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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8화 (8/357)

8화

* * *

문 안쪽으로 들어온 용주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문 안쪽은 그동안 봐왔던 카오스 게이트 내부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내부 공간은 기본적으로 넓은 홀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동굴 같았던 바깥과 달리 이곳은 가공된 타일들이 바닥과 천장을 수놓고 있었으며, 동그란 기둥들이 천장을 지탱하고 있었다.

또 누군가가 조각한 사람 모양의 조각상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는데, 온전한 것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이 훨씬 더 많았다.

가장 안쪽에 보이는 공간엔 고대 마야에서 사용했을 법한 피라미드형 제단이 있었다.

제단과 이어진 계단 아래에는 거대한 석판들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홀 여기저기엔 사람들의 시신이 널려 있었다.

“여기 있었군….”

코를 찌르는 비릿한 피 냄새를 쫓아온 형만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앞에 있는 건 두 구의 시신이었다.

팔다리에 특별한 외상은 없었다.

다만 두 시신의 머리가 반듯하게 잘려 나가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두 사람의 표정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눈도 감지 못했다.

언노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산 것도, 죽은 것도.

당연히 있어야 할 게이트 보스의 모습 역시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이들이 뭘 보았고, 무슨 일을 당했는지 형만으로서도 쉽게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다른 두 사람의 흔적도 찾았다. 유해를 수습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더군.”

형만과는 다른 곳을 살펴보던 용주가 그에게 다가왔다.

용주의 손에는 두 개의 은시계가 들려 있었다.

헌터로서의 자격을 상징하며, 동시에 군번줄과 같이 유사시 인식표가 되어주는 물건이었다.

그나마 형태가 온전한 두 구의 시신과 달리 용주가 발견한 쪽은 상태가 좀 더 심각했다.

시신은 터진 풍선처럼 갈가리 찢겨 흩뿌려져 있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봤다면 구토를 하거나, 정신을 잃을 만큼 끔찍한 현장이었다.

대체 여기 그럴 만한 게 뭐가 있는지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지만, 예리한 무언가에 수없이 난자당한 것만은 확실했다.

“이미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이형 신호탄도 발견했다. 우린 감지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2개는 확실하게 사용됐어.”

용주는 시신 일부와 함께 발견한 이형 신호탄을 가볍게 던져 보였다.

형만의 표정을 더욱더 심각하게 변해 있었다.

“누가 봐도 인위적인 공간이군. 사람을 형상화한 조각상에 바이올린이나 하프 같은 악기가 그려져 있는 타일도 있고, 나무로 짜인 함 같은 것도 있어. A급 헌터의 생각을 듣고 싶은데?”

“A급 카오스 게이트를 여럿 돌았지만, 이런 걸 보는 건 처음이다. 조심해라. 분명 이 안에 뭔가 있다.”

공포에 질린 두 사람의 눈을 감겨준 형만은 조금 더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안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 확신하기 전까진 밖에 있는 인원을 끌어들일 순 없었다.

“일반적인 글자는 아니군.”

제단 아래에 자리 잡은 석판 앞에 선 형만이 이야기했다.

석판은 총 6개로.

계단을 기준으로 좌우로 세 개씩 배치되어 있었다.

“모스부호… 아니, 그것과는 다르군.”

석판에 영어나 한글, 고대 그리스어 같은 글자는 적혀 있지 않았다.

석판에 있는 건 오돌토돌 튀어나온 동그란 돌기들이 전부.

같은 모양의 돌기들이 몇몇 발견되는 걸로 볼 때 이것들이 특정한 규칙을 가지고 있다는 건 확실했지만 형만은 그걸 해석할 수 없었다.

‘이건….’

형만과 같은 것을 보던 용주는 좌측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니야. 그치만 혹시….’

가장 적은 돌기들이 배치되어 있는 첫 번째 석판에 도착한 용주는 돌기 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용주는 자신의 생각이 정답이었단 것을 깨달았다.

이 돌기들은.

점자였다.

“빛이 침묵하는 밤… 처형자들이… 노래하기 시작한다.”

손끝으로 읽은 글자를 목소리로 환산한 용주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용주의 이야기에 놀란 형만은 그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꽤 재밌는 능력을 가지고 있군. 손가락으로 읽는 글자… 그래. 점자였단 말이지?”

“딱히 재미있을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누군가에겐 이것도 모국어다.”

형만의 이야기에 용주가 즉각 불쾌감을 표했다.

점자를 읽을 수 있는 건 재미있는 능력도 뭣도 아니었다.

눈이 보이지 않았던 용주에겐 한글이 오히려 새로운 언어였다.

듣고 이해하는 데 문제는 없었지만, 그걸 보고 읽는 건 또 다른 것이었으니까.

글을 읽는 법을 익히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생각한다.

비장애인의 시점에서 장애와 관련된 것들을 생각한다.

장애 당사자였던 용주는 그런 것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 실례했군. 하지만 점자를 아는 헌터는 확실히 희귀한 케이스다.”

헌터로서의 각성.

그게 정확히 어떤 기준으로 왜 일어나는지는 아직까지 밝혀진 바가 없다.

태어나면서부터 각성한 자가 있는 반면, 살아가다 어느 순간 각성을 경험하는 자들도 있다.

비율로 치자면 대략 1:9 정도.

덕분에 같은 헌터라고 해도 전투 이외의 능력은 각자의 능력과 개성이 또렷한 편이었다.

“알고 있다 한들 보통은 사용할 일이 없겠지. 카오스 게이트 안에서 점자를 읽는 상황이 올 거라는 생각은 나도 해본 적 없으니까.”

“확실히 그것도 그렇군. ‘빛이 침묵하는 밤 처형자들이 노래하기 시작한다.’ 그다음 문장들도 읽어줄 수 있겠나?”

“그래. 어려울 것도 없지.”

걸음을 옮긴 용주는 석판들을 하나하나 훑기 시작했다.

[빛이 침묵하는 밤 처형자들이 노래하기 시작한다.]

[태양을 찬양하던 이들은 눈이 멀어 비명을 질렀다.]

[처형자들의 낫은 그들의 머리를 수확했다.]

[등유를 나르고 있던 여인들은 등에 불을 붙였다.]

[처형자들의 낫은 그들을 찢어발겼다.]

[악기를 연주하던 자들은 악기를 내려놓았다.]

[처형자들은 그들의 악기를 밟고 지나갔다.]

[눈먼 세 사내는 빛이 침묵하는 걸 알지 못했다.]

[그들에게 오늘은 조금 소란한 평소일 뿐이었다.]

[평소에 걸리지 않던 것들이 사내들의 발에 걸렸지만 사내들은 가던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제단에 도착한 사내들은 각자 준비해 온 믿음의 증거를 제단에 바쳤다.]

[거짓된 빛이 사내들을 유혹했지만, 사내들의 눈은 그 빛에 속지 않았다.]

[진실된 빛.]

[오직 그 빛에만 의지했던 사내들은 어둠에 삼켜지지 않았다.]

6개의 석판을 모두 읽어낸 용주는 주위를 경계했다.

모든 문장을 해석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리란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예상외로 주변은 잠잠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다거나, 일어나고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기분 나쁜 시군.”

점자로 기록된 석판의 전문을 확인한 형만이 눈썹을 기울였다.

왜 이런 문장이 여기 기록되어 있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동감이다. 하지만 이 시. 지금 여기 펼쳐진 참상과 조금 닮았다고 생각되지 않나?”

형만과 눈을 마주친 용주가 뒤쪽을 가리켰다.

반듯하게 잘려 있는 머리와 갈기갈기 찢어 발겨진 일부 유해.

섬뜩한 문장의 일부는 현실이 되어 있었다.

“확실히 그렇군.”

용주의 추리에 고개를 끄덕인 형만은 지금껏 보지 않았던 곳을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제단 뒤편 천장에는 커다란 구멍 하나가 뚫려 있었다.

“뭔가가 드나들었다면, 저쪽이었겠군. 게이트 보스는 아마 저 너머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 이 시에 적힌 대로 표현하자면 처형자라고 해야겠지.”

이곳에 D급 언노운의 시체는 없었다.

4명의 헌터를 사냥한 게 놈들이라면 필시 놈들의 시체도 함께 발견되었어야 정상이었다.

‘D등급은 아니야. C등급 이상의 비행 개체, 아니면 곤충형 개체, 일단 당장 생각할 수 있는 건 그 정도인가?’

대검을 더욱 세게 움켜쥔 형만은 단숨에 계단을 뛰어올랐다.

단번에 3칸씩 오르는 형만의 속도는 용주로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였다.

까득!

제단과 화로가 있는 정상에 오른 형만은 대검을 길게 늘어뜨렸다.

그의 눈동자는 빛이 고이지 않은 어두운 구멍 안을 향해 있었다.

“플레임 인젝터!”

형만의 목소리가 떨어지자 그의 대검에서 거친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A급 헌터인 형만에겐 ‘스킬’이라고 불리는 능력이 있었다.

모든 헌터들의 로망인 ‘스킬’은 각성의 순간 동시적으로 터득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의 경우는 A급 이상의 이형결정체를 통해 습득할 수 있었다.

이 힘이 ‘스킬’이라 불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RPG 게임에서 말하는 ‘스킬’과 이 힘이 상당히 비슷하니까.

물론, 스킬을 습득했다고 해서 무한정 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헌터에겐 ‘Mana Point’ 줄여서 ‘MP’나 ‘마나’라고 명명된 힘이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이 힘이 소비된다.

참고로 이 수치는 헌터의 등급을 책정할 때도 기준이 된다.

화르르륵!

불길을 길게 뽑아낸 형만은 단번에 검을 휘둘렀다.

제단 꼭대기에서 피어오른 불의 기둥은 천장에 뚫린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후우~.”

불길이 휩쓸고 다니던 곳을 한동안 올려다보고 있던 형만은 숨을 내쉬었다.

천장에선 아무것도 떨어지지 않았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저곳이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자신의 스킬 범위 안에 언노운은 없었다.

“일단 돌아간다. 이곳에 위험은 없어.”

“안쪽까지 가보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는데?”

자신을 내려다보는 형만에게 용주가 이야기했다.

“저기 있는 게 네 가족의 유해라고 생각해 봐라. 넌 네 가족의 시신을 저대로 두고 갈 수 있나?”

“…….”

형만의 물음에 용주의 낯빛이 순간 창백해졌다.

카오스 게이트에서의 죽음.

그것도 가족의 죽음은 용주의 신경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헌터증은 회수했다.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물건 아닌가?”

마른침을 삼킨 용주가 이야기했다.

“…쯧! 애송이 주제에 말은 잘하는군.”

용주의 정확한 지적에 형만은 혀를 찼다.

상당히 마음에 안 든다는 눈치였다.

“그래. 네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하지만 난 이들을 데려갈 거다.”

“어째서냐?”

“유해 없는 장례는 두 배로 비통하거든.”

“…….”

용주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차분한 그의 눈동자 사이로 씁쓸함이 스쳐 지나가는 게 보였다.

“게이트 발생 후 7일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다. 다른 구역은 모두 클리어됐다. 남은 곳은 저곳뿐이야. 게이트를 닫는 건 유해를 먼저 회수한 다음으로 하겠다. 유해를 회수하는 동안 저곳은 내가 감시하지.”

“…그래. 알았다.”

시선을 피한 용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키지는 않았다.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되지도 않았고.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듣고 차마 고개가 저어지지 않았다.

* * *

“끔찍하네. 이거.”

“그러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B조에 편성돼 있었다면, 저기 있는 게 나일지도 몰랐다는 거잖아. 너무 소름 돋아.”

석조 문 안쪽으로 들어온 헌터들의 눈앞에 펼쳐진 끔찍한 풍경.

유해들을 회수하기 위해 들어온 그들이 한마디씩 중얼거렸다.

“근데 여긴 대체 뭐 하는 공간이야? 누가 봐도 언노운이 만든 건 아닌 거 같은데.”

“그러게. 사람이 만든 게 아니고서야 이런 게 가능한지 어떤지.”

“쓰러진 나무 궤짝엔 웬 수지 같은 게 말라비틀어져 있더라. 나무도 없는데 그런 게 어디서 왔는지, 원.”

오래전 멸망한 문명의 흔적 같은 이곳 풍경은 헌터들의 당혹감을 한층 더 증폭시키고 있었다.

“리더, 근데 유해는 어떻게 회수하실 거예요?”

“맞습니다. 머리가… 잘린 쪽이야 그나마 회수할 만하지만, 나머지 두 사람은….”

마지막 말을 아낀 헌터는 참담한 시선으로 갈기갈기 찢긴 시신을 바라보았다.

여기저기 널린 시체 부위는 그냥 도축장에 널린 고깃덩어리와 내장을 보는 것만 같았다.

“최대한 원래 모습으로 만들어서 보낼 거야. 한 점도 빼먹지 말고 최대한 다 모아줘.”

형만 대신 목소리를 낸 수지가 이야기했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이야기에 많은 헌터들이 놀란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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