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그 후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땅울림이 느껴졌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건… 이족 보행 형태의 언노운이었다.
두 팔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퇴화해 있었다.
하반신에 비해 빈약한 상체에는 목인지 머리인지 모를 부위가 솟아나 있었는데, 눈코입이 있어야 할 자리엔 아무것도 없었다.
용주는 검을 고쳐 잡았다.
녀석의 강함이 느껴졌다. 틀림없이 녀석이 게이트 보스였다.
기습을 계획한 용주는 기민하게 움직였다.
한데 뚜벅뚜벅 걸어오던 언노운이 갑작스럽게 멈춰 섰다.
그리고.
“……!”
기괴하게 비틀린 녀석의 얼굴이 정확히 용주를 향했다.
쿵!
스모 선수가 생각나는 발 굴림을 시전하는 언노운.
‘벌써 들킨 건가?’
기습이 실패했음을 인지한 용주는 방향을 틀어 속도를 높였다.
주위에는 은폐나 엄폐가 가능할 만한 구조물이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사실 기습이 성공할 확률은 높게 잡아도 30% 언저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의 상황이 크게 문제가 될 건 아니었다.
“꾸오오오오!!!”
한순간 언노운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쿵!!
천장과 닿을 기세로 떠올랐던 언노운의 몸이 수직으로 낙하했고, 그 충격으로 생긴 작은 지진이 공간을 울렸다.
E급 언노운들의 힘과는 확연히 다른 D급 언노운의 힘!
불의의 일격에 중심을 잃은 용주는 그대로 앞으로 꼬꾸라졌다.
쿵! 쿵! 쿵!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언노운이 용주를 향해 달려왔다.
일어날 시간조차 없음을 직감한 용주는 오른쪽으로 몸을 굴렸다.
볼펜 하나 겨우 들어갈 만큼의 차이로 언노운의 공격이 용주를 빗겨 갔다. 하지만 언노운의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언노운이 천천히 뒤로 돌고 있었다.
‘칫!’
흙먼지를 뒤집어쓴 용주는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작은 지진을 일으키고 있는 언노운과의 거리는 이제 불과 5m.
숨지도 피하지도 못할 상황. 용주는 녀석과의 전면전을 결정했고, 그 즉시 녀석의 머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 순간!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반동이 손을 타고 전해졌다.
튕겨 나온 칼날은 더 이상 적을 겨누고 있지 않았다.
쾅!!
그 뒤로 이어지는 강렬한 충격.
자신을 덮친 강렬한 힘에 충격을 받고 용주는 그대로 허공을 날아갔다.
“꾸오오!!”
용주를 날려 버린 언노운은 또 한 번 기괴한 포효를 내질렀다.
천장 중 일부는 파편이 되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큭…!’
두 번의 물수제비.
그리고 세 번의 구르기 끝에 간신히 멈춰 선 용주는 옆구리를 짚었다.
다리에 힘을 주었을 뿐이었는데, 오른쪽 옆구리가 뜯겨나갈 것같이 아팠다.
‘갈비뼈에 금이 간 건가?’
끔찍한 고통을 참아내며 몸을 일으킨 용주는 녀석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언노운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저 두 다리를 땅에 고정한 채 좌우를 두리번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움직이지 않아? …왜?’
갑작스러운 언노운의 이상 행동에 용주는 녀석의 시선을 아니, 녀석의 머리를 살폈다.
달팽이 더듬이처럼 늘어졌다 짧아졌다를 반복하고 있는 언노운의 머리는 조금 전 천장이 무너져 내린 지점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깐만….’
녀석의 기이한 행동에 용주의 머릿속에 한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설마 그런 건가?’
처음 이곳으로 돌아온 녀석은 평소 그대로처럼 행동했다.
녀석의 행동에 변화가 생긴 건 자신이 움직인 직후.
용주는 주변에 널린 돌 몇 개를 집어 들었다.
탁! 타다닥!
용주의 손을 떠난 돌멩이가 동굴 바닥을 때리자 작은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그 순간, 언노운의 머리가 소리가 난 방향을 향했다.
‘역시….’
D급 이족 보행형 언노운.
같은 이름으로 정의된다 하더라도 그게 단 하나의 개체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임의로 이름을 붙이는 작업은 그저 가장 크고 뭉떵한 원을 그리는 작업. 같은 원 안에 담겨도 언노운마다의 특성은 제각각이다.
지금 눈앞에 있는 녀석은 시각이 퇴화한 대신 청각과 진동을 감지하는 기관이 진화한 타입이었다. 녀석은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듣고 있는 것이었다.
‘거기까진 오케이인데….’
머리를 노린 참격은 통하지 않았었다. 그 정도 강도라면 몇 번을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뭔가 다른 방법이 없다면….
‘잠깐!’
언노운을 관찰하던 용주는 녀석의 몸통에 시선을 집중했다.
언노운의 머리와 하반신 부분… 색도 질감도 단단한 바위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상체 부분은 그렇지 않았다.
놈의 상반신은 탁한 살구색으로 인간의 살을 둥글게 뭉쳐 놓은 것 같았다.
‘혹시나의 영역이지만, 시도해 볼 가치는 충분해.’
손안에 남아 있던 돌멩이를 움켜쥔 용주는 있는 힘껏 돌을 내던졌다.
돌의 목적지는 용주의 바로 오른편.
크고 선명한 소리를 감지한 언노운이 즉각 흥분한 황소처럼 맹렬하게 돌진해 왔다.
‘조금 더….’
점점 더 거리가 좁혀졌다.
‘조금만 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거리를 재고 있던 용주는.
‘지금!’
한순간 검을 빗겨 그었다.
촤락!
용주의 검은 언노운의 몸통을 정확히 찢어냈다.
“쿠오오!!”
갑작스러운 일격에 상처를 찢긴 언노운이 고통에 울부짖었다.
용주는 기세를 잡았고, 공격을 이어갔다.
손끝을 타고 전해지는 예리한 감각은 이 공격들이 유효타임을 확실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용주의 생각처럼 상황은 흘러가지 않았다.
쿵! 쿵! 쿵!
피를 뿜으며 수직으로 몸을 비튼 언노운이 그대로 용주를 들이받아 버린 것이다.
“쿨럭!”
복부가 찢긴 듯한 강렬한 충격에 용주는 울컥 피를 토했다.
용주를 구석으로 몰아넣은 언노운은 곧장 다음 돌진을 준비했다.
3m.
2m.
1m.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생각을 멈추지 않던 용주는 아슬아슬하게 녀석의 다리 사이로 몸을 구겨 넣었다.
미끄러지듯 언노운의 가랑이 사이로 공격을 피했지만, 용주는 다시 한번 피를 토했다.
“컥!”
용주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헉… 헉!”
왼팔이 말을 듣지 않았다. 용주는 별다른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있는 힘껏 자신의 몸을 벽에 부딪혔다.
우드득!
왼쪽 어깨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다행히 말을 듣지 않았던 왼팔이 그제야 간신히 다시 움직였다.
“꾸오오!”
하지만 용주의 그 행동 탓에 그의 위치가 언노운에게 확실하게 인식되었다. 언노운이 다시금 돌진했다.
용주는 이번에도 아슬아슬하게 언노운의 공격을 피했다. 또한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다행히 검은 언노운의 몸속 깊숙이 파고들어 갔다. 조금 전 그의 검이 냈던 상처 부분에 검이 직격된 것이다.
‘됐어!’
용주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듯이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캉!
“……?”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용주의 뺨을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오른쪽 뺨에서부터 관자놀이까지 날카롭게 찢겼다. 금세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그 붉은 시야 너머로 부러진 칼날이 보였다.
‘하필 이럴 때… 윽!’
끔찍한 고통이 용주를 엄습했다. 용주는 고통을 삼키며 자신의 오른손을 보았다.
오른손은 분명 검을 쥐고 있었다. 하지만 검의 칼날 부분은 있어야 할 곳에 남아 있지 않았다.
용주는 맨손으로 부러진 칼날을 붙잡았다. 그리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놈의 상처 깊숙이 칼날을 욱여넣었다.
“꾸오…옥…!”
언노운이 좌우로 심하게 비틀거렸다. 그러다 더는 버티지 못하겠는지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용주의 검은 보급형 롱소드였다.
“…중요할 때 말썽을 부리는구나.”
용주는 검을 손에서 놓았다. 아니, 오른 손가락들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런 손으로는 검을 쥐고 있을 수가 없었다.
보급형 롱소드.
보통의 E급 헌터들은 이런 검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다.
성능도 디자인도 딱 보급형, 딱 그 수준이었다.
언노운에서 나온 장비가 있다면 사용하고, 그게 아니라면 돈을 모아서 사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용주는 계속해서 이 검을 사용했다.
언노운들에게서 무기가 나온 적도 없었거니와 다른 곳에 돈을 쓸 여유도 없었으니 말이다.
“하아….”
피범벅이 된 왼손을 바라보던 용주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미로 같았던 게이트는 하나의 원형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다행이랄까, 사망한 게이트 보스 외에 다른 언노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게이트가 클리어됐다는 증거였다.
“됐어…. 해냈어….”
놈의 유해로 다가가며 용주는 비틀거렸다.
순간적으로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도 챙겨야 할 것은 반드시 챙겨야 한다.
용주는 결국 이형결정체를 챙겼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끔찍한 고통이 동반됐지만, 형만과의 내기를 생각하며 용주는 계속해서 몸을 움직였다.
“이제 남은 건….”
그때, 불현듯 생각 하나가 용주의 머릿속을 스쳤다.
형만과의 내기는 이형결정체와 놈의 눈을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개체에 눈은 없다.
행운의 여신이 오늘만은 자신의 편이라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거하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어쩔 수 없지.”
칼날 파편 중 하나를 집어 든 용주는 놈의 살점 일부를 잘라냈다.
두 가지 물건을 챙긴 용주는 게이트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 * *
“무서운 이야기 이제 그만하시지 말입니다. 저 그런 이야기 별로 안 좋아합니다.”
경계 근무를 서고 있던 이등병이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크크큭! 짜식, 뭘 기겁하고 그래. 다 큰 사내 녀석이.”
“다른 건 괜찮은데 좀비는 진짜 싫지 말입니다. 왜 실화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지 않습니까. 노숙자 얼굴을 뜯어먹은 사람 이야기.”
“야! 그건 약에 절어서 그런 거잖아. 좀비 같은 게 아니라고.”
손을 쉬쉬 젓던 상병은 뒤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방탄끈을 채웠다.
안쪽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라면 딱 한 사람밖에 없었다.
근무 교대할 때 병장님이 말해준 그 헌터 말이다.
“충성! 임무는 다….”
거수경례를 올린 상병의 표정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으으….”
저 너머에서 걸어오고 있는 건 피투성이의 좀비였다.
* * *
헌터 길드.
제법 한적한 1층 로비에 앉아 있던 용주는 이형결정체를 만지작거렸다.
부상이 아직 온전하게 회복되지 않았기에 통증이 남아 있었다. 물론, 상처 쪽도 마찬가지였다.
헌터는 기본적으로 보통의 사람들보다 회복력이 좋았지만, 그럼에도 시간이 너무 짧았다.
게이트를 클리어한 그날.
병원에서 마주한 은정은 그에게 한껏 잔소리를 토해냈다.
치료를 하는 내내 그랬다.
SNS에 또 한차례 좀비 소동이 나서, 올 거란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고 그랬다.
끝이 아니었다.
자신의 보고에 창구를 지키고 있던 가영이 이어서 한바탕 난리를 피웠다.
‘정찰 임무에서 대체 뭘 한 거냐?’라는 뉘앙스의 잔소리부터 ‘어떻게 했냐’는 감탄에 이르기까지 거의 한 시간 넘게 붙들려 있었던 것 같다.
나영이 진정시키지 않았다면, 물론 그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길드 차원에서의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다른 헌터들에게도 이 소식은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았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추측을 해보자면… E급 게이트 정찰 같은 말단 임무까지 상부가 다 관여하고 관리하는 게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미공개 정보나 마찬가지였던 해당 게이트의 특수성 때문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됐건 용주에게는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용주의 눈에 헌터 길드로 들어오는 박형만의 모습이 박혔다.
그의 움직임을 쫓아 용주의 시선이 움직였다.
로비를 두리번거리던 A급 헌터 박형만이 시선이 용주의 시선과 부딪쳤고, 형만은 곧장 용주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용주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은 형만이 말했다.
“D급 이형결정체. 그래, 확실하군.”
용주의 손에 들린 이형결정체를 스윽 보기만 했는데도 형만은 확신하듯이 말했다.
“A급 헌터는 눈에 감별기라도 달린 모양이지?”
“그것도 구별 못 하니까 네가 애송이인 거다. 애송이.”
의자에 등을 기대며 형만은 다리를 꼬았다.
“다른 하나는 어디 있지?”
형만의 물음에 용주는 자그마한 유리병 하나를 꺼내놓았다.
안에는 심각하게 부패한 무언가가 들어 있었다.
형만은 유리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눈은 가져오지 못했다. 내가 만난 놈은 눈이 없는 개체였다.”
“그래서 그걸 가져왔다?”
“그래. 이건 놈의 살점이다. 놀라울 만큼 빠르게 부패하더군.”
게이트를 나설 때까지만 해도 살점은 세포의 움직임이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게이트를 나서자마자 부패가 진행되었다.
형태가 남아 있는 부위는 약 20%.
나머지는 가루 같은 게 되어 바스러져 버렸다.
당황스러웠었고, 부패를 막아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최대한 빨리 형만에게 보이는 것 말곤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흥!”
콧방귀를 낀 형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용주도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떠나려는 형만의 앞을 용주가 몸으로 가로막았다.
“내가 거짓말하는 거로 보이나?”
용주가 물었다.
상당히 공격적인 눈이었다.
“네가 그래서 애송이인 거다. 애송이.”
“뭐라고?”
“통상적인 언노운의 유해는 게이트 바깥에서 빠르게 부패한다. 네가 만약 내게 온전한 형태의 무언가를 가져왔다면 둘 중 하나였겠지. 네가 사기나 당하는 머저리라든가, 되지도 않는 사기나 치려는 등신이든가.”
“…….”
“넌 등신이나 머저리는 아니다.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일 뿐.”
형만은 용주를 지나쳤다.
그는 바깥이 아닌 카운터를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