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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화 (1/357)

1화

빛을 알지 못하는 한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아버지께 물었다. 빨간색과 파란색은 어떻게 생겼느냐고.

아이의 물음에 아버지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이야기했다.

화가 날 때의 색깔이 빨간색.

울고 싶을 때의 색깔이 파란색이라고.

시간이 지나 아이는 빛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는 깨달았다.

자신이 파란색이라고 생각했던 색깔은 사실 잿빛이라고 불리는 색이었다는 것을.

아이의 앞에 있는 부모님의 사진이 그 색이었으니까.

* * *

크르르릉-!

밀폐된 공간에 울리는 야수의 그르릉거림.

날카로운 이빨에 왼팔을 관통당한 사내는 그대로 벽으로 돌진했다.

팔이 아닌 다리에서 시작된 피는 사내의 바지를 점점 더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촤악-!

충격과 함께 또 한 번 흩뿌려지는 선혈.

살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 사내는 오른손에 들고 있던 검을 야수의 목에 찔러 넣었다.

치명상을 입은 야수였지만, 발버둥은 멈추지 않았다.

사내의 몸엔 수많은 발톱 자국이 생겼고, 상처를 타곤 피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사내는 물러서지 않았다.

물러서기는커녕 더욱 깊이 검을 쑤셔 넣었다.

야수의 발버둥은 서서히 희미해졌고, 이윽고 사내를 물고 있던 날카로운 송곳니는 힘을 잃어버렸다.

벽면을 타고 흘러내리는 야수의 검은 몸체.

한 마리의 야수를 쓰러뜨린 사내는 곧장 뒤로 돌았다.

그르르릉-.

어둠 속에서 기어 나온 또 한 마리의 야수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사내를 위협하고 있었다.

“…….”

두 번째 야수의 출현에 사내는 왼팔을 움켜쥐었다.

다섯 손가락 모두 움직이는 걸로 봐서 다행히 힘줄은 다치지 않은 모양이었다.

타다다닥!

이윽고 시작된 야수의 질주.

야수에 맞서 달리던 사내는 급작스럽게 왼편으로 방향을 틀었다.

앞만 보며 질주하던 야수는 순간적으로 사내를 놓쳤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사내는 야수의 오른쪽 뒷다리를 강렬하게 베어냈다.

크릉-!

하지만 승부는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날다시피 한 동작으로 방향을 튼 야수는 사내를 들이받았고, 두 다리가 땅에서 떨어진 사내의 몸은 그대로 벽에 처박혔다.

눈앞에서 번뜩이는 날카로운 이빨.

왼손에 잡히는 주먹만 한 돌을 움켜쥔 사내는 야수의 입 안에 돌을 쑤셔 넣었다.

바스락!

충분히 단단한 재질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 돌엔 순식간에 균열이 갔지만, 사내는 침착하게 야수를 찍어 눌렀다.

야수에게 물려놓았던 재갈이 부서진 건, 사내의 칼이 야수의 목덜미를 꿰뚫음과 동시.

캉! 카르르랑!!

맹수의 이빨을 왼팔로 틀어막은 사내는 놈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서로에게서 흘러나온 피는 서로를 적시고 있었다.

“하아- 하아-.”

맹수의 이빨 사이에서 팔을 꺼낸 사내는 참고 있던 호흡을 내쉬었다.

찢기고 꿰뚫려 피범벅이 된 사내의 모습은 마치 한 마리의 좀비를 보는 것만 같았다.

* * *

“상황 종료! 현 상황 보고할 수 있도록!”

리더 헌터가 외쳤다.

지면에 꽂혀 있는 그의 검 아래에는 피로 만들어진 웅덩이가 고여 있었다.

“총원 스물, 사망자 영, 경상자 셋, 중상자 하나. 이상입니다.”

곁으로 다가온 태영이 대답했다.

개미굴의 동그란 방처럼 생긴 공간에는 열댓 명 정도의 헌터들이 모여 있었다.

“중상자가 있다고?”

예상외의 보고에 리더가 눈썹을 기울였다.

지금 자신들이 있는 이곳은 가장 낮은 E등급 카오스 게이트였다.

헌터라고 불리는 인간들이 중상을 입을 만한 곳이 절대 아니었다.

“네. 이름은 이용주, 헌터 등급은 E입니다.”

“신입인가?”

“어… 아니요. 실전 경험은 제법 있는 편입니다.”

“그래? 그런데도 중상을 입었다고?”

첫 실전 투입된 E급 헌터들이 중상을 입는 경우는 종종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두려움이나 자만심에서 비롯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경험이 조금만 쌓이고, 자기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정도가 되면 제아무리 E급 헌터라도 중상까진 가지 않는 게 보통의 상식이었다.

“부상은 얼마나 심각하지?”

“왼쪽 팔에 네 개의 구멍이 났고, 오른쪽 허벅지에도 구멍 두 개, 발톱에 긁힌 자상이 전신에 선명했습니다. 출혈량이 상당해 당장 의료 헌터에게 치료를 받아야 마땅하지만….”

“의료 헌터는 이 부대에 포함되지 않았지.”

태영의 말을 가로챈 리더는 괴물의 몸통에서 검을 뽑아냈다.

카오스 게이트 안에서 발견되는 이 생명체는 ‘언노운(Unknown)’이라 불리는 존재였다.

언노운의 종류는 힘과 형태에 따라 다양하다.

힘에 따라 S급부터 E급으로 분류되며, 형태에 따라서 야수형, 이족 보행형, 비행형, 곤충형, 젤리형 등으로 분류되곤 한다.

E급 카오스 게이트인 이곳에서 발견된 종은 ‘E급 야수형 언노운’.

게이트를 유지하고 있는 개체조차 D등급에 불과했다.

위험이 낮았기에, 고급 인재인 의료 헌터는 편성되지 않았다.

“그는 어디 있나?”

잠시 생각에 잠겼던 리더가 물었다.

“아… 그게….”

“왜 말을 못 하지?”

“실은 게이트가 클리어되자마자 게이트를 빠져나갔습니다.”

“…뭐라고?”

예상치 못한 대답에 리더는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카오스 게이트에 진입한 헌터가 리더의 명령도 없이 퇴각했다고?”

개인행동을 하는 헌터들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자기 실력에 자신이 있는 헌터들이나 하는 행동이지 E급 헌터가 그러는 경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말려보려 했습니다만, 소용없었습니다.”

“중상이라지 않았나? 말로 안 들었으면 때려눕혀서라도 잡았어야지!”

“그의 상처는 분명 중상입니다. 하지만 그리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이상할 정도로 담담한 태영의 이야기에 리더가 물었다.

한태영.

자신과 마찬가지로 D급 헌터이며, 신중한 성격의 그가 저런 이야기를 아무렇게나 뱉을 리 없었다.

“이용주라는 헌터. 이명이 뭔지 아십니까?”

“별명? E급 헌터한테 이명도 있나?”

리더의 물음에 태영이 어깨를 들썩였다.

“잘 모르시나 본데, 그 친구 이 근방에선 엄청 유명해요.”

“유명해? 어떤 점에서?”

“어… 유명한 이유야 많죠. 근데 제일 유명한 건 E급 언노운들 상대로도 맨날 중상을 입는단 거예요.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엄청 거리를 둬요. 덕분에 혼자 병원까지 걸어가는 일도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고요.”

“병원까지 걸어가? 중상을 입고 혼자?”

“그렇다니까요. 그래서 그 친구 별명이 ‘좀비 헌터’예요. 좀비 헌터. 생각해 보세요. 피를 줄줄 흘리면서 거리를 걸어 다니는 사람. 그게 좀비가 아니면 뭘로 보이겠어요.”

마지막에 만났던 용주의 모습을 떠올린 태영이 몸을 바르르 떨었다.

줄줄 흘러내리는 핏줄기 사이로 보였던 그의 날카로운 눈매가 아직도 보이는 것 같았다.

“게다가 그 친구, 실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얼마나 악바리인지, 그렇게 다치면서 비명 한 번 지르는 걸 들은 사람이 없다더라고요. 진짜 좀비처럼 통각이 없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고 막 그래요.”

태영이 더러워진 안경을 닦았다.

정말 별일 아니라는 태영의 반응에 리더 헌터는 떨떠름한 표정을 머금고 있었다.

* * *

“아니! 그러니까!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제발 그러고 돌아다니지 좀 마시라고요!”

흰 가운을 입고 있는 은정이 소리쳤다.

네 개의 병상 중 유일하게 주인이 있는 침대엔 한 사내가 앉아 있었다.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이 사내의 이름은 이용주.

좀비 헌터라 불리는 E급 헌터였다.

“…….”

“또또또 시작이죠! 그렇게 입 꾹 다물고 있으면 다예요? 사람이 걱정하면 좀 듣는 시늉이라도 하란 말이에요!”

버럭 화를 낸 은정이 팔짱을 꼈다.

용주는 아까부터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서로 피해준 건 없을 텐데?”

계속되는 잔소리에 짧은 한숨을 내쉰 용주가 대답했다.

헌터의 의료비는 정부에서 처리하게 되어 있다.

병원을 하나의 기업으로 생각한다면, 용주는 적어도 VIP 고객 정도는 될 것이다.

“그런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그렇게 피투성이로 거리를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아이들 정신건강에도 안 좋을 거라고요! 사람들이 용주 씨를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요? 좀비라고요! 좀비!”

듣는 것만으로 신경을 긁는 용주의 말투에 은정이 화를 억누르며 이야기했다.

몇 번을 들어도 저 말투는 참 거슬린단 말이다.

“…….”

“그리고 제 말엔 좀 조심하시란 의미도 있었다고요. 용주 씨 지금까지 숨이 붙어 있는 게 얼마나 용한 건지 아세요? 왔다 하면 항상 머리부터 발끝까지 넝마잖아요! 그 다리로 어떻게 여기까지 걸어올 수 있었는지 저희 사이에선 매번 미스터리라고요! 아세요?”

자동문을 걸어오는 피범벅이 된 사람.

좀비 영화의 한 장면에서나 볼 법한 그 모습에 신입 안내원이 기절하는 사건도 있었다.

“걷지 못하면 죽는 곳이다. 살기 위해선 걷는 수밖에 없어.”

“아니! 적어도 카오스 게이트 밖으로 나오시곤 119 부르시라고요! 거긴 안전하잖아요! 구급차 타고 오면 어디 덧나요?”

“그 거리라면 구급차를 기다릴 시간에 도착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그게 전부다.”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한 대화에 은정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다른 헌터들한테 좀 부축해 달라고 할 수도 있잖아요. 설마 그 정도도 안 해주겠어요?”

“헌터는 혼자다. 전우애니 동료애니, 그런 환상을 품고 있다면 버리는 게 좋아.”

은정을 노려본 용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작스러운 용주의 행동에 깜짝 놀란 은정이 서둘러 그를 제지했다.

“아니! 아직 일어나면 안 돼요! 지금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요!”

“자판기에 볼일이 있을 뿐이다. 도망가진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

은정의 옆을 스쳐 지나간 용주는 병실을 빠져나갔다.

‘헌터는… 혼자라고?’

혼자 남은 은정은 용주의 침대를 정리했다.

용주라는 사람의 사회성이 그다지 좋지 않음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은정은 그에게서 어딘가 모를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차가운 사람을 연기하고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 이질감에 대한 단서가 어쩌면 방금 거기에 있었을지도….

* * *

“그 이야기 들었어?”

복도를 지나는 용주의 귀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간호사들의 대화였다.

“무슨 이야기?”

“A급 헌터가 왔다더라고.”

간호사의 한마디에 용주의 발걸음이 멈췄다.

용주의 시선은 두 사람을 향해 있었다.

“A급?! 대체 얼마나 위험한 임무였길래…. 얼마나 다쳤어? 수술 들어갔대?!”

“아니, 다쳐서 온 건 아니야, 말끔한 양복 차림이었어. 노을관 쪽으로 가던데.”

“아, 그래? 노을관이면 누구 기일인가 보네.”

“응. 그런가 봐. 머리 벗겨진 평범한 아저씨처럼 생겨서 그냥 쓱 지나쳤었는데, 나중에 이야기 들어보니까 그렇다더라고.”

“음, A급 헌터라고 하면 뭔가 엄청 무섭게 생겼을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닌 모양이구나.”

“그렇더라고.”

‘A급 헌터라고?’

간호사들을 뒤로한 용주는 걸음을 재촉했다.

E급 헌터가 A급 헌터와 마주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다.

어쩌면 이건 기회일지도 모른다.

가능성 낮은 억지일 수도 있지만, 한 번에 큰돈을 벌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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