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 * *
“헌터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 때? 음… 글쎄….”
귓가에 익은 목소리에 용주는 눈을 떴다.
용주의 앞엔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다치는 모습을 볼 때려나? 같은 게이트에 있는 사람들은 다 엄마 가족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리고 어머니의 앞에 있는 건 어렸을 적 자신의 모습….
아니, 어렸을 적 자신의 모습을 하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다.
“하핫! 그래. 그리고… 우리 예쁜 아들딸 얼굴 못 보는 것 정도?”
“…….”
눈앞에 보이는 풍경에 용주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점점 희미해져 가던 두 사람의 모습은 이내 연기처럼 흩어져 버렸다.
어머니는 말씀하셨었다.
헌터는 가족이라고.
헌터는 혼자가 아니라고.
나는 그 말을 믿었다.
그때는….
“돈은 어떻게 써야 하냐고?”
이윽고 들려오는 또 다른 목소리.
그리운 남성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용주는 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아버지는 어린 자신과 예은이를 앞에 두고 생각에 잠진 듯 보였다.
“자! 좋아. 이렇게 생각해 보자. 지금 아빠 손에 떡이 있다고 해보자. 그리고 용주는 3일 동안 굶었고, 예은이는 지금 배가 꽉 찼어. 그럼 누구에게 이 떡이 더 필요할까?”
“…….”
“그렇지! 용주겠지? 돈도 그런 거야. 넘치는 만큼은 필요 없지만, 누군가에겐 간절할 만큼 필요한 거. 그러니 필요한 사람에게 갈 수 있어야 하는 게 돈 거야. 알겠니?”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아버지의 미소를 보며 용주는 입술을 깨물었다.
헌터들은.
특히 의료 헌터는 돈이 많다고들 보통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집에 모아둔 돈은 거의 없었다.
그럴 것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어느 정도인지는 부모님의 통장을 열어보고야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있던 목돈은 아버지가 품에 가지고 있던 유서대로 내 눈을 뜨게 하는 데 사용되었다.
“아무도 안 오네….”
또다시 들려오는 목소리에 용주는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 보이는 건 훌쩍 커버린 자신과 동생의 모습이었다.
“오늘로 마지막이란 말이야. 왜… 왜 아무도 안 오는 거야?”
검은 양복을 입고 있는 예은이는 울고 있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리고 조문객도 하나 없는 장례식.
가족이라던 헌터들은 아무도 부모님의 마지막을 배웅하러 오지 않았다.
나는 울지 않았다.
아버지의 눈으로 울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나는 생각했다.
헌터는 혼자라고.
헌터는 가족이 아니라고.
“잘하는 것도, 배운 것도 없고, 사회 경험도 대인관계 경험도 거의 없어. 장님 새끼라며 놀림이나 받던 네가 앞 좀 보인다고 뭘 할 수 있겠어? 너한테 특별한 거라고 해봤자, 다른 사람한텐 당연한 거라고.”
사라지는 풍경 속 들려오는 네 번째 목소리에 용주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자신이 있었다.
“그런 쓸데없는 너라고 해도 넌 이제 가장이야. 너 아니면 너희 가족 다 끝장이라고. 동생 험한 꼴 보게 하기 싫잖아. 그러려면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어? 각성했잖아. 그거면 입에 거미줄은 치지 않을 거야. 국가에서 집 나오잖아. 의료비도 나오고. 너 하나 피 보면, 네 동생은 다 괜찮을 거라고.”
“…….”
“누구도 곁에 두지 마. 누구한테도 마음 주지 마. 이를 악물고 혼자 버텨. 명심해. 헌터는 혼자야.”
그래.
저 녀석의 말 대로였다.
그런 마음으로 헌터 일을 시작했었다.
그런 마음으로 눈빛부터 말투까지 전부 바꿨었다.
나를 닫으려면, 나를 감추는 것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나는 나와 헌터로서의 나를 분리시켜갔다.
* * *
“으… 으윽!”
끔찍한 두통에 미간을 좁힌 용주는 눈을 떴다.
보던 것들이 지워진 그곳에는 수지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일어났어?”
눈을 마주친 수지가 물었다.
용주의 머리는 수지의 무릎베개를 베고 있었다.
용주는 노골적인 적대감을 표했다.
제법 살벌한 표정이었다.
“잠꼬대 엄청 하네. 악몽이라도 꾸고 있던 거야?”
수지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용주는 몸을 움직이려 했다.
멱살을 잡고 묻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하지만 몸은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상처 때문은 아니었다.
어째서인지 몸에 생겼던 상처는 모두 사라져 있었다.
“그렇게 경계하지 마. 나쁜 짓은 안 했으니까. 상처는 내가 다 고쳐놨어. 근데 아직 못 움직일 거야. 그 꼴을 하고도 태연하게 움직이길래 내가 아예 못 움직이게 해놨거든. 움직이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릴 거야.”
‘고쳐놨다고?’
용주는 기억을 더듬었다.
마지막에 손안에 깃든 빛을 봤던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에 매칭되는 것이 딱 하나 있었다.
눈이 아닌 소리에 의한 기억이긴 했지만 말이다.
수술 하나 없이.
설비 하나 없이 부상자를 치유하는 의료 헌터.
그 빛은 동생이 묘사했던 어머니의 빛이었다.
“맞는 쪽으론 꽤 소질 있나 보더라. 전투에 비해 부상은 심하지 않았어. 치명상도 없었고.”
“너… 정체가 뭐냐?”
용주는 눈썹을 기울였다.
그녀에 대한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의료 헌터.”
“아니, 내 질문은 그게 아니잖아!”
용주가 언성을 높였다.
헌터 중에서도 고급 인력인 그들에겐 최소 C급 이상의 등급이 부여된다고 들은 기억이 있었다.
D급 게이트 정도라면 의료 헌터가 동반되기도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C급이 아니었다.
“아까 네가 뿜어냈던 A급 헌터의 기운… 처음 만났을 때도 지금도 그건 느껴지지 않아. 평범한 헌터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 리가 없겠지.”
“…….”
“게다가 평범한 의료 헌터가 그런 움직임을 보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너… 정체가 뭐냐?”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네가 A급 헌터의 기운을 느낀 건 내가 A급 헌터이기 때문일 거야.”
“숨길 생각은 없나 보군.”
“응. 그리고 네가 지금 그 기운을 느낄 수 없는 건 내가 조금 특이한 체질이라 그런 거고.”
수지가 손가락 하나를 세웠다.
“특이한 체질이라고?”
“그렇다고 하더라고. 헌터로서의 기운을 지울 수 있는 특이 체질. 아니, 의식하지 않아도 혼자 지워진다고 하는 게 맞으려나?”
용주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체질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었다.
“하나는 해결됐고… 다른 하나가… 아! 그래. 내 움직임에 대한 거였지?”
수지가 두 번째 손가락을 세웠다.
“그건 두 가지로 설명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하나는 네가 그만큼 약하다는 거지. 다른 하나는 의료 헌터라고 무조건 약할 거라는 편견 때문이고.”
“…….”
“확실히 의료 헌터의 전투력은 같은 등급의 헌터들보다 떨어져. 하지만 의료 헌터는 의사나 간호사가 아니야. 본인이 약해서 자기 한 몸 지킬 수 없다면 그건 의료 헌터로서의 직무유기라고 생각해.”
용주는 초점을 굴렸다.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았다.
“…형만도 알고 있나?”
“물론이야. 애초에 형만 아저씨 부탁이 아니었으면, 여기 오는 일은 없었을 거야.”
“부탁이라고?”
“응. 뭐랬더라? 고집불통 막무가내 애송이 하나를 주웠는데, 귀찮아질 수도 있으니 같이 가달라고 했든가? 아! 이야기는 비밀이라고 했든가?”
수지의 목소리가 사라지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필사적이더라. 특별한 이유라도 있어?”
주제를 바꾼 수지가 물었다.
“남이사. 너랑은 상관없는 이야기다.”
수지의 시선을 피한 용주는 강제로 몸을 비틀었다.
머리에서 보낸 신호를 몸은 전력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그럼 나한테 그렇게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낸 건? 혼자 막무가내로 움직인 건?”
“똑같은 말 하게 하지 마라.”
하지만 용주는 끝내 옆으로 구르는 데 성공해 냈다.
땅을 짚고 일어나려는 용주의 모습을 수지는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몇 번이나 쓰러지고도, 바닥에 얼굴을 몇 번이나 비비면서도 아등바등 상체를 일으키는 용주를 보며 수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리 위쪽만 간신히 고정시킨 용주는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응. 그렇구나. 그래도 혹시 조금이라도 의지할 데가 필요해지면 말해도 돼. 나라도 좋다면 기대게 해줄 테니까. 예전에 누가 그랬어. 헌터는 가족이라고.”
호수처럼 잔잔한 수지의 목소리.
그녀의 이야기에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걸 느낀 용주는 초인적인 힘으로 몸을 일으켰다.
용주는 수지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고 차가운 눈빛으로 수지를 보았다.
“너… 그 이야기 누구한테 들었어.”
같은 말을 하는 헌터가 세상에 한 명뿐이란 법은 없었다.
의료 헌터들 사이에선 흔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용주는 결코 이 이야기를 그냥 듣고 넘어갈 수 없었다.
“응? 왜?”
“잔말 말고 묻는 거에만 대답해. 그 이야기 누구한테 들었어.”
용주는 더욱 강하게 손끝에 힘을 주었다.
“누구한테 들었냐고!”
부모님의 장례식에 헌터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 사람들을 가족으로 대했건만, 어머니의 마지막을 배웅하러 온 헌터는 아무도 없었다.
나중에라도 찾아온 이 또한 없었다.
어쩌면… 이 녀석이 어머니께서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그 사람들 중 하나일지도 몰랐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꼭 한 번 묻고 싶었다.
왜… 대체 왜 그랬냐고.
“…그게, 실은 기억이 안 나.”
격해진 분위기에 잠시 뜸을 들이던 수지가 이야기했다.
“뭐라고?”
“아무리,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디서 누구한테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아. 마치 누가 내 머릿속에서 지워 버린 것 같이.”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그치만 사실인걸. 기억나지 않아. 아무것도. 그래서 왠지 슬퍼. 뭔가 굉장히 따뜻했던 기억이었을 것 같은데.”
“…….”
수지의 눈동자를 바라보던 용주는 그녀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 순간, 용주의 다리가 기괴하게 비틀리며 무너졌다.
“안 움직여야 정상인 걸 억지로 움직이니까 그리되지. 가만히 있어 봐. 근육 망가져.”
자세를 낮춘 수지가 용주의 허벅지에 손을 올렸다.
다리 근육이 비틀리면서 생긴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울 게 분명했다.
하지만 용주는 비명을 지르기는커녕 이 꼴이 나고도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진짜 좀비처럼.
“근데 왜? 혹시 뭐 짚이는 거라도 있어?”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점점 사라져가는 고통 속에서 용주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눈과 목소리는 거짓을 말하고 있지 않았다.
“이제 어쩔 거야? 더 들어갈 거야?”
수지가 물었다.
마비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용주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음… 그렇구나.”
수지는 용주를 따라붙었다.
“또 따라올 생각인 거냐?”
“난 누구 따라간 적 없어.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고 있는 거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는 거야. 이미 말하지 않았던가?”
“…….”
“그리고 의료 헌터한테는 행동 규칙이란 게 있어. ‘의료 헌터는 혼자 떨어져선 안 된다.’ 이건 그중 하나야. 지금 너랑 떨어지면 난 혼자야. 행동 규칙에 어긋나.”
“완전 제 마음대로군.”
마음에 들지 않는다.
노골적으로 그 말을 표정에 담은 용주는 고개를 돌렸다.
가려던 안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언노운의 것은 아니었다.
이건 사람의 발소리.
그것도 두 사람의 발소리였다.
“좀비 헌터! 그리고 안수지 양도 드디어 다시 만나네요. 둘 다 어디 다치신 곳은 없고요?”
태영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그의 모습은 형만과 상당히 대비되었다.
“두 분 다 갑자기 사라져서 걱정했다고요. 제가 아무리 말씀드려도 리더는 신경도 안 쓰는 눈치고….”
손수건을 꺼낸 태영이 그제야 이마를 닦아 냈다.
“다른 쪽이랑 이어져 있던 모양이네?”
수지가 이야기했다.
두 사람은 이 길을 지나가지 않았다.
아마 어딘가에서 합쳐지는 루트가 있었던 모양이다.
“네. A루트는 올 클리어. 그렇게 봐도 좋을 것 같아요. 게이트 보스는 아쉽게도 없었고요.”
‘올 클리어라고? 이렇게 빨리?’
용주의 표정은 영 좋지 못했다.
일부러 서둘렀는데, A루트가 클리어되는 동안 잡은 언노운은 고작 한 마리가 전부였다.
용주는 시간을 확인했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한 용주의 표정은 급격하게 굳어갔다.
18시 30분.
‘말도 안 돼….’
시간은 어느새 그렇게 흘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