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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3화 (3/357)

3화

“남의 통화를 엿듣다니, 악취미군.”

“엿들었다니,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어요. 전 그냥 바람 쐬러 나왔을 뿐이었다고요. 바람 쐬는데 뭐 귀라도 막아야 했을까요?”

불쾌함을 표하는 용주에게 은정이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누구 전화였어요? 아니지! 제가 맞춰 볼까요? 여자 친구 맞죠?”

“말해야 할 의무 없다.”

“에이~ 그러지 말고 얘기 좀 해봐요. 뭐 숨길 일도 아니잖아요.”

은정은 용주의 맞은편 의자를 빼내고 앉았다.

은정의 긴 생머리엔 노란 노을이 드리우고 있었다.

“말해야 할 의무 없다고 했을 텐데?”

“어허~ 이러기에요? 그럼 제 맘대로 여자 친구라고 결정 지어도 이의 없죠? 내 여자한테만 자상한 나.쁜.남.자?”

“…동생이었다. 여동생.”

은정의 눈빛을 잠시 바라보던 용주가 마지못해 이야기했다.

딱히 말해야 할 의무는 없었지만, 이렇게 된 마당에 엉뚱한 오해를 받는 것도 사양하고 싶었으니 말이다.

“여동생? 오오~ 동생한테 의외로 자상한 타입이시네요. 오빠가 그러고 돌아다닌 거 알면 기절하겠어요.”

호기심을 표한 은정은 가벼운 농담을 던졌다.

그리고 곧장 그 농담이 던져선 안 되는 농담이란 걸 깨달았다.

그나마 조금 유해졌던 눈동자가 순식간에 차갑게 식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하하! 농담이에요! 농담! 그냥 한번 해본 말이었다고요.”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은정은 겸연쩍은 듯 웃어 보였다.

아무래도 역린을 잘못 건드린 모양이었다.

“근데 수정과라니, 취향 확실하네요. 용주 씨 또래는 그거 굳이 잘 안 사 먹을 텐데.”

재빠르게 머리를 굴리던 은정이 주제를 돌렸다.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쉰 용주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 벌써 일어나시게요? 혹시 저 때문이에요?”

“부정하진 않지.”

“에? 아니! 아무리 그게 사실이라도, 이럴 땐 부정하는 척이라도 해주셔도 되지 않았을까요? 착한 거짓말 하실 줄 아시잖아요!”

“…….”

은정의 투덜거림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용주는 의자를 집어넣었다.

무심하게 스쳐 가는 용주를 따라 움직이는 은정의 시선.

은정의 그림자를 밟은 용주는 잠시 자리에 멈춰 섰다.

“꼭 내가 좋아하는 것만 마시라는 법은 없지.”

“응?”

용주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은정은 놀란 눈동자를 깜빡였다.

다시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용주는 테라스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 * *

뚜벅.

퇴원 절차를 밟은 용주는 한 건물 앞에 멈춰 섰다.

빌딩 숲 사이에서도 유독 크고,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어 멀리서도 한눈에 보이는 건물이었다.

헌터 길드.

국가 소속인 헌터들을 소집하고, 관리하고, 또 정산해 주는 기능을 하는 곳이었다.

헌터는 기본적으로 국가직이지만 공무원과는 달랐다.

의료나 주거 등의 기본적인 해택은 있었지만, 헌터에겐 월급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헌터는 기본적으로 성과제.

특별한 경우 수당이 지급되기도 했지만, 보통의 경우 언노운을 잡아 나오는 이형결정체나 게이트 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장비들이 그들의 주 수입원이었다.

이형결정체의 기본적인 소유권과 처분권은 헌터 개인에게 있다.

누구에게 팔고 얼마에 처분하든 개인의 선택이란 소리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발생하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결정체의 처분에 관한 것.

S급이나 A급 이형결정체는 돈이 있어도 살 수 없을 만큼 귀했다.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해도 무방했기 때문에 사기를 치려는 사람이 쌍방으로 존재했다.

가짜 이형결정체를 가짜 돈으로 사 서로가 서로를 신고했다는 웃지 못할 사례가 그 대표적인 사례.

공정하고 안전한 감정과 경매를 위한 공신력 있는 기관의 필요성이 대두된 건 그 때문이었다.

반대로 E급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물량이 많았다.

시세가 일정하게 유지될 때는 괜찮지만, 시세가 무너지는 순간 D급 E급의 헌터들은 일을 하면서도 가난한 푸어 워커(poor worker)가 되고 말 것이다.

목숨을 걸고 이 일을 하려는 사람도 줄어들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헌터들의 이탈과 직무유기가 팽배해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기에 국가는 이들을 위한 최후 마지노선을 설정해 놓을 필요가 있었다.

국가 매입.

헌터 길드 지부들에 정산기능이 있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지이이잉~!

자동문을 지난 용주는 익숙한 듯 걸음을 계속했다.

모던한 인테리어를 가진 카운터에는 똑 닮은 두 소녀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용주와 시선을 마주한 ‘나영’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아! 아하하핫! 어서 오세요!”

딱딱하고 기계적인 동생의 인사에 언니인 ‘가영’이 만지작거리던 핸드폰을 급하게 집어넣었다.

“E급 2개.”

카운터 앞에 선 용주는 이형결정체를 올려놓았다.

“이형결정체 2개 건네받았습니다. 진품 여부를 확인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형결정체를 집은 나영은 뒤로 물러났다.

나영의 앞엔 초소형 카오스 게이트처럼 생긴 장치가 있었는데, 게이트 안쪽으로 들어간 이형결정체는 무중력 상태로 둥둥 떠 있었다.

“엄청 열심히시네요.”

동생을 기다리던 가영이 턱을 괴었다.

딱딱하고 차가운 인상을 풍기는 나영과 달리 가영은 보다 사교적인 인상을 풍겼다.

“지난번 카오스 게이트 때도 가셨었죠? 지지난번에도 가셨고, 그전에도 가셨고. 많진 않아도 두세 개씩은 꼭꼭 가져오셨잖아요.”

대꾸 없는 용주에게 가영이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직업적인 특성상 가영은 같은 헌터를 여러 번 만나는 경우가 많았다.

용주는 그중에서도 제법 기억에 남는 타입.

잘생긴 얼굴도 한몫하지만, 나영이만큼이나 딱딱한 저 표정은 쉽게 잊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제 눈엔 좀비가 아니라, 개미 같아요, 개미. 일만 하는 개미. 그렇게 열심히 하시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 거예요?”

나영이 서 있던 자리로 치고 들어온 가영이 물었다.

이곳을 방문하는 수많은 헌터들 중에서도 용주의 방문 비율은 압도적으로 높은 편이었다.

“음… 말씀하시기 싫으시면 제가 한번 맞춰 볼까요? 내가 세계를 지켜야겠다는 뜨거운 사명감?”

“E급 이형결정체 2개. 진품 확인했습니다.”

가영의 이야기를 자른 나영이 사무적인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미소가 굳은 가영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이거 완전 투명 인간 취급이지 않은가.

“E급 이형결정체의 현재 매입가는 100,000원입니다. 둘 다 매도하시겠습니까?”

“그래.”

가영의 물음에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던 용주가 대답했다.

100,000원.

지난번만 해도 거래가가 이것보단 높았었는데, E급 이형결정체의 매입가는 국가가 정해놓은 최저가까지 내려와 있었다.

“E형 이형결정체 2개. 정확히 200,000원 입금해 드리겠습니다.”

“어디 보자…. 입금됐네요. 한번 확인해 주시겠어요?”

동생이 일하는 걸 보고 있던 가영이 이야기했다.

핸드폰을 꺼낸 용주는 계좌를 확인했다.

“그래, 확인했다.”

핸드폰을 넣은 용주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 눈빛이었다.

“더 처리하실 일이 남으셨는지요?”

“최대한 빨리 입장 가능한 게이트를 알고 싶은데 확인해 주면 고맙겠군.”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나영의 키보드 소리가 들렸다.

“E급 게이트 토벌 중 가장 이른 건 이틀 뒤 11시에 계획되어 있습니다. 그보다 앞선 건….”

“게이트 정찰 임무가 하나 있네요. 열린 지는 몇 시간 안 된 것 같고… 지원자도 아직 없는 것 같아요.”

나영에게 찰싹 달라붙은 가영이 대신 이야기했다.

정찰 임무는 토벌팀이 편성되기 전 게이트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말한다.

보통은 내부의 대략적인 구조나 언노운의 정보 등을 파악하는 역할로, 교전은 최대한 지양하게 되어 있었다.

‘정찰….’

용주는 가볍게 손을 움켜쥐었다.

어쩌면 이건 기회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그 임무, 내가 하지.”

“임무 성공에 대한 보수는 150,000원입니다. 정말 수락하시겠습니까?”

“그래.”

“네, 알겠습니다. 그럼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

용주는 자신의 팔을 쓸어내렸다.

E급 게이트의 보스가 반드시 D급이란 법은 없었다.

하지만 해볼 만한 시도임은 분명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 기회를 잡아야만 했다.

* * *

‘여긴가?’

용주는 스마트폰을 집어넣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도시에는 이질적인 펜스들이 처져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것은.

일그러지며 비틀린 균열.

카오스 게이트였다.

“정지! 멈추십시오. 이곳은 통제구역입니다.”

초소를 지키고 있던 군인 하나가 이야기했다.

“임무 수행 중이니 비켜라.”

용주는 목걸이를 꺼내 보였다.

목걸이의 끝에는 은으로 만들어진 회중시계가 걸려 있다.

“그러셨군요. 확인했습니다.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회중시계의 마크를 확인한 군인은 곧장 경례를 올렸다.

게이트에 진입한 용주는 검을 뽑아 들었다.

동굴처럼 생긴 게이트 내부는 잔잔한 빛이 머물고 있어 완전한 어둠은 아니었다.

‘어디 해보자고.’

마른침을 삼킨 용주는 발소리를 죽였다.

정찰에서 게이트 보스를 만나는 일은 없다고 봐도 좋았다.

적어도 D급이나 E급 같은 낮은 티어의 게이트에선 더더욱 그랬다.

그 정도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도 없고, 그럴 실력이 있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

들려오는 소리들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용주는 일순 몸을 숨겼다.

여러 갈래로 갈라진 길에서 한 마리의 언노운이 기어가고 있었다.

언노운의 모습은 민달팽이를 닮았다.

보통의 민달팽이와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더듬이가 없다는 것과 얼굴이라 생각되는 곳에 커다란 외눈이 있다는 것 정도.

‘게이트 보스가 우선이야.’

용주는 녀석이 지나가기까지 기다렸다. 최대한 온전한 상태로 게이트 보스를 만나야 했다.

꿈틀거리던 언노운은 잠시 자리에 멈춰 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별다른 이상을 감지하지 못한 언노운은 그대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래도 용주는 움직이지 않았다.

용주의 눈은 아직도 한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뚝!

작은 물소리 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용주의 눈동자엔 또 한 마리의 언노운이 비치고 있었다.

같은 생김새를 한 언노운은 땅이 아닌 천장을 기어가고 있었다.

하나의 감각을 잃으면, 다른 감각이 발달한다는 말이 있다.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사실이다. 용주 본인은 크게 의식하고 있지 않았지만, 용주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각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청각과 촉각을 비롯한 여러 감각이 남들보다 더 발달한 것이다.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용주가 입술을 깨물었다.

게이트로 진입한 지 3시간이 흘렀다.

게이트 안쪽으로 한참을 더 들어왔건만, 아직까지 게이트 보스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두 가지 측면에서 최악의 경우를 면하긴 했다.

첫째, 게이트의 크기에 비해 언노운들의 개체가 많지 않다는 것.

둘째, 언노운들이 후각이나 진동에 예민한 타입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열선 같은 걸 감지하는 타입도 아니고 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온전하진 못했겠지.

‘젠장…!’

용주가 주먹을 휘둘렀다.

게이트 보스를 만나려면 게이트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생각했고 행동했다. 하지만 앞이 막혀 있었다.

아무래도 중간중간에 있던 갈림길에서 길을 잘못 든 모양이다.

‘돌아가는 수밖에….’

작은 한숨을 삼킨 용주는 뒤로 돌았다. 그리고 그런 용주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저건… 발자국?’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았다.

사람의 것은 아니었다.

크기에서도 모양에서도 말이다.

여기까지 오며 봤던 언노운의 공통점은 한 가지였다.

모두 발이 없었다는 것.

그렇다는 건…!

‘게이트 보스… 놈은 여기 있었어!’

발자국에 다가간 용주는 자세를 낮췄다.

발자국은 하나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나가는 것도, 들어오는 것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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