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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1화 (11/357)

11화

[악기를 연주하던 자들은 악기를 내려놓았다. 처형자들은 그들의 악기를 밟고 지나갔다.]

지금 이 상황이 시와 연관이 있다면 가장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이 문장이지 않을까 싶었다.

‘근데 대체 뭐지? 뭘 의미하는 거야?’

하지만 용주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딱 거기까지였다.

이게 뭘 의미하는 건지.

저들의 저 행동과 이 문장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도무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아니! 내 말에 대답을 좀 하라고?!”

세 사람의 투명 인간 취급에 헌터가 불쾌감을 표했다.

얼굴 액면가로 볼 때 이쪽이 한참은 선배인 거 같았었는데, 이래서 요즘 어린 것들이란….

“말해! 있어? 없…?!

끼이이이익!!

헌터의 목소리를 치고 들어온 날카로운 소리.

하려던 말을 미처 끝마치지도 못한 헌터는 귀를 틀어막았다.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끔찍한 소리가 이것보다는 듣기 좋을 것 같았다.

“윽…! 이게 무슨 소리야!”

“날카로운 무언가가 땅을 긁는 소리….”

“누가 그걸 몰라서 물어?!”

다가오기 시작하는 소리의 행렬.

“으아아악!!! 살려줘! 살려줘!!!”

고막을 찢는 소리 속에서 한 사내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살이 갈리고 내장이 튀는 질퍽한 소리가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이 목소리는… 아까 그 C조의 헌터 같은데요.”

“뭐야?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냐고?!”

다시금 이성을 잃어버린 헌터는 용주의 양어깨를 붙잡았다.

“소리도 안 내고, 불도 안 켰잖아! 안전한 거 아니었냐고?!”

헌터의 추궁에 용주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이자의 말대로였다.

지금까지의 룰 대로라면 그가 죽어야 할 원인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째서….’

하지만 그는 죽었다.

보이진 않았지만 확실하게 죽었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그만! 그만하세요. 누굴 탓할 상황이 아니잖아요! 다 똑같이 처음 겪는 상황이라고요!”

격해지는 분위기에 태영이 제지하며 나섰다.

태영에 의해 강제로 떨어져 나온 헌터는 땅에 침을 뱉었다.

끼리끼끽!

비명과 함께 잠시 멈춰 섰던 행진은 곧장 재개되었다.

‘잠깐! 방금… 뭔가가….’

그리고 그 소리를 듣던 용주는 소리들의 균열이 있음을 느꼈다.

얼핏 들으면 소리는 균일하고 일정하게 들렸다.

하지만 자세히 귀를 기울이면 소리마다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일반인들은 감히 구분하지 못할 작은 차이.

언노운들의 낫은… 완벽한 수평선을 이루고 있지 않았다.

‘지금까지 보여준 녀석들의 행동을 보면 분명 규칙이 있을 거야.’

용주는 네 번째 석판의 시를 떠올렸다.

아무리 불규칙해 보여도 그 속에 뭔가 규칙이 있을 거란 게 용주의 판단이었다.

그게 뭔지 알 수 있다면, 분명 지금 상황을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악기를 내려놓았다….’

두 번째부터 반복되는 시의 구조를 생각해 보면,

사람이 저지른 무언가의 행동.

처형자의 행동.

대략적으로 이런 문맥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즉, 두 번째와 세 번째에 적혀 있는 건 죽음을 부른 행동을 의미했다.

네 번째 문장도 비슷했다.

하지만 네 번째 문장은 결정적인 부분에서 앞선 두 개와는 조금 달랐다.

네 번째 행동을 취한 사람이 죽었다는 묘사는 어디에도 없었다.

즉, 네 번째 행동은 죽음을 부르는 행동이 아닌 살기 위한 행동.

그렇게 해석할 수 있었다.

‘악기… 악기라고?’

악기에 대해 생각하던 용주는 눈살을 찌푸렸다.

헌터의 손에 무언가가 들려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무기였다.

“다들 가지고 있는 무기 버려.”

확신할 순 없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방법은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무기를 버리라고? 그게 웬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용주의 이야기에 헌터가 즉각 반발했다.

하지만 태영과 수지는 달랐다.

두 사람은 용주의 한마디에 곧장 무기를 버리고 있었다.

“가지고 있어 봐야 할 수 있는 것도 없잖아요. 왜요? 칼 들고 직접 싸우기라도 하시게요?”

“뭐? 너 내 검이 대체 얼마짜린 줄 알아?”

태영의 목소리에 헌터가 따졌다.

이 검을 장만할 때 거의 1,000만 원에 육박하는 값을 지불했다.

그런 걸 버리라고 해서 쉽게 버릴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1억이든 10억이든 상관없는데, 목숨값이라 생각해. 그 정도면 싸잖아.”

그리고 그런 헌터에게 돌아온 수지의 목소리.

최소 C급 이상인 의료 헌터의 한마디에 헌터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젠장… 그래, 알았어. 버릴게. 버리면 되잖아.”

쓰디쓴 한숨을 삼킨 헌터는 검을 바닥에 던졌다.

“이걸로 된 거지? 우리 안전한 거 맞지?”

무기를 버린 헌터가 물었다.

하지만 용주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악기… 그 문장이 의미하는 게 이게 맞는 거겠지?’

무기를 버린 직후에 느낀, 알 수 없는 이질감.

그 이질감에 대해 생각하던 용주는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되돌아보았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뭔가를 놓친 것 같은… 그런 불길한 느낌이.

“야! 사람이 말하면 대답을 좀 해! 어?”

‘잠깐만….’

일련의 사건들을 되짚어가던 용주는 뭔가 이상하단 걸 깨달았다.

연주자가 버린 악기를 헌터가 버린 무기라고 해석하는 건 단편적으론 그럴듯한 해석처럼 보였다.

저기 있던 헌터가 살해당한 것도 어느 정도는 설명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이상한 점이 있었다.

녀석들의 낫이 그리는 불규칙적인 왜곡.

이것만으론 그 현상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은 어딘가에서부터 잘못되어 있었다.

“이게, 정말 보자 보자 하니까. 나도 인내심에 한계란 게 있다고!”

반복된 무시에 헌터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리고 그 순간!

입이 틀어막힌 헌터는 그대로 땅에 처박혔다.

“죄송하지만, 조금 조용히 해주셨으면 싶은데요.”

그의 팔을 비튼 태영이 속삭였다.

신사적이던 그의 목소리는 그대로였지만, 그가 풍기는 분위기는 이전과 같지 않았다.

“상황이 지금 같지만 않았어도 당신 혀를 잘라냈을지도 모릅니다.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방해라도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를 놓아준 태영은 안경테를 올려 썼다.

몸을 일으킨 헌터는 분노로 씩씩거렸지만, 그 이상의 어떤 행동은 취하지 않았다.

그 이상 했다간 피를 보는 쪽이 누구일지는 안 봐도 뻔했으니 말이다.

‘아니야. 이게 아니야.’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은 용주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생각 중에 나온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런 용주의 발뒤꿈치를 타고 한 가지 정보가 전해졌다.

볼록 솟아오른 타일의 부분.

뒤를 돌아본 용주는 단번에 퍼즐이 맞춰지는 것을 느꼈다.

‘만약 이게 시에서 말한 떨어진 악기라면?’

잊고 있었지만, 악기가 그려진 타일의 존재는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만약 이게 시에서 말한 악기라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 보다 정확하게 설명이 되었다.

지금 언노운들이 지나는 길은 이 악기들이 그려진 타일들.

불규칙적으로 휘는 낫의 소리는 그 때문에 일어나는 것일 것이다.

소리도 내지 않고 불도 사용하지 않은 헌터가 죽임을 당한 건 그가 서 있던 타일이 악기가 그려진 타일 위였거나, 악기와 악기 사이에 놓인 타일이었기 때문.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

‘그럼 남은 문제는….’

시의 의미와 생존법까지는 파악했다.

남은 건 녀석들이 다니지 않을 길을 찾는 것.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런 게 머릿속에 남아 있을 리 없었지만, 용주에게 그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 잘 들어주길 바란다. 딱 한 번만 이야기할 테니까.”

생각을 정리한 용주가 입을 뗐다.

“뭔가 알아냈어?”

“그래. 어서 말 좀 해봐. 기다리다 목 달아나겠다고.”

“녀석들이 움직이고 있는 기준은 바닥에 떨어진 악기다.”

“악기? 그건 또 뭔 개소리야? 악기 같은 게 여기 어디 있어?”

용주의 이야기에 헌터가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불이 꺼지기 전 이곳의 여기저기를 살펴봤던 헌터였다.

여기 악기 같은 건 없었다.

“아니, 악기는 분명 있다. 여기 내 발밑에.”

“발밑이라고?”

미간을 좁힌 헌터는 한곳에 시선을 집중했다.

거긴 바이올린같이 생긴 무언가가 조각되어 있었다.

“설마 그 조각을 악기라고 하려는 건 아니지?”

“‘악기를 연주하던 자들은 악기를 내려놓았다. 처형자들은 그들의 악기를 밟고 지나갔다.’ 시의 다음 문장은 이러했었다.”

“악기를 연주하던 자들?”

“나는 그 문장이 말하는 악기가 우리가 들고 있는 물건을 의미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지. 지금 이대로면 우리 모두 한 줌 고깃덩어리가 되고 말 거다. 저기 있었던 그 헌터처럼.”

“아니! 그러니까! 알기 쉽게 좀 설명해 보라고! 나보고 뭘 더 어떻게 하라는 건데?”

“말했다시피 악기는 바닥에 있다. 그리고 이 악기들을 녀석들은 밟고 지나갈 거다. 우리가 해야 할 건 놈들이 다니지 않을 길을 찾는 거지.”

“녀석들이 악기가 그려진 이 타일을 지나간다고 한다면, 놈들이 지나지 않을 곳은 악기가 그려진 타일을 제외한 곳이겠네요.”

“악기와 악기 사이도 피해야 해. 정말로 녀석들이 그렇게 움직이면 필히 지나게 될 테니까.”

“그렇네요. 그럼 그 조건을 만족하는 장소를 어떻게 찾느냐가 그럼 남은 문제인 건데….”

근심 어린 표정의 태영은 손가락을 깨물었다.

자신이 한 말이었지만, 그런 게 가능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시야는 처참했다.

바닥에 그려진 타일이 단서란 걸 알아차려 봤자 살길을 찾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설령 한두 개를 알아낸다고 하더라도 상황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타일 위에 올라가 있으면 되는 거면 모를까 어디에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 모를 타일을 모두 계산하고 그 경로를 읽어내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끽! 끼기긱!

생각에 잠겼던 태영은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소리가, 놈들이 다가오는 소리가 급격하게 빨라지고 있었다.

“제단… 형만 아저씨가 서 있었던 거기라면 괜찮지 않을까?”

수지가 제단이 있던 방향을 가리켰다.

거기라면 안전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좋은 생각이다. 하지만 이 어둠 속에서 현실적으로 도착하지 못할 거다. 녀석들의 행진이 더 빨라진 지금이라면 더 볼 것도 없지.”

수지의 말은 확실히 가능성이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러했었다.

하지만 상황은 급변하고 있었고, 그 방법은 순식간에 현실 불가능한 계획이 되어 버렸다.

“그럼….”

“악기와 악기 사이에 놓이지 않은 타일은 이 근처에도 있다. 하지만 한 명이 겨우 서 있을 정도로 공간은 넓지 않아. 한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한 명이 최대일 거다.”

“그게 어딘데?”

헌터가 다급하게 물었다.

‘네가 무슨 이곳의 설계사냐?’

‘순간 기억 능력이 있는 능력자도 아니고 그런 걸 어떻게 아느냐?’와 같은 물음이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헌터는 말을 아꼈다.

살기 위해서라면 신발 밑창이라도 핥을 수 있었다.

“일일이 설명할 시간 없다. 말로 설명해 봤자 따르지도 못하겠지.”

“그럼 뭐 어쩌라고?!”

“지금부터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절대 그 자리를 벗어나지 말길 바란다.”

헌터의 목덜미를 움켜쥔 용주는 그를 내던졌다.

“크학! 이런 미친…!”

어둠 속에서 가해진 불의의 일격에 넘어진 헌터는 자신의 입을 급하게 틀어막았다.

하마터면 큰 소리를 낼 뻔했다.

‘이게 무슨 짓이야?! 저 새끼 진짜 여기서만 나가기만 하면….’

분노를 담은 헌터가 목소리를 삼켰다.

헌터의 몸은 용주에게 복수하기 위해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그의 머리는 그의 움직임을 단단히 묶어두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절대 그 자리를 벗어나지 말라는 용주의 이야기.

벌써 주변까지 다가온 살벌한 소리 속에서 그의 본능은 이렇게 속삭이고 있었다.

절대 움직이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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