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 본격적인 마왕 잡기.
지안 누나와 함께 있던 시간은 거의 3주. 놀이동산에 다녀오거나 카페에서 달달한 음식을 시키는 등,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그것보다는 함께 몸을 겹치는 시간이 더 많았다고 할 수 있다.
"지안 누나, 이제 슬슬 제가 살았던 곳으로 같이 가야 할 것 같아요. 거기에서 누나를 기다리는 사람도, 또 저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어서요."
"그렇군요. 이 행복이 영원하려면 숙명을 거쳐가야 하지요. 너무 행복한 나머지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시안, 안내를 부탁할 수 있을까요?"
나는 앨리에게 부탁하기 위해서 나뭇가지를 잡았다. 이 순간만을 기다렸던 걸까. 나뭇가지를 잡자마자 앨리의 목소리가 뇌리에 꽂혔다.
- 서, 서방님! 포탈을 열어드릴까요?!
'···부탁할게 앨리.'
지안 누나가 보기엔 나뭇가지를 잡자마자 포탈이 열린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곧 그녀는 포탈을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나는 그런 지안 누나의 손을 꼭 잡았다.
"누나, 긴장하실 필요 없어요. 제가 함께 가잖아요."
지안 누나가 눈을 깜빡거리며 나를 바라봤다. 손을 잡는 것 정도로 볼을 붉히던 때는 안녕이었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내 손을 꼭 쥐며 본래 자기 것처럼 굴었다.
우리는 함께 손을 잡고 포탈을 건넜다. 주변의 시야가 뒤틀리면서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누군가 내 뇌를 조물거리면서 생각하는 것을 방해라도 하는 것 같았다.
푸른색의 곡선들이 한 점으로 휘말렸다. 곧, 우리가 그 점으로 빨려 들어갔을 때는.
엘라시움에 도착해 있었다.
앨시가 호수 앞에 포탈을 열어 두었는지 화려한 광경과 함께 우리를 환영해 주고 있었다.
"여, 여기가··· 앨라시움. 완전히 다른 세계인가요."
지안 누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그녀의 반응은 다른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회색의 세계에서 자연으로 물든 세계를 보면 대게 이런 반응을 보였다. 나 역시 오랜만에 방문하는 대자연에 감탄을 금치 못했으니까.
"어서 어세요 이지안 씨. 여기는 저, 세계수가 관리하는 곳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 당신이 세계수군요. 반갑습니다. 그리고 또 감사드립니다. 이런 저에게도 시안 같은 남자를 만날 기회를 주셔서···."
"너무 그런 말씀하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이지안 씨는 누가 보더라도 고개를 절로 끄덕이며 인정할 미인이니까요. 아, 실리안 씨가 이쪽 세계는 남녀역전이라 하신 것을 기억하시나요?"
"네. 기억합니다만···."
"그러시다면 밖으로 나가 남자의 반응을 확인하셔도 괜찮습니다. 여기의 남자는 성에 대해 적극적인 사람이 많으니까요. 이지안 씨가 자존감에 대해 높일 수 있는 기회의 장이기도 하겠네요."
앨리는 약간 나를 보면서 작게 미소를 지었다. 성욕이 넘쳐나는 건 나를 말하는 것 같았다. 모든 남자 엘프가 성욕이 뛰어난 건 아니니까. 오히려 그 수가 적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 뒤로 앨리는 지안 누나와 대화를 하면서 정보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현재 소진과 소혜가 마왕군에 엘프를 데리고 진군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지안 누나의 손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말이다.
지안 누나는 앨리의 말을 듣고 목울대를 꿀꺽하고 넘겼다. 그리고 차를 한 잔 마시기를 잠깐.
"혹시··· 저희 3명으로도 마왕을 잡아낼 수 있을 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너무 벅차 보입니다만···."
"저는 전혀 무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지안 씨가 생각하시는 것보다 진소진 씨와 진소혜 씨가 가진 힘은 월등합니다. 특히나 진소혜 씨는 제 힘을 가져가면서 성녀로서 크게 진보했습니다. 죽은 자를 소생할 정도는 아니지만, 치명상을 입은 사람은 시간을 되돌린다는 생각이 들만큼 빠른 속도로 치유할 수 있죠."
"그 진소혜 학생이···. 다행이네요. 아카데미에서 고생은 고생대로 다 했는데 막상 실적이 없었거든요. 이렇게 기연을 만날 수 있다니. 지금은 아카데미의 교장 직을 나왔지만, 세계수 님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앨리는 지안 누나의 말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찻잔에 차를 채워 넣으며 말했다.
"또 그들과 저에게는 통화를 할 수 있는 수단이 있습니다. 이지안 씨의 세계로 치자면 스마트폰일까요. 전화 기능만 있는 거지만요. 혹시 또 다른, 궁금한 점이 있으신 가요?"
지안 누나는 세계수의 말을 잠시 고개를 숙였다. 눈을 감은 게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안 누나는 아카데미의 교장으로 책임을 맡아오고 또 나랑 몸을 섞어오면서 그녀의 위명세가 상당히 줄어든 것처럼 보여도 한때 전설로도 불렸던 자다.
그녀의 변환 스킬은 거의 만능과도 같은 효과를 보인다. 예를 들아 풍기는 냄새나 모습을 주변의 환경으로 변환시킨 다면 거의 암살자와 같이 몸을 숨길 수 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마력을 다른 속성으로 변환해 4대 원소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도 손쉽게 해낸다. 그만큼 마력이 살인적으로 줄어들겠지만 말이다.
지안 누나는 앨리에게 몬스터에 대해 묻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알지 못하는 배경 지식부터 물어봤다.
현대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시설이나 돈에 대한 관념, 그리고 귀족과 평민의 구분 등. 그녀는 먼저 많은 것을 보고 담기 위해서 자신이 하나도 모르는 것부터 물었다.
어쩌면 지안 누나에게 있어 저 질문이 가장 옳은 걸 수도 있다.그녀는 몬스터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다. 몬스터의 종류는 지구나 이세계나 둘 모두 똑같았기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적이 있다면 아군 속에 숨어있는 스파이부터 조심할 것이다. 분쟁을 조장하는 썩어빠진 이빨이 더한 위험을 처하게 만든다.
소진과 소혜도 이쪽 세계의 환경이나 지리 같은 걸 잘 모르니 지안 누나가 잘 알려주고 인도해주면 좋은 시너지가 날 것 같다.
"그러면.. 이제 어느 정도 이쪽 지리에 대해 아실 것 같나요?"
"생각보다 간단하네요. 인간들을 조심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군인 엘프까지 모두 조심해야 한다는 말, 잘 들었습니다."
앨리는 성심 성의껏 알려줬다. 지안 누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빠르게 습득했다.
그리고 조언 중에는 엘프에 대한 것도 있었다. 인간을 혐오하는 자들이니 그들에 대해 조심하라는 내용이었다.
이제는 예전과 같은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발전한 세계수였다.
"나중에 궁금한 점이 있다면 통신을 걸어도 괜찮죠?"
"물론입니다. 가끔 바빠서 못 받을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는 최대한 빠르게 다시 통신하도록 하겠습니다."
앨리가 바쁠 때가 있었나? 나는 과거를 회상하며 앨리와 보냈던 시간들을 생각했다.
거의 모든 순간이 그녀와 몸을 겹치던 날밖에 생각이 안 나는데.. 설마 그런 날들 때문에 바쁘다는 건가.
앨리는 힐끔 바라보니 앨리는 눈웃음 사이로 작게 눈을 뜨고 있었다.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는 데 그 모습이 요염하기 짝이 없다. 아마 내 생각이 맞았던 것 같다.
"바쁠 때가 있다고요..? 아, 당연히 세계수님이 여유로울 리가 없겠군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합류할 수 있도록 문을 만들어 주세요."
"지안 누나 바로 가시게요?"
나는 주변도 구경하지 않고 바로 떠나려고 하는 지안 누나에게 말을 걸었다. 조금 더 있다가 가도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헤어지는 것도 아쉬웠다.
"그래야죠. 진소혜 헌터와 진소진 헌터가 벌써 마왕군 초반부에 진입했다고 하니까요. 상당히 빠른 속도로 토벌하는 중인데 제가 없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요."
지안 누나는 그런 말을 하면서도 아쉬워하는 눈동자를 가리지 못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벌써 헤어진다는 게 아쉽겠지만.. 저는 이걸 투자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늘리기 위한 투자. 그걸 위해서라면 행복한 시간도 잠깐 버릴 줄도 알아야겠지요."
나와 있어주는 시간이 행복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나는 지안 누나에게 다가가 두 손을 잡았다.따뜻하고도 포근한 손. 헌터로서 전설이 됐다는 사람이라곤 하나 굳은살 하나 베이지 않는, 마법사의 손이었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말은 이거밖에 없네요. 어디 다치지 마시고 몸성히 다녀오세요. 기다리고 있을 게요."
"이거, 기다리는 사람이 이렇게 멋진 남자라니. 남편을 둔 사람이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요. 금방 돌아올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기다리세요. 밤하늘의 별 하나씩 세다 보면 마왕이 토벌됐다는 소식을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지안 누나의 적색 눈동자에 결의가 찬 것이 보였다. 이런 눈을 보여주면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참 든든하고 데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문을 만들겠습니다."
앨리가 미소를 지으며 포탈을 만들었다. 근데 그 미소가 묘하게 딱딱한 것은 기분 탓일까.
조금 억지로 웃는 것 같았다.
우웅, 거리는 소리와 함께 마치 호수와도 같은 청명한 포탈이 생겨났다.
지안 누나는 그 앞에 서서 손을 흔들었다.
"다녀올게요."
나도 손을 흔들어 그녀를 배웅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녀의 안녕을 바라는 것.
내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고 죽게 된다면 곤란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 마음 같아서야 나 역시 전선에 서서 그녀들 앞에서 몬스터들을 죽이고 싶지만, 내 주제를 알아야 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나다. 그리고 그녀들 또한 내가 죽는 걸 원치 않을 것이다.
내가 주제도 모르고 그녀들에게 도움이 되겠다고 괜히 기를 쓰면 민폐가 된다. 마력은 많아도 할 수 있는 건 적으니까.
바람을 휘날리며 웅장함을 내뿜던 포탈이 허공에서 모습을 감췄다. 곧 지안 누나가 갔다는 게 실감이 나며 씁쓸함이 몰려왔다.
"이제.. 그녀가 마지막으로 모두가 모인 건가요?"
뒤에 서있던 앨리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아까 봤던 딱딱한 미소는 기분 탓인 것 같았다.
다시 자연스러운, 부드럽기 그지없는 미소가 나를 반겼다.
"조금 인원이 적나 싶지만.. 분명 그녀들이라면 충분할 거야. 내가 그만큼 믿고 있는 자들이니까."
"서방님. 저 궁금한 게 있어요."
앨리가 서방님이라 부르며 다가왔다.
특유의 질량감 넘치는 풍만한 젖가슴과 앨리만의 향기로운 살내음이 물씬 풍겨져 내 코끝을 찔러댔다.
언제 맡아도 사내의 마음을 이끄는 꽃과 같은 여인이다. 모든 남자는 꿀벌이 되어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런 꽃 말이다.
앨리는 내 가슴에 거대한 두 덩어리를 기대었다.
말랑하기 그지없는, 구름과도 같은 가슴이었다. 절로 발기가 되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서방님은 그들이 좋으신가요, 아님 제가 좋으신가요..?"
키는 내가 더 컸기에 앨리가 날 올려다보며 말했다. 앨리의 진한 초록색의 눈동자에 내 얼굴이 보였다.
나는 이런 말을 하는 앨리가 당황스러웠다. 누가 더 좋다니.
이런 말을 하면 난봉꾼과 다름없겠지만, 나는 모두가 좋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날 처음부터 도와준 진 자매나 해바라기처럼 나를 봐주는 지안 누나. 그리고 성격이나 몸,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앨리.
니 상황에선 앨리, 그녀가 제일 좋다고 말하는 게 당연할 수도 있지만, 그건 나를 믿고 좋아해 주는 다른 여인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앨리. 나는 누가 더 좋고 그런 건 없어. 나는 널 포함해서 모두가 좋아. 그 누구 하나 버릴 수 없어."
앨리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내 팔뚝을 잡은 두 손이 파르르 떨리는 게 느껴졌다.
불안한 것인가? 이런 경우를 소진에게서 많이 보았다. 소진이 항상 불안해할 때마다 이런 모습을 자주 보여줬으니 말이다.
하지만 소진은 정말 집착이 심해서 그런 것이라 이해가 가능했다. 하지만 앨리가 왜 불안해한단 말인가.
앨리는 딱히 집착도 없는 것 같았도 내가 사랑을 부족하게 준 건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내게 가슴을 기대고 있는 앨리는 조금 집착을 보이고 있는 것 같았다.
앨리가 고개를 떨군 채 말을 이었다. 조금 덜덜 떨리는 목소리가 내 귀에 꽂혔다.
"서, 서방님 혹시 마왕이 죽고 나면 절 버리실 생각은 아니시죠? 엘라시움이 아닌, 현대에 가서 그녀들과 사실 건가요?"
그런 걱정을 했었나. 나는 조용히 앨리의 등에 손을 올렸다.
그녀를 더욱 끌어안고 따뜻하기 그지없는 등을 쓰다듬었다.
앨리의 아름다운 여체에서 나오는 살내음이 머리를 어지럽혔지만, 배꼽을 맞댄 기 몇 번이던가. 나는 음심을 잠재우고 말했다.
"그럴 리가. 내가 현대에 간다 해도 너를 버릴 일은 절대로 없어. 그건 오히려 내가 싫다고 말하고 싶네. 마왕을 잡고 나면 우리, 보지 못하는 건 아니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앨리가 고개를 퍼뜩 들었다. 진한 초록색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봤다.
"아, 아니에요! 저는 서방님의 아, 아내니까.. 항상 옆에 있을 거예요. 마왕이 죽고 나서도 저희는 항상 함께예요. 쭉, 함께.."
계속 말을 잇는 앨리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지만, 더 이상 떨고 있는 기색은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진한 초록색 눈동자를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
그녀의 붉은 홍조가 눈을 채운다.
내게 몸을 기대면서도 눈을 떼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내 눈을 마주 보면서 입을 맞췄다.
몇 번이나 입을 맞췄지만, 앨리는 숫처녀처럼 부끄러워할 뿐이다. 나는 이러는 그녀가 꽤 귀여웠다.
앨리의 얇은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앨리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내 옷을 수줍잖게 손을 올렸다.
몸을 섞은 건 횟수로 치자면 거의 백의 자리에 도달하지 않았을까. 그것도 질내 사정을 한 건만 따지자면 말이다.
언제나 앨리와 섹스를 하는 건 마음이 두근거리며 이성 속에 잠재운 음심을 참기가 어려웠다.
내가 앞으로 해야 하는 일이 몇 가지가 있었는지.
지안 누나를 데려오고 본격적인 마왕 토벌이 시작했다. 내가 지구에 간 목표를 지금 와서야 이루게 된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목표를 이뤘으니 할 일이 없었다.
기껏해야 날 괴롭힌 노예 감시관 멱따는 정도. 그거야 차츰 즐기면서 해도 되니까 지금은 자유의 몸이라 해도 되겠지.
아니, 자유의 몸보다는 앨리의 서방님 정도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앨리를 잔디 위에 눕히고 몸을 섞기 시작했다.
세계수의 거처엔 신음으로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