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 다시 엘라시움으로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비밀을 털어놨다.
소혜와 레이븐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옆에서 소진이 거들었다.
"언니, 정말이야? 시안 오빠가 살고 있는 엘라시움에 갔다 왔다는 게?"
"응. 나도 처음에는 믿기 힘들었지만 사실이야."
"그리고 그.. 정말 남녀역전의 세계라고? 만화 속에서나 나오는 내용아냐?"
"느껴지는 분위기나 말투, 행동 전부 우리랑 바뀌어 있어. 나랑 똑같은 여자인데.. 남자한테 앵겨서 아양 부리는 거 보고 좀 역겹더라고. 시안이 하는 말은 모두 진실이야."
"..."
조금 충격적이긴 할거다.
남녀역전 세계라는 것이 절대 평범한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소혜는 몇 번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솔직히 시안 오빠의 성욕이 의심되긴 했어. 다른 남자들보다 훨 배 음란했으니까."
"하하.."
부정할 수 없었다.
그 정도로 자지를 놀리기도 했고.
그리고 그 피해자가 바로 레이븐이다.
"소혜야. 이번에 내가 세계수님한테 물어봤어. 너도 갈 수 있냐고 말이야."
"네? 그게 무슨 소리에요?"
"내가 살 수 있는 세계로 갈 수 있냐고 말이야."
"정, 정말요?!"
"잠깐 시안? 그게 무슨 소리야?"
아. 맞다. 아직 소진한테는 설명을 안했지.
소진은 아직 자기만 엘라시움으로 갈 수 있는 줄 안다.
"사실 엘프를 구하는 데 있어서 너 한 명한테만 모든 것을 맡길 수 없잖아. 그래서 추가 인력을 원하셨거든."
"...소혜를 원하시는 거야?"
"응. 소혜가 각성한 힘은 성녀의 힘이라고 치유 계열의 끝에 도달한 자가 얻는 거야. 분명 엘라시움에 가도 도움이 될 테까 말이야."
나는 사실을 말해줬다.
소진은 둘이서 가지 못한다는 점에 뭔가 서운해 하면서도 나한테 한 짓이 있어서 불만을 토해 내진 못했다.
이건 어떻게 보면 기회가 아닐까?
소진의 집착을 줄일 수 있는 기회 말이다.
"나중에 다른 사람을 한 명 더 부를거야. 원거리에서 지원하시는 분."
"한, 한 명 더? 설마 또 여자야?"
"아카데미의 교장 선생님. 허락은 이미 받았어."
"네? 교장 선생님을 부른다고요?"
어지간히 충격적인지 소혜와 소진이 내게 달려들었다.
지금이 아니라면 기회가 없다. 소진이 아직 내게 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을 때가 기회니까 말이다.
지금이 딱 말하기 좋은 타이밍이다.
"교장 선생님의 무력은 너네들도 다 알잖아. 정상에 오르셨던 분이라고. 분명 같이 간다면 도움이 될 거야."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교장 선생님은 바쁘셔서 못 오시지 않나요?"
"내가 같이 가달라니까 흔쾌히 가겠다고 했어. 아마 곧 아카데미의 교장이 바뀔 것 같아. 따로 사람을 구한다고 했어."
내가 숨겨왔던 모든 것을 다 말했다.
내 고향부터 해서.
내 계획까지 전부 말이다.
엘라시움에 가면 마왕을 때려 잡아야 한다는 것도 걸명했다.
분명 그녀들이 있으면 반드시 잡을 수 있겠지.
성녀의 힘은 마왕과 극성이고, 소진의 힘은 근본을 넘으니까 말이다.
"저, 저기.."
모두가 충격에 빠졌을 때 까먹었던 존재가 입을 열었다.
"내가 조금 도와줄 수 있을 거 같은데.."
"너는 뭐야? 설마 우리랑 같이 가겠다는 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장비를 좀 지원해 줄 수 있을 거 같아서."
"장비..?"
레이븐이 허둥지둥 말했다. 아직도 꽁꽁 묶여있는 피부가 걱정 됐다.
"소진아. 일단 레이븐 누나를 속박한 것부터 풀자. 소혜는 치료좀 해줘."
".. 알았어."
"알았어요."
레이븐이 풀려난 몸을 이리저리 흔들면서 스트레칭을 했다.
"몸에 감각이 없어.."
살아있는 것도 기적이다. 아마 각성자라서 이렇게 오래 버틴거겠지.
"레이븐 누나. 저희를 지원할 수 있다는 게 무슨 소리세요?"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옷, 누가 만들어 줬다고 생각해?"
"그건 분명 누나의 협력자가.. 아."
나는 잊고 있었던 레이븐 누나의 협력자를 기억해 냈다.
누나가 연구비를 지급하는 방식이라고 들었는데 설마 옷을 제외하고도 장비 또한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무기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만 딱히 필요해 보이지 않으니까. 방어구 정도라면 만들어 줄거야."
레이븐이 소진을 흘깃거리며 말했다.
소진은 어차피 빙결검을 사용해서 싸운다.
무거운 검을 하나 더 들고 다니는 것 보다 가볍고 단단하고 언제든지 소환 가능한 빙결검이 더 편할 것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거 밖에 없어. 이걸로 사과받을 생각도 없지만.. 적어도 받아줬으면 해."
"..."
레이븐이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참담한 심정이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관계가 개선되는 걸 기다리는 것 뿐이다.
내가 저지른 잘못도 있으니까 말이다.
"이걸로 용서 했다고 생각하진 마. 하지만 받을 건 받아야 겠어."
"응.. 그걸로 충분해."
모든 관계가 회복되진 않을 거다.
아마도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크겠지. 레이븐이 한 행동은 소진의 믿음을 져버린 행동이니까.
단지 내가 있어서 참아주는 것이다.
커다란 산을 넘었다.
이제 아카데미에 가서 자퇴 의사를 밝히면 된다.
어차피 이건 오늘 가서 바로 말할 생각이다.
소혜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이젠 아카데미에 정말로 있을 필요가 없어졌으니 말이다.
아, 소혜는 기말 고사를 치고 나오고 싶어했는데.. 괜찮겠지.
나는 푹 가라앉은 분위기에 말을 얹었다.
"나는 그럼 소혜와 같이 아카데미에 갔다 올게. 아마 오늘이 마지막이겠지. 다음 날부터는 엘라시움에 가야하니까. 소진은 길드의 일 어떻게 나올 수 있을까?"
소혜는 빈 시간이 많아 괜찮겠지만 소진은 길드의 일이 남아있다.
아마 많은 시간을 내는 건 어려울 것이다.
"어떻게든 해볼게. 그래도 이번에 던전을 많이 돌아서 여유가 생겼거든. 아마 길드장님도 허락해 줄거야."
"고마워. 그럼.. 레이븐 누나는?"
"난 근시일 내로 다시 여기로 올게. 그, 정말 미안해 소진아.."
".. 꺼져."
다시 분위기가 나락가가 직전이다.
"자, 빨리 가자! 소혜야. 옷 갈아 입고 와."
"네 오빠, 근데 오빠는 지금 움직여도 괜찮으신가요? 혹시 아직 아프시다면 제가 치유를..."
"괜찮아. 전혀 문제 없어."
나는 팔을 휙휙 돌리며 말했다.
겨우 모든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 일을 정해놓고 방에서 헤어졌다.
*
아카데미 교장실 안.
나는 소혜와 함께 자퇴 의사를 밝혔다.
"벌써 떠나신 다고요? 조금 시간이 걸리신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예정보다 일정이 더 빨라졌습니다. 지안 누나는 언제 쯤 나오실 수 있나요?"
"저도 말해두긴 했는데..."
"지안 누나?"
옆에 있던 소혜가 내 옆구리를 꼬집었다.
"윽."
"하아.. 역시 오빠는 교장 선생님까지 건들었구나. 점심 시간마다 늦게 오는 거 보고 어느 정도 생각하긴 했지만.."
"하하.."
지안 누나같은 여자를 내가 어떻게 참냐고.
나한테 있어서 절대 지나칠 수 없는 황금 과실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이미 모든 걸 알고 계신 건가요?"
"네. 저도 딱히 이 자리에 대해 큰 욕심이 없어서 금방 마음을 잡을 수 있었어요."
저번에 미리 지안 누나에게 비밀을 털어놔서 다시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면 지안 누나. 나중에 자리를 나오신다면 여기로 와주세요."
나는 지안 누나한테 우리 집의 위치를 알려줬다.
나중에 때가 되면 3명에서 가는 날이 올 것이다.
비록 지금은 2명으로 가지만.
"알겠어요. 그러면 제가 담당 선생님에게는 말해둘 테니 나중에 뵙도록 해요."
"네. 나중에 봬요!"
우리는 인사를 하고 교장실에서 나왔다.
이제는 보지 못할 공간이다.
아카데미의 밖으로 나가서 소혜와 함께 집으로 갔다. 아직 소진은 오지 않아서 인지 아무도 없었다.
비어있는 시간 동안 소혜와 섹스를 할까 생각했지만 해야할 것이 있다.
'세계수님? 지금 혹시 보고 계신가요?'
[네. 보고 있습니다.]
'혹시 지금 제가 세계수님의 거처로 갈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그럼 진소진 씨와 함께..]
'아니요, 저 혼자 갈 겁니다.'
[네? 아.. 알겠습니다. 곧 문을 만들어 드릴게요.]
우당탕.
무언가 넘어지는 소리와 함께 준비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문을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저렇게 급하게 만들 필요는 없는데.
"소혜야, 나는 세계수님한테 갔다 올게. 언제 올지는 잘 모르겠어. 아마 소진이 오면 나도 복귀할 거야."
"아.. 알겠어요 오빠."
소혜는 약간 아쉬워 했지만 빠르게 수긍했다.
내 몸 상태도 별로기도 하고 무엇보다 세계수님한테 갔다 오는 거니까.
이해해 주는 것이다.
[문을 열 준비가 됐습니다.]
"다녀올게."
우웅-
곧 내 앞에 우웅거리는 소리와 함께 포탈이 생성됐다.
소혜는 그것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인사했다.
"다녀오세요!"
*
"어서오세요 실리안."
"오랜만입니다 세계수님. 그간 평안하게 보내셨나요?"
오랜만에 보는 세계수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특히 가릴 수 없는 풍부한 가슴과 매력적인 골반은 절로 발기가 됐다.
내 시선이 약간 노골적이라서 그런가.
세계수는 약간의 홍조와 은근슬쩍 자기 가슴과 음부를 가리면서 말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다만 엘라시움이.."
약간 마을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하지만 마을에 문제가 생긴 건 내 알바가 아니다.
세계수님을 앞에 두고 말하기엔 불경하지만 딱히 엘프를 구할 생각은 없으니 말이다.
"그보다 세계수님. 이렇게 저희 둘만 있는 건 처음이네요."
"그러게요. 저번엔 진소진 씨가 있었는데.."
"아마 앞으로도 저희 둘이 있는 시간은 별로 없을 것 같아서요."
"네? 실리안 씨. 그게 무슨 말이죠?"
"세계수님. 솔직히 말해보세요. 제가 다른 여자와 몸을 섞는 걸 보고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아, 아무 생각도 안 했습니다."
세계수는 내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두 눈동자가 떨리면서 내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려줬다.
"정말이신가요?"
나는 내 페로몬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솔직히 세계수님한테 통할지는 미지수지만 일단 시도할 수 있는 건 모두 해야했다.
내 목적은 세계수를 꼬시는 거니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