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 * *
“19시 정각.”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있던 형만이 외쳤다.
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 다시 모인 헌터들 모두 비슷한 표정이었다.
약속된 시간에 집결지로 돌아온 인원은… 8명뿐이었다.
게이트는 아직까지 클리어되지 않은 상태였다.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용주의 뺨은 빨갛게 부어 있었다.
형만은 용주의 첫 단독 행동에는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의 경고는 살벌했다.
“없는 인원은… B조의 4명. 이형 신호탄은 감지하지 못했는데….”
“혹시 그냥 조금 늦는 거 아닐까요? 약속 시간을 칼같이 지키는 거 생각보다 힘든 일이잖아요.”
“충분히 그럴 수 있지. 흔히 있는 일이야.”
“흔히 있기는 개뿔. 어디 화성에서 헌터 일 하다 왔나 보지?”
“맞아요. 시간 약속은 칼 같아야 한다고요.”
“조금만 더 기다려 보죠. 아마 금방 돌아올 거예요.”
태영의 주장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표했다.
하지만 1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도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이 떠난 중앙 통로에서 돌아온 것은 무서울 정도의 적막감뿐이었다.
“좀 많이 늦네요.”
시간을 확인한 태영이 이야기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그럼 어떤 식으로든 구조 신호를 보내지 않았을까요?”
“너무 갑작스러워서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
“아니면 이런 생각도 가능하지. 내가 B팀 헌터 중 하나를 아는데, 그 친구 엄청난 길치였어.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걸지도 몰라.”
태영의 한마디에 여러 목소리가 따라붙었다.
팔짱 낀 손가락을 까딱거리던 형만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 팔짱을 풀었다.
“지금부터 B조 수색 작전 겸 B 구역 수색을 개시하겠다.”
A 구역과 마찬가지로 C 구역의 끝도 막혀 있었다는 보고가 있었다.
게이트 보스가 있다면 필히 B 구역에 있을 터.
돌아오지 않은 이들에게 어쩌면 어떤 일이 생겼을지도 몰랐다.
“안쪽에서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따라서 충분한 거리를 유지한 채 조사에 나선다.”
“네!”
“단, 편성은 2인 1조를 기본으로 한다. 조는 편의상 가장 왼쪽에 있는 사람을 기준으로 시계방향으로 하겠다.”
조건을 단 형만은 용주를 가리켰다.
기준이 된 용주의 시선은 바로 옆에 있는 수지와 마주치고 있었다.
“2인 1조? 왜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안전을 생각한다면 1인 1조로 최대한 길게 늘어서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고개를 갸웃한 한 헌터가 물었다.
옛날에 ‘지뢰매설 지역을 맨몸으로 지나야 하는 상황’을 가정한 전술 교육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의 모범 답안은 충분한 거리를 둔 채 일렬로 길게 늘어서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하면 혹여나 한 사람이 지뢰를 밟아 터지더라도 최소한의 피해로 끝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 자네 말대로 특정 상황에서는 그게 더 좋은 방법일지 모르지. 하지만 그게 항시 최선인 건 아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런 경우가 있었다. 수색 중 한 사람이 갑작스럽게 바닥에 열린 웜홀로 빨려 들어간 거지. 헌터를 삼킨 웜홀은 곧바로 사라져 버렸다.”
“웜홀? 카오스 게이트 내부에 그런 게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습니다만. 게다가 갑자기라니, 그런 게 가능하기나 한 겁니까?”
“이곳은 우리가 사는 세계가 아니다. 카오스 게이트. 이 안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건 없어.”
“그… 그렇군요. 계속해 주십시오.”
생전 처음 들어보는 A급 헌터의 생생한 경험담에 헌터가 한발 물러났다.
“웜홀이 생겨난 원인은 그곳 게이트의 보스 때문이었다. 처음 발견된 단독 개체였지. 녀석이 쓰러지자 사라졌던 헌터는 되돌아왔다. 하지만….”
이야기를 끊은 형만은 한 호흡을 삼켰다.
“그의 정신은 건너지 말아야 할 강을 건넌 뒤였다. 미쳐 버린 거지. 녀석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 ‘아무것도 안 보여. 녀석이 날 노리고 있어. 누가 좀 도와줘….’라고. 녀석이 안에서 뭘 봤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녀석의 정신이 망가진 건 그가 혼자였기 때문이다. 누군가 녀석을 지탱해 줬더라면, 제법 실력 있는 헌터였던 녀석이 그 꼴이 되진 않았겠지.”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전혀 몰랐습니다.”
“또 질문 있나?”
형만의 물음에 모두가 침묵했다.
“그럼 더 이상의 질문은 없다고 판단하겠다. 기준이 된 저자가 1번이다. 지금부터 홀수가 짝수 쪽으로 붙는다. 옆 사람의 얼굴을 눈에 똑똑히 새겨두길 바란다. 그게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갈 사람의 얼굴이다! 대열의 순서는 내가 임의로 정하도록 하겠다. 한 번만 설명할 테니 집중해서 잘 따라주길 바란다.”
“네!”
형만의 명령이 떨어지자 절반의 헌터들이 즉각 움직였다.
용주의 표정은 상당히 시큰둥했다.
하지만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남은 구역은 B 구역뿐이었다.
이형결정체를 하나라도 더 가져가려면, 협조하는 척이라도 하는 게 최선이란 생각이 들었다.
게이트가 클리어되지 않았다는 건, 기회도 아직 있다는 소리였다.
“또 같이네.”
용주와 시선을 맞춘 수지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웃고 있는 입과 달리 수지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고집불통에 막무가내인 것치곤 착하네. 아저씨 말도 잘 듣고. 아니면 역시 매가 약인 건가?”
“…….”
머리를 쓰다듬으려는 수지의 손길을 피한 용주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나이도 얼마 차이 안 나는 거 같은데, 이거 완전 어린애 취급이지 않은가.
“웃는 얼굴이라고 침이 안 튈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후훗, 그래.”
용주 쪽으로 반걸음 더 다가간 수지는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수지의 검지 끝이 용주의 이마를 콕 찌르고 있었다.
“그럼 잘 부탁해.”
“내 목소리가 안 들렸던 모양이지?”
“글쎄… 어땠으려나?”
용주의 눈을 보며 웃어 보인 수지는 천천히 뒤로 돌아섰다.
한 줄 한 줄 채워지던 대열은 이제 두 사람의 차례에 다가와 있었다.
* * *
“바짝 긴장하도록.”
“네!”
빠르게 대열을 정비한 형만은 헌터들을 이끌고 수색을 개시했다.
선봉에 선 것은 형만과 태영.
용주와 수지의 자리는 뒤에서 두 번째였다.
B 구역의 입구는 다른 두 곳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비릿한 피비린내가 짙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여기서 한 차례 전투가 있었나 보네요.”
언노운의 유해를 확인한 태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통로 여기저기서 흩뿌려져 있는 언노운의 시체 조각을 머릿속으로 조립해 보면 대략 3마리 정도.
자신들이 발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D급 이족 보행형 언노운들이었다.
이렇게 좁은 통로에서 놈들을 상대하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성공적으로 처리해 냈다.
“이형결정체는 모두 회수되어 있어요. 큰 부상을 입은 흔적도 없고요. 일단 여기까진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고 봐도 문제없을 것 같은데요.”
빠르고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한 태영이 이야기했다.
“계속 들어간다. 경계하도록.”
“네!”
형만의 신호에 따라 정지했던 대열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음… 이건 또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길고 길었던 행군 끝에 간신히 멈춰 선 태영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여기까지 오면서 전투의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전투는 최소 3차례 이상.
쓰러뜨린 언노운은 최소 10체 이상이었다.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않은 헌터들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앞은 막혀 있었다.
아니, 막혀 있긴 했지만, 완전히 막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앞에 있는 건 굳게 닫혀 있는 문이었으니까.
“문… 맞죠? 이거. 그것도 엄청나게 큰. 언노운들이 문을 만든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는데요.”
천장과 맞닿아 있는 문을 보며 태영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D급 카오스 게이트를 여럿 봐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문이라니 들어본 적 없다고.”
“그러게. 이런 경우는 나도 처음이야.”
“사람이… 만들었을 리는 없겠죠?”
“누가 미쳤다고 게이트 안에 문을 달겠어. 엉뚱한 소리 하지 마.”
다른 헌터들의 반응도 대개 비슷했다.
물론, 전부는 아니었다.
“어떻게 생각해?”
그리스시대 건축물이 생각나는 석조 문을 보던 수지가 물었다.
형만을 제외한 사람들 중 표정이 다른 건 이 두 사람뿐이었다.
“카오스 게이트 안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건 없다. 분명 그렇게 말했었지. 마찬가지다. 뭐가 있어도 이상할 건 없어.”
형만이 했던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를 오래전 아버지께 들은 기억이 있었다.
카오스 게이트 안쪽은 어떻게 생겼는가에 대한 물음이었지.
“의외로 착실하게 듣고 있었네. 실은 모범생 스타일? 불량아 탈을 쓰고 있는?”
“…마음대로 생각해.”
호기심을 표하는 수지의 눈짓을 피한 용주는 석조 문을 살펴보았다.
겉으로 보기에 특별할 건 거의 없었다.
특별한 조각이 돼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하학적인 문양이나 글자가 그려져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특별한 게 있다면 문의 크기 정도.
압도적으로 거대한 저 문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건축 양식을 크게 벗어나 있었다.
“근데 좀 이상한 것 같지 않아?”
용주가 보는 걸 같이 보고 있던 수지가 이야기했다.
“이상하다? 뭐가 말이지?”
“그냥 내 추측인데, 저 문 엄청 두꺼울 것 같아. 저만한 크기의 석조 문이라면, 엄청 무겁지 않을까? 헌터 넷이서 그걸 밀고 들어갔다라…. 안 이상해?”
“네 전재가 틀렸다면 이상할 것도 없지. 밀어 본 것도, 두드려 본 것도 아니잖아.”
“그치만 그래도 역시 이상해.”
“어떤 점이?”
“왜 문이 닫혀 있을까?”
“…….”
자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예리한 물음에 용주는 답을 하지 못했다.
확실히 그건 이상한 이야기였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닌 이상 굳이 연 문을.
위급한 상황 퇴로로 사용될 그 길을 자기들 손으로 막을 이유가 없었다.
“다른 길은 없었다. 그들이 있다면 필히 이 안에 있을 터….”
선봉에 선 형만이 외쳤다.
카오스 게이트 내부에 자리 잡은 인공적인 조형물.
A급 헌터인 형만에게도 이건 낯선 물건이었다.
“아무래도 선발대를 짤 필요가 있을 것 같군. 혹시 자원할 사람 있나?”
목소리를 높인 형만은 한 바퀴를 둘러보았다.
처음 마주하는 불길함에 헌터들의 손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자원한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다.
“좋아. 앞으로 나와.”
용주를 바라본 형만이 외쳤다.
꽈악!
앞으로 나가려던 용주는 자신을 붙잡는 손길에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갈 거야?”
용주의 소매를 잡은 수지가 물었다.
“그래.”
“그럼 나도….”
“넌 여기 있어.”
수지의 말을 자른 용주가 그녀를 쏘아보았다.
“너랑 난 한 팀이야. 팀은 함께야.”
“그때 나눈 2인 1조는 여기 도착하며 역할을 다했다. 더 이상 거기 연연할 필욘 없어.”
“그래도….”
“‘의료 헌터는 동료들을 놔둔 채 위험에 도전하지 않는다.’ 의료 헌터의 행동 규칙 모르진 않겠지?”
“너 그걸 어떻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용주의 한마디에 수지는 놀란 눈동자를 깜빡였다.
수지의 손길에서 벗어난 용주는 자신을 향한 시선들을 지나치고 있었다.
“현재 시각 20시 32분. 수색은 22시 정각까지 진행하는 걸로 하겠다.”
손목시계를 확인한 형만이 외쳤다.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의 지시와 판단은 저기 있는 한태영에게 맡기도록 하겠다. 불만 있는 사람 있나?”
“…….”
형만의 물음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막중한 임무에 태영은 안경테를 고쳐 쓰고 있었다.
“수색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우리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진입하지 말고 길드로 돌아가 상황을 보고해라. 이건 절대 따라야 하는 첫 번째 수칙이다. 알겠나?”
“네!”
돌아오는 대답 속에 형만은 수지를 바라보았다.
모자를 푹 눌러쓴 그녀는 자신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녀석을 끌어들이지 않은 건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게 널 위해서든 아니든.”
뒤로 돌아선 형만이 목소리를 낮췄다.
그의 옆에 있는 건 이제 E급 헌터 하나뿐이었다
“안에 뭐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만둘 거라면 지금이라도 그만둬. 목숨은 하나뿐이다.”
“그만둘 거라면 저기 있는 놈들처럼 가만히 있었을 거다.”
“…쯧! 그래. 좋다. 돈 때문이든 뭐든 그 용기만은 칭찬해 주지.”
걸음을 옮긴 형만은 석조 문 앞에 섰다.
D급 헌터 넷이서 이 문을 열었다고 한다면, A급 헌터인 자신이 못 할 것도 없다고 형만은 생각하고 있었다.
드르르륵!
이윽고 벌어지는 석조 문의 틈.
문에 손을 올렸던 형만은 미간을 구겼다.
자신은 아직 아무런 힘도 주지 않은 상태였다.
“들어가지.”
불길함을 삼킨 형만은 대검을 뽑아 들었다.
용주는 묵묵히 그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