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 납치. (4)
[상대방으로부터 대량의 경외심을 이끌어 냈습니다!]
[보상으로 저주의 힘이 약간 떨어집니다.]
레이븐이 기절한 것을 보자, 시스템 창이 경외심을 이끌어 냈다고 알렸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제대로 볼 시간이 없었다.
"레, 레이븐 누나! 정신 차려요!"
나는 일단 빠르게 입에 있는 자지부터 꺼냈다.
찌걱 -..
레이븐의 목구멍 속까지 깊숙이 박혀있던 자지가 찌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빠져나갔다.
내 자지는 침으로 번들번들하게 빛나고 있고, 뜨거웠던 입에서 벗어나 차가운 공기를 맞이했다.
나는 사정 직후라서 예민한 귀두에 다시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지금은 사정의 여운을 즐길 때가 아니다.
나는 기절해버린 레이븐을 보고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긴 했지만, 레이븐의 상태도 신경 쓰지 않은 채 나만 기분 좋아지기 급급했다.
나는 레이븐을 들어내 뒤에 있는 침대에 눕혔다.
레이븐의 얼굴은 엉망진창이었다. 눈물과 침이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망쳤지만, 오히려 그것이 색기를 불러일으켰다.
나는 일단 레이븐이 살아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가슴에 귀를 기울여 댔다.
내 귀는 상당히 좋아서 옷 위로도 심장 소리가 들릴 줄 알았는데, 검은색 라텍스 옷이 심장 소리를 감췄다.
나는 겨우 옷 하나가 심장 소리까지 가려준다는 게 이상함을 느꼈다.
나는 잠시 심장에 기운 얼굴을 때고 검은색 라텍스 옷을 바라봤다.
'그런데 검은색 라텍스 옷에다가.. 여성이고.. 그리고 서울 강남구에서 활동하는..'
나는 이 여자를 어디선가 봤음을 느꼈다. 아주 잠깐이긴 했지만, 분명 어디선가 이 정보를..
'아. 뉴스.'
나는 어제 아침 일찍 틀어놨던 뉴스 내용 중 하나를 기억해 냈다.
'어제 서울 강남구에서 빌런이 출현했습니다. 리더로 추정되는 A급 빌런 1명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물품을 갈취 및 강간을 ...'
영상에선 빌런으로 추측되는 검은색 옷을 입은 여자가 잠깐 시야에서 보였다가 사라졌다.
"..."
나는 아무리 봐도 이 여성이 어제 뉴스에 출현한 그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생각을 뒤로 미루며, 일단 레이븐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레이븐의 옷 앞쪽에 있는 지퍼를 잡아서 아래로 쭉 내렸다.
지이이익 -
목에서부터 지퍼를 내리기 시작해서 레이븐의 풍만한 D컵 가슴의 사이를 지나 그녀의 보지와 회음혈,
그리고 마지막 엉덩이를 지나서 꼬리뼈 살짝 위까지 있는 지퍼를 잡아 내렸다.
내 얼굴은 지퍼를 제대로 내리기 위해서 레이븐의 보지 바로 앞부분에 있었는데,
지퍼가 열리자마자 애액을 분수처럼 내뿜는 보지가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나를 반겼다.
나는 그것을 신경 쓰지 않고 레이븐의 몸을 들어서 검은색 라텍스의 옷을 멀리 던져버리고 다시 그녀의 가슴에 귀를 기울였다.
풍만한 가슴은 말캉거리며 내가 얼굴로 누른 만큼 가슴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두근 - 두근 -
다행이다. 레이븐의 심장은 아직 뛰고 있었다.
"휴우.."
나는 내 이마에 식은땀을 손으로 닦았다.
'정말 다행이다.. 사람을 자지로 죽일 뻔했어..'
나는 레이븐이 살아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며 엉망진창인 레이븐의 얼굴을 정리해줬다.
빨간색 머리카락이 얼굴에 달라붙은 걸 때 주고, 눈물과 침을 정성스럽게 닦아줬다.
나는 레이븐의 얼굴을 정리하면서 흥분감에 제대로 못 본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다시 봐도 여우의 인상을 닮은 레이븐이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렇게 기절해버린 레이븐이 미안함을 느끼기도 하면서, 또 내가 기분 좋아질 때까지 버텨준 그녀가 고마웠다.
나는 레이븐이 고마워서 감사의 인사를 담아 작게 키스를 했다.
쪽 -
레이븐의 입은 달콤한 향기를 머뭄고 있었는데, 아마 내 정액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것을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도 잠깐이었다. 이렇게 해준 레이븐한테 내 마음을 전해주고 싶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준 걸까.
레이븐은 내가 잠깐 키스를 하자, 슬며시 눈을 떴다.
"어, 레이븐 누나! 일어나셨군요! 그..그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흥분해 가.."
횡설수설하면서 빠르게 사과를 전하려고 했는데, 레이븐은 내 사과를 끝까지 들어주지 않았다.
레이븐은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텁 -
"츄르르릅.. 츄릅... 쯉.. 츄르르르릅.. ♡"
"읍?! 으읍! 읍!"
내가 말을 하는 도중에 갑자기 내 얼굴을 두 손으로 잡으면서 내 입을 그 말랑말랑한 입술을 이용해 강제로 열고 그대로 딥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레이븐의 혀에서 느껴지는 달콤함이 묘하게 맛있다고 느껴졌지만, 그 달콤함이 곧 내 정액이라는 것을 생각하자 읍 읍 거리며 저항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복수라도 하는 듯, 레이븐은 내 얼굴을 꽉 잡고 놓아줄 생각을 안 했다.
나는 더는 저항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져, 레이븐의 혀에 순응했다.
"츄르릅.. 츄릅.. 하으.. 츄릅.. ♡"
"으읍.."
중간마다 숨을 들이마시면서도 내 입을 범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레이븐은 눈을 감고 키스에 집중했다.
나는 점점 숨을 쉬는 것이 힘들어졌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도록 키스를 하고, 레이븐은 내 얼굴을 잡았던 손과 얼굴을 땠다.
그러자 레이븐의 입과 내 입에는 기다란 선이 곡선을 그리며 이어졌다.
"하아.. 하아.. ♡"
"허억.. 허억.."
우리 둘은 숨 막히도록 서로의 입을 범했고, 입을 때자마자 부족했던 공기를 들이마셨다.
우리는 빠르게 호흡을 하면서 서로를 바라봤다.
나를 그윽하게 바라보는 레이븐의 눈동자에는 누가 봐도 성욕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레이븐을 보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레이븐 누나, 괜찮으세요..?"
"큭큭, 그래. 방금 걸로 괜찮아 졌어."
나는 소악마처럼 웃는 레이븐을 볼 수 있었다.
다행이다. 나한테 숨이 막혀 죽을 뻔한 기억을 겪고, 두려움에 도망가면 어떻게 되나 싶었다.
"나 이래 봬도 각성자라고. 이 정도로는 안 죽어."
나의 걱정하는 시선을 봐서 그런지, 나를 안도시키는 말을 해주는 레이븐.
그래도 나는 사과의 말을 했다.
"그래도.. 죄송해요."
그래도 사과를 하는 나를 보고, 레이븐은 싱긋 웃으면서 일으켜 세웠던 상체를 다시 눕혔다.
그러면서 기지개를 피면서 말했다.
"흐으읏.. 그래도 고통스럽긴 했지만, 기분 좋았어. 구강성교는 처음이었는데.."
"네? 처음이시라고요?"
"음.. 뭔가 좀 거부반응이 있었거든. 오줌이 나오는 곳을 내 입으로 핥는다는 게."
나는 성과 관련된 거의 모든 행위가 처음인 레이븐이 이상해서 한 번 물어봤다.
"레이븐 누나, 그러면 대체 지금까지 납치해 온 사람들을 뭐로 강간한 거에요..?"
그 말에 레이븐은 간단하게 말했다.
"손."
"네..?'
"손을 이용해서 싹 다 보내버렸다고."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손을 검지와 엄지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위 아래로 흔드는 레이븐.
나는 그 말에 그녀가 처음 내 바지에 감춰진 자지를 찾을 때 느껴지던 그 손길을 기억했다.
'확실히.. 바지 위로 느껴지던 그 손놀림은 무척.."
야릇했다. 짜릿했다. 기분이 매우 좋긴 했다.
나는 그런 레이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섹스를 원해서 나를 납치한 것도 아니고, 겨우 대딸해 줄려고 납치하는 강간범이라니..
그렇다고 내가 비싼 물품들을 가지고 있어 그것을 갈취하려는 건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나를 보는 레이븐의 행동은 돈보다는 성행위를 노리는 것 같았다.
나는 내가 궁금한 점을 물어봤다.
"레이븐 누나. 왜 누나는 남의 물건을 가져가거나, 남자친구가 있는 여자들을 노리는 거예요?"
"..."
"혹시 불편하시면 말 안 하셔도 괜찮아요."
그리고 잠시 고민하더니 나한테 다시 말을 걸었다.
"아니, 말해 줄 수 있어. 시안아 잠깐 내 과거 이야기 좀 들어줄래? 좀 많이 길 수도 있어."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래 어디서부터 말하는 게 좋을까.."
레이븐이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
레이븐은 어렸을 때부터 보육원에서 자랐다.
던전이 생긴지 대략 40년.
레이븐이 아직 일어서지도 못하는 나이일 때, 레이븐의 부모님은 던전에서 나온 몬스터로 인해 죽었다.
집 앞에서 들어오려는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어머니와 아버지는 지원이라는 희망을 기다리면서 죽을 때까지 싸웠다.
그런 그들의 노력 덕분에 레이븐이 몬스터들한테 죽기 직전에 헌터들의 지원이 왔지만, 부모님은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고 난 후였다.
그런 레이븐을 헌터들이 챙겨서 보육원에 데리고 갔다.
레이븐이 보육원에 들어가고 난 후, 7살이 되었다.
레이븐은 이국적인 빨간색의 머리카락과 황금색 눈동자는 저절로 그녀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줬다.
그런 레이븐의 옆에는 그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아이도 있었고 이상하다며 자리를 피하는 아이도 있었다.
가난한 시설의 보육원은 꽤 피폐했다.
노후된 시설에 겨우 10명 남짓한 아이들을 수용하면서, 하루에 두 끼의 음식을 제공했다.
하지만 가난한 보육원은 한창 자랄 나이의 아이들한테 주는 음식의 양이 매우 적었다.
겨우 어린이 주먹 하나 정도의 주먹밥.
레이븐이 자라온 보육원은 그 정도로 가난한 시설이었다.
꼬르륵..
"원장 아저씨, 더.. 더 주시면 안 되나요..?"
"미안하구나 레이븐, 우리 보육원이 가난해서 더는 줄 수가 없어.. 대신 내 몫이라도 좀 더 가져가려무나.."
레이븐은 굶는 것이 싫었다.
평생을 굶고 살아온 레이븐에게는 점점 공복이 익숙해지는 느낌이 싫었다.
또 배고파서 더 많은 양의 음식을 원할 때마다, 보육원장은 내 말을 거절하면서 항상 가난함을 입에 담았다.
"돈.. 돈만 있었으면..크흑.."
침울해하는 레이븐을 바라보는 보육원장은 항상 작은 목소리로 그 말을 중얼거리곤 했다.
돈.
항상 자기가 돈만 많았으면 우리를 굶길 필요가 없었다면서, 우리에게 눈물을 흘리며 사과하기도 했다.
그때는 모두가 어린 탓에 보육원장의 말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없었지만, 레이븐은 달랐다.
레이븐은 돈의 중요성을 깨우치게 됐다.
배고프면 음식을 먹으면 되고, 음식을 먹으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은 음식을 먹을 수 있고, 굶지 않아도 되는 날이 많아진다.
그때부터 레이븐은 돈에 대한 집착이 점점 피어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이... 많.. 감..니다.."
"괜...인사는.."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레이븐은 문을 살짝 열고 무슨 일이 있나 확인했다.
"아이고.. 정말 감사드립니다.. 정말로요.. 이제 더는 저희 아이들이 굶길 필요가 없겠군요. 이날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는지.."
"아닙니다. 세상은 당신 같은 분들이 있어서 더 오래 살아가는 겁니다. 저희야말로 감사하죠."
밖에서는 보육원장과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남녀 두 명이 대화하고 있었고,
그들의 뒤로는 자신과 동갑인 듯한 여자아이 한 명과 자기보다 약간 더 어려 보이는 여자 한 명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보육원장은 그들에게 고개를 깊이 숙이며 눈물을 흘리며 감사인사를 하고 있었다.
"나중에 다시 종종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지금은 신생 길드라서 많은 금액을 후원하지 못하지만, 나중에 크게 된다면 더 많은 돈을 후원하겠습니다."
"네,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희 보육원의 희망이십니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뒤를 돌아 돌아가는 4명의 인물을 보고 있었는데, 자신과 동갑인 듯한 여자가 레이븐이 있는 곳을, 고개를 살짝 돌려 바라봤다.
눈이 마주치자 레이븐은 자신과 동갑인 듯한 그 아이가 무척이나 차가운 인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앞으로 가고 있는 그들의 뒷모습은 화목한 가정 같았다.
끼익 -
레이븐은 살짝만 열었던 문을 끼익 거리는 소리와 함께 크게 열었다.
그러자 밖에서 비쳐 오는 빛이 나를 반겼다.
"저.. 원장 아저씨, 무슨 일이에요..?"
레이븐이 문고리를 잡고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보육원장을 향해 물어봤다.
"아, 레이븐 이구나. 오늘 엄청나게 좋으신 분께서 우리에게 후원을 해주셨단다."
보육원장이 레이븐을 보면서 말했다.
"후원..이요?"
"그래, 후원. 우리한테 주기적으로 돈을 주겠다고 하더구나.. 정말로 고마우신 분들이지."
"그.. 후원하시는 분들은 돈이 많아서 저희를 후원하시는 건가요?"
그런 내 질문에 보육원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음.. 그렇지 않을까 싶구나. 애초에 신생 길드를 설립하려면 많은 돈이 들어가니까 말이다.."
그 말을 듣자 레이븐은 뒤를 돌아 돌아가는 모습 중, 자기를 돌아본 또래의 소녀가 생각났다.
"혹시 그분들은 나중에 또 오시나요..?"
"그렇다고 하더구나. 언제 오실지는 모르겠지만, 그분들이 오시기 전까지는 아마 풍족하게 먹고살 수 있을 거야."
보육원장의 말은 진짜였다.
우리를 후원해 줬다고 말한 4명은 종종 우리를 찾아오면서 후원을 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점점 풍족하게 먹는 시간이 늘어나고 하루에 3끼는 기본으로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가끔은 후원을 하지 않는 날에도 찾아오기도 했다.
"아이고, 운영하시는 길드가 굉장히 잘되시나 봅니다.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요즘 길드가 잘 돼서 매우 바쁘더군요. 아이들을 맡기는 시간이 늘어날 것 같습니다."
"얼마든지 맡겨주세요. 요즘 어린이집 같은 곳에서 아동 폭력이 자주 일어나서.. 오히려 저희에게 맡겨주셔서 안심입니다."
"보육원장님이라면 확실하게 믿을 만한 분이죠. 하하하!"
우리를 후원해 주는 그 사람들은 요즘 보육원에 찾아와서 아이들을 맡기는 시간이 늘어났다.
레이븐은 자기 또래의 여자아이와 그보다 약간 더 어려 보이는 여자아이 둘과 자주 놀았다.
"친구야, 너희는 몇 살이야?"
"나는 7살."
"나는 5살이야!"
차가운 인상의 소녀와 밝은 목소리의 여자가 대답했다.
차가운 인상의 소녀에게 다가가는 친구들은 별로 없었다. 분위기가 다가가기 힘들기도 하고 말을 걸기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반대로 밝은 목소리의 소녀에게는 거의 모든 친구가 다가갔다.
레이븐은 자연스럽게 홀로 남겨진 친구한테 다가갔다.
레이븐과 친구는 동갑이라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의외로 그녀는 차가운 인상과 다르게 말을 많이 했다.
아침부터 부모님의 오시는 그 시간까지, 그들은 같이 얘기하며 즐겁게 떠들었다.
떠날 시간이 되자 또래 친구는 레이븐에게 물어봤다.
"저기.. 다음에는 우리 집에서 놀지 않을레?"
"어? 진짜? 그래도 돼?"
"응. 부모님께 허락을 구하면 아마 해주실 거야."
그 말을 끝으로 허락을 구한 친구 덕분에 레이븐은 심심할 때마다 그녀의 집으로 놀러 갔다.
가끔은 그 집에서 하루를 자고 돌아가는 날까지 있었다.
또래 친구의 여동생은 우리 두 명과 함께 노는 것보다 보육원에 있는 친구들과 노는 게 더 즐거운지 자주 보육원에 갔다.
우리는 또래 친구의 집에서 단둘이서 노는 날이 많아졌다.
그런 레이븐은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그런 어느 날 이었다. 레이븐에게 불을 지핀 사건이었다.
그 날은 친구의 집에서 자고 가기로 한 날이다.
레이븐은 친구와 함께 온갖 놀이를 하면서 즐겁게 놀았다.
밖에서 나뭇가지를 들고 칼싸움을 하다가 지치면 방으로 들어와 같이 게임을 했다.
게임을 하는 것이 질리면 다시 밖으로 나가서 같이 칼싸움을 하며 체력을 길렀다.
그렇게 밖에서 신나게 놀고 난 뒤, 늦은 밤이 되어서 그들은 방 안으로 돌아갔다.
방 안으로 들어가는 친구를 두고, 레이븐은 화장실로 가는 길이었다.
"우..슬슬..야..지.."
"저..가..얼마.."
방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 우리 보육원을 후원해주시는 고마운 분들이었다.
레이븐은 엿듣는다는 건 나쁜 아이가 할 짓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호기심을 못 참는 어린 아이였다.
레이븐은 조용히 문에 귀를 대고 무슨 말을 하는지 엿들었다.
"그렇지. 이제 우리 길드도 꽤 성장했으니까."
"그럼 이사는 어디로 가는 게 제일 좋을까요?"
"음.. 치한이 제일 적은 곳이 좋지 않아? 아이들도 있으니까."
"그럼 수도권이 좋겠네요."
나는 그들이 하는 얘기를 조용히 들었다. 이사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수도권이라.. 여기서 좀 많이 머네."
"어쩔 수 없어요. 저희 길드도 있으니까 인원수가 많은 곳에서 활동하면 분명 더 많은 헌터들이 올 수 있을 거예요."
"그럼.. 어쩔 수가 없네. 수도권으로 이사 가자. 정확한 지역은 나중에 보고."
"그래요. 아, 그럼 지금 후원하고 있는 보육원은 어떻게 할까요?"
"이제, 그만 후원해도 되지 않을까?"
레이븐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은 기분을 느꼈다.
후원하고 있는 보육원. 지금 레이븐이 다니고 있는 곳 아닌가.
"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들은 이제 더는 우리들의 도움을 받을 만큼 가난하지 않을 거야."
무슨 소리세요. 저희는 지금도 가난해요.
"이제 그들 스스로 자립할 때가 됐기도 하고."
저희는 아직 어려요.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제발.
"이제 그 보육원보다 더 가난한 곳을 후원해야지."
저희를 봤었잖아요. 가난했던 그날들을. 더는 굶기 싫어요. 그때로 돌아가기 싫다고요.
레이븐은 더 이상 그들의 대화를 들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지러운 머리를 붙잡으며 도망치듯이 친구의 방에 들어갔다.
침대에서 편하게 자는 친구의 얼굴에는 근심 하나 없어 보였다.
막상 나는 앞날이 깜깜한데 말이다.
레이븐은 또다시 돈이 없어서 벌어질 일들을 생각했다.
어린이 주먹만큼의 밥을 먹는 친구들. 후원이 끊겨 가난하게 지내면서 낡아지는 시설. 다시 슬프게 우는 보육원장 아저씨.
더는 싫다.
레이븐은 생각했다. 악몽의 굴레에서 벗어날 방법을.
"돈.. 돈만 있으면.."
레이븐은 어지러운 머리속에서, 하면 안 되는 판단을 했다.
"그래.. 돈만 있으면 다 괜찮을 거야.. 딱 한 번만 친구야.. 나를 도와줘."
그런 말을 하는 레이븐은 친구의 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값비싼 물건부터 천천히 분류하면서 돈이 될만한 물건들을 챙겼다.
그런 행동을 하는 레이븐은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나를 도와주신 친구의 부모님.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
그런 그들을 배신하는 행위를 하는 레이븐은 머리가 어지럽고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그때로 돌아가는 것은 더 싫다.
메일을 굶었다. 단 하루도 만족하게 먹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런 레이븐에게 구원의 밧줄을 내려준 후원자들은 그녀를 돌봐주면서 포근하게 감싸줬다.
근데 지금 그 밧줄을 내 앞에서, 내가 두 손을 이용해 밧줄을 겨우 붙잡고 있는 상태에서.
밧줄을 가위로 잘라버리겠다고 말한다.
레이븐은 가장 값비싸 보이는 목걸이를 챙겼다.
나는 이것이 왜 친구의 방에서 나왔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을 하면 후회할 것 같았다.
그저 이 목걸이가 얼마나 비쌀지 생각했다.
알록달록한 보석이 박힌 게 분명 높은 가격으로 팔릴 것이다.
그 물건을 들고 방문 앞에 서서 세상 모른 채 잠에 푹 빠진 친구를 바라봤다.
그 얼굴을 보자, 다시 한번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
레이븐은 더 이상 여기에 머무르면 방 밖으로 못 나갈 것 같아서 그 목걸이를 챙기고,
방 밖으로 나가서 현관문을 통해 집 밖으로 나갔다.
어두운 밤. 레이븐은 밖으로 나가자마자 자기를 비춰주는 달을 볼 수 있었다.
달이 보여주는 풍경은 죄책감에 시달리는 레이븐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 같았다.
레이븐은 그날 이후로, 목걸이나 반지 같은 걸 사주는 가게를 찾아서 가지고 있는 목걸이를 팔았다.
어렸을 때 팔았던 목걸이는 내 예상대로 매우 비쌌다. 아니, 오히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비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건넸던 목걸이를 제값에 사준 아줌마가 고마웠다.
레이븐은 그 돈을 가지고 다른 보육원으로, 수도권에서 최대한 먼 곳을 향해 움직였다.
7살이란 어린 나이에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몇 번 길을 잃을 뻔했지만, 중간마다 마음씨 착한 분들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다른 보육원으로 갈 수 있었다.
가난하지 않고, 행복하게 웃고 즐겁게 떠드는 친구들.
그 친구들 사이에서 레이븐은 혼자 웃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레이븐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고 졸업했다.
그렇게 20살이 되었을 때, 레이븐은 헌터로 각성했다.
헌터로 각성함과 동시에 레이븐의 머리에는 각성한 스킬에 대한 지식이 스며들었다.
무슨 스킬을 각성했는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고, 또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알 수 있었다.
레이븐은 헌터로 각성했지만, 주변에 아무도 축하해 줄 사람이 없었다.
보육원 사람들은 천절하게 말을 걸었지만, 레이븐은 그들의 말을 무시했다.
레이븐은 조용한 방 안에서, 손을 뻗어 스킬을 사용했다.
우웅 -
그러자 레이븐의 눈앞에는 푸른색의 반투명한 직사각형 문이 생겨났다.
직사각형의 문에 달린 문고리를 잡고 밀자, 그곳은 텅텅 비어있는 단칸방이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방 안을 잠시 둘러보다가, 문을 닫고 지웠다.
그리고 레이븐은 몇 번이나 문을 만들었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했다.
레이븐은 그 문이 내가 원하는 장소에 바로바로 소환된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내 코앞에 소환하는 것도 가능했다.
문을 미리 열고 있는 상태로 소환한다면 소환하자마자 바로 방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음을 알았다.
레이븐은 보육원장에게 가서 자신이 각성했음을 알렸다.
보육원장이 믿을 수 없다고 하자, 레이븐은 스킬을 사용하는 것을 보여줬다.
하지만 스킬을 보여줘도 레이븐이 무슨 짓을 한 건지 멀뚱멀뚱하게 바라보는 보육원장의 시선은,
내 눈 앞에 소환된 문이 남들에게는 안 보인다는 것을 알았다.
혹시 싶어서 보육원장의 눈앞에서 단칸방으로 들어가자, 방 안에서 공간에서 보육원장이 놀라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레이븐의 모습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고 놀란 것이다.
방 안으로 들어가면 밖의 상황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밖에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소리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걸 확인한 레이븐은 문 밖으로 나가 보육원장에게 자립하겠다고 말했다.
목걸이를 가지고 상당한 수익을 거둔 레이븐은 그날 이후로도 광적으로 돈을 모으기 시작했기에 자립할 돈은 충분했다.
레이븐은 그 이후로 각성한 스킬을 던전 협회에 알렸다.
레이븐의 능력은 전투 능력으로 분류되지 않고 짐꾼에 알맞은 능력으로 분류됐다.
당연했다. 고작 방 하나를 만들 수가 있다니. 짐꾼에 정말 알맞은 능력이다.
특별 사항은 그 문이 남들에게 보이지 않고, 자기 혼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지만 그것뿐이었다.
그날 이후, 자취방의 돈을 벌기 위해 하루하루를 짐꾼으로 살았다.
짐꾼의 생활은 꽤 불편했다.
얕보이는 순간 돈을 바로 코앞에서 뺏겼다.
던전에서 앞서서 걷는 전투 스킬을 가지고 있는 헌터들은 명백히 짐꾼보다 위였다.
그들과의 관계는 갑과 을의 위치에 가까웠다. 일방적으로 헌터들이 짐꾼을 하대했다.
가끔 억지를 부려서 몬스터의 부산물이 부족하다고 하거나, 오늘은 별로 못 벌었으니 그냥 돌아가라는 정신 나간 사람까지 있었다.
그러한 자들을 매일 보자 저절로 말이 험해지고, 돈을 지키기 위해서 체력을 늘렸다.
하지만 레이븐이 미친년한테 제대로 물린 날이 있었다.
"야, 너 솔직히 말해. 몬스터 부산물들 훔쳤지."
"아, 무슨 개소리야. 이거 안 보여? 네가 몬스터 죽인 수만큼 부산물들이 다 있잖아."
"이 시발년이 어디서 거짓말이야! 내가 잡은 몬스터 숫자가 고작 이 정도일 리가 없잖아!"
"뭐?"
"내가 분명 이것들보다 더 많이 잡았다고!! 내가 알아!"
나는 그 말에 내가 제대로 대화를 하고 있는 건가 의심했다.
"그.. 누, 누나 그만.."
"아니, 아무리 봐도 이상해. 하준아 너는 잠깐만 가만히 있어줘. 내가 다 해결할게. 잘 봐."
레이븐은 기가 찼다.
남자친구 앞이라고 가오를 잡고 꼴값을 떠는 미친년.
그리고 점점 산으로 가는 대화.
이 미친년이 자기 얼굴에 철판을 깔면서 뻔뻔하게 협박한다.
"하아. 야, 지금이라도 얌전히 몬스터 부산물들 뱉어내면 용서해 줄게. 아, 나한테 거짓말 한 대가로 오늘 일한 돈은 못 준다?"
그 말에 레이븐은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일한 시간이 몇 시간인데 그걸 돈을 못 준다고?"
"큭큭, 그니까 거짓말하면 안 됐지. 누가 거짓말을 하래?"
레이븐은 이를 갈고 눈에 핏줄이 세워질 만큼 화가 났지만, 참았다.
짐꾼에게 있어 평판이란 신용이다.
만약 평판에 남의 부산물을 훔친 이력이 있으면 그대로 나락 간다. 아무도 그 짐꾼이랑 같이 갈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분 중에서 이런 쪽으로 크게 한 발 걸치신 분이 계시거든. 큭큭큭.."
"누나! 그건, 아무리 봐도 이건 심한 거.."
"하준아, 너는 너무 착해서 문제야. 이런 거 자꾸 넘어가면 큰일 나."
옆에서 체구가 상당히 작은 남자가 미친년을 말리지만, 그 미친년은 계속 나를 물어뜯었다.
짐꾼이란 원래 이런 일이다.
여기서 미친 척하고 들이대도 고작 문을 여는 능력을 가진 내가 이길리가 없다.
"시발.. 됐어. 더러워서 시발년이.. 그냥 간다 가."
"어? 야, 너 뭐라고 했냐? 방금 뭐 시발? 너 시발이라고 했냐?"
"어, 아니 그랬는데 왜. 난 욕하면 안되냐?"
나는 갑자기 눈이 회까닥 돌아버린 헌터를 봤다.
"이 시발년이 진짜 돌았구나? 하늘 같은 헌터님이 우스워? 삥땅치려는 거를 눈 감아줬더니 감사인사를 해도 모자를 판에 욕까지 박네?"
"하아.. 넌 안 되겠다. 넌 짐꾼으로 더는 일 못할 줄 알아."
그 말을 끝으로 헌터는 뒤를 돌아갔다.
"어어? 누나 아니지? 방금 농담으로 하는 말이지?"
"아니 저런 년은 한번 .."
점점 멀어지는 목소리.
나는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잠시 머리가 멍했다.
귀에서는 이명 소리가 들리며 스트레스 지수를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던전 협회에서 짐꾼 역할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레이븐을 피했다.
"야, 너 저기 붉은 머리 보이지? 저 사람이랑 같이 들어가지 마. 남의 부산물을 훔쳤데."
"와, 아직도 그런 짐꾼이 있다고? 그래놓고 저렇게 뻔뻔하게 돌아다니는 거야? 대단하네."
나는 그 소리를 듣자, 내 유일한 수입인 짐꾼이 끝났음을 느꼈다.
이미 주변에서는 나를 보고 소곤거리는 소리가 넘쳐났다.
레이븐은 광기에 물든 눈으로 던전 협회를 나갔다.
"그.. 시발년이.."
레이븐은 미칠 것 같았다. 앞날이 깜깜했다.
레이븐은 이 상황을 만들어준 그 미친년한테 복수하고 싶었다.
어떻게든 복수를 하고 싶었다. 그 년의 인생을 절망에 빠트리고 싶었다.
하지만 레이븐에게는 그럴 힘이 없다. 나한테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스킬이 없다.
어떻게든 복수하려고 머리를 굴렸다.
반투명한 푸른색 직사각형의 문.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보이지 않는 나.
그 안에서는 밖의 상황을 추측할 수 있는 소리.
그리고 그 미친년한테 복수할 수 있는 방법.
깊은 절망감을 줄 수 있는 방법.
마지막으로 옆에서 그 미친년을 뜯어말리는 하준이란 이름을 가진 남자친구까지.
레이븐은 그 미친년의 남자친구를 뺏어야겠다고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