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검을 뽑아 든 용주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지금은 적이라고 간주할 만한 것들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이 자신이 알고 있는 그런 류의 던전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전투는 불가피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어떤 녀석들이 나타날지는 알 수 없었다.
아까 느꼈던 것처럼 이곳이 카오스 게이트와 비슷하다면 언노운이 나타날 수도 있었고, 그 밖에 다른 무언가가 나타날 수도 있었다.
여느 던전에 등장하는 고블린이나 코볼트, 오크, 드래곤 같은 가상의 존재들 말이다.
좋든 싫든 곧 알게 될 테지.
‘그 전에….’
용주는 스테이터스 창을 열었다.
무시하고 지나칠 수 없는 게 있었다.
이름 : 이용주.
직업 : 계승자
레벨 : 1
HP : 100
MP : 15
힘 10
민첩 10
체력 20
지능 10
대항력 : 1
‘대항력….’
추가됐다는 메시지를 봤지만 거기에 대한 설명은 전혀 적혀 있지 않았다.
퀘스트 완료 보상이라면 분명 이로운 무언가이긴 할 텐데 말이다.
‘계승자’라는 이름이 주는 느낌을 생각해보면, ‘신성력’이나 ‘은총’ 같은 수치가 상승하는 게 조금 더 자연스러운 느낌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명명된 이름은 그런 게 아니었다.
지금은 이게 뭔지, 또 어디에 쓰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때가 되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지.
▶ 새로운 퀘스트가 수주되었습니다.
▷ 우두머리 ‘골드록’을 쓰러뜨리시오.
▷ 제한시간 24시간.
그런 용주의 앞에 새로운 퀘스트 알림이 나타났다.
선택지 따윈 없었다.
‘뭐… 상관없나?’
그다지 상관없는 이야기이긴 했다.
그가 던져준 선택지 중 애초에 선택할 수 있는 건 없었으니 말이다.
검을 가볍게 휘두른 용주는 손목을 움켜쥐었다.
잘려 나갔었던 오른손이 욱신거리는 것 같았다.
용주는 뒤를 돌아보았다.
뒤는 막혀 있었다.
퇴로가 있는 카오스 게이트와는 확연하게 다른 점이었다.
‘우두머리 골드록. 녀석을 게이트 보스라고 봐도 좋겠지? 제한시간 안에 끝장내지 못하면 끝장나는 건 내 쪽이란 걸 테고.’
여기서 말한 녀석이 어떻게 생긴 놈인지, 얼마나 강한 녀석인지는 알 수 없었다.
거기에 관해 불만을 제기할 생각은 없었다.
보스에 대한 정보가 없는 건 헌터에겐 드물지 않은 일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작은 그르렁거림에 용주는 검을 움켜쥐었다.
자신의 힘이라면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현재의 자신에 대해 어쩌면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 있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게 생긴 알 수 없는 변화 이후의 첫 전투.
이 기회는 어쩌면 그걸 시험하기에 가장 좋은 때일지도 모른다.
일직선의 길을 따라가던 용주는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세 갈래로 나뉜 갈림길이었다.
용주는 곧장 왼쪽 길을 선택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저 앞에 검은 털을 가진 짐승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이족 보행 야수형 언노운…. 생김새로만 보면 일단 그렇게 생겼군.’
녀석의 모습은 동물로 치면 하이에나와 유사했다.
일반적인 하이에나와 다른 게 있다면 놈이 두 발로 걸어 다니고 있다는 것 정도.
늑대인간의 사촌지간 정도로 보인다고 하면 아마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
일반인들에겐 신기한 생명체일지도 모르지만, 용주에겐 그리 낯선 생명체는 아니었다.
‘시험해 볼까?’
녀석의 뒤를 밟던 용주는 속도를 올렸다.
기척을 감지한 하이에나는 재빠르게 전투태세에 들어서고 있었다.
휘익!
용주가 휘두른 검이 바람을 갈랐다.
캉!
그를 막아서는 늑대인간의 날카로운 손톱.
한 손으로 용주의 검을 막아낸 늑대인간은 다른 한 손을 날카롭게 휘둘렀다.
좌측으로 몸을 튼 용주의 어깨에선 세 줄기의 핏방울이 흩어지고 있었다.
“그르릉!”
뒷다리에 힘을 실은 하이에나는 막강한 힘을 자랑하며 달려들었다
끼이익!
용주는 검을 끌어당겨 곧장 막아섰고, 이빨 사이에 낀 검에선 날 선 철 소리가 귀를 찢었다.
‘D급…. 아니, 그때 상대했던 녀석보단 약해 E급 정도야.’
검과 손톱이 엇갈릴 때마다 피가 흩뿌려졌다.
힘에서도 속도에서도 그때 상대했던 D급들에 비하면 부족하단 느낌이었다.
사신형 언노운들과는 당연히 비교할 수도 없는 수준이고.
물론, 그게 만만한 상대라는 걸 뜻하는 건 아니었다.
D급이 아닌 E급도 용주에겐 힘겨운 상대였으니까.
퍽!
놈의 명치를 발로 걷어찬 용주는 두 손으로 검을 움켜쥐었다.
늑대인간의 복부에서부터 오른쪽 가슴으로 이어지는 기다란 자상.
흩뿌려지는 핏줄기 속 오른발을 내디딘 용주는 X자를 그리는 또 하나의 상처를 그려냈다.
치명상을 입은 늑대인간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그릉….”
발톱을 세운 늑대인간은 단번에 흙먼지를 퍼 올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젠장!’
흙먼지 속 발소리는 순식간에 멀어지고 있었다.
그것도 네발로.
불길한 생각이 스친 용주는 곧장 추격을 개시했다.
언노운들 중에 저런 행동을 보이는 개체를 본 적이 있었다.
녀석이 도망가는 이유는 다른 녀석들을 데려오기 위함.
용주는 최선을 다했지만, 거리가 좁혀지는 일은 없었다.
‘이대로라면 놓치겠어.’
용주는 시야를 좀 더 넓혔다.
지형지물이나 뭔가를 이용해 놈의 이동을 방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이용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걸… 또 할 수밖에 없나?’
머릿속에 떠오르는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다만 평소라면 별로 사용하고 싶진 않은 방법일 뿐.
같은 걸 했다가 온몸이 난자당했던 기억이 있으니 말이다.
‘어쩔 수 없지.’
검을 고쳐 잡은 용주는 어깨 뒤로 칼날을 넘겼다.
‘시험해 보고 싶었던 것도 마침 있었고.’
휘익!
이윽고 날아가는 보급형 롱소드.
다리보다 몇 배는 빠르게 움직인 칼날은 늑대인간의 뒷다리를 꿰뚫었다.
“커헝!”
끔찍한 고통에 비틀거리는 늑대인간.
쓰러지기 직전 간신히 버텨낸 늑대인간은 그대로 뒤를 돌아보았다.
용주가 경험했던 최악의 상황의 재연이었다.
도주를 막으려 투척했던 무기.
결과적으로 도주는 차단했지만 용주는 무기를 회수하기 전까지 맨손으로 전투를 이어가야만 했다.
하나뿐인 무기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놈의 몸에 박혀 있었다.
하지만 용주에게도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다.
자신에게 생긴 스킬.
그 중 ‘물어뜯기’라는 스킬이 있었다.
병원에 반강제로 입원해 있는 동안 용주는 이것에 대해 실험해 봤었다.
헌터일이 아닌 일상에서의 테스트였기에 실험의 강도는 약했다.
고작 해봐야 푹 고아진 사골 뼈를 깨물어보는 것 정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성과는 충분했다.
보통이라면 씹지 못했을 그 뼈엔 잇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으니까.
스킬이란 건 분명 실존했다.
“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늑대인간은 그대로 용주에게 달려들었다.
다리에 박힌 칼 때문에 움직임은 상당히 부자연스러웠다.
타닥!
앞다리로 땅을 디딘 녀석은 힘껏 도약했다.
용주를 덮치는 늑대인간의 그림자.
놈의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던 용주는 녀석의 오른손에 자신의 손을 끼워 넣었다.
찢긴 상처에선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용주는 곧장 오른손을 잡아당겼다.
녀석의 다리가 지면에 닿지도 못한 짧은 순간이었다.
왼손으로 용주의 어깨를 짓누른 늑대인간은 입을 쩍 벌렸다.
수도 없이 자라난 날카로운 이빨들에선 침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놈의 눈은 용주의 어깨를 아주 가까운 곳에서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먹잇감을 노리고 있는 한 사람이 더 있었다.
더 가까운 곳에서 더 치명적인 곳을 바라보고 있는 자가.
‘물어뜯기!’
용주가 마음속으로 스킬을 외쳤다.
그러자 용주에게 작은 변화가 생겼다.
입술 부위에서 피어오른 검회색의 아지랑이가 그것이었다.
아지랑이라고 해도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보려고 집중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아지랑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변화는 확실했다.
아지랑이가 스친 용주의 입술은 부패한 것처럼 변해 있었다.
촤악!
허공에 흩뿌려지는 핏방울.
늑대인간의 가죽과 살점을 물어뜯은 용주는 놈의 목덜미를 한 번 더 물어뜯었다.
놈의 이빨이 자신의 어깨를 뚫고 들어가 있었지만 용주는 멈추지 않았다.
촤악!!
작은 세포의 움직임까지도 살아 있는 생살과 따뜻한 피가 입안을 가득 채웠다.
날고기를 먹어본 적이라면 있었다.
육회나 회를 먹은 적도 있었고, 생간이나 선지 같은 것 역시 먹어본 적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감각은 어디서도 느껴본 적 없는 감각이었다.
더럽다거나, 징그럽다거나, 야만적이라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마치 한 마리의 짐승이 된 것 같은….
그런 감각이었다.
꽈악!
왼손을 든 용주는 녀석의 머리를 붙잡았다.
어깨를 찢어 내려던 녀석의 악력은 급격하게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용주는 확실하게 녀석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녀석의 몸은 맥없이 늘어지고 있었다.
▷ ‘놀 투사’를 쓰러뜨렸습니다.
▷ 경험치가 상승했습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2골드를 획득했습니다.
“퉤!”
용주는 입안에 남아 있는 살덩이를 뱉어냈다.
인지하지도 못한 사이에 호흡은 제법 거칠어져 있었다.
‘젠장…. 이게 뭐야.’
용주는 입술을 훑었다.
손등에는 붉은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처음 계획은 이게 아니었다.
놈을 물어뜯는 것까진 동일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끝을 위한 과정이었지 결과가 아니었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놈의 숨통을 끊어놓는 건 놈의 다리에 박혀 있는 저 검이어야 했다.
하지만 목덜미를 물어뜯는 순간 다른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이대로 놈을 찢어발기리라는 생각.
고통에 발버둥 치는 놈의 숨통을 끊어놓으리라는 생각.
충동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사골에 들어 있던 뼈를 씹었을 때는 이런 충동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하아.”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크게 심호흡을 한 용주는 왼쪽 어깨를 손으로 짚었다.
놈의 이빨은 자신을 꿰뚫었었다.
뻥 뚫린 살점 사이로 피가 흐르고 있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상처는 거의 다 아물어 있었다.
피가 흐르고 있지도 않았고, 통증도 없었다.
용주는 두 팔을 비롯한 다른 상처들을 살펴보았다.
어떻게 봐도 온전한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까 봤던 상처 중 일부는 사라져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 ‘재생’의 스킬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Lv.1 → Lv.2)
아직 남아 있는 상처들 역시 천천히 아물어가고 있었다.
지혈을 하지 않았음에도 피가 멎었고, 상처가 아물었다.
신경이 마비되지 않는 한 계속되어야 할 고통 또한 서서히 잦아들었다.
빠르진 않았다.
쭉 관찰하고 있어도 관찰되지 않을 정도로 느리고 더뎠다.
하지만 상처는 확실하게 치유되고 있었다.
‘맞아야 스킬 레벨이 오른다는 거… 생각해보니, 나한텐 딱히 페널티가 아닌 것 같기도….’
일부러 맞아서 숙련도를 올린다.
따지고 보면 그건 강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일부러 맞는다는 건 우선 상대보다 자신이 강하다는 확신이 있고, 그걸 맞더라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 하는 행동일 테니까.
약한 사람은 일부러 맞지 않는다.
그냥 최선을 다한 결과가 그거일 뿐.
‘그건 그거고….’
검을 뽑아 든 용주는 벽면에 등을 기댔다.
상처가 회복되는 동안 생각해야 할 것들이 한가득이었다.
‘놀…. 그게 방금 녀석의 이름인가 보군. 아니, 이름이라기보단 종이라고 하는 게 더 맞으려나?’
메뉴창을 띄운 용주는 스테이터스창을 활성화시켰다.
RPG에 익숙한 이들에겐 놀이라는 종족이 낯선 종족이지만은 않을 테지만, 용주에겐 아니었다.
이름 : 이용주.
직업 : 계승자
레벨 : 2
HP : 61/100
MP : 11/16
힘 11
민첩 11
체력 21
지능 11
잔여 능력치 : 3
대항력 1
‘정말 한 단계 올라갔군.’
녀석을 쓰러뜨렸다는 메시지가 나왔을 때 레벨이 올라갔다는 문구가 함께 출력됐었다.
스테이터스창에 그 수치는 곧장 반영되어 있었다.
레벨뿐만이 아니었다.
전체적인 능력치들 또한 다 1씩 올라가 있었다.
올라가지 않은 능력치는 딱 두 개.
대항력과.
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