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 납치.
"힘이 필요해.."
시안은 밖으로 나가면서 생각했다. 평일이라 그런지 거리에는 사람이 어제만큼 보이지 않았다.
어젯밤 소진과 정사를 나눴을 때를 생각했다.
'역시 난 당하는 것보다는 직접 움직이는 편이 훨씬 좋아.'
처음에 소진이 나한테 발정제를 먹이고 덮쳤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소진이 별로 힘을 준 것 같지도 않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나를 두 팔로 눌렀을 때는 내가 직접 움직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
발정제를 먹어서 이성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흥분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나는 역강간의 기억이 나쁘지 않았지만, 그때의 일처럼 내가 직접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소진이 2시간 동안 허리를 흔들 때 나는 고작 30분 동안 흔들고 누워있었다.
여자보다 허리를 못 흔드는 남자라니.. 이건 남자의 수치나 다름없다.
물론 이 세계의 남성들은 말라비틀어진 몸으로 30분은커녕 3분을 흔들까 말까였지만.. 시안은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 옆으로 치워뒀던 시스템 메세지를 띄웠다.
[상대방으로부터 대량의 경외심을 이끌어 냈습니다!]
[보상으로 저주의 힘이 약간 떨어집니다.]
대량의 경외심. 어제 소진과 섹스를 하면서 얻었다.
시스템은 나와 협력관계이니까, 적어도 상태창은 나한테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소진은 나랑 한 섹스가 꽤 기분이 좋았는지 다행히도 경외심을 느껴줬다.
나는 저주의 힘이 약간 떨어졌다고 해서 내 상태창에 있는 저주를 봤다.
[저주: 하프 엘프의 저주]
[당신을 질투하는 하이 엘프와 엘프가 당신에게 저주를 내립니다. 잠재력과 마나, 성장 가능성을 매우 낮춥니다.]
아직은 달라진 것이 없는 내용이었다. 계속 섹스를 해서 지속적으로 경외심을 얻으면 언젠가 없어질거라고 생각했다.
'과연 소진과 소혜가 나랑 하는 섹스에 계속 경외심을 보내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나와 몸을 겹치는 빈도가 늘어날수록 나와 하는 섹스에 점점 익숙해질 것이다.
그녀들이 느껴주는 경외심이 크면 클수록 좋다. 내 저주가 풀리는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다.
'하지만 나랑 하는 섹스에 익숙해지면 언젠가 경외심을 보내는 날이 없어지겠지.'
아마 거의 일상처럼 몸을 섞으면 경외심은커녕 쾌락만 느낄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더 빨리 힘을 모으려면 그녀 둘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더 빠르게 힘을 모으려면.."
처음 보는 여자와 몸을 섞어야 한다. 내 자지의 맛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여자들을.
그리고 하룻밤 관계를 맺는 것이 가장 좋다. 나한테 괜히 또 집착하면 피곤하니까 말이다.
나한테 집착해주는 여자는 소진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사람이 별로 없어 주변이 매우 한적한 공원에 가서 벤치에 앉아 조용히 한숨을 내뱉었다.
"하아.. 말은 쉽지. 내가 여자한테 말을 직접 걸어야 하는 날이 올 줄이야."
시안의 외모는 직접 여자한테 말을 걸어야 할 정도의 외모가 아니다.
반대로 여자들이 알아서 시안에게 말을 걸며 호감을 쌓고 싶을 정도의 외모니까 말이다.
그냥 시원하게 얼굴을 까서 여자들을 꼬시고 싶었지만, 그렇기엔 내 외모가 너무 눈에 뛴다.
만약 혹시라도 나와 몸을 섞은 여자가 내 비밀을 폭로해 버리는 순간, 나락이다.
얼굴을 까지 않고 하룻밤을 가져야 하는데 이렇게 말하니 창남같았다.
나는 얼굴을 까고 여자한테 접근한다는 생각은 버렸다.
나는 그 외의 방법을 생각했다.
"여자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나는 한 가지, 여자들에게 다가가기 쉬운 스킬이 생각났다.
'아! 나 페로몬 스킬을 가지고 있지?''
[스킬: 페로몬(A)]
[몸에서 여성을 유혹하는 향기를 내뿜습니다. 시전자한테 가까이 가거나 몸을 접촉하는 빈도가 높을수록 냄새에 중독됩니다. 정액의 맛, 냄새가 달콤하게 바뀝니다.]
하지만 나는 자세히 생각하다가 곧 페로몬 스킬로 여자들을 유혹한다는 생각도 버렸다.
이건 경외심을 모으려고 하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최대한 장기적으로 여자와 몸을 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페로몬 스킬에 여성을 유혹하는 향기는 좋지만 내 냄새에 중독되는 건 안된다.
내 냄새에 중독된 사람을 만약 길에서 만난다면.. 딱 봐도 매우 위험한 상황과 맞이할 것이다.
'내 옆에 있는 소진과 소혜. 그리고 길을 지나가다가 스치듯이 내 냄새를 맡아버린 나와 하룻밤을 한 여자..'
나는 생각만 해도 개판이 될 것 같았다.
나는 머리가 복잡했다. 최대한 빨리 힘을 키워 강해지고 싶은데 방법이 너무 없다.
너무나 힘든 상황이었다.
하룻밤을 하기엔 극악의 조건. 잘생긴 외모와 내 몸에서 나오는 페로몬은 간단한 하룻밤을 지내기가 너무 어려웠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야 야.. 저기 벤치에 앉아 있는 남자 개 잘생겨 보이지 않냐?"
"어, 딱 봐도 잘생겼다에 내 손모가지를 건다. 와.. 얼굴 작은 거 봐. 나보다 작은 거 아님?"
"와 진짜 키 큰 거 봐. 모델 같은데? 집에 데려가서 개처럼 따먹고 싶네.. 큭큭"
나와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 여자 3명이 소곤소곤 거리면서 나를 보고 말하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내 주변은 사람이 없어 매우 한적했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 시안같은 남자가 있으면 당연히 눈에 띈다.
"야, 네가 저 사람한테 가서 말 좀 걸어봐."
"뭐? 싫어.. 딱봐도 우리랑은 말도 안 섞을 것 같은 사람인데."
"에이, 적어도 웃으면서 인사하면 받아주겠지."
이렇게 여자가 먼저 나한테 말을 걸어주는 상황을 의도한 건 맞지만..
미안하게도, 그녀들의 외모는 정말 웃으면서 인사를 해도 무시할 정도의 외모다.
'아무리 내가 빠르게 성장하고 싶다고 해도, 이건 아니지.'
내 눈은 이미 엘라시움에 있을 때 극상의 외모를 가진 엘프들로 상향 평준화가 되어버린 눈이다.
게다가 소혜와 소진과 몸을 섞으면서 본 그녀들의 매력적인 외모 덕분에 한층 더 눈이 높아졌다.
그렇게 상향 평준화된 내 눈을 제외하고도 그녀들의 외모는 다른 사람이 봐도 못생겼다고 평할 정도였다.
나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상황에서 빠져나가고 싶었다.
"어? 저기 저 남자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아 씨, 그래서 내가 좀 빨리 말을 걸자고 했잖아."
"야 야, 그런 얘기는 나중에 하고 저 남자 쫓아가자. 빨리."
내가 급하게 자리에서 벗어나 탈출하려고 하자 여자 3인방이 그런 나를 쫒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한번 붙잡히면 매우 피곤해질 것 같다는 생각에 빠르게 걷는 걸음에서 점점 달리기 시작했다.
"어어? 저 오빠 뛰는데?
"우리도 뛰자!"
어느새 내 호칭을 오빠라고 칭해버리는 여자가 무서워 더더욱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저기요! 오빠!!"
뒤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주변에 숨을 곳을 찾아다녔다.
공원에서 빠져나가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을 찾으려고 했지만, 일부로 한적한 공원을 골라서 그런지 내 주변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나는 으슥한 곳으로 몸을 옮겨야 했다.
"저기요!! 얼굴 가린 오빠! 잠시만 멈춰봐요!"
나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더더욱 빠르게 달려서 최대한 으슥한 지역으로 몸을 피했다.
다행히 그녀들은 헌터가 아닌 일반인이라서 그런지 나보다 달리는 속도가 매우 느렸다.
내가 있는 곳은 건물과 건물 사이라서 햇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주변에는 나를 가려줄 엄폐물도 있어서 몸을 숨기기에 최적화된 지역이다.
내가 몸을 숨기고 난 후 내가 있었던 자리로 여자 3명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허억.. 허억.. 진짜 더럽게 빠르네.."
"허억.. 우리가.. 부르는 소리를 못 들었나..? 허억.."
한참 동안 자리에 서서 숨을 고르고 있는 여자 3명은 보이지 않는 내 모습을 잠시 찾다가 포기하고 돌아갔다.
점점 멀어지는 발소리가 들리자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밖으로 살짝 내밀어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도.. 없지?"
주변을 휙휙 둘러보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아니, 있는데?"
퍽 -
장난기 넘치는 목소리의 대답을 듣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
한편, 소진은 아침을 편의점에서 대충 먹고 빠르게 아레나 길드로 향했다.
아레나 길드로 가면서 소진은 어제 시안과 정사를 나눴던 일을 상기했다.
'어제 시안의 얼굴 너무 좋았어.. 나를 못 잡아 먹어서 매우 흥분한 그 눈.. ♡'
시안은 남자지만 여자 같은 성격을 지녔다.
여자와 비슷할 정도로 큰 성욕을 가졌으며, 자기 몸을 보이는데 큰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매력적인 것은 상냥하고 털털한 성격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는 남자라는 것이다.
소진은 그런 남자가 내 처음을 가져갔다는 것이 너무나도 기뻤다.
'그리고보니 어제 첫 사정으로 내 자궁 안에 잔뜩 넣는 시안을 보고, 무심코 애를 가지면 평생을 같이 책임져 달라고 했지..'
그 때의 발언은 진심 반, 장난 반.. 아니 솔직히 거의 진심이었다고 할 수 있는 말을 꺼냈다.
그 말을 하자 소진은 시안의 눈에서 순간 망설이는 눈빛이 봤다.
소진은 망설이는 시안의 눈을 보고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만약에 시안이 미안하다고 거절이라도 하는 순간, 이 관계는 거의 끝나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말이다.
만약 이 관계가 끝나버리면.. 소진은 무슨 짓을 저지를지 자기 자신이 두려웠다.
소진은 잘못하면 시안이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시안의 말을 끊고 급하게 장난이라고 말했다.
겨우 이틀 동안 만난 사람한테 이렇게 빠진다는 게 퍽 놀라웠다.
A급 헌터로 잠깐동안 활동했을 때, 평소의 차가운 성격과 도도한 얼굴로 얼음여왕이라는 이명까지 얻은 소진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몸에서 너무 좋은 향기가 난단 말이야..'
사실 소진과 시안의 진도는 시안의 페로몬 스킬 덕분에 정도 이상으로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다.
시안의 외모와 성격이 소진의 마음을 직격한 것도 있지만, 겨우 그것 뿐이었으면 이틀이 지난 시점에서 몸을 섞을 수 없었다.
시안의 페로몬 냄새는 시전자한테 가까이 있거나 몸을 접촉하는 빈도가 높을수록 중독된다.
그 결과로 이 세계에서 떨어진 다음 한 시도 멀어지지 않은 소진과 소혜는,
시안의 성격과 몸, 얼굴 그리고 페로몬이라는 효과가 겹쳐서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그녀들과 몸을 겹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건 시안과 세계수 뿐이었다.
그렇게 잡생각을 하면서 아레나 길드로 도착한 소진은 오랜만에 보는 길드를 보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소진이 안으로 들어가자 1층 로비에서 대기하고 있던 안내원이 소진을 보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아가씨. 길드장 님께서 부르십니다."
"네. 곧 가겠다고 말해주세요."
시안과 대화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와 어조가 저절로 그가 얼음여왕이라는 것을 깨우쳐줬다.
안내원은 그런 소진이 익숙한지 전혀 신경쓰지 않고 능숙하게 길드장님이 있는 곳까지 안내했다.
안내원이 길드장이 있는 곳까지 안내하자 문 옆에 서서 소진을 돌아봤다.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아가씨."
소진은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길드장이 있는 곳, 저 문 너머로 자신의 어머니가 있다고 느껴지는 곳을 바라봤다.
"후우.."
소진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문고리를 잡아서 길드장이 있는 곳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발을 방 안으로 내딛자마자 느껴지는 기세가 소진을 덮쳤으며,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길드장이 내는 기세가 공기를 진동시켰다.
그 기세에 소진은 손발이 저절로 벌벌 떨리는 것을 느끼면서 자신의 앞에 있는 길드장을 바라봤다.
조용히 턱을 괴고 인상을 찌푸린 채 자신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차가운 미모의 여성이 있었다.
소진의 앞에는 자신의 남편과 함께 길드를 세운 어머니가 있었다.
길드장의 외모는 소진과 굉장히 닮은 외모를 하고 있었다.
차갑게 식은 눈과 눈꼬리 끝 부분이 살짝 올라가 있었고 그 아래로는 높은 코와 절대로 웃지 않을 것 같은 입이 있었다.
실제로 길드장은 한 번도 남에게 웃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소진의 엄마는 차가운 외모와 걸맞게 목소리로 얼어붙을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왔느냐?"
"네, 길드장님."
"그래. 거기에 서서 들어라. 진소진, 너는 지금 뭘 하고 있지?"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 사이였지만 그들은 반가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고 공적인 대화를 이어나갔다.
"... 소혜의 뒤를 도와주고 있습니다."
"그 고블린 던전을 들어간 걸 말하는 것이냐?"
"..."
고블린 한 명은 각성자도 아닌 일반인도 쉽게 해치울 수 있었다. 남자라면 약간의 부상을 각오해야 했다.
"하아.. 이제 정신 차려라. 너도 이제 다시 A급 헌터로 복귀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
"길드장님 저는.."
"어허! 또 그 소리! 그 핑계는 이제 질리지도 않는 거냐!"
"..."
"그놈의 사람은 믿을 수 없다는 소리를 몇 번이나 하는 건지.."
"그리고 뭐? 사람은 믿을 수가 없어서 차라리 혼자 던전을 가겠다고? 웃기는 소리 좀 그만해라."
평소의 길드장 답지 않게 흥분한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숨을 내뱉더니 자신의 미간에 손을 짚었다.
"하아.. 됐다. 그렇게 믿을 사람이 없다면 이제 물적 지원은 없을 줄 알아라. 그 집도 포함이다."
소진은 그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당황했다.
그리고 다시 생각을 고쳐달라고 말을 하려던 소진은 길드장의 말에 다시 입을 닫았다.
"됐다. 이 이상은 듣지 않으마. 소혜는 계속 지원을 이어나갈 거니까 그렇게 생각해라.
"만약에 너가 그 집에서 계속 살고 싶으면 내일 다시 이 길드로 와라."
그 말을 끝으로 길드장은 자신의 말을 번복할 생각이 없다는 듯, 의자를 돌려 창 밖을 내다봤다.
그 모습에 소진은 눈을 부릅뜨며 손에 주먹을 꽉 쥐고 입술에 피가 나올 듯이 깨물었지만, 차마 말하지는 못했다.
이미 저런 모습으로 나오면 무슨 말을해도 듣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는 소진이었기에 눈을 천천히 감으면서 화를 식혔다.
잠시 화를 식히고 난 후 소진이 길드장의 뒷모습을 보며 말을 했다.
"알겠습니다.. 내일부터 다시 길드로 복귀하겠습니다."
그 소리에 길드장은 약간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약간 돌려 소진을 바라봤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말해 보아라."
길드장은 이어지는 말에 무엇이든 지원해 주겠다고 생각했다.
A급 헌터에 걸맞는 등급의 무기나 방어구는 기본이요, 소진과 함께할 던전 공대원은 당연히 자신의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붙일 생각이었다.
잠시 후 결심한 듯, 소진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저에게 원격으로 조정이 가능한 초소형 기계의 카메라를 주십시오. 그러면 내일부터 복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