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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5화 (5/357)

5화

“어서 오십시오.”

“오랜만이에요. 형만 아저씨”

형만에게 두 소녀가 인사를 건넸다.

가영도 나영도 형만이 낯설지 않은 모양이었다.

“토벌 지령이 내려온 카오스 게이트에 대해 알려줬으면 하는데.”

“예에? 형만 아저씨가 게이트를? 은퇴한다고 하신 거 아니셨어요?”

가영이 물었다.

“일선에서만 물러난다고 했었다.”

“에이, 그게 그거죠, 뭐.”

“게이트는 어떤 걸 찾아드리면 되겠습니까? A급? B급?”

나영이 물었다.

“D급이다.”

“D급?”

나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A급 헌터가 D급 게이트라니.

보통이라면 잘 없는 일이었다.

“그래.”

“알겠습니다. 위치는 수도권으로 탐색하면 되겠습니까? 아니면 전국 단위로?”

“수도권으로 부탁하지.”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나영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화면을 봐주시겠습니까?”

나영이 화면을 띄워주자 출현 중인 게이트와 경과한 시간 등이 기록된 지도가 출력되었다.

“이 중 토벌팀이 편성되지 않은 게이트를 탐색하겠습니다.”

“리더는 당연히 형만 아저씨가 하셔야죠. ‘샐러맨더’라고 하면 지금도 난리 날 거라고요.”

가영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샐러맨더.

타오르는 불 속에서 산다는 이 상상의 동물은 형만을 상징하는 이명이었다.

“해당 게이트 중 토벌팀이 아직 결성되지 않은 게이트는 화면에 있는 하나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걸로 하지.”

“알겠습니다. 그럼….”

무언가를 말하려던 나영은 잠시 맥을 끊었다.

“혼자 토벌하시는 겁니까?”

형만은 A급 헌터였다.

그런 그가 D급 게이트를 간다고 한다면 토벌팀 같은 건 모집할 필요가 없었다.

현재 기준에서 A급 헌터는 한국에 약 100명.

그들의 힘과 능력에 의심을 품을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아니, 보통의 D급처럼 토벌팀을 모집해 주길 바란다.”

“알겠습니다.”

“또 한 가지.”

형만이 손가락으로 숫자 1을 가리켰다.

“저 녀석 데려갈 거니까. 명단에 넣어둬.”

“저 녀석이라면… 이용주 헌터님 말씀이십니까?”

“그래. 왜 그사이에 규정이라도 바뀌었나?”

“아니요, 아닙니다.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나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D급 게이트에 이명을 가진 헌터가 두 명이라니. 뭔가 가슴이 웅장해지는 조합이네요.”

가영이 히죽 웃어 보였다.

“두 명?”

“아! 모르셨나 보구나. 용주 씨도 이명 있어요. ‘좀비 헌터’라고. 이 주변에선 그래도 꽤 유명하다고요.”

“…그래?”

E급 헌터에게 이명이 붙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만약 붙는다면 그 원인이 좋은 쪽보다는 안 좋은 쪽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른바 ‘폐급’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단정 짓기엔 모순점이 있었다.

E급의 폐급이 D급 언노운을 혼자 처리했다?

녀석에겐 분명 뭔가가 더 있었다.

“근데 되게 의외네요. 형만 아저씨가 이렇게 하시는 거 처음 보는 것 같아요.”

가영의 물음에 돌아온 대답은 없었다.

무심하게 그녀를 한 번 바라본 뒤 형만은 곧바로 몸을 돌려 카운터를 등졌다.

“미리 말해두는데, 살려달라고 빌지 말아라, 좀비 애송이. 내가 약속한 건 딱 여기까지니까.”

“내가 죽을 곳은 내가 정한다. 적어도 거긴 내가 죽을 자리가 아니야.”

용주의 대답에 형만은 눈썹을 기울였다.

“죽음이 뭔지도 모르는 애송이 주제에 입만 살았군.”

“난 절대 못 죽는다.”

둘의 눈싸움이 잠시 이어졌다.

용주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형만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구겼다.

“…쯧!”

혀를 찬 뒤 형만은 미련 없이 헌터 길드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용주의 핸드폰에 토벌의 일시와 집합 등에 대한 알림이 울렸다.

* * *

“저기 서 있는 사람 ‘좀비 헌터’라고 불리는 그 사람 아냐?”

“에이 설마. 그 사람 E급이라며, 여긴 D급이라고.”

“음… 그런가?”

“100%야. 헌터 길드가 미쳤냐? 그런 약골을 여기 보내게.”

“그런가? 하긴 미치지 않고서야 가라고 해도 안 가겠지? E급에서도 죽을 뻔했다고 들었으니까.”

이런저런 용주에 대한 이야기들이 한동안 이어졌다.

“13시 정각.”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있던 형만이 전방을 주시했다.

게이트를 빙 두른 바리케이드에는 수많은 군인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민간인들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 게이트 앞쪽에는 대략 10여 명 정도의 헌터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중엔 용주도 있었다.

“전원 모였군. 만나서 반갑다. 난 이번 토벌팀의 리더를 맡은 A급 헌터 박형만이라고 한다.”

팔짱을 낀 형만은 사람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A급이라고? 저 동네 슈퍼 아저씨처럼 생긴 아저씨가?”

“A급 헌터가 리더란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A급 헌터가 왜 D급 임무에….”

“박형만이라면… 그 사람 맞지? ‘샐러맨더’라고 불렸던….”

여기저기서 술렁거림이 일었다.

“너희의 불안은 이해한다. 하지만 이상하게 생각할 것 없다. 이 게이트는 지극히 평범하니까. 특별함을 기대했다간 오히려 애송이가 될 거다.”

형만의 이야기에 술렁거림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게이트의 출현은 오늘로 5일 차. 여유 부릴 시간은 없다고 봐도 좋다.”

형만이 주제를 바로잡았다.

게이트 출현 이후 7일까지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일주일의 시간이 지나 게이트가 안정화되면, 그 안에 있던 언노운들이 바깥으로 나와 활개를 치기 시작한다.

인적 물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게이트를 닫는 게 최선이다.

“이번 토벌에 자원하고 편성된 인원은 총 12명이다. 게이트 입구의 기본적인 탐사 결과 3개 방향으로 길이 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이번 토벌은 4인 1조로 편성되어 진행하도록 하겠다. 이의 있나?”

형만의 물음에 침묵이 흘렀다.

D급 헌터들에게 있어 A급 헌터의 말은 그런 것이었다.

“이의는 없는 걸로 알고 진행하도록 하겠다. 조의 편성은 내가 임의로 편성했으니, 그대로 따라주길 바란다.”

형만의 호명에 따라 헌터들은 세 개의 조로 편성되었다.

용주가 편성된 조는 A조로 팀의 리더인 박형만, D급 헌터인 한태영, 그리고 D급으로 추측되는 한 소녀로 구성되었다.

“또 만나네요, 좀비 헌터. 설마 이런 곳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는걸요.”

같은 자리에 모인 태영이 인사를 건넸다.

다른 헌터들은 긴가민가한 모양이었지만, 태영은 용주를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E급인 용주에겐 여기 올 자격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여기 있다는 건 필히 A급 헌터가 여기 있는 것과 관련이 있을 터였다.

“그 눈빛은 여전하네요. 아주 믿음직스러운걸요.”

대답 없는 용주의 어깨를 툭 건드린 태영은 다가오는 또 다른 헌터를 바라보았다.

모자를 깊이 눌러쓴 저 소녀는 태영도 초면인 헌터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한태영입니다.”

사무적인 느낌을 물씬 풍긴 태영은 안경을 고쳐 썼다.

왜소해 보이는 체격과 대비되는 소녀의 펑퍼짐한 옷차림은 마치 다른 사람 옷을 빌려 입고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수지… 잘 부탁해.”

어딘지 모르게 음침한 분위기를 풍긴 소녀는 모자를 더 깊이 눌러썼다.

아무래도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 * *

게이트 내부로 진입한 용주는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형만의 말대로 게이트 반대편은 세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A조는 좌측 A 구역, B조는 중앙 B 구역, C조는 우측 C 구역으로 진입한다. 각자의 판단과 행동을 우선하되, 위험한 기운이 감지되면 대응하지 말고 즉각 퇴각해 보고하기 바란다. 또 예상치 못한 만일의 사태가 발생하면 각자에게 나누어 준 ‘이형 신호탄’을 터트려 주길 바란다. 이상이다.”

간단한 지시를 내린 형만은 대검을 뽑아 들었다.

카오스 게이트 안쪽에선 바깥의 기기들이 힘을 쓰지 못했다.

탱크와 제트기는 물론이고, 소총과 권총, 핸드폰, 심지어는 섬광탄이나 연막탄 같은 신호탄도 제대로 작동 하지 않았다.

빛과 소리를 발산하는 이형 신호탄은 기존의 것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으로 E급 이형결정체를 가공해 만든 소모품이었다.

“질문 있나?”

바닥에 대검을 꽂아 넣은 형만이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마주쳤다.

“게이트 보스를 만날 경우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 헌터가 물었다.

“개인의 판단에 맡기겠다. 혼자 처리하면 보수를 모두 독식하면 되고, 팀 단위로 처리하면 팀이 나누면 된다. 팀 단위로도 부족하다면 도움을 요청해라. 다른 질문?”

하지만 다른 질문은 없었다.

“현재 시각 13시 5분. 일차적인 탐색은 19시 정각까지 진행하도록 하겠다. 19시까지 게이트가 클리어되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다시 모이는 걸로 하겠다. 이상!”

“좋아! 한번 해보자고!”

“잘해 봅시다.”

“이렇게 된 거, 누가 게이트 보스 먼저 발견하나 내기나 할까요?”

“발견하냐가 뭐야? 처리하냐로 하자고! 크하핫!”

형만의 외침에 헌터들이 저마다 사기를 다졌다.

용주는 조용히 자리를 떴다.

다른 헌터들과의 협동 같은 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형만은 그런 용주를 보았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용주의 뒤를 한 사람이 쫓아가고 있었다.

그것을 눈치챈 용주가 힐끔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왜 따라오는 거냐?”

“…….”

그렇게 몇 번의 질문과 침묵의 답변이 이어졌다.

용주는 일부러 몇 번 복잡한 길로 가거나 뛰면서 쫓아오는 이를 떨구려고 했지만, 발소리는 계속 자신의 뒤에서 들려왔다.

뒤따라오는 헌터는 안수지.

용주와 같은 조에 편성된 헌터였다.

하지만 용주는 지금 단독행동을 하고 있었다.

형만이 동행하지도 않았고, 팀 단위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자신을 쫓아올 이유는 전혀 없는 거였다.

“착각하는 게 있나 본데, 난 너랑 팀 같은 거 아니다. 그러니 따라오지 마.”

“착각한 거… 없어. 따라간 것도 없고.”

수지의 첫 대답이었지만 나름 단호했다.

목소리에는 어떤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그럼 왜 계속 내 뒤를 밟고 있는 거냐?”

“그런 적 없어. 그냥 내가 가려는 곳을 네가 가고 있을 뿐이지.”

“…….”

순간, 용주는 우뚝 멈춰 섰다.

바로 앞, 길이 몇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그럼 네가 먼저 정해라. 난 다른 길로 갈 테니.”

“지금은 멈추고 싶은데, 여기 있을 거야.”

“…….”

용주의 미간이 구겨졌다. 아무래도 끝까지 따라올 모양인 것 같았다.

“무슨 꿍꿍이속인지 몰라도 재미없을 거다.”

용주의 날 선 경고에도 수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용주는 걸음을 뗐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카오스 게이트 내부에서 헌터가 헌터를 해하는 일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녀석이 뭔가를 해온다면, 이쪽도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해줄 각오는 언제든지 되어 있었다.

길을 따라가던 용주는 발소리를 죽였다.

저 앞에 뭔가 있었다.

“언노운… 이족 보행형이네.”

한발 늦게 용주를 따라붙은 수지가 이야기했다.

눈으로 보이는 언노운의 수는 하나.

녀석은 아직 이쪽을 감지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녀석은 내가 잡는다. 방해하지 마.”

목소리를 낮춘 용주가 속삭였다.

저 앞에 있는 녀석은 E급에서 만났던 D급 언노운과 같은 녀석이었다.

운이 좋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상대법을 알고 있으면 전투도 그만큼 할 만해 진다는 의미였으니까.

“그래. 알았어. 마음대로 해.”

수지는 뒤로 한발 물러났다.

끼이익!!

칼끝으로 벽을 긁은 용주는 달려오는 녀석과의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전투는 예상보다 빠르게 종료되었다.

언노운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용주의 턱선을 따라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한심하군.’

용주가 입 안에 고인 피를 뱉어냈다.

녀석의 특성이나 행동 패턴 같은 건 분명 알고 있었다.

그걸 이용했고, 빈틈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주 약간 부상의 정도가 덜할 뿐 용주의 상태는 이번에도 엉망이었다.

‘그래도 이걸로 하나 더 챙겼어.’

용주는 이형결정체를 회수했다.

D급 이형결정체의 국가 매입가는 대략 100만 원 선.

하나만으로도 이미 용주가 벌 수 있는 한 달 치 수입과 맞먹었다.

검에 묻은 피를 대충 흩뿌린 용주는 손등으로 입술을 닦았다.

이 이상의 전투는 무리라고 몸은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멈출 순 없었다.

E급 헌터인 자신에게 D급 게이트에 입장할 수 있는 기회는 아무 때나 오는 게 아니었다.

“더 가려고? 그 상태로?”

수지가 물었다.

용주는 넝마가 된 몸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당연하지.”

“왼쪽 어깨 탈골, 왼쪽 손가락 골절, 내부 출혈, 얼굴과 손바닥 자상, 아마 갈비뼈도 무사하진 않겠지. 그 외에 각종 멍과 타박상… 조금 과장하면 급소만 빼고 멀쩡한 곳이 없는 수준이야. 원래 있던 부상에 새 부상까지. 서 있는 것도 힘들지 않아?”

용주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진단은 구체적이면서 정확했다.

“…이 정돈 아무것도 아니다.”

“거짓말.”

“거짓이든 아니든,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내 일에… 나한테 신경 쓰지 마!”

경멸에 가까운 눈으로 수지를 노려본 용주는 앞으로 나아갔다.

강한 적대감이 느껴지는 용주의 외침에 수지는 숨을 내쉬었다.

“듣던 대로 고집불통에 막무가내구나?”

그리고 그 순간, 뭔가가 일어났다.

피부를 스치는 강렬한 기운.

이건…!

‘A급 헌터의 기운?’

용주는 급하게 고개를 들었다.

눈동자에 비치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수지였다.

“미안한데, 잠깐만 자고 있어.”

지면과 직각이 되게 내려온 수지는 용주의 얼굴에 손을 올렸다.

수지의 손엔 옅은 형광빛이 감돌고 있었다.

수지의 손을 뿌리친 용주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이게 무슨 짓인지.

정체가 뭐냐느니.

묻고 싶은 것들이 있었지만 용주는 아무것도 물을 수 없었다.

간신히 붙들고 있던 의식을 놓쳐버린 용주의 몸은 스르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 상태로도 움직이다니… 제법이네. 과장 좀 보태면 코끼리도 마취시킬 수 있는 건데.”

용주를 바르게 눕힌 수지는 상처에 손을 올렸다.

그녀의 손길이 닿은 상처는 빠르게 아물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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