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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하프엘프-71화 (72/77)

71화 - 스트레스가 풀리는 길

엘프는 예로부터 미의 종족이라 불려 왔다. 신이 직접 빚은 듯한 얼굴과 몸은 장인의 공예품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었다.

남자는 날카로운 턱선과 강인한 눈썹, 그리고 높은 콧대를 가지고 시원시원한 인상이 많았고 여자는 짙은 쌍꺼풀과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맑고 투명한 피부를 가지고 남자를 홀리는 매력을 타고났다.

엘프들에게 있어서 외모란 잘생김과 예쁨 그 자체였다. 남녀노소 불구하고 '추하다'라는 외모는 보기 힘들었다. 오히려 개성 넘치게 생겼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들의 경우에는 귀족과 소수의 평민을 제외한다면 엘프의 얼굴에 반의 반도 따라가지 못하는 이들이 부지기수.

특히 몬스터들을 잡아 하루 벌고 하루 먹고사는 용병들의 경우에는 말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팔에 물어 뜯긴 상처는 기본이요, 몬스터에게 당한 것만이 아니라 같은 인간에게도 날붙이에 당해 자상을 입은 경우가 허다하다.

팔만 그렇다면 모를까 얼굴도 험악하기 그지없다. 얼굴 한복판을 가로지른 대각의 상처나 눈을 기준으로 일자로 베인 상처나.

그들에게 있어 어여쁘고 섹시한 여인을 손에 넣는다는 건 꿈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한낱 창관에 가서 허리나 놀리고 오는 게 용병의 하루.

그런 용병들에게 있어서 유일한 기회가 있다면 그건 엘프일 것이다. 엘프는 누구도 손을 대지 않는 아름다운 보석과도 같은 존재들이니까.

촉매는 용병이 먼저 터트렸다. 몬스터들을 때려잡으며 자신이 힘 좀 꽤나 쓴다고 생각한 자들이 엘프들을 납치하러 갔으며 이 일이 소문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하자 너도 나도 엘프의 숲에 드나들었다.

거기서 그쳤으면 모를까 몇몇이 성공했다는 소문이 나오기 무섭게 귀족들 역시 용병들에게 돈을 풀어 그 신이 직접 빚었다던 얼굴을 보기 위해 힘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인간들보다 수백 년이나 오래 사는 엘프들의 혐오를 사기에 충분한 시간이 됐다.

엘프는 인간에 '인'자만 나와도 표정을 구기며 다시는 그 더러운 종족의 이름을 담지 말라고 할 정도였다.

욕을 먹는 건 하프 엘프 또한 마찬가지다.

엘프의 불순물이나 다름없는 하프 엘프를 모조리 말살까지 해야 할 정도라고 생각한 이들이 많다. 그건 종족의 수가 부족해 거부된 사안이지만 말이다.

그런 그들이 인간들을 혐오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세대를 거듭하며 부모는 자식에게 인간들의 대한 정보를 더욱 험악하게 부풀려 거의 초대에 나오는 악신처럼 묘사할 정도였다.

"무식하기 그지없는 힘이군. 차라리 내 화살 하나가 더 효율적이겠어."

"그 말에 동감하네. 여자들은 그냥 뒤로 가서 우리들의 성욕 처리나 하면 될 텐데."

하지만 그런 사실들을 진 자매와 이지안이 알 리가 없다. 설령 안다고 해도 신경 쓸 필요가 있나 싶다면.

당연히 아니다.

오히려 진 자매들은 현 엘프에 대해 좋은 인식이 하나도 박혀있지 않아서 시안 빼고는 밀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이지안은 여기 있는 엘프가 다 죽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공통된 생각이라 하면 하루빨리 마왕을 처치하는 일 정도.

엘프의 생존에 대해 일도 생각하지 않는 그녀들이 지휘관을 잡으면 어떻게 되는지 뻔하다.

"전방에 마물 여섯 발견. 3사단, 4사단 앞으로."

진소진의 담백한 말에 3사단, 4사단은 당황했다. 그들이 전장에서 맡은 역할은 후방 지원.

애초에 활을 다루는 엘프가 대다수인 만큼 전방에 서는 엘프는 극소수다.

"우리가 방패 역할이 되라는 거냐?! 거절한다! 우리는 활을 다루는 역할로 후방 지원을...!"

한 엘프가 목소리를 높여 진소진의 말에 불복종할 때.

뒤에서 가만히 고개를 주억이며 비웃음을 날리는 엘프들은 일순 몸이 굳었다.

서걱, 소리와 함께 등골에 흐르는 식은땀마저 얼려버릴 듯한 냉기가 바람을 타고 갔다.

"상관의 명령 불복종은 즉시 처형이다. 다시 한번 말한다. 3사단, 4사단 앞으로."

진소진이 태연하게 말했다. 땅에는 핏물 하나 번지지 않았다. 핏물이 튀기기 전에 냉기가 한 엘프의 목을 얼리면서 동상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 싸늘한 분위기는 주변의 엘프들도 동상으로 만들어 버린 것 같았다. 아무런 움직임 없이 가만히 굳어버린 엘프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동공을 덜덜 떨어대기 바빴다.

그들이 움직인 건 진소진이 다시 빙결검을 살짝 들었을 때였다.

"으, 으아아아아악!"

"미, 미친년이야! 미친년!"

단순한 칼질 한 번에 공포가 퍼져나갔다. 엘프들은 활대를 쥐어 잡고 억지로 몬스터 앞에 섰다.

덜덜 떨리는 손에 시위를 걸고 퉁퉁, 튕겨보지만 엘프라는 이름이 아깝게 허공으로 나아가는 화살들.

차라리 시위를 당긴 이들이라면 모를까, 아예 몬스터 앞에 주저앉은 엘프도 보였다.

그들은 늑대처럼 길쭉한 아가리와 세 개의 눈이 달려 있는, 징그러운 몬스터들 앞에 다리를 벌벌 떨며 시위를 당겼다.

몇몇 도망가는 자들은 모두 이지안이 잡았다. 전장에서 이탈하는 것 역시 모두 사형으로 칭한다. 아군의 사기를 반감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언니, 오늘은 좀 적게 죽였네? 언니와 이지안 선생님을 치유할 성력 정도는 충분하니까 걱정 안 해도 되는데."

"슬슬 중심부로 들어가니까 우리도 조심해야지. 아까부터 거슬린 말을 해대는 엘프들을 거의 다 죽인 것 같은데."

뒤에서 구정물을 질질 흘려대는 몬스터들의 시체 산 위에서 엘프들이 싸우는 걸 구경하는 세 명.

진소진은 턱을 쓸어대며 만족에 어린 미소를 지었다. 엘프가 죽어나가는 건 전혀 걱정하지 않는 듯, 오히려 재밌어하는 것 같았다.

이지안은 진 자매 뒤에서 엘프들이 싸우는 걸 보고 분석하고 있었다.

"늑대의 형태에 세 개의 눈을 가진 몬스터.. 처음 보는 몬스터였지만 생각보다 별 볼일 없군요. 조심해야 할 건 기다란 손톱에서 나오는 절삭력과 치악력 정도일까요."

"역시 지안 선생님 이시네요. 별 볼일 없는 몬스터도 하나하나 분석하시다니. 저도 보고 배워야겠어요!"

진소혜의 말에 이지안이 옅게 미소를 지었다.

아름다운 세 명의 여인들은 엘프의 외모에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빛바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세 명의 여자들을 보고 있는 엘프들의 감상은 정반대였다.

"라이만제르 지휘관님. 이대로 가다간 저 미친년들에게 다 죽겠습니다. 당장 저 냉기 뿌리는 년만 해도 우리들을 사지로 몰고 있습니다!"

라이만제르라 불린 엘프는 자신에게 다가온 엘프의 말에 흠, 하고 침음을 삼켰다.

라이만제르는 실질적인 지휘관이 아니다. 단지 인간들을 지휘관이라 부르는 것이 싫고, 또 따르기도 싫어서 엘프들 만의 지휘관을 정해둔 거다.

그것이 엘라시움 마을에 있어 제일 상위의 실력을 가진 라이만제르가 뽑힌 것일 뿐.

'우리들을 다 죽일 생각인 건가?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우리는 세계수의 아들로 신임받고 보호되어 온 존재들일 텐데.'

라이만제르의 생각은 이랬다.

세계수의 선택을 받은 자들이라 해도 엘프를 쉽사리 죽이는 선택은 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세계수는 그 누구보다도 엘프들을 사랑하고 신의하는 자다. 만약 엘프를 죽이려는 행동이 포착된다면 가차 없이 저 인간들을 죽일 거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라이만제르와 엘프들에게 있어서 세계수란 딱 쓸만한 존재. 자신들을 보호하고 이용하기 편한 도구와도 같은 자였다.

막상 세계수는 이제 그들에 대해 더 이상 사랑하지도, 신의하지도 않다는 것을 모르고 말이다.

수천 년이나 이어진 세계수의 비호는 독이 되어 돌아왔다.

자신의 편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등을 돌린 세계수인 걸 모르는 엘프들은 그저 궁지에 몰린 쥐처럼 바들바들 떨면서도 구원을 바라고만 있는 것이었다.

"일단 지금은 물러나 있게나. 괜히 눈에 띄어봤자 죽음을 앞당기는 것밖에 없겠지. 우리 엘프들은 기회를 보고 뒤를 노린다. 그것만을 기억하세. 그리고 모두에게 전하도록. 아직 엘프는 꺾이지 않았다는 걸."

"여, 역시. 라이만 제르 님입니다! 알겠습니다!"

엘프는 화색을 띄우며 희망을 찾은 아이처럼 돌아갔다.

그 뒤통수를 가만히 보는 라이만제르는 알 수 없는 불안함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버려진 기분, 마치 키우던 개가 외딴곳에 버려진 기분이었다. 그 개는 엘프고 주인은 세계수였다.

하지만 라이만제르는 그런 불안한 감정을 고개를 털어 떨쳐냈다.

그럴 리 없다, 라는 생각 하나로 자리에 굳건히 섰다. 세계수가 엘프를 버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므로.

라이만제르는 수많은 몬스터들의 시체를 엮어 만든 산 위, 세 명의 여인은 가만히 올려다봤다.

그리고 가장 앞에 선 여자. 진소진 지휘관은 몬스터에게 무참히 물어 뜯기고 절단되는 엘프들을 보고 조용히 입꼬리를 말아 올리는 걸 봤다.

'역시.. 미친 사람이다. 단순히 처음 보는 몬스터에 대해 분석을 한답시고 전우들을 사지로 보내는 건 이해가 되지 않아. 인간들의 싸움 방식은 전부 저런 식인 건가?'

인간들은 종족 번식이 매우 뛰어나다 들었으니까. 그런 걸 수도 있다. 그만큼 잔인하고 악독한 존재들이라 배웠으니.

하지만 정말로 인간의 전략인 건지, 아니면 단순히 전우를 사지로 보내며 즐기는 건지.

라이만제르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불길함 속에 몸을 덜덜 떨 뿐이었다.

"하아. 좀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야."

"아레스 길드에서 던전을 도는 게 그 정도로 힘들었어?"

"무슨 던전을 돌면서 하루 종일 떠들어대는 여자나 내가 없으면 딜을 할 수 없는 머저리 파티원들이나.. 그냥 암덩어리들이었지. 스트레스가 쌓이고 화병이 날 뻔했는데 지금은 다 풀리는 기분이야."

진소진은 자신의 말이면 공포에 떨면서도 죽음을 불사르는 엘프들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엘프들이란 그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좋은 장난감이었다.

진소진은 자신에게 이런 좋은 장난감들을 선물해준 시안이 고마웠다.

라이만제르한테는 자신이 어떤 취급을 당하는지도 모를 뿐이었다.

"자자, 진군! 다음은 5사단, 6 사단이다."

"히이이익...!"

마왕 토벌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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