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확실히 다른 녀석들과는 다르군.’
검을 비틀어 놈의 공격을 튕겨낸 용주는 놈의 다음 공격을 막아 냈다.
왼손에 비해 오른손의 힘은 떨어지는 감이 있었다.
‘하지만 근접 소모전이라면 이쪽도 바라던 바라고!’
왼손으로 이어지는 다음 공격을 받아낸 용주는 그대로 앞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왼손이 물러가고, 오른손이 그걸 이어받는 찰나의 순간이었다.
촤아악!
골드록의 손톱을 타고 피가 흘렀다.
용주의 피였다.
골드록의 손톱은 용주의 왼 어깨를 아래에서부터 위로 할퀴고 있었다.
골드록은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용주의 검엔 피가 묻어 있지 않았다.
공격은 불발이었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다.
그렇게 하려던 용주에게서 먹을 것만 쏙 빼먹은 골드록은 위협에서 벗어나 있었다.
뒤로 빠진 골드록은 둥지를 떠받치고 있는 돌기둥을 타고 올랐다.
지난번 카오스 게이트에서 봤던 것과 달리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생김새의 기둥이었다.
이윽고 덮쳐오는 골드록의 강하.
용주는 재빠르게 반응했지만 골드록의 움직임이 한 수 위였다.
골드록의 손톱은 교묘하게 칼날을 피해 용주의 손목을 찢고 지나가고 있었다.
‘빨라…. 어떻게 해서든 저 움직임부터 막아야 해.’
손목의 1/3이 잘려 나간 깊은 상처를 소리 하나 없이 인내한 용주는 곧장 방향을 틀었다.
지면에 착지한 골드록은 또 다른 기둥을 타고 오르고 있었다.
공격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놈의 움직임은 용주가 생각한 것 이상이었다.
보통의 E급 언노운을 상회한다고 봐도 무방했다.
게다가 놈은 집요하게 상처를 후벼 파고 있었다.
용주의 회복 속도는 상처가 벌어지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녀석은 보통의 언노운보다 지능적이었고, 또 교활했다.
‘한 번…. 딱 한 번이면 돼.’
하지만 저 움직임을 한 번만 통제할 수 있다면 이쪽에도 기회가 없는 건 아니었다.
생각해 둔 방법은 있었다.
위험한 도박수이지만 시도해 볼 가치는 충분할 것이다.
인벤토리를 불러온 용주는 투기의 보석을 손에 쥐었다.
보석이지만 이건 분명 소모품이었다.
추측할 수 있는 사용 방법은 우선 두 가지.
먹거나….
부수거나.
용주는 보석을 힘껏 움켜쥐었다.
손안에서 부서진 투기의 보석은 작은 결정이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 투기의 보석을 사용했습니다.
- 공격력이 20% 상승했습니다.
휘이익!!
골드록의 발톱이 기둥을 할퀴며 위협적인 바람이 일었다.
곡선이 아닌 직선을 그리는 골드록.
앞으로 뻗은 놈의 왼손에 시선을 고정한 용주는 결정적인 순간 검을 움직였다.
촤아악!!
골드록의 왼손이 용주의 복부를 뚫고 들어갔다.
공격을 시도했던 골드록조차 예상하지 못한 일격이었다.
왼손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적의 방어를 무너뜨리는 역할.
결정타를 날리는 일은 오른손이 해야 할 역할이었다.
‘드디어… 잡았다!’
끔찍한 고통에 이를 악문 용주는 놈의 뒷덜미를 움켜쥐었다.
반격의 시간이었다.
‘물어뜯기!’
이빨을 드러낸 용주는 놈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부패한 입술은 피와 살을 맛봤고, 골드록의 끔찍한 비명이 굴 안에 메아리쳤다.
골드록은 용주를 떼어내기 위해 발버둥 쳤다.
하지만 깊게 들어간 왼팔은 쉽게 빠지지 않았다.
촤악!
골드록의 살점 한 줄을 길게 뜯어낸 용주는 더욱 깊고, 더욱 크게 놈을 물어뜯었다.
“크르르릉!”
고통에 발버둥 치던 골드록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자세를 다시 잡은 골드록은 빼내려던 힘을 역으로 발산했다.
골드록의 왼팔은 순식간에 용주의 몸을 뚫고 바깥으로 튀어나오고 있었다.
“쿨럭!”
생살을 뜯던 용주의 입에서 한 움큼의 피가 흘러나왔다.
두 종류의 피가 섞인 액체였다.
그대로 용주를 들어 올린 골드록은 오른 손톱을 세웠다.
날카롭게 꽂힌 손톱의 끝은 용주의 뒷목갈비근을 꿰뚫고 있었다.
치명상이었다.
보통의 용주였다면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허용하지 않으려 발버둥 쳤을 일격이었다.
하지만 공격은 들어갔다.
동시에 두 군데가 꿰뚫린 용주의 모습은 살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모습은… 말이다.
‘어디 누가 먼저 죽나 해보자고…!’
치명상을 입었지만 용주는 죽지 않았다.
전투 속행.
패시브 스킬의 힘이었다.
남은 HP는 약 30.
HP 수치는 고장 난 체중계처럼 줄어들었다 차오르기를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29…. 30…. 28…. 29….
전체적인 모양으로 보면 명확한 하향 곡선이었다.
용주는 기를 쓰고 발악했다.
하지만 체력은 20 이하로 떨어지고 있었다.
쓰러지기 직전인 건 골드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승리를 위해선 결정적인 한 방이 더 필요했다.
그리고.
+1
용주의 마나가 그 순간 1 회복됐다.
‘물어뜯기!’
이빨을 드러낸 용주가 스킬을 한 번 더 발동시켰다.
스킬이 중첩되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걸 생각하고 있을 필요도 여유도 없었다.
사아아!
용주가 스킬을 한 번 더 발동하자 입가에서 피어오르던 아지랑이가 한층 더 짙어졌다.
피부는 부패가 더욱 진행된 듯 살점이 떨어졌고, 피부 아래 조직과 이의 일부가 겉으로 드러났다.
놈의 머리채를 붙잡은 용주는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반쯤 뜯겨나갔던 골드록의 머리는 더 이상 붙어 있지 못하고 쑥 뽑혀 나왔다.
쿵!
힘을 잃은 골드록의 다리는 무너졌고, 이내 앞으로 꼬꾸라졌다.
<우두머리 골드록을 쓰러뜨렸습니다.>
▶ 퀘스트를 클리어했습니다.
▶ 퀘스트 클리어 보상으로 대항력이 1 상승했습니다.
▶ 출구가 활성화되었습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30골드를 획득했습니다.
▷ ‘질풍의 보석’을 획득했습니다.
▷ ‘골드록의 트로피’를 획득했습니다.
▷ ‘골드록의 첨예검’을 획득했습니다.
▷ ‘폭군 테이고른의 저택 지도’를 획득했습니다.
▶ ‘물어뜯기’의 스킬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Lv2)
▶ 새로운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 시체 뜯어먹기
▶새로운 퀘스트가 수주되었습니다.
“큭…!”
용주는 무릎을 꿇었다.
눈으로 마주한 상처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심각했다.
‘젠장…. 출혈이 너무 심해.’
가장 내상이 심한 상처는 2개였다.
복부와 뒷목갈비근의 관통상.
골드록의 양손은 아직도 자신을 관통해 있었다.
뽑으려고 마음먹으면 뽑아낼 순 있었다.
차라리 정신을 잃고 싶을 만큼 엄청난 통증이 동반되겠지만 할 순 있었다.
하지만 그 뒤에 일어날 막대한 양의 출혈은 이미 예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무언가에 꿰뚫렸을 때.
특히 동맥이나 장기가 관통당했을 때 그 물건을 함부로 뽑지 않는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악이나 깡.
의지만으론 아마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물어뜯기… 스킬을 너무 맹신한 건가…?’
지금에 와선 작은 후회가 들었다.
처음 사용해 본 스킬의 압도적인 위력 앞에 오로지 그 한 방만을 생각했었다.
한 번만 적중시키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바보 같은 판단이었다.
발악하며 사용한 2번째 물어뜯기로 HP는 급격하게 차올랐었다.
하지만 그 이후 HP는 계속 줄어들고 있었다.
회복량은 그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HP는 생명의 수치.
저게 0이 된다는 건 곧 죽음을 의미할 것이다.
숙련도니 스킬 레벨이니 하는 것도 다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자연 회복력만으론 따라가지 못해. 뭔가….’
용주는 하나의 문구에 의식을 집중했다.
최대한 빠르게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스킬.’
다급하게 스킬창을 불러온 용주는 리스트를 확인했다.
▶ 시체 뜯어먹기 (Lv 1)
- MP 소모랑 : 0
- 시체의 피와 살을 취해 HP를 회복합니다.
- 신선한 고기일수록 회복량이 증가합니다.
그곳엔 분명하게 생겨 있었다.
또 다른 스킬이.
‘시체 뜯어먹기….’
이름부터 설명까지 스킬이라고 하기도 뭐할 만큼 이상했다.
하지만 그런 걸 따지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전부 해주겠어.’
스킬을 맹신하다 생긴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기댈 수 있는 건 이것 말곤 없었다.
골드록의 유해를 붙잡은 용주는 놈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최소한의 인간다움이니, 도덕이니, 품위니, 그런 건 머릿속에 없었다.
물어뜯기를 사용하면서도 뭔가를 먹은 기억은 없었다.
피는 좀 마셨을지언정, 고기는 삼키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고기를 먹고 피를 마셨다.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꿀꺽!
한 덩이를 삼킨 용주는 놈의 오른손을 뽑아냈다.
예상대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용주는 골드록의 유해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피는 빠르게 멎었고, 커다랗게 뚫렸던 상처 또한 새롭게 자라난 세포로 채워졌다.
‘재생’의 회복 속도와는 확연히 차이 나는 속도였다.
심호흡을 한 용주는 나머지 한 손을 마저 뽑아냈다.
더 큰 상처였지만, 출혈량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두 개의 팔을 뽑아낸 용주는 골드록의 유해를 집어 던졌다.
급한 상처는 어느 정도 메워져 있었다.
‘젠장….’
뒤늦게 역류하는 게 느껴졌다.
골드록의 유해는 거의 가슴 부분까지 뜯겨 있었다.
“으…. 우읍!!”
두 손으로 땅을 짚은 용주는 입안에 남아 있던 살점을 토해냈다.
분명 인지하고 벌인 일이건만, 한발 늦게 인지 부조화가 벌어지는 것 같았다.
‘피는…? 상처는?’
물처럼 흐르는 침을 닦아낸 자신의 뒷덜미에 손을 올렸다.
100% 온전한 피부라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뚫린 감촉은 없었다.
복부도 마찬가지였다.
위중해 보였던 상처는 어느새 서서히 회복되어 가고 있었다.
‘살긴… 산 건가?’
안도감이 혈관을 타고 흘렀다.
용주는 대자로 뻗어 버렸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계승자…라고? 내게 대체 뭘 계승시킨 거냐? 어?!’
팔등으로 두 눈을 가린 용주가 자조 섞인 미소를 머금었다.
적을 물어뜯어 죽이는 것도 모자라, 이제 그 적의 시체를 먹어치우기까지 했다.
계승자니 뭐니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려고 해도 이건 그냥 좀비지 않은가.
“하아….”
그 상태로 한참을 굳어 있던 용주는 간신히 상체를 일으켰다.
이제야 좀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시체 뜯어먹기를 사용한 덕분인지 상처 회복 속도는 상상 이상이었다.
HP도 제법 많이 회복되었다.
문제는 정신적인 대미지.
뭔지도 모를 생명체를 썰지도, 조리하지도 않고 생으로 뜯어먹었다는 그게 생각보다 역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생고기 하나 뜯어먹은 거 가지고 호들갑 떨지 마. 별일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그친 용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확인하지 못하고 넘어간 게 한가득이었다.
사용하지 않은 마나포션을 제외하면 새로 추가된 품목은 총 4가지였다.
‘질풍의 보석’, ‘골드록의 트로피’, ‘골드록의 첨예검’, ‘폭군 테이고른의 저택 지도’.
인벤토리를 연 용주는 하나씩 아이템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 질풍의 보석
- 사용 시 1분 동안 ‘질풍’ 버프가 적용된다.
- 질풍 상태일 때 계승자의 모든 행동은 50%만큼 빨라진다.
▷ 골드록의 트로피
- 놀 우두머리 중 하나인 골드록의 머리.
- 상점에서 고가에 매입된다고 한다.
▷ ‘골드록의 첨예검’
- 골드록의 발톱으로 만들어졌다는 검
- 공격력 : 20
- 착용 가능 레벨 : 5
- 요구 능력치 :힘 20, 민첩 14
- 특수효과 : 동족 포식 - 같은 종류의 적을 연속해서 쓰러뜨리면 공격력이 1 증가한다. (최대 5회 중첩)
▷ ‘폭군 테이고른의 저택 지도’
- 폭군 테이고른의 영토와 그의 저택이 표시된 지도.
- 폭군 테이고른의 영지는 지정된 개방 시간에만 입장하실 수 있습니다.
- 개방까지 남은 시간 : 앞으로 80시간.
‘질풍의 보석은 투기의 보석과 같은 소모품인 것 같고… 트로피란 건 말하자면 정산품.’
상점에 있던 것들을 떠올려 보면 대충 그런 결론이었다.
신경 쓰이는 건 나머지 두 개.
‘골드록의 첨예검’이란 물건을 바라본 용주는 그걸 실체화했다.
검의 외형은 그리 특별할 것 없었다.
아니, 오히려 낡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나는 물건이었다.
검의 표면엔 약간의 녹이 슬어 있었고, 손잡이 부분엔 날카롭게 긁힌 자국 또한 남아 있었다.
외형만 보면 용주가 가지고 있는 보급형 롱소드 보다도 못해 보였다.
20이란 공격력 역시 어느 정도란 건지 전혀 와닿지 않았다.
‘시험해 볼까?’
실체화된 검을 바라보던 용주는 손을 뻗었다.
하지만.
▷ 착용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