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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2화 (2/357)

2화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병원의 1층.

TV에서 나오는 뉴스 소리가 들려오는 로비에 앉아 있던 용주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앞에서 한 사내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용주는 정확히 사내 앞에 섰다.

사내는 비껴가려고 했다.

하지만 용주는 곧장 사내의 길을 막아섰다.

사내에게선 옅은 향냄새 같은 게 났다.

“A급 헌터. 기다리고 있었다.”

사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본 용주가 이야기했다.

머리가 벗겨진 양복을 입은 남성.

눈앞에 있는 사내는 분명 그러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가 간호사들이 말한 A급 헌터라고 단정 지은 것은 아니었다.

같은 조건이라면 최소 수십 명이 여기 있었으니 말이다.

헌터들 중엔 헌터를 감지할 수 있는 이들이 있었다.

‘느낀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용주도 그중 한 명.

저 사내에게선 헌터로서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것도 상당히 강한.

“헌터인가 보군. E급… 아니, 그 미달인가?”

입술을 실룩인 사내가 이야기했다.

용주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래. 무슨 일이지? 바쁘니 최대한 짧게 부탁하지.”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부탁?”

나이 차이는 한눈에 봐도 확연했다.

상대방 입장에서 충분히 기분이 상할 수 있는 말투였다.

나이도 나이고, 헌터로서의 등급으로 쳐도 마찬가지.

부탁하는 사람의 태도라고 생각하면 더더욱 어울리지 않는 말투였다.

하지만 용주는 이런 말투를 고수하고 있었다.

“그래.”

“미안하지만, 정중하게 거절하지. E급 헌터의 부탁 따위 들어줄 이유도 의무도 없으니.”

사내가 차갑게 이야기했다.

이런 식의 이야기는 여러 번 들어본 적 있었다.

요약하자면 대략 세 가지 정도였다.

돈을 빌려 달라.

남는 무기 좀 달라.

강해지는 법을 알려 달라.

세 가지 모두 관심 없는 이야기였다.

현역이었을 때도 그랬는데, 일선에서 물러난 지금 그런 데 관심을 둘 이유가 없지 않은가.

“상위 게이트에 진입하고 싶다.”

용주는 다시 한번 사내의 앞을 가로막았다.

용주의 말에 사내의 눈빛이 바뀌었다.

상위 게이트.

그건 헌터들이 사용하는 용어 중 하나였다.

카오스 게이트의 등급은 외부에서 감지되는 수치와 내부에 있는 언노운들의 위험도 등에 따라 분류된다.

E급 헌터인 용주가 갈 수 있는 게이트는 E급 게이트.

용주가 말한 상위 게이트란 용주에겐 D급 이상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상위 게이트?”

“그래. A급 헌터라면 가능하단 거 알고 있다.”

상위 게이트의 진입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게이트 등급 이상의 등급을 가진 헌터가 특정 인물을 지명하는 경우였다.

이 헌터의 등급은 A.

D급 이상의 게이트에 진입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쯧! 웃기지도 않는군. 포기해라. 애송이. 너 같은 놈이 쳐다볼 나무가 아니다.”

사내가 콧방귀를 뀌었다.

주머니에 오른손을 찔러 넣은 사내는 고개를 삐딱하니 기울였다.

“돼지가 하늘을 보려다간 목이 부러져 죽는 거다. 관 속이 궁금하면 다른 델 알아봐라.”

사내는 미간을 좁혔다.

사내의 시선에선 살기가 느껴졌다.

섬뜩할 정도였다.

하지만 용주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눈을 깜빡이는 것도 잃어버린 것 같았다.

한동안 기 싸움을 벌이던 사내는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쯧! 이유라도 들어보고 싶군. 왜 거길 가고 싶은 거냐?”

혀를 찬 사내가 물었다.

아무래도 이 부탁이 아무런 생각도 각오도 없이 한 말은 아닌 모양이었다.

보통의 E급 헌터였다면, 방금 거기서 나가떨어졌을 테니까.

“돈이 필요하다.”

“돈? 하하핫!”

사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혹시 뭔가 좀 다른가 싶었더니, 역시나였다.

“돈이라. 그래. 돈 좋지. 현실적이고 무엇보다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니까.”

웃음을 삼킨 사내가 키득거렸다.

“그래. 그럼 뭘 위해 돈이 필요로 하나? 사치? 과시? 아니면 방탕한 유흥?”

“살기 위해서.”

“…….”

용주의 대답에 사내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갔다.

사내는 짧은 호흡을 삼켰다.

“쯧! 웃기는 녀석이군. 그래. 그럼 이렇게 해보지. E급 애송이, 네가 나와의 내기에서 이긴다면, 상위 게이트에 데려가 주지. D급.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사내가 오른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내기?”

“그래. 네가 직접 쓰러뜨려 얻은 D급 이형결정체를 가져와라. 네가 쓰러뜨렸다는 증거로… 그래. 놈의 눈을 뽑아 와라. 어때? 할 수 있겠나?”

“D급이라고?”

“그래. E급 게이트의 게이트 보스라면 충분히 D급일 가능성이 있지. 상위 게이트로 가고 싶거든 네 실력을 증명하란 소리다. 애송이.”

“…….”

사내의 이야기에 용주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사내가 말한 ‘게이트 보스’란 해당 카오스 게이트를 유지하고 있는 개체를 의미했다.

해당 개체를 제거하게 되면 게이트는 소멸되기에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개체지만, 당연하게도 놈은 게이트 내부에서 가장 강한 개체이기도 했다.

“그래 알았다. 약속 잊지 말아라.”

“날 뭘로 보는 거냐. 난 A급 헌터 박형만이다.”

자신의 이름을 밝힌 형만은 가소롭다는 눈빛을 보냈다.

목소리에선 그의 프라이드가 느껴졌다.

용주는 눈을 깜빡였다.

D급 언노운과 싸워본 경험은 없었다.

아니, 만나본 적조차 없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게이트 보스에게까지 도달하기는커녕 외곽에 있는 E급 개체 한두 마리를 상대하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할 수밖에 없어. 이대로는 안 된다고.’

형만이 지갑을 열었다.

그의 손엔 명함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일주일 주지. 그 안에 가져오지 못하면 네가 진 거다. 두 번은 없다.”

형만이 걸음을 내딛자 거친 불길이 피어올랐다.

강렬한 화염에 뒤로 날아간 용주는 땅을 구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꽃은 아무것도 태우지 않은 채 흩어졌다.

그가 있던 자리엔 명함 한 장이 떨어져 있었다.

* * *

“…….”

야외 테라스에 자리를 잡은 용주는 등받이에 최대한 몸을 뉘었다.

자판기에서 산 음료 캔엔 ‘수정과’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1주일이라….’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시간은 아니었다.

E급 게이트의 출현 빈도는 제법 높았기에 지금도 얼마든지 토벌 의뢰를 받을 수 있었다.

문제는 자신의 힘.

힘을 증명하라는 형만의 말이 무겁게 다가왔다.

좀 더 큰 힘이 있었다면, ‘좀비 헌터’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불리는 일도 없었겠지.

“좀비라….”

은정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곱씹은 용주는 수정과를 한 모금 머금었다.

“차라리 진짜 좀비 같았으면, 더 좋았을지도.”

자신이 좀비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단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그런 게 아니었다.

좀비는 상처가 생겨도 통증을 느끼지 않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생살을 찢는 고통을 그저 참고, 또 참고 참는 게 전부였다.

고통을 즐기는 악취미는 없었다.

그저 해야만 하고, 할 수밖에 없기에 감내하고 있을 뿐이었다.

부스럭.

테이블 위에 수정과를 내려놓은 용주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주머니에서 나온 두 개의 결정은 빛 하나 없이 고요했다.

‘E급 이형결정체.’

카오스 게이트에서 목숨을 걸고 잡은 언노운에게서 얻은 물건이었다.

이형결정체는 등급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A급의 물건은 보통 수십 억에서 수백 억대를 호가하며, S급의 물건은 파는 사람이 부르는 게 값이기에 혹자는 국가도 살 수 있다고 말하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여기 있는 E급은 그런 것이 아니다.

E급 이형결정체의 값은 평균 10만 원 선.

목숨값이라고 하기엔 썩 매력적이지 않은 금액이었다.

‘이걸로 한 달에 10개. 이걸론 부족해. 더 많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이형결정체를 바라보고 있던 용주는 그것들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이걸론 부족했다.

겨우 이만큼 벌어 가지곤 입에 풀칠하는 게 고작이었다.

대학에 입학할 여동생의 대학자금을 마련하려면, 이것 가지곤 안 됐다.

“…….”

이형결정체를 보던 용주는 미간을 좁혔다.

용주의 시야에는 형태도 의미도 알 수 없는 기이한 문양들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또 시작인 건가?’

용주의 눈동자가 저런 기이한 걸 목격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저게 보인다고 통증이 있다든가 별다른 증상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

자신에게 보인다고 다른 사람에게도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의사는 망막에 그림자가 드리워 생기는 ‘비문증’의 일종일 거라고 했다.

아마 눈을 이식받으면서 아버지의 눈에 있던 문제가 그대로 옮겨온 걸 거라고.

용주는 태어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했다.

헌터도 아니었다.

그런 용주가 앞을 볼 수 있게 된 건 아버지의 유품인 눈을 이식받았기 때문이었다.

헌터로 각성하게 된 것도 거의 그 무렵이다.

용주의 아버지는 헌터였다.

책임감이 강하고, 정의로운 일에 몸을 아끼지 않는 분이었다.

덕분에 능력에 비해 엄청 빈번하게 다쳤다.

헌터 일을 하면서 아버지는 어머니를 만나 결혼했다.

의료 헌터였던 어머니는 맨날 다치는 아버지의 애처로운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꼈고, 안타까움이 정으로, 다시 사랑으로 변했다고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함께 수많은 카오스 게이트를 닫았다.

많은 헌터들이 두 분을 믿고 의지했다.

하지만 ‘그 일’이 있고 나서 모든 게 변해 버렸다.

서울에 나타난 S급 카오스 게이트.

게이트를 닫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일로 인해 아버지와 어머니는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그 사건 이후 헌터로서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지워졌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위이이잉~ 위이이잉~!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용주가 노을을 바라보고 있을 그때, 용주의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 액정에는 ‘예은이’라는 동생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여보세요.”

차갑고 무뚝뚝하게만 느껴지던 용주의 목소리는 형만이나 은정을 상대할 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아, 오빠! 전화 받는 거 보니, 일 끝났나 보네. 어디 다친 데는 없어? 위험한 일은 없었고?”

“응. 그래. 없어. 지금 카페에 앉아서 차 한잔하는 중이었어.”

진실보다 거짓이 더 많은 대답이었지만 용주의 거짓말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아~ 그래? 다행이네. 그래도 카페인 너무 많이 마시진 말고.”

“그래, 알았어.”

언제나 같은 잔소리에 용주가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오늘 수업은 어땠어?”

“아~ 어려운 부분도 있었는데, 그래도 괜찮았던 거 같아. 집 들어가서 복습 한 번 하면 마스터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래? 아! 집 하니까 생각났는데, 오빠 오늘 못 들어갈 거 같아. 저녁 혼자 차려 먹어야 할 것 같은데, 귀찮으면 그냥 시켜 먹어. 돈 넣어놨어.”

“응? 못 들어와? 이번엔 왜?”

“헌터 길드에서 뭐 하는 게 있나 보더라고. 늦게 끝날 거 같아.”

“음… 회식 같은 거라도 하는 거야? 오케이, 알겠어. 그래도 술 너무 많이 마시면 안 된다? 담배는 절대 사절인 거 알지? 족제비 같은 여자들도 조심하고.”

“그래, 알겠어. 걱정하지 마.”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른 용주는 수정과를 한 모금 홀짝였다.

그리고 바로 그때.

“통화하는 목소리는 평소랑 완전 딴판이네요?”

멀지 않은 곳에서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용주의 눈동자엔 은정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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