 위함이었다.

어찌 보면 제자리걸음이라 할 수 있는 행보였다.

변한 것도, 달라진 것도 없어 보였다.

‘과연 어떨까….’

스테이터스와 스킬창을 띄운 용주는 그것들을 훑어보았다.

확실히 헌터로서의 자신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에겐 분명 변화가 있었다.

헌터로서의 강함과는 별개인 듯 보이는 이 이질적인 힘.

놀이란 녀석들을 상대로 이 힘은 확실히 유효했다.

이번에는 카오스 게이트 차례였다.

언노운들을 상대로도 이 힘이 유효한지.

또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확인해 볼 때였다.

* * *

“에이~ 퉤!! 오늘은 재수가 좀먹었나. 해도 저딴 놈이랑 만나고 난리야?”

머리를 긁적인 헌터가 침을 뱉었다.

같은 공간에 있는 헌터는 총 셋.

그중 하나는 용주였다.

셋이 함께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용주가 먼저 움직였고, 나머지 둘이 좀 더 나중에 따라온 느낌이었다.

언노운은 없었다.

다만 인위적으로 쌓인 흙과 돌이 길을 막고 있었기에 용주의 시간은 지체되어 있었다.

“쉿! 목소리가 너무 커요. 다 들리겠어요.”

“들으라고 하는 소리야. 너도 좋은 말 할 때 저 녀석 조심해.”

“조심하라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좀비헌터…. 저 녀석 일부러 언노운을 흘린다는 소문이 있어.”

“일부러 흘려요?”

“그래. 같이 있는 헌터들이 부상을 입어야 자기가 챙길 몫이 많아진다 이거지. 경고하는데, 절대 녀석한테 등을 내주지 마. 좀비가 노리는 건 괴물이 아니야. 인간이지.”

두 헌터의 시선이 같은 곳을 향했다.

용주는 그들의 대화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왜곡된 소문에 대해 해명할 생각은 없었다.

그들이 그렇게 볼 거라면, 그렇게 보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을 테니까.

“어이, 이쪽으로 가자. 보아하니 저놈은 저쪽에 관심이 있는 모양이니까. 다른 건 몰라도 녀석은 피하자고.”

어깨에 검을 걸친 헌터가 이야기했다.

“아…. 근데 생각해 보니까, 저 사람 아까 저희 팀에 편성된 사람 아니에요?”

“팀 같은 소리 하네. 지 맘대로 싸돌아다니는 녀석이 팀은 개뿔.”

“그래도 만났으니 같이 움직이는 게 좋지 않을까요? 팀이잖아요. 여기 막혀 있던 거 혼자 치우신 것 같던데….”

“내버려 둬. 어차피 저 녀석 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새끼니까. 그리고 저 녀석이랑 같은 팀이라고 하지 마. 재수 없으니까.”

모욕적인 발언에도 용주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자기 갈 길을 갈 뿐이었다.

“퉤!”

한 번 더 침을 뱉은 사내는 갈 길을 갔다.

눈치를 살피던 다른 헌터는 한발 늦게 그를 쫓아가고 있었다.

게이트를 따라가던 용주는 검을 움켜쥐었다.

평소 사용하던 보급형 롱소드는 아니었다.

골드록의 첨예검.

그때 얻은 검이었다.

저 앞에 두 마리의 언노운이 보였다.

곰과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는 야수형 언노운이었다.

스릉!

용주는 곧장 전투에 돌입했다.

적당히 맞아가며.

일부러 맞아가며.

그런 말은 사치였다.

언노운들의 손톱에 살점에 뜯겨나갔고, 벽을 따라 피가 흘렀다.

용주의 검은 언노운의 가슴을 뚫었다.

가슴을 뚫고 들어간 칼날은 입을 뚫고 나왔고, 언노운은 이내 쓰러졌다.

손잡이에 있던 다섯 개의 홈 중 하나는 사라져 있었다.

‘제대로 적용되는가 보군.’

카오스 게이트에서도 이게 제대로 적용될지 의문이었다.

이건 퀘스트를 클리어했던 공간.

그러니까 대충 ‘퀘스트 게이트’라고 이름 지은 곳에서 나온 물건이었으니 말이다.

다행히 검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MP 포션 같은 다른 것들도 정상 적용된다고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검을 뽑아 낸 용주는 언노운의 유해를 등에 이었다.

또 다른 언노운의 팔은 언노운의 복부를 꿰뚫고 튀어나와 있었다.

용주와의 거리는 불과 10cm.

검을 고쳐잡은 용주는 놈의 손을 잘랐다.

한 번에 잘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용주는 결국 녀석의 손을 잘라냈다.

손을 잃은 언노운이 괴성을 질렀다.

언노운의 유해에서 비껴 난 용주는 언노운을 노렸다.

용주의 손에는 방금 녀석에게서 잘라낸 녀석의 손이 들려 있었다.

휘익!

바람을 가르는 언노운의 손톱.

다 피하지 못한 공격에 옆구리를 후벼 파인 용주는 언노운의 손등을 내려찍었다.

잘려 나간 오른손은 왼손을 땅에 고정시키고 있었다.

용주는 놈의 왼팔을 잘라냈다.

동시에 언노운의 발톱이 용주의 가슴을 찢었다.

빠드득!

이를 악문 용주는 놈의 가슴을 베어 냈다.

그리고.

뒤로 나자빠진 녀석의 미간 사이에 검을 꽂아 넣었다.

“푸….”

입술 사이로 참고 있던 호흡이 새어 나왔다.

두 마리의 언노운을 쓰러뜨렸지만, 경험치가 오르거나 레벨이 오르지는 않았다.

계승자로서의 레벨은 언노운을 상대론 오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두 마리를 상대하면서 이 정도 상처라고?’

용주는 자신의 상태를 살폈다.

일반적인 헌터들이 봤을 때 용주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끔찍한 상처들이 수도 없이 많았고, 그중에는 제법 깊은 상처들도 있었다.

하지만 용주의 입장에선 달랐다.

언노운 2마리를 동시에 상대하는데 이 정도 상처라면 엎드려 절이라도 해야 할 정도였다.

‘뭔가가…. 달라지긴 한 건가?’

스킬을 제외하면 강해졌다는 체감은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결과는 이렇게 나와 있었다.

딱 한 번의 전투일 뿐이고, 언노운의 종류도 한정적이라 아직 뭐라 단정 지을 단계는 아니긴 했지만, 지금의 결과만 놓고 본다면 분명 유의미했다.

“…….”

옆구리를 짚은 용주는 주변을 살폈다.

당연하게도 사람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망설이지 마….’

스스로를 다그친 용주는 무릎을 꿇었다.

앞에는 언노운의 유해가 남아 있었다.

‘망설이지 말란 말이야. 아무도 없어. 아무도 없다고!’

스스로를 다그친 용주는 언노운의 복부를 붙잡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아직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하아….”

짧은 심호흡을 삼킨 용주는 녀석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살과 피가 튀었고, 내장이 흘러내렸다.

짧은 순간 두 번이나 먹은 게 역류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용주는 꿋꿋하게 다시 삼켜냈다.

시체 뜯어먹기.

빠른 회복을 위해선 이게 최선이었다.

* * *

“에잇! 퉤! 꽝이구만. 완전히 꽝이야.”

사내가 가래를 뱉었다.

용주에게 막말을 쏟아냈었던 그 헌터였다.

“그러게요. 이렇게 완전 공친 거는 저도 처음인 것 같아요.”

그와 동행한 헌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향한 루트는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

언노운도 없었다.

단 한 마리도 말이다.

“안 그래도 이번 달엔 카드값도 많이 나올 텐데. 이게 다 그 새끼 때문이야.”

씩씩 화를 낸 헌터는 재킷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담배 케이스를 꺼냈다.

헌터는 담배를 케이스 옆면에 그었다.

불은 붙지 않았다.

신경질적으로 몇 번을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아이, X발 별게 다 지랄이네, 진짜!”

“좀비 헌터란 사람은 괜찮을까요?”

사내의 눈치를 살피던 헌터가 물었다.

“뭐?”

“아니, 그게…. 좀 걱정돼서요.”

“그 녀석 걱정할 시간 있으면, 돌아가신 사돈의 팔촌 어르신 명복이나 빌지 그러냐.”

헌터의 인상이 좀 더 나빠졌다.

“그렇지만 역시 혼자 놔두는 건 좀…. 나중에 이야기 나오면 어떡해요?”

“아이, 진짜 오늘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날인가. 이놈이고 저놈이고 아주 마음에 안 드는 것투성이구만!!”

헌터는 손을 움켜쥐었다.

부러진 담배는 그렇게 버려졌다.

“칫! 난 경고했으니 마음대로 해. 뒤지든 말든 내 알 바 아니니까.”

혀를 찬 헌터는 걸음을 옮겼다.

“아니… 그렇게 말씀하시고 가시면 제가….”

곤란함을 표한 헌터는 그를 따라붙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음?”

“아?! 으아아아!!”

바닥이 꺼지며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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