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젠장….”
불이 붙어 버린 이형 신호탄에 용주가 인상을 구겼다.
호기롭게 단도를 휘두르던 헌터는 언노운들에 의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참히 도륙나고 있었다.
[등유를 나르고 있던 여인들은 등에 불을 붙였다.]
[처형자들의 낫은 그들을 찢어발겼다.]
정확히 거기 적힌 문장대로 말이다,
“나도 같이 가.”
달려 나가려는 용주의 소매를 붙잡은 수지가 이야기했다.
“안 돼. 이미 죽었어.”
“살릴 수 있을지도 몰라.”
단호한 용주의 목소리에 수지도 물러서지 않았다.
“…넌 여기 있어. 나 혼자 움직이는 게 빠르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고 싶으면 내 말 들어!”
수지의 손길을 뿌리친 용주는 단번에 뛰쳐나갔다.
먹잇감을 하나 처리한 언노운들은 다음 타깃을 바라보고 있었다.
“흐이익!!!”
갈기갈기 찢긴 동료의 유해를 확인한 헌터는 뒤로 나자빠졌다.
불과 1분 전까지만 해도 살아 있었던 동료는 이제 저기 없었다.
“안 돼. 오지 마…. 오지 말라고…!”
들고 있던 검을 놓쳐 버린 헌터는 뒷걸음질을 쳤다.
툭!
그런 헌터의 손목에 부딪치는 차가운 촉감.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작은 궤짝에 걸린 헌터는 손에 잡힌 그걸 그대로 집어 던졌다.
허공을 가른 궤짝에선 금괴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번뜩이는 낫을 휘두른 언노운들은 비명을 지른 헌터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타다다닥!!
바로 그때.
전당의 바닥을 두드리는 하나의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발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용주.
이형 신호탄이 뿜어내는 빛을 거스르며 달려간 용주는 신호탄을 반으로 잘라냈다.
다시금 찾아온 완전한 암전.
마지막으로 본 정보들을 이용해 거리를 가늠한 용주는 계속해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흐이익! 죽을 거야! 죽을…!”
“닥쳐!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으면.”
언노운들보다 한발 먼저 헌터를 덮친 용주는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건 이제 바로 코앞.
헌터의 입에 손을 반쯤 집어넣은 용주는 넘어져 부서져 있는 석상 뒤편으로 몸을 던졌다.
허공을 가른 낫들이 내는 바람 소리는 용주의 신경을 긁어내고 있었다.
타깃을 잃어버린 채 천천히 멀어져 가는 노랫소리.
그들이 충분히 멀어졌음을 느낀 용주는 막고 있던 손을 놓아주었다.
상처 위에 생겨난 또 다른 잇자국에선 핏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두워! 어둡다고! 죽을 거야…. 우린 다…. 녀석들에게…!”
머리를 부여잡으며 벌벌 떠는 D급 헌터.
주머니에 손을 넣는 그의 모습을 확인한 용주는 그의 광대를 힘껏 후려쳤다.
그의 손에서 떨어져 나온 핸드폰은 땅을 구르고 있었다.
“정신 안 붙들면 너도 아까 그놈처럼 될 거다. 살고 싶으면 허벅지를 찢어서라도 정신 차려!”
헌터의 목덜미를 붙잡은 용주는 그의 콧등에 이마를 들이박았다.
콧등을 가린 헌터의 손가락 사이론 붉은 핏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너… 너는….”
강렬한 한 방에 간신히 정신줄을 다시 잡은 헌터가 속삭였다.
“A조에 속했던 헌터다.”
"A조? A급 헌터가 있었던?”
“그래.”
“그… 그랬구나. 가… 간 거야? 녀석들은?”
짧은 문장 사이에 말을 두 번이나 더듬은 헌터가 물었다.
“일단은… 그런 것 같군. 하지만 안심할 단계는 아니야.”
타깃을 잃어버린 녀석들은 분명 멀어졌다.
하지만 안심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들과 자신들은 아직도 한 공간 안에 있었다.
“아… 아무튼 살려줘서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간신히 보이는 용주의 얼굴에 감사를 표한 헌터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노랫소리는 자신보다 높은 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어떻게 따돌린 거야? 저 녀석들 우리가 여기 있는지 모르는 거 같은데.”
“추측건대 녀석들은 소리와 빛에 반응한다. 그중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빛 쪽인 것 같더군.”
“소리랑 빛이라고?”
“자세한 건 돌아가서 설명하겠다.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면 녀석이 또 걱정할 테니까.”
“돌아가? 어디로? 앞이라고는 뭐 하나 보이지도 않는데 어디로? 안전한 곳이라도 있는 거야?”
“잔말 말고 따라와.”
그의 손을 붙잡은 용주는 어둠 속을 헤치기 시작했다.
다급한 발소리에 짓밟힌 핸드폰 우지끈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아. 뭐야? 다 온 거야?”
자신을 잡아끄는 힘에서 해방된 헌터가 참고 있던 숨을 몰아쉬었다.
리드해 주는 손이 있다고 하더라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가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날 노리고 있다는 공포.
내 발소리 하나.
내 숨소리 하나 때문에 내 목이 달아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인간으로서 버티기 너무도 힘든 고통이었다.
“상태는?”
자리를 지키고 있던 수지가 물었다.
“약간의 타박상과 코뼈 골절. 그 외엔 멀쩡할 거다.”
“음… 그래?”
돌아온 대답에 수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적으로 일어났던 붕괴는 어떻게 해서든 정상 궤도로 돌려놓은 모양이었다.
약간의 폭력을 이용해서 말이다.
“이 목소리… 아까 그 의료 헌터 맞지?”
귀에 익은 여성의 목소리에 헌터가 이야기했다.
“응. 맞아.”
“하아. 그렇구나. 다행이다.”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확인한 헌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의료 헌터의 곁이라면 안전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뭐가 다행인데?”
“그야 의료 헌터 옆이잖아. 나 들은 적 있어. 카오스 게이트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의료 헌터가 있는 곳이라고.”
“…누가 그런 말 했는지 몰라도, 여기 안전한 곳은 없어. 안전한 곳이 있다면 사후 세계 정도일걸?”
“…….”
수지의 한마디에 금방 사색이 된 헌터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렇게 깜깜한데 잘도 움직이시네요. 야간투시경이라고 쓰고 있는 줄 알겠어요.”
죽은 듯이 숨을 죽이고 있던 태영이 이야기했다.
자신의 밤눈이 딱히 어둡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태영조차 이 어둠은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야맹증이 있다면 밤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어둠 속에서도 용주는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헌터들 중에 용주처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용주 단 한 사람뿐이었다.
“숨은 다른 헌터도 대충 눈치챈 것 같아요. 소리 지르는 것도, 불을 켜는 것도 안 된다는 거 말이에요.”
안경테를 잡은 태영이 먼 곳을 바라보았다.
암전 초기, 헌터들의 혼란은 최고점을 찍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 헌터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형만의 부상과 두 헌터의 죽음.
그리고 용주가 보여준 과감한 용기가 그들에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준 것이 분명했다.
“사망자는 2명. 부상이 심할 리더를 제외하면 남은 사람은 5명이에요. 여기 4명 있으니 남은 건 한 명이네요.”
“형만 아저씨도 데려와야 해.”
태영의 이야기를 이어받은 수지가 이야기했다.
용주는 형만이 스스로 자신을 지킬 거라고 했지만, 역시 가만히 있는 건 힘들었다.
“그렇죠. 근데 두 사람 다 지금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잖아요. 방향을 잃지 않고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도 한 명뿐이고….”
손가락을 깨문 태영은 생각에 잠겼다.
당장 목 앞에서 번뜩이던 낫은 치워냈지만, 지금 이 상황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혹시 문을 열면 사라지지 않을까요? 녀석들이 나타난 건 석조 문이 닫힌 이후였잖아요.”
자신들에게 일어난 현상들을 침착하게 분석한 태영이 이야기했다.
빛이 사라진 건 문이 닫힌 직후.
그걸 다시 열 수만 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
“가능성은 있지만, 아마 불가능할 거다.”
“판단 근거는요?”
즉각적인 용주의 피드백에 태영이 물었다.
제법 설득력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건만, 용주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문은 스스로 닫혔다. 아마 우리가 들어올 때도 마찬가지였을지도 모르지. 우리가 눈치채지 못했을 뿐.”
“그 말은… 언노운들이 우릴 가지고 놀았단 뜻인가요?”
“언노운들이 그런 건지, 또 다른 무언가에 의한 건진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미 시작된 이상 그런 식으로 끝을 맺을 순 없을 거다.”
“음… 근데 좀 이상한 점이 있어요. 선발대로 두 사람이 들어왔을 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었잖아요. 그때는 어째서 그랬던 걸까요? B조의 헌터들이 여기 왔을 때, 선발대가 왔을 때, 그리고 지금. 대체 뭐가 다른 거죠? 뭔가 저놈들이 나타날 규칙 같은 게 있던 걸까요?”
세 개의 손가락을 편 태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B조가 이곳에 왔을 때 그들은 아마 지금 이 풍경을 목격했을 것이다.
하지만 형만과 용주 2인으로 구성된 선발대가 이곳에 진입했을 때 불은 꺼지지 않았었다.
단순한 홀짝의 숫자 장난이 아니고서야, 우연히 그렇게 됐다고 하기엔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그거야 밖에 누가 더 있으니까 그랬던 거 아니겠어? 함정에 빠뜨리려면 전부를 노리는 게 현명하겠지.”
태영의 이야기를 듣던 헌터가 먼저 대답했다.
“음… 그치만 녀석들이 있던 곳은 리더가 감시하던 그 구멍 안이었잖아요. 상식적으로 판단했을 때 모순점들이 너무 많지 않을까 싶은데요. 설마 언노운들이 CCTV라도 설치해 놨다고 말씀하시고 싶으신 건 아니시겠죠?”
“…….”
태영의 반박에 헌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어쩌면… 거기에 대한 대답 또한 시 안에 있을지도 모르지.”
잠시 생각에 잠겼던 용주가 대답했다.
“시? 혹시 다음 문장에 거기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나요?”
태영의 물음에 용주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다른 세 시점의 차이.
거기에 대해 짚이는 구석이 있었다.
“세 사내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세 사내?”
“그래.”
용주의 이야기에 태영은 턱을 괴었다.
“그게 대체 무슨 헛소리야?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달라고.”
세 사람의 이해할 수 없는 대화에 헌터가 이야기했다.
시라느니, 문장이라느니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 천지이지 않은가.
“인원수에 대한 기준이 있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거지?”
“빙고.”
수지의 추론에 용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B조는 넷, 탐사조는 둘, 본대는 여덟… 확실히 숫자 3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차이가 있네요.”
“그 말대로면 최소 세 명 이상이어야 놈들이 움직인다는 소리네? 아깐 우연히 2명이어서 그게 발동하지 않았던 거고.”
두 사람의 이야기에 용주는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까지나 추측이었지만, 지금 생각할 수 있는 것 중엔 그게 최선이었다.
“그래서? 시작한 다음은? 시작하는 게 거기 적혀 있으면, 끝내는 방법도 거기 적혀 있었겠지? 빨리 말해! 말하라고!”
오른손으로 허공을 휘저은 헌터가 숨죽여 외쳤다.
그리고 그 순간.
♩♬♬♬
들려오던 노랫소리가 바뀌었다.
“노래가….”
“바뀌었네요.”
전당을 감도는 소리의 변화에 두 사람이 이야기했다.
잔잔하고 어두운 장송곡 같은 느낌의 곡이었다.
“…….”
갑작스러운 변화에 용주는 마른침을 삼켰다.
뭔가 지금까지 일어났던 것과는 다른 뭔가가 일어날 것만 같았다.
“뭐야? 빨리 뭐라고 말 좀 해봐? 지금 이 상황을 끝내는 방법 말이야! 거기 있었지?”
혼자 상황 파악을 못 한 헌터가 외쳤다.
그리고 그는 곧장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먼 곳을 맴돌던 노랫소리 중 일부가 아주 가까운 곳까지 내려왔단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녀석들의 움직임이 변한 것 같네요.”
“한 군데로 향하고 있어. 전부 같은 방향으로.”
소리의 흐름을 듣던 두 사람이 이야기했다.
소리가 이동한 곳은 석조 문이 있던 입구 방향.
그들의 움직임은 조직적이고 체계적이었다.
‘특별한 신호 같은 건 감지하지 못했어. 녀석들끼리만 들리는 특별한 소리라도 있는 건가? 아니면 페로몬? 텔레파시 같은 거라도 쏘는 건가?’
누군가의 통제가 없었다면 설명이 되지 않는 언노운들의 변화.
집결하는 소리의 물결 속에서 용주는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시… 그 시 안에 분명 뭔가 있을 거야. 생각해.’
세 명의 사내에 대한 이야기.
그 부분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이루어진 상황은 석판의 세 번째 문장까지였다.
그다음 문장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