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최대한 원래 모습으로 만들 거라니… 그게 대체….”
“꼬마 아가씨, 혹시 의료 헌터야?”
“응. 의료 헌터야. 그러니까 모아줘. 워낙 많이 훼손돼서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두 사람 다 온전한 모습으로 돌려보낼 거야. 물론, 저기 두 사람도.”
수지는 A급 의료 헌터였다.
하지만 A급… 아니, S급 의료 헌터라고 할지라도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을 할 수는 없었다.
가령 머리가 잘린 사람을 살려내는 일이나, 심장이 멈춘 사람을 살려내는 일 같은 거 말이다.
근처에 있던 시신들의 일부를 이어붙인 수지는 높은 곳을 올려다보았다.
제단 꼭대기를 지키고 선 형만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때였다.
두두두둑! 쾅!!!
멀쩡히 열려 있던 석조 문이 어마어마한 소리를 내면서 닫혀 버렸다.
“뭐… 뭐야!!”
“문이 닫혔어! 왜? 바람 같은 건 안 불었는데!”
“농담하냐! 바람 같은 걸로 저 문이 어떻게 닫힌다고!”
갑작스러운 이상에 몇몇 헌터들이 곧장 문으로 달려갔다.
“열어!”
“힘 좀 더 써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하지만 건장한 성인이 셋이 달라붙었는데도 석조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거기 붙은 세 사람이 건장한 성인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힘을 발휘하는 D급 헌터였음에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불길해….”
무릎을 펴고 일어난 수지가 이야기했다.
그녀의 가까운 곳을 지키던 용주와 태영 역시 등골을 타고 오르는 불길함에 사주를 경계하고 있었다.
“당황하지 마라! 지금은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해!”
헌터들 사이에 퍼진 동요를 잠재우기 위해 목소리를 높인 형만이 외쳤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있기라도 했다는 듯이.
빛이.
사라졌다.
“뭐야? 암전? 갑자기?”
“이건 또 무슨 일이야? 카오스 게이트 안에 있던 빛이 사라지다니!”
“불! 누가 불 좀 켜봐! 아무것도 안 보여! 젠장!”
갑작스러운 이상 현상의 연속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몇몇 헌터들이 소리쳤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형만은 자세를 다시 잡고 있었다.
“플레임 인젝터!”
형만이 천장의 구멍을 겨누고 대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에서 솟아오른 불길은 한 마리의 용처럼 승천하고 있었다.
“…쯧!”
어둠을 가르며 솟아오른 불길을 보던 형만은 혀를 찼다.
멀리서 빠르게 다가오는 불길한 기척은 자신의 스킬이 효과가 없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다들 뭉쳐! 흩어지지 마!! 언노운이다!”
뒤쪽을 보며 큰 소리로 외친 형만은 천장을 향해 뛰어올랐다.
챙!!
♪♬♪~♩
어둠을 밝히는 불길 속에선 음침한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 녀석은 대체….’
짙은 불길을 뿜어내는 형만의 대검.
그 너머에서 보이는 것에 형만은 눈살을 찌푸렸다.
짙은 후드를 뒤집어쓴 얼굴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서양 사람들이 말하는 죽음의 사신 ‘리퍼’와 비슷한 외형의 언노운.
A급 헌터인 형만조차도 이런 개체는 지금껏 목격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이곳은 분명 D급으로 분류된 카오스 게이트였다.
그런 D급에 있는 게이트 보스라고 해봤자 C급보다 높은 등급의 개체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녀석은 A급 헌터인 자신의 힘에도 절대 밀리지 않았다.
‘이 녀석 정말로 C급인가?’
“으아아!!!”
리퍼의 낫과 검을 맞대고 있던 형만은 전력으로 녀석을 찍어 눌렀다.
떨어지는 혜성처럼 붉은 꼬리를 그리며 추락한 형만은 녀석의 몸체를 길게 베어내고 있었다.
“아싸!! 잘한다!”
“역시! A급 헌터! 뭐가 달라도 다르네요!”
“게이트 보스 컷!”
피라미드의 가장 높은 곳에서 바닥까지 추락한 형만의 모습에 헌터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A급 헌터가 보여주는 압도적인 기량은 D급 헌터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니야….”
희미해져 가던 형만의 불길을 바라보던 수지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아저씨!!”
큰 소리로 형만의 이름을 불렀다.
“……!”
수지의 다급한 외침에 급하게 방향을 튼 형만은 대검을 휘둘렀다.
그의 불길 너머엔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또 다른 언노운이 낫을 번뜩이고 있었다.
‘한 놈이 아니야?!’
불과 3초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두 번째 언노운과 십여 차례의 공방을 주고받은 형만은 녀석을 벽으로 밀어붙였다.
D급 헌터들은 그런 형만의 모습에 그저 감탄을 발할 뿐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촤아악!!
형만의 대검이 허공을 날았다.
대검을 쥐고 있던 형만의 오른손은 그의 대검과 함께 몸에서 반듯하게 잘려 나가 있었다.
“리더!!”
“크윽!”
다급한 태영의 외침을 들은 형만이 비틀거렸다.
주인의 품을 떠난 대검은 불길을 잃어버린 채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빠드득!
형만의 사투를 지켜보던 용주는 이를 악물었다.
A급 헌터인 형만의 오른손이 날아가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몇 분에 불과했다.
형만은 전투 중에 방심을 하지 않았다.
A급 헌터답게 노련하고 세련되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도 불의의 일격을 피해내진 못했다.
평범한 D급 혹은 C급 언노운이 A급 헌터에게서 기척을 숨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저 녀석들은 분명 평범한 언노운이 아니었다.
‘리퍼 형상의 언노운….’
형만의 불길에 비친 언노운의 모습과 움직임을 다시 한번 떠올린 용주는 전투를 준비했다.
E급 헌터 중에서도 최약체인 자신에게 저것들을 이길 가능성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가능성이 많지 않다고 해서 하지 않을 순 없었다.
‘잠깐만….’
어둠 너머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
가까워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멀어지지도 않는 기괴한 소리들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용주는 눈썹을 기울였다.
머릿속을 스친 한 가지 생각 때문이었다.
제단 아래 적혀 있던 여섯 개의 글귀.
그중 첫 번째 문장은.
[빛이 침묵하는 밤 처형자들이 노래하기 시작한다.]
지금 상황의 이 흐름과 너무도 잘 매칭되는 문장이었다.
‘빛이 사라지고, 밤이 찾아왔지. 그다음엔 처형자… 아니, 사신처럼 생긴 언노운들이 나타났고, 그 언노운들은 노랫소리 비슷한 걸 내고 있어.’
말도 안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언노운들이 특정한 규칙을 가지고 움직인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것들은 그게 맞는다고 말하고 있었다.
게다가 언노운들은 나타나자마자 형만을 공격했다.
단순히 그가 녀석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런 해석도 가능하다.
형만이 가장 먼저 공격을 당한 건 그들이 등장한 시점에 가장 큰 소리를 내고, 불을 밝혔기 때문이라고.
왜냐하면 첫 문장 다음에 올 문장은….
“파… 팔이!!”
“A… A급 헌터가 팔이 잘렸어.”
“으아… 으아아악!!!”
화염에 비치던 마지막 모습에 헌터들이 경악했다.
A급 헌터 형만의 존재감이 컸던 만큼 그의 부상이 헌터들에게 주는 충격은 가히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형만의 마지막 불길에 비치는 언노운들의 얼굴은 형만이 아닌 비명을 지른 이들을 향해 있었다.
“도… 도망가!! 살려줘!!”
공포에 이성을 잃어버린 한 헌터가 석조 문을 박박 긁기 시작했다.
짙은 어둠 속에 보이는 것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출구가 어디 있는지를 알기에 무리는 없었다.
문이 처음 닫혔을 때 그는 이미 거기 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
바람을 가른 음산한 노랫소리가 사내를 감싸 안았다.
“으악! 으아아악!!!”
사내는 뽑아 든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검술이라고는 볼 수도 없는 허접한 칼놀림이었다.
사내의 목소리는 조금 전 비명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가야 해….”
아랫입술을 깨문 수지가 중얼거렸다.
형만의 모습은 더 이상 육안으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팔이 잘려 나간 순간에도 형만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하지만 저 상태로 전투를 지속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최소한 팔이라도….
“기다려.”
목소리를 낮춘 용주는 수지의 팔목을 거칠게 붙들었다.
앞은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이상은 없었다.
이보다 더한 어둠 속에서 살아왔던 용주에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가야 해. 빨리 지혈하지 않으면….”
“녀석은 A급 헌터다. 자기 목숨 정도는 알아서 지킬 수 있을 터. 우리의 행동이 녀석을 더 곤란하게 할 수도 있어.”
“말도 안 돼요! 팔이 잘렸…!!”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한 용주의 목소리에 태영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용주는 그런 태영의 입을 거칠게 틀어막았다.
태영의 이빨에 물린 용주의 손에선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큰 소리 내지 마.”
태영의 가시거리 안쪽으로 머리를 집어넣은 용주가 차갑게 이야기했다.
다른 헌터들과의 협동.
그건 여전히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은 절망 그 자체였다.
살아남으려면, 뭐라도 해야 했다.
두 사람의 손을 붙잡은 용주는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앞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이곳의 대략적인 구조도는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안전한 곳이 어딘지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소리를 낸 이 자리를 벗어나야 했다.
“뭔가 아는 거라도 있는 거야?”
용주의 손에 이끌려 어딘가로 끌려온 수지가 물었다.
그의 말과 행동은 뭔가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형만이 올라가 있던 제단. 기억하고 있겠지?”
태영과 수지만을 간신히 붙잡고 동상 뒤편에 몸을 숨긴 용주가 이야기했다.
“응.”
“그 아래 비석이 있던 것도 봤겠지?”
“응. 봤어. 6개나 있었잖아.”
“거기 어떤 글귀가 적혀 있었다. 시 같은 문장들이었지.”
“시?”
“그래. 시의 첫 문장은 ‘빛이 침묵하는 밤 처형자들이 노래하기 시작한다.’”
“빛이 침묵하는 밤.”
“처형자들이 노래하기 시작한다? 잠깐만요! 지금 이 문장…!”
수지의 이야기를 이어받은 태영은 머릿속이 띵 울리는 것을 느꼈다.
“그래. 지금 이 상황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그리고 그다음 문장은 ‘태양을 찬양하던 이들은 눈이 멀어 비명을 질렀다. 처형자들의 낫은 그들의 머리를 수확했다.’이다.”
“…그랬었군요. 그래서 소리를 지르지 말라고.”
용주와 같은 것을 생각한 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그가 왜 그렇게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럼 그다음은?”
마른침을 삼킨 수지가 물었다.
용주는 그다음 문장을 이야기해 주고 있었다.
“흐하아!! 일단 불이라도 켜봐! 보여야 뭐라도 해보지!”
“아… 알았어. 기다려 봐!”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던 한 헌터는 가지고 있던 이형 신호탄을 터뜨렸다.
치이이익!!
특유의 빛과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이형 신호탄.
어둠을 헤치는 빛에 모습을 드러낸 언노운들의 시선은 곧장 그들을 향했다.
사실 시선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다.
어둠 속에 숨은 그들의 얼굴은 빛으로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들이 두 사람을 보고 있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 그래! 어디 덤벼봐! 어?! 언노운 주제에! 내가 이런 걸로 쫄 줄 아나 보지?”
능숙한 손놀림으로 쌍수 단검을 휘어잡은 헌터는 자신을 향한 언노운을 향해 돌진했다.
“자… 잠깐! 멈춰! 멈추라고! 미쳤어?!”
말릴 틈도 없이 뛰쳐나간 동료를 향해 손을 뻗은 헌터가 외쳤다.
하지만 앞으로 달려 나간 헌터는 계속해서 달려갈 뿐이었다.
공포의 특이점.
이자가 그곳에서 마주하게 된 것은 좌절이나 떨림이 아닌 정신적 각성 상태였다.
“선빵 필승이야! 눈에 보이기만 하면 저딴 언노운 따위!!”
번뜩이는 낫들을 눈앞에 둔 헌터는 단도를 고쳐 잡았다.
손 위에서 원을 그리며 회전하는 단도는 그가 이 무기에 얼마나 능숙한지 말해주고 있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그의 판단은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생각이 이상하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갈기갈기 찢어주마.”
단도를 휘어잡은 사내는 단번에 언노운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동작이었다.
댕강!
“아?!”
머릿속에 그린 궤도대로 움직이던 헌터는 당혹스러움을 담은 눈동자를 깜빡였다.
머릿속에 그린 것은 100% 구현해 냈다.
분명 그러했었다.
그런데 있어야 할 자신의 손목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