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 세계수.
세계수. 그녀를 처음 봤을 때 생각나는 것은 미의 여신이었다.
녹색의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트린 머리는 자연을 말하는 것 같았고, 순둥순둥한 커다란 눈방울은 마치 사슴을 연상케 했다.
그 아래로는 상당히 커다란 가슴이 모든 것을 포용해 주겠다는 듯 말하고 있었다.
골반은 비현실적이게 안으로 들어가 있으며 두툼한 엉덩이는 밑 살을 들어 올려도 보지가 보이지 않을 만큼 커다랬다.
게다가 얇은 천조각으로 중요한 부위만 아슬아슬하게 가린 세계수의 의상은 보는 남자로 하여금 아찔하게 만든다.
미의 결정체. 세계수는 천상의 외모와 끝판왕급 몸을 가지고 있었다.
""...""
너무나 비현실적인 외모라서 그런지 나도 그렇고 소진 역시 멍하니 세계수를 바라봤다.
"저기, 일단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제가 차라도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하고 뒤를 돌아서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이동한다. 훤히 파인 등이 눈에 띈다. 아름답게 곡선을 이루는 등이 내 눈을 차지했다.
등 뿐만 아니다. 옆구리가 파여서 옆가슴과 엉덩이 라인이 그대로 보이는 의상이다.
게다가 옷이 얇기도 해서 엉덩이 밑 주름이 그대로 나타난다.
나는 저절로 바지가 부푸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단순한 몸짓 하나하나에 머리가 아찔해진다.
'저 사람이·· 세계수라고? 정말 비현실적으로 아름답잖아··.'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소진과 몸을 섞었지만 내 성욕은 끝이 없었다.
나는 홀린 듯이 세계수의 뒤를 따라갔다.
"시안. 세계수님이·· 굉장히 예쁘시네?"
평소 나에게 다가오는 여자를 보면 쌍심지부터 키고 욕을 하기 바쁜 그녀였지만 그런 그녀조차 세계수의 미모에 당황했다.
"그러게··. 나도 실제로 본 건 처음이라서 이렇게 예쁘실 줄은 상상도 못했어."
솔직히 아름다운 목소리부터 일반 여성과는 궤를 달리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긴 했지만, 이 정도는 한계를 돌파한 아름다움이었다.
그녀가 안내해주는 길을 걸으면서 이동하자, 나무로 된 아기자기한 집이 우리를 반겼다.
"어흠··. 제가 사는 집에 다른 분을 초대한 적은 처음입니다. 일단 들어오세요."
세계수의 얼굴은 굉장히 새하앴는데 뒤돌아 우리를 본 그녀의 얼굴은 왜인지 몰라도 수줍게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그녀의 손길에 따라 집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나무로 된 테이블.
나무로 된 의자.
줄기를 엮어 만든 계단.
그리고 주변을 아름답게 치장해 주는 커다란 꽃들까지.
인공적으로 만들었다는 느낌이 아니다. 마치 자연이 그녀를 위해 한 몸바쳐 만들어진 것 같았다.
사방을 둘러보며 감탄사만 내뱉고 있는 우리에게 세계수가 말했다.
"차를 따라 드릴 테니 마시면서 얘기할까요?"
마치 어머니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바라본다. 정말 뭐든지 받아줄 것 같은 표정이다.
우리는 그녀가 안내해준 의자에 앉아서 세계수가 따라주는 찻잔을 받았다.
또르르
'...'
무의식적으로 찻주전자를 보다가 세계수의 가슴 쪽으로 눈이 옮겨진다. 찻주전자보다 커다란 가슴이 어째 내 머리보다 클 것 같다.
계속 보고 싶었지만 옆에 날카롭게 눈을 뜨고 있는 소진이 있었기에 금방 눈을 떼고 찻잔을 봤다.
찻잔 역시 나무로 되어 있었다. 그 찻잔을 만져보니 단단함이 일반 나무와는 차원이 달랐다.
나와 소진은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셔봤다.
호로록
'청명감··· 차가 굉장히 맑네. 그리고 마음이 평안해지고 머리가 시원해져··.'
작은 한 모금에도 느껴지는 기운에 저절로 입이 갔다.
소진 역시 자신과 다르지 않은 반응이었다.
"후후··. 만족하신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진소진 씨? 오시기 전에 실리안 씨한테 설명을 들으셨겠지만, 더 자세한 설명을 해 드릴게요."
세계수는 내가 미처 설명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소진에게 설명했다.
경외심.
세계수가 왜 자신이 경외심을 먹고 사는지 그리고 내가 왜 그녀에게 경외심을 모아가 주게 되었는지 말이다.
그리고 내가 감추고 있는 것. 내가 세계수에게 경외심을 주는 방법까지 설명했다.
"·· 그러니까 그·· 현재 엘프라는 것들이 경외심을 제대로 모으질 않아서 이렇게 시안이 몸을 대줘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하시는 말씀이 지나치시긴 합니다만, 부끄럽게도 그렇습니다."
소진은 어지러운지 미간에 손을 짚으로 빠르게 숨을 골랐다. 눈을 감고 손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으며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짓씹는 게 보였다.
니는 그런 소진의 눈치만 살피기 바빴다. 내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고는 하지만 그녀로서는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
소진이 진정되고 눈을 떴을 때는 고요한 눈동자만이 떠올랐다.
"진소진 씨, 진정이 되셨는지요··?"
"···"
세계수가 소진한테 말을 걸어도 그녀는 세계수를 바라보지 않았다. 오직 내 얼굴만을 바라보면서 아랫입술을 질겅질겅 씹을 뿐이다.
입술에는 피가 조금씩 나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마치 시한폭탄이었다. 그것도 초가 5초 정도 남은 시한폭탄이다.
정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태인 그녀는 진정 됐다고 보기엔 어려웠고 겨우 이성을 붙잡고 눈을 뜬 것 같았다.
어떤 말을 해도 들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이 침묵이 이어지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 그래서 세계수님. 일단 저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일단 주변 환경부터 익숙해지는 단계를 거치시는 게 좋으실 것 같습니다. 먼저 마을에 가서 지형을 파악해 주세요."
세계수가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우리를 밖으로 안내했다.
같이 일어나는 소진의 손에서는 손톱이 살을 찔러 피가 나고 있었고 뿜어내는 냉기가 주변 공기를 차갑게 만들고 있었다.
먼저 앞장서서 걷는 세계수가 그 느낌을 받았는지 걷는 걸음이 빨라졌다.
평원과 같던 지역에서 나무가 울창한 지역으로 이동했다. 그러면서 점점 윤기 있게 빛나던 숲들이 생기를 잃어갔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내게 익숙한 지형이 보였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아는 곳이다.
우리의 눈앞에는 반투명한 보호막이 덮여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세계수가 있는 방향으로 보호막이 씌워져 있다.
"이 보호막 안에서는 제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직 제가 허락한 사람만이 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이 반투명한 보호막은 세계수의 존재를 지켜주는 역할인 것 같다.
"실리안 씨 이것을 받아주세요."
그 반투명한 보호막을 멍하니 보고 있는 나를 세계수가 불렀다. 그리고 내 손을 펼치더니 나뭇가지를 쥐여줬다.
"이건··?"
"세계수의 가지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신다면 어디에 있으셔도 저와 연락하실 수 있습니다."
일종의 핸드폰과 비슷했다. 단 통화기능만 달린 핸드폰 말이다.
세계수는 눈을 감고 손을 아래로 가지런히 모았다. 그러자 커다란 가슴이 가운데로 모이면서 더더욱 크게 보였다.
"제 아이들에게는 따로 말해뒀습니다. 제가 초대한 하프 엘프와 인간이 있다고 말이죠. 따라서 적대하지 말고 저를 대우하듯이 행동하라고 말했지만.. "
"그들이 과연 저희에게 그런 태도를 보여줄까요."
직접 살아와 본 내가 안다. 23년 동안 겪어온 험오의 시선은 세계수가 한번 말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소진의 입장에서는 우리의 대화가 의미심장하게 들릴 것이다. 아직 엘프를 몰라서 가능한 거였다.
"·· 만약 그들이 무례한 태도를 보인다면 언제든지 저한테 오세요. 제가 할 수 있는 선까지 경고하겠습니다."
세계수의 말은 듣기만 해도 마음이 든든해졌다.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네 그럼·· 들어가세요."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뒤돌아 앞장서서 마을로 향했다. 소진이 나를 바로 따라오지 않고 세계수를 날카롭게 바라봤지만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우리는 그렇게 엘프의 마을, 엘라시움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
"으아·· 이미 밤이잖아. 오늘 시안을 한 번도 못 봤네··."
웨이브진 빨간 머리를 찰랑거리며 검은색 라텍스 옷을 입고 있는 여자.
레이븐은 어두운 거리에서 기지개를 켜며 나왔다.
"끄응·· 요즘 따라 시안이 더 보고 싶고 온종일 생각난단 말이지··."
처음 몸을 섞었을 때도 시안의 생각이 자주 났었지만,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요즘은 그가 내 곁에 없으면 한숨만 계속 나오고 머릿속에서 정사를 나누는 것만 생각하게 됐다.
특히 입에서 굴리는 정액의 맛이 자꾸 생각난다.
달콤하면서도 끈적한 정액. 그것을 계속 입에 물면 달콤한 맛이 더 진해진다. 마치 사탕같은 정액이다.
그리고 요즘 시안의 정액을 입에 물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더 평안해진다.
'컨디션도 더 좋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큭큭'
자기가 생각해도 웃기는 말을 하며 어두운 밤거리를 빠져나가 도시로 나왔다.
도시로 가자 주변을 비추는 간판과 불빛, 그리고 사람들의 북적거림과 대화하는 소리가 주변을 가득 채운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많은 커플들. 금요일 밤이라서 술집에서 헌팅하려는 여자들도 많이 보인다.
길거리에 있는 여자들의 공통점은 다들 팔짱에 남자 한 명씩은 끼고 있다는 것이다.
'나도 남자친구·· 있긴 한데··.'
비록 주인이 있는 남자친구를 뺏어온 거였지만 일단 내 남자친구는 맞으니까.
그리고 여자친구라고 소개한 진소혜는 특히 얼굴이 되게 친근했다. 마치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가 느끼는 배덕감이 배가 됐다.
어쩌면 자신이 알 수도 있는 여자의 남자친구를 뺐을 수 있다니. 생각만 해도 자궁이 큥큥거릴며 울린다.
"안 되겠다. 나만 이렇게 외로이 있을 수 없지. 내가 내 남자친구 보겠다는데·· 시안도 분명 날 보고 싶을 거야."
이번에 몰래 그를 찾아봐야겠다. 그 어떤 남자랑 비교해도 완벽한 사람이다.
얼굴이면 얼굴, 몸이면 몸·· 내 안을 꽉 채워주고도 넘쳐나는 성기까지.
외롭고 지루했던 감정은 그를 만날 생각에 기쁨과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그의 집이 어디인지는 안다. 이미 저번에도 찾아가서 전화번호까지 받았다.
'흐흐··. 몰래 찾아가서 깜빡 놀래켜 주면 기뻐하겠지? 만약 자고 있으면 내 입으로 빨아주면서 깨워줘야겠다.'
벌써부터 그의 정액이 내 입으로 들어온다고 생각하니 하복부가 찡하고 울린다.
레이븐은 복면을 써서 완벽하게 인기척을 가렸다.
평범하게 입구에 있는 문으로 시안의 집에 가지 않았다. 밖에 있는 창문을 통해서 몰래 진입할 것이다.
지금 레이븐은 줄 하나만 믿고 공중에 대롱대롱 달려있었다. 아파트 벽을 밟으면서 시안의 집을 확인했다.
고층 높이였지만 레이븐한테는 이런 일이 익숙했다. 과거에 짐꾼 일에 손을 떼고 나서 크게 돈을 벌 방법이 사라지자 도둑질이 손을 대기 시작했다.
높으신 분들의 돈을 털기 위해 이런 일도 익숙해 져야 했다.
마침내 시안의 창문을 확인하고 안으로 진입했다.
어두컴컴한 방 안. 분명 달콤한 냄새가 퍼지는 것이 시안의 냄새가 맞는데 안에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으음·· 이 누나가 왔는데 어디 간 거지?'
설마 밖으로 나간 건가?
웬지 모를 섭섭함을 느끼면서 시안의 방을 확인한다.
널부러져 있는 침대에서는 정사의 흔적이 묻어있었다.
바닥에 대충 놓여있는 여자의 속옷과 옷은 조금 전까지 시안이 여자랑 같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줬다.
'하아·· 역시 시안은 성욕이 넘쳐난다니깐. 나란 여자가 있는데도 꼭··.'
시안과 몸을 섞었으리라고 생각하는 브래지어를 들며 눈살을 찌푸린다.
'잠깐. 뭐지 이 속옷? 시안의 여자친구라고 말한 소혜는 이렇게 큰 사이즈가 아닐 텐데..'
E컵 사이즈의 브래지어를 들며 생각했다. 아무리 높게 쳐줘도 D컵이라고 생각되는 소혜한테는 지나치게 큰 크기의 사이즈다.
이해할 수 없는 사이즈에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그때 미용실에서 봤던 여자 두 명. 설마 하는데 그 두 명 모두 시안의 여자친구인 건가?
'아니 설마.. 상식적으로 그럴 리가. 이건 너무 섣부른 추측이야.'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느껴진 레이븐은 시안의 방 밖으로 나갔다.
어두운 거실에는 달빛만이 안을 비췄다.
안쪽을 살펴보니 방이 2개가 더 보였다. 먼저 시안의 옆 방부터 확인해 봤다.
평범한 방 안. 휴지통에는 꾸깃꾸깃한 휴지가 가득 쌓여있었고 공부를 꽤 많이 하는지 책들이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전형적인 여성의 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건질 것도 없다고 생각한 레이븐은 그대로 문을 닫고 더 안쪽에 있는 방을 열었다.
아니, 열려고 했다.
철컥 철컥
'응? 빈방인 건가? 여긴 분명 또 다른 여자가 지내고 있는 방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방은 잠겨 있었다. 보통 집에서 잠가두는 방은 없었다. 이렇게 잠겨있는 방은 보통 하나다.
열면 안 되는 방이라는 것.
'흐흥·· 보통 이런 방에는 돈 냄새가 난다는 말이지··.'
습관처럼 가지고 다니는 핀을 들었다. 보통 이것만 있으면 잠겨있는 문을 거의 다 딸 수 있었다.
철컥철컥.. 철컥..
탁
온 신경을 기울여서 문을 땄다. 역시 이 순간이 제일 기대된다.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느낌이 팍팍 드는 문.
"흐흐··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요."
레이븐은 어느 한 여자의 방.
소진의 방을 보고 몸이 굳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온통 남자의 사진이 벽 곳곳에 붙어 있었다. 내가 아는 익숙한 남자의 사진이다.
'시..안?'
나머지 한 여자의 방 안에는 온통 시안의 사진으로 가득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