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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23화 (23/357)

23화

땅에 박힌 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 착용할 수 없습니다.

몇 번을 해봐도 마찬가지였다.

검이 엄청나게 무겁다거나 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런 거였으면 지면에도 영향이 있었을 테니까.

‘그래. 그런 건가?’

용주는 스테이터스창을 불러왔다.

이름 : 이용주.

직업 : 계승자

레벨 : 5

HP : 72/100

MP : 1/19

힘 14

민첩 14

체력 24

지능 14

잔여 능력치 : 12

대항력 : 2

5레벨인 자신의 힘 스탯은 14.

검의 필요 요구치인 20에 비하면 한참 낮은 수치였다.

힘 20

민첩 14

체력 24

지능 14

잔여 능력치 : 6

잔여 능력치 중 일부를 투자한 용주는 다시 한번 검을 움켜쥐었다.

검은 땅에서 쑤욱 뽑혀 나왔다.

‘막 안 찍고 남겨놓길 잘했네.’

첨예검을 움켜쥔 용주는 골드록의 유해를 베어 냈다.

가죽과 살점을 파고 들어가는 느낌은 보급형 롱소드와 제법 큰 차이가 느껴졌다.

기존에 사용하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무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지?’

검의 위력을 테스트하던 용주는 검의 손잡이를 바라보았다.

손끝을 타고 느껴지는 이질감 때문이었다.

‘분명 5개였는데….’

검 손잡이에 남아 있던 발톱 자국 중 하나가 사라져 있었다.

‘남아 있는 자국은 4개…. 혹시 그런 건가?’

검의 설명 중엔 ‘동족 포식’이라는 특수효과가 적혀 있었다.

검에 남아 있는 발톱 자국은 총 5개.

중첩되는 총 공격력 또한 다섯 번.

어쩌면 이게 중첩 여부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머지 하나는….’

첨예검을 집어넣은 용주는 ‘폭군 테이고른의 저택 지도’를 확인했다.

지난번 지도와 마찬가지로 지도에는 위치가 기록되어 있었다.

기존의 지도와 다른 점을 2가지 꼽자면, 하나는 점으로 표시된 위치 바깥에 외곽선이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열쇠가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영토…. 아이템 설명에 적힌 대로라면 이 외곽선은 아마 그걸 표시한 걸 테고, 열쇠가 없다는 건 저 안에서 알아서 구하거나, 몰래 잠입하라는 건가?’

표시되어 있는 건 교대역 인근이었다.

거리만 놓고 보면 그렇게 가깝다고 할 만한 위치는 아니었다.

용주는 퀘스트 창을 확인했다.

아까 분명 퀘스트가 수주되었다는 메시지를 봤었다.

▶ 폭군 테이고른의 저택에 잠입하십시오.

- 테이고른이 침입자의 존재를 눈치챌 경우 퀘스트는 실패합니다.

- 제한시간 : 개방 후 12시간.

예상 적중이었다.

다음 미션은 잠입.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마찬가지로 극히 한정되어 있었고, 제한 시간 외에 실패 조건이 하나 더 제시되어 있었다.

‘한 번으로 끝낼 생각은 없나 보군. 안 그래?’

대답해 줄 이 없는 질문을 던진 용주는 고개를 돌렸다.

저 앞에 일그러진 차원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포탈.

아까 봤던 출구는 분명 저걸 의미할 것이다.

‘일단은 더 따라 가보는 수밖에 없겠지. 선택권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보급형 롱소드를 챙긴 용주는 포탈 앞에 섰다.

처음 보는 괴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자신의 모습이 스스로도 웃겼지만, 뭐 어쩌겠는가. 일이 이렇게 벌어지고 있는데.

포탈을 빠져나온 용주는 눈동자를 굴렸다.

주변엔 다시 구름다리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놀들이 있던 동굴도, 그전에 자신을 감쌌던 안개도 보이지 않았다.

‘뭐지?’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이질감에 용주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알 수 없는 차원에 들어서고 지금까지 못해도 10시간은 족히 소요됐을 게 분명했다.

수색과 전투 그리고 회복에 들어간 시간이 그리 짧지만은 않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해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용주는 서둘러 핸드폰을 확인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핸드폰이 가리키고 있는 시간은 자신이 이곳에 도착했던 시간에서 채 1분도 흐르지 않아 있었다.

‘시간이… 그대로잖아?’

“으아… 으아악!!”

놀라움을 삼키고 있던 용주의 귀에 날카로운 비명이 내리꽂혔다.

약간의 시간 간격을 두고 나타난 반응이었다.

“꺄악!”

“피… 피…!!”

“심하게 다친 것 같은데요?”

“혹시 묻지 마 칼부림?”

“조… 좀비다!”

“좀비라고요?! 히익!!”

“에이~ 설마 특수 분장 배우겠죠. 어디 근처에서 촬영이라도 하나 보죠?”

“사진! 사진 찍어야 해! SNS에 올려야 한다고!”

한 사람의 목소리뿐이 아니었다.

비명은 연쇄적으로 여러 각도에서 들려왔다.

다급하게 뛰는 발소리도 들렸다.

핸드폰 플래시가 터지는 소리도 들렸다.

용주는 그 원인이 자신이란 걸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봐 버렸으니 말이다.

유리창 너머의 자신은 피범벅이었다.

상처는 대부분 아물었지만, 옷에 남은 핏빛 물결과 입가에 번져 있는 노골적인 핏자국은 그대로였다.

“괘… 괜찮으세요? 거기 빨간 안경 쓰신 남성분, 어서 119에 전화를!”

한 용기 있는 남성이 용주에게 다가와 외쳤다.

“아니, 부를 필요 없다.”

그를 바라본 용주의 목소리는 침착하기 그지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지금 이렇게 피가…!!”

반발하는 사내에게 용주를 팔을 걷어 보였다.

사내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붉게 물든 셔츠 아래에는 아무런 상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난 헌터다. 그리고 이건 카오스 게이트에서 묻은 언노운들의 피다.”

용주는 은시계를 보였다.

확고하고 확실한 헌터의 증명이었다.

“헌터? 언노운들의 피…? 얼굴에 묻은 그것도요?”

은시계를 흘겨본 사내가 용주의 얼굴을 가리키며 물었다.

얼굴에 묻어 있는 핏자국은 튀었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마치 입에서부터 뭔가가 팍 터진 느낌이었다.

“그래.”

자신의 뺨을 손등으로 훑은 용주는 방향을 틀었다.

몰려들었던 인파는 홍해가 갈라지듯 갈라지고 있었다.

* * *

“후….”

샤워를 마치고 나온 용주는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말이 좋아 새 옷이지, 전에 한 번 망가졌던 옷을 수선한 옷이었다.

용주는 집이었다.

동생이 있을 시간이었으면 아마 모텔을 잡았을 테지만, 학교가 끝나기까진 아직 시간이 있었다.

‘찢어진 옷들은 수선할 수 있을지 봐야겠군.’

용주는 핏자국을 씻어낸 옷들을 살펴보았다.

입고 다니는 옷들은 상당히 저렴한 것들이었다.

찢어지면 버려도 아깝지 않은 가격대였다.

하지만 용주는 그것조차도 직접 수선하며 입고 있었다.

헌터 일을 하면 의식주 중 주는 자동으로 해결되는 부분이 있었다.

아주 좋은 집은 아니지만, 그래도 살 공간은 제공되니 말이다.

하지만 나머지 두 가지는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아껴야 했다.

띵동!

용주가 머리를 다 말린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인터폰엔 양복을 입은 웬 낯선 사내가 서 있었다.

겉모습만 봐선 동생과 비슷한 나이.

그러니까 고등학생 정도로 보였다.

체형은 제법 마른 체형이었고, 머리는 막 자른 것처럼 단정했다.

“누구시죠?”

“혹시 이용주 헌터님 본인 되십니까?”

인터폰을 바라본 사내가 물었다.

헌터냐는 그의 질문에 용주의 눈빛은 조금 바뀌어 있었다.

“그런데?”

“여쭤볼 게 몇 가지 있는데, 잠시만 시간 내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네가 누구인지부터 밝히는 게 순서라고 생각하는데?”

안주머니에 손을 넣은 청년은 수집 하나를 꺼내 보였다.

경찰 수첩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마크가 전혀 달랐다.

“제 이름은 ‘차동제’. 헌터 길드에서 나온 특별 조사관입니다.”

“특별 조사관?”

“그렇습니다. 지난번 D급 카오스 게이트에서 벌어졌던 사건번호 F-33-350 사건 조사차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아! 이렇게 말씀드리면 이해하기 힘드실지도 모르겠군요. ‘비밀의 방’…. 카오스 게이트 내부에 있었던 그 괴유적과 언노운에 대해 몇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협조해 주시죠.”

“…관심 없다. 말해야 할 의무도 없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용주가 이야기했다.

그가 묻고 싶은 게 많을 거란 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쪽에서 할 말은 없었다.

한다고 믿어줄 리가 없을뿐더러, 별로 하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결과에 따라선 헌터님의 헌터 등급이 새로 부여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거절하시겠습니까?”

“등급이… 재부여 될 수도 있다고?”

“그렇습니다.”

동제의 대답을 끝으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살며시 문이 열렸다.

“그래. 묻고 싶은 게 뭐지?”

문틈 사이로 얼굴을 비친 용주가 물었다.

“여기서 이야기하기엔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헌터 길드로 가시죠. 차량은 준비해 뒀습니다.”

만족스러운 표정을 머금은 동제가 앞장섰다.

방안을 살핀 용주는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 * *

“음… 그러니까. 언노운과의 직접적인 전투는 없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 맞습니까?”

자신이 적은 메모를 보던 동제가 물었다.

벌써 3번째 같은 질문이었다.

두 사람이 있는 장소는 헌터 지부의 6층.

용주도 한 번 와본 적 있는 장소였다.

헌터가 막 되었을 즘이었던 것 같다.

“그래.”

사실을 사실대로 말해줄 생각은 없었다.

그렇기에 용주는 적당히 둘러대는 식의 대답을 하고 있었다.

100% 거짓은 아니었다.

그랬다간 말이 이상하게 꼬일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같은 걸 여러 번 물어온 동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반응에 용주는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집요하게 파고들 줄 알았는데.

“석판에 적힌 점자 시…. 대략적인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점자로 적혀 있었다죠? 그 이야기도 사실이 맞습니까?”

“그래. 사실이다.”

“확인했습니다. 그럼 마지막 질문입니다. 게이트의 소멸을 가능케 했던 마지막 시의 구절과 방법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암흑 속에 남은 이는 제단에 기도를 올렸다. 그를 감싼 노랫소리는 점점 희미해졌고, 사내는 이내 정신을 잃었다. 빛은 사내를 비추고 있었다.”

잠시 뜸을 들이던 용주가 이야기했다.

기억을 더듬는 정도의 시간만으로 시의 구절을 만들어 낸 용주였다.

“기록했습니다. 자연 소멸…. 게이트가 그런 식으로 사라지는 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의 기록만으론 그렇게 판단되는군요.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다른 방법이 있든가.”

마지막 기록을 마친 동제는 볼펜을 내려놓았다.

“이런 질문이었으면, 굳이 여기까지 올 필요는 없었을 거라 생각하는데? 이런 걸로 헌터 등급이 재분류 될 것 같지도 않고.”

“동행을 부탁드린 건 한 가지를 더 부탁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걸음을 옮긴 동제는 한 가지 기구를 가져왔다.

양손에 쥐는 무선 컨트롤러같이 생긴 기구였다.

“이게 뭔지 기억하십니까?”

한쪽 스틱을 건넨 동제가 물었다.

“헌터의 등급을 부여해주던 물건이었지. 아마.”

“보다 정확하겐 각성의 유무와 각성한 자의 역량. 그러니까 MP를 측정해주는 기구입니다. 정확한 명칭은 ‘티르의 손’이죠.”

“그래…. 그래서?”

“이용주 헌터님께 혹시 특별한 변화가 생기지 않았는지를 측정하려고 합니다. 결과에 따라선 말씀드렸던 등급의 재분류를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특별한 변화?”

“그렇습니다. 정체불명의 게이트를 닫은 분…. 아니, 말을 바꾸죠. 마지막까지 관여하셨던 분은 이용주 헌터님 본인이십니다. A급 헌터가 2명이나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 두 사람조차 해내지 못한 일이었죠. 어쩌면 헌터님이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헌터님께 큰 변화가 생겼을지도 모릅니다. 무의식중에 게이트 보스를 쓰러뜨렸을지도 모르죠.”

‘무의식중에 게이트 보스를?’

그럴 가능성은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게이트가 클리어된 건 그 사내를 만난 직후.

베이고, 꿰뚫려 죽음을 직면하고 있던 그때였다.

자신은 아무것도 베지 않았고, 아무것도 쓰러뜨리지 않았다.

그 게이트는 그런 식으로 클리어된 게 아니었다.

“전투를 거듭하면 할수록 헌터는 성장합니다. 당연하죠. 경험이란 소중한 자산이니까. 하지만 헌터가 가진 MP는 그렇게 쉽게 변화하지 않습니다. E급 헌터가 무수히 많은 경험을 축적해 D급 게이트 진입을 허가받는 경우는 있어도, C급 이상을 허가받는 경우는 거의 없죠.”

“내가 ‘진(眞) 각성’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건가?”

동제가 말한 예외의 경우를 짚은 용주가 물었다.

의미심장한 표정의 동제는 잠시 말을 아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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