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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3화 (13/357)

13화

“석판의 마지막엔 제단에 도착한 세 사내가 믿음의 증거를 받쳤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그러자 빛이 내려왔고, 사내들은 어둠에 삼켜지지 않았다고 적혀 있었지.”

“어둠에 삼켜지지 않았다? 그 말은 출구가 열린다는 이야기네? 그 빛이란 게 출구란 거잖아. 그치?”

“일단은 그렇게 해석하는 게 맞겠지.”

헌터의 물음에 용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그 믿음의 증거란 게 뭔지에 대한 거겠네요.”

태영은 무의식적으로 좌우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 행동이 얼마나 의미 없는 행동이었는지를 깨달았다.

보이는 건 거의 없었다.

“제단 위에 그렇게 불릴 만한 건 없었다.”

형만이 이야기했다.

빛이 사라지기 전 그는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지금 이곳이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면, 이 위에 그런 건 없을 터였다.

“그런가요? 그렇다면 그건 대체 어디에…. 아니, 그보다 믿음의 증거란 게 뭐인지부터 생각해 봐야겠네요.”

“믿음의 증거라면 뭐, 주기도문이나 불경 같은 거 아니겠어?”

자신의 의견을 표한 헌터는 혼자 뭔가를 중얼거렸다.

그게 주기도문의 첫 문장과 불경의 첫 구절임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아무래도 그건 아닌가 본데요?”

“아니, 나 혼자만 해서 그런 걸지도 몰라. 세 명이 나온다며. 거기 두 사람. 나 좀 따라 해 봐.”

태영과 수지를 지목한 헌터가 이야기했다.

네 사람 중 상대적으로 만만하다고 판단되는 둘을 고른 결과였다.

“밑져야 본전이겠죠.”

수지의 눈치를 살핀 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영과 수지는 헌터의 주문을 따라 했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젠장, 뭐야? 이게 아닌가?”

헌터가 목덜미를 긁적였다.

빛 비스름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태연한 얼굴로 헌터의 주문을 따라 했던 수지는 용주에게 다가갔다.

“뭐 생각나는 거라도 있어?”

“아니. 아직. 그래도 종교 자체로 접근하는 시도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카오스 게이트 내부면 모를까, 이곳은 놀랍도록 인공적인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인간의 모습을 한 조각상. 악기가 그려진 타일, 피라미드식 제단, 거기에 점자가 적힌 석판까지.

왜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그건 부정할 수 없었다.

어쩌면 그런 접근 방식이 효과가 있을지도 몰랐다.

“세 명의 사내가 가져온 믿음의 증거…. 혹시 그거 성경에 나오는 동방박사 이야기랑 비슷한 건 아닐까요?”

손가락 마디를 깨물고 있던 태영이 이야기했다.

어둠을 헤치며 나아온 세 명의 사내와 그들이 준비해 온 세 가지 예물.

그 부분만 들으면 얼추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다.

“동방박사의 세 가지 예물이라면….”

“황금이랑 유향이랑 몰약. 이렇게 세 가지죠.”

수지의 이야기에 살을 붙인 태영은 네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황금? 황금이라고?’

태영이 제시한 세 가지 물건 중 유독 한 가지에 꽂힌 헌터는 생각을 더듬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기억이 있는 것 같았다.

‘아, 그래! 맞아! 그때 분명히!’

그리고 그런 헌터의 머릿속에 한 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을 때, 손에 걸린 나무 궤짝을 집어 던진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 그 안에서 쏟아졌던 건 다름 아닌 금괴였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황금이라면 나 본 적 있어.”

“그게 정말입니까?”

확신에 찬 목소리에 태영이 물었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헌터의 목소리라 더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래. 확실해. 나무 궤짝 안에 들어 있었어. 이형 신호탄을 터뜨렸던 곳 근처에 있던.”

“나무 궤짝 안에 금괴가?”

“그래. 다른 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뭐가 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황금이라면 확실히 있었어. 진짜야!”

놀라운 사실에 태영은 생각을 집중했다.

나무 궤짝 위치만 정확히 할 수 있다면, ‘믿음의 증거’라는 것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무 궤짝이라면 나도 본 적 있어. 두 손으로 지팡이를 들고 있는 노인 조각상 아래에서.”

나무 궤짝을 떠올린 수지가 이야기했다.

시신을 살피는 와중에 분명 봤던 기억이 있었다.

위치상으로 봤을 때 헌터가 말한 것과는 겹치지 않는 물건이었다.

“시도해 볼 가치는 충분. 그럼 그것들을 어떻게 가져올지가 문제군.”

두 사람이 말한 궤짝에 위치를 정리한 용주가 이야기했다.

그 추론이 정답일 거란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충분히 해볼 만한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궤짝의 크기는 팔 한 마디 정도.

엄청나게 큰 정도는 아니었지만, 세 개를 모두 챙긴다는 가정과 그 안에 들어 있을 물건들의 무게를 생각한다면 말처럼 간단하지만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게 예측 범위를 벗어난 어둠 속 언노운들 사이라면 더더욱.

“그렇죠. 근데 저희 아직 두 개밖에 말 안 하지 않았나요?”

“겹치지 않는 하나의 위치는 내가 알고 있다. 선 두 개가 끊어진 하프 타일 위였지.”

“엄청 구체적이네요.”

“뭘 그렇게 고민하고 그래? 그냥 열어서 내용물만 하나씩 쏙쏙 뽑아오면 되잖아.”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던 헌터가 이야기했다.

이제는 아예 남 일처럼 말하고 있는 그였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이야기지만, 가능하면 궤짝 상태 그대로 가져오고 싶다.”

“어째서?”

“사내들은 준비해 온 믿음의 증거를 바쳤다고 되어 있었다. 네가 만약 그들이었다면, 궤짝 안에 담아둔 것들을 놔두고 달랑 하나만 들고 왔을 것 같나?”

“그건… 그건 그냥 암호잖아! 너무 과몰입하는 거 아니야?”

헌터가 말했다.

시는 암호라고만 생각했지, 거기 나온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럴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었고 말이다.

“아니, 지금만큼은 나도 녀석의 말에 동의한다.”

잠자코 있던 형만이 이야기했다.

A급 헌터의 이야기에 헌터는 이내 말을 아꼈다.

“그럼 용주 씨 말대로 어떻게 가져올지가 문제네요.”

“한 팔에 하나씩 끼고 달린다고 가정하면, 둘이 가져올 수 있는 개수는 셋. 아니,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란 건가?”

어깨를 감싼 붕대를 이빨로 조인 형만이 이야기했다.

그의 눈은 용주를 향해 있었다.

“천만에.”

E급 헌터에게 하는 A급 헌터의 말이라고 하기에 형만의 이야기는 무게가 많이 빠지는 말이었다.

A급 헌터인 자신과 E급 헌터인 용주를 거의 동일선상에 놓고 말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비꼬고 싶다면 얼마든지 비꼴 수 있었다.

하지만 용주는 그러지 않았다.

여기서 살아 나가기 위해 해야 할 건 그런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잠깐만요. 근데 위치를 알았다고 한들 어떻게 하시려고요?”

두 사람을 번갈아 본 태영이 물었다.

“그래. 맞아. 저놈들 계속 움직이고 있잖아. 뭔가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분명 죽을 거라고.”

헌터가 형만의 눈치를 살폈다.

헌터가 생각하기에 여기서 이 두 사람이 움직이는 건 지극히 당연한 판단이었다.

자발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등을 떠밀었을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완전히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이 둘이 죽으면 자신도 끝장이었다.

“예측이 불가능하고 즉흥적인 대응이 힘들다고 해서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

“그게 무슨 소리예요?”

용주의 대답에 태영이 물었다.

“놈들의 움직임이 반복적으로 통일되는 순간이 딱 한 번 있다. 위험한 도박수지만 성공 가능성이 있는 건 그때뿐이다.”

“반복적으로 통일되는 순간?”

“한 사이클을 마친 녀석들이 처음으로 회귀하는 순간.”

이야기를 끝마친 용주는 형만을 바라보았다.

“수지가 말한 지점. 맡겨도 되겠지, A급 헌터?”

세 지점의 경로와 효율을 따져봤을 때 가장 이질적으로 떨어져 있는 궤짝은 역시 그거였다.

형만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용주보다 한발 먼저 앞으로 뛰쳐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언노운들이 제단의 첫 번째 계단과 평행선을 그리는 순간.

형만과 용주가 뛰쳐나갔다.

어둠 속에서 갈라진 두 사람은 곧장 찢어졌고, 완전히 다른 방향을 향했다.

‘루트상 먼저 챙겨야 할 건 금이 있다던 궤짝.’

머리 위를 지나는 언노운들의 소리 아래에서 용주는 계산해 두었던 정확한 보폭을 옮겼다.

이형 신호탄의 빛 속에서 보았던 궤짝은 생각했던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언노운들의 낫은 이 공간 곳곳을 몇 번이나 할퀴었었다.

그들의 낫질에 나무 궤짝이 찢겨 나갔다고 생각하는 게 어쩌면 더 자연스러운 판단이었을지도 모른다.

용주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용주는 그 가능성을 높다고 판단하지 않았다.

석판에 기록되어 있던 점자는 죽음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것까지 말하고 있었다.

그 기록 자체를 부정하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게 용주의 판단이었다.

쏟아져 있던 금괴를 챙긴 용주는 곧장 다음으로 향했다.

다음 목표는 하프 타일 위에 놓여 있던 궤.

생각해 뒀던 위치에 도착한 용주는 땅을 짚었다.

그리고 곧장 불길함이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나무 궤가 있어야 할 자리에 그것이 놓여 있지 않았다.

‘젠장…. 어디.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나무 궤가 부서져 있지 않을 거란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부서지지 않았다고 해서 움직이지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 건 자신의 실수였다.

‘처음 낫들이 지났을 경로를 생각하면….’

점점 다가오는 언노운들의 소리를 들으며 용주는 할 수 있는 최선의 사고를 다했다.

머리로 계산할 수 있는 영역에 있는 건 가장 처음 녀석들이 움직인 경로뿐이었다.

경로와 그에 따라 움직였을 궤짝의 위치를 계산한 용주는 곧장 생각했던 곳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거기에도 궤짝은 없었다.

‘젠장!’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던 용주의 머릿속에 다급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생각하고 사고하는 이성의 시간이 끝난 것이다.

이제 기댈 수 있는 건 절대적인 운의 영역.

들고 있던 궤짝을 끌어안은 용주는 땅을 기며 바닥을 더듬었다.

점점 다급해지는 용주의 손길.

하지만 그런 용주의 다급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궤짝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대체 어디 있는 거야!’

툭!

한참 바닥을 기던 용주에게 드디어 원하던 신호가 왔다.

왼발에 걸린 감촉에 서둘러 용주는 팔을 뻗었다.

드디어 원하던 걸 발견했다.

용주는 궤짝을 들어 올렸다.

이제 돌아갈 일만 남았다.

그렇게 생각했다.

끼이익!

너무도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 저 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뭐야…?’

예상치 못한 소리에 용주는 뒤를 돌아보았다.

놈들과 자신 사이의 거리를 가늠할 수 있는 수단은 청각뿐이다.

그렇기에 용주는 그 소리들에 귀를 기울여야만 했다.

분명 그러했다.

놈들과 자신의 거리는 분명 아직까지 도망갈 수 있는 충분한 거리였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 궤를 짚는 순간 놈들과 자신 사이의 거리는 말도 안 될 정도로 좁혀져 있었다.

놈들의 속도를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설마…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있던 녀석들이 있었던 건가?’

생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그것뿐이었다.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던 언노운들의 존재.

움직이지 않았던 또 다른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갑작스럽게 좁혀진 이 거리가 설명이 되긴 했다.

하지만 지금 해야 할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두 다리는 지금 어서 움직이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젠장!’

생각지도 못했던 복병에 용주는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하지만 거리는 벌어지기는커녕 점점 더 좁혀질 뿐이었다.

용주의 속도로 녀석들보다 빨리 저곳에 도착하는 건 불가능했다.

‘어딘가… 분명 어딘가 방법이 있을 거야….’

도저히 도착할 수 없음을 직감한 용주는 마른침을 삼켰다.

악기가 그려진 타일을 피하는 방법은 이제 와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방법이었다.

거기 기댄다고 하면 자신의 목숨을 운에 건다는 소리나 마찬가지.

그건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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