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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하프엘프-47화 (48/77)

47화 - 외곽. (2)

그 뒤로 외곽 지역을 돌다가 복귀했다.

칼로 무자비하게 베여있는 몬스터 한 마리. 몸통이 검은색이고 미간에 커다란 눈이 하나밖에 달리지 않았다. 몸통은 상당히 커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포를 자아냈다.

드르륵

그런 시체를 꽁꽁 얼린 드르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옮겼다. 목적지는 세계수님의 거처다.

나는 세계수의 나뭇가지를 들고 잠시 생각했다. 그녀가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준 세계수의 나뭇가지.

이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알려주지 않아서 지구에서 그녀와 대화했던 방법처럼 생각했다.

'아아, 이렇게 하면 들리나요?'

내 생각을 전하겠다는 일념으로 세계수의 나뭇가지에 집중했다. 그러자 나뭇가지가 웅웅 울리면서 초록색 빛을 내뿜었다.

[네. 무슨 일이신가요 실리안 씨?]

지구에서 하던 방법이랑 똑같구나. 사용법을 알았다.

'마을 외곽 정찰을 돌다가 몬스터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세계수님이라면 무언가 아실 거라 생각해서··.]

[아! 혹시 어딘가 다치신 곳은 없으신가요? 아니 일단은 이리로 오셔서 얘기합시다. 앞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그 소리와 함께 초록색 빛이 꺼져가는 것을 봤다.

나에게 걱정을 보이면서 급하게 통화를 끊는 세계수의 모습에는 자상함이 보였다. 나는 그 모습에 조금 미안함을 느꼈다.

'난 다치지 않았지만·· 대신 경비병이 죽긴 했지.'

경비병을 죽인 거에 대한 후회는 없다. 오히려 추악한 모습으로 죽는 그 모습에 속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일단 확실한 건 세계수는 엘프 경비병이 죽은 것을 모른다.'

방금의 그 태도는 절대 살인자한테 보여줄 만한 태도가 아니다. 나는 그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됐어? 세계수님이 뭐라고 하셔?"

"자기 거처로 오라고 하셔. 몬스터보다는 우리를 걱정하는 모양이야."

"그래? 그럼 어서 가자."

소진 역시 살인에 대해 후회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외곽을 빙 돌며 세계수가 있는 거처까지 꽁꽁 언 몬스터를 끌고 다녔다.

드르륵

세계수의 거처에 도달했을 때 그때와 같이 반투명한 보호막이 씌워져 있었다. 그녀는 이 안으로 들어가려면 자신의 허락이 필요하다고 했다.

허락을 받지 않은 사람은 이 보호막이 벽처럼 작용해서 통과하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세계수의 허락을 받았기에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드는 세계수.

세계수는 우리를 보며 앙증맞은 두 손으로 우리에게 달려왔다.

'와이, 가슴이··.'

한 번 뛸 때마다 좌우, 위아래로 중심 없이 흔들린다. 커다란 가슴이 내 눈앞에서 마구 날뛰었다. 그 모습이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보였다.

우리의 앞, 정확히는 내 앞으로 온 세계수가 내 몸을 더듬으면서 말했다.

"어디 다치시진 않으셨죠? 여기 약간 상처가 있는 것 같은데··."

"하하, 저희는 정말 괜···"

나는 내 앞에서 흔들거리는 커다란 가슴을 멍하니 봤다. 언제 봐도 무시무시한 폭유..

'흡!'

갑자기 뒤에서 느껴지는 기세에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극도의 냉기가 갑자기 나를 덮친다. 사방을 옥죄이는 것이 마치 포식자가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뒤에서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기세.

그 기세에 덜덜 떨리는 얼굴을 억지로 틀어 뒤로 돌았다.

'적, 적안··!'

지안 누나와 있을 때보다 더 빨간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진의 눈동자다. 그녀는 질투에 가득 찬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안. 어딜 보고 있는 거야? 넌 나만 봐야지. 설마 저 여자의 가슴을 본 건 아니지?"

그런 말을 하면서 뒤에서 나를 끌어안는다. 등에서 느껴지는 두 개의 커다란 지방 덩어리가 나를 누르는 게 느껴졌다.

꾸, 우욱 -

"아, 아니지! 당연히 아니지·· 나는 너밖에 없다고. 우리는 운명 같은 사이잖아? 하하··."

내 등을 누르는 가슴이 내 등을 부술 기세로 압박하자 나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치? 저렇게 크기만 큰 년보다는 나같이 꼭 감싸줄 수 있는 여자가 더 좋다고·· 그러니까 이상한 생각 하면 안 된다?"

"저기, 다 들립니다만··."

소진이 내 귀에 딱 대고 말하고 있긴 하지만 신적 존재인 세계수가 그 말을 못 들을 리가 없다.

"아하하··. 세계수님 보다시피 저희는 다친 곳 하나 없습니다. 일단은 이것을 봐주세요. 소진이 외곽에서 잡아온 몬스터입니다."

나는 이때다 싶어 나를 뱀처럼 옭아맨 소진의 품에서 나왔다.

소진의 뒤엔 얼음 덩어리 몬스터가 있었다. 세계수가 그 얼음 안에 갇힌 몬스터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

"흐음·· 일단 다치지 않으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아무래도 다음에 오실 때는 전투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군요. 그리고··."

세계수가 그 얼음 덩어리에 가까이 갔다. 그러더니 손가락을 하나 펼쳐서 그것을 툭 하고 만졌다.

사르륵

그와 함께 마법처럼 얼음이 녹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몬스터의 상처까지 치유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보이지 않던 것까지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이건 마왕의 정찰견이군요. 몸이 검고 눈이 굉장히 발달해서 어둠 속에서 정찰하는데 타고난 몬스터입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저절로 입이 떡 벌어졌다. 정말 그녀는 신적인 차원에 도달한 세계수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이것이 외곽 지역에 있다는 것은·· 슬슬 위험하다는 것이겠군요. 실리안 씨, 진소진 씨 알아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거처로 오시면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뒤돌아 다시 그 집으로 안내해 준다.

다시 커다란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돌아가는 세계수.

'마법이나 몸매나 얼굴이나 무엇하나 빠지는 게 없는 정말 초월적·· 흐이익!'

"시안. 눈."

소진이 내 옆구리를 조금 깊게 찌르면서 말했다. 조금 전에는 완벽한 적안이었지만 지금은 어째 조금 잠잠해져 있었다.

"아, 미안 정말 안 볼 테니까··!"

하지만 여전히 무서운 그 태도에 사과하며 소진의 옆에 착하고 붙었다.

소진은 세계수의 보면서 생각했다.

'분명 방금의 그 힘을 봤을 때는 나보다 훨씬 강하겠지. 마치 아무것도 아닌 듯 내 얼음을 녹이는 그것은..'

소진에게는 그 장면이 충격적이었다. 질투에 찬 눈도 사그라질 정도로 말이다.

소진은 잠잠히 세계수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힘도 힘이지만 저 외모는 너무 위험해. 성욕이 넘치는 시안이라면 분명 넘볼 것 같은데··.'

소진의 입장에서는 세계수의 모든 것이 불안했다.

아까부터 세계수를 보는 시안의 눈이 심상치가 않다. 무언가를 노리고 있는 듯한 눈빛이다.

게다가 묘하게 감이 경고하고 있다. 시안을 경고하는 것이 아닌, 세계수를 경고하고 있다.

'어쩌면 내 시안을 넘볼 수도 있겠어.'

으드드득!

"히, 히익!"

뺏길 수도 있다. 나보다 훨씬 강력한 그녀라면 시안을 가져가도 나는 무력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무력하게. 뺏기는 것을 말이다.

'힘을, 힘을 키워야 해·· 지금보다 더. 적어도 세계수와 싸워도 비등할 정도로··.'

소진의 생각엔 만약을 위해 힘을 키워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이를 바득바득 가는 소진을 보며 시안은 그저 덜덜 떨 수밖에 없었다.

*

또르륵

"저번과 똑같은 차입니다. 일단, 이것을 마시고 진정해 주실 수 있나요. 진소진 씨?"

자상하게 미소를 지으며 소진한테 차를 건넸다.

소진은 여전히 검붉은 눈동자로 세계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탁, 호로록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고 금방 차를 받아마셨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세계수를 노려보는 것은 잊지 않았다.

"후훗··. 혹시 마을에 대해서는 어떠셨나요? 혹시 그들이 무례한 짓은 하지 않았는 지··."

소진의 모습에 웃는 것도 잠시 마을에 사는 엘프가 우리에게 무슨 피해를 끼치지 않았나 걱정했다.

"으음. 솔직히 빈말로도 괜찮았다고 말하진 못하겠죠. 어떻게 봐도 그들이 보인 태도는 적대적이었으니까요."

"··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분명 언질을 해놨는데··."

정말 빈말로도 좋았다고 말을 못 하기에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자 그녀가 고개를 푹 숙이며 사과했다.

나는 계속 고개를 숙이는 세계수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힘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녀가 직접 나서면 되는 것이 아닌가.

"세계수님 왜 직접 나서지는 못하시는 겁니까? 무언가 제약이라도 있으신가요?"

"저는 이 보호막 안에서만 제힘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습니다. 외부에서는 그저 말로만 간섭할 수 있죠. 하아·· 제가 직접 힘을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녀가 아쉽다는 듯이 한숨을 푹 쉬며 말한다. 역시 답답하게 굴던 그녀에게도 이유가 다 있었다.

"일단 여기까지 오셨으니 휴식을 취하세요. 아니면 주변을 둘러보면서 구경하셔도 괜찮습니다. 꽤 힐링이 될겁니다."

세계구는 그 말을 끝으로 새것처럼 변한 몬스터를 데리고 사라졌다.

주변을 보며 힐링이라.. 햇볕은 따뜻하게 비치도 울창한 나무는 청명함을 준다. 게다가 드넓은 호수에 첨벙첨벙 뛰는 호수까지.

분명 힐링이 되긴 할 것이다. 나는 소진을 보며 말했다.

"그럼·· 세계수님의 말대로 힐링이나 할까?"

"하아··. 일단 방해꾼이 사라졌으니··· 좋아.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시안과 단둘이라니 낭만있네. 이것도 어떻게 보면 데이트인가?"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미소를 짓는 소진. 그녀의 모습과 뒤에 있는 호수의 풍경을 보니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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