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하프엘프-10화 (11/77)

10화 - 데이트?

아침이 밝아왔다. 오랜만에 푹 자고 일어난 느낌. 기지개를 쭉 펴고 창 밖을 바라봤다.

아침부터 던전을 돌려고 모인 헌터나 주말인데도 일을 하러 나가는 직장인도 보였다.

'만약 여기가 엘라시움이라면 나도 저기에 있었겠지.'

물론 정장이 아닌 곡괭이를 들고 말이다.

저절로 일찍 떠지는 눈은 내 생활패턴에 베어 있었다. 아침 6시부터 곡괭이를 들고 광산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아침 6시에 도착하지 않는다면 야근을 하고 늦은 시간만큼 채찍질을 받는다.

좆같았던 그 때를 생각하며, 아직 아무도 안일어나 조용한 거실에 텔레비전을 켜서 오디오를 채웠다.

그러자 뉴스에서 남자 아나운서가 나와서 보도하고 있었다.

"어제 서울 강남구에서 빌런이 출현했습니다. 리더로 추정되는 A급 빌런 1명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물품을 갈취 및 강간을 ..."

서울 강남구. 현재 내가 살고있는 지역이었다.

어제 뉴스에서도 나왔던 빌런이 재언급되고 있었다. 아직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이 상당히 강한 모양이었다.

"빌런의 능력은 이동, 은신 계열로 S급 이상의 스킬을 보유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러자 화면 속에서 영상이 나왔는데, 빌런으로 추측되는 검은색 옷을 입은 여자가 잠깐 시야에 보였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딱 봐도 강력해 보이는 능력을 갖춘 빌런. 저런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당당하게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모양이었다.

'저렇게 강한 능력이 있는데도 던전을 가지 않고 빌런 활동을 하는 사람이 있구나.'

나는 그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빌런들의 개인 사정이 있지 않을까 싶다.

오늘은 소혜와 소진이 나와 함께 밖으로 나가 거리를 소개해주기로 했다.

뉴스에서는 A급 빌런이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하지만 어차피 내 곁에는 A급 헌터인 진소진이 있으니 괜찮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뉴스를 마저 보고 있는데 아나운서의 목소리 가운데로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흐아암.. 앗 오빠. 잘 주무셨어요..?"

아직 졸린 듯이 하품을 하며 나오는 소혜.

그녀의 옷은 탱크탑과 돌핀팬츠를 입고 나왔다. 그 모습이 아침부터 굉장히 자극적이었다.

저 커다란 엉덩이에 돌핀팬츠라니.. 뒷모습이 매우 궁금하다.

소혜는 어제 있었던 일을 기억하는 듯 졸려 하던 얼굴도 금방 지우고 수줍게 얼굴을 붉혔다.

나는 그 모습이 귀여워 피식 웃었다.

그런 나를 보고 총총걸음으로 나한테 다가오더니 내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오빠 어제 죄송해요. 제가 너무 흥분해서 그만.. 혹시 제가 싫어지셨나요?"

소혜는 어제 내가 자고있는 동안 했던 일들을 사과했다.

"아니, 네가 왜 사과해 소혜야. 만약 내가 정말로 싫어했으면 너를 말렸을 거야."

내가 하는 말에 소혜의 얼굴에는 걱정하는 표정을 지우고 안도감과 함께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요? 그..그럼 혹시 어제, 그.. 기분, 좋으셨..나요?"

말을 몇 번이나 끊으면서 말하는 소혜는 어제 먼저 가버리고 실신까지 해버린 기억이 상당히 부끄러웠나 보다.

여기는 남녀역전 세계. 아마 밤일의 상식까지 바뀐 게 아닐까.

여성이 밤일을 주도하고 자기 혼자 만족하는 게 아니라 먼저 남성을 보내고 자기가 만족하는 것들 말이다.

"응. 나는 기분 좋았어. 너는?"

"저..저는! 무척이나! 기분 좋았어요!!"

흥분한 듯이 말하는 소혜는 두 손을 불끈 쥐고 내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몸이 막 붕 뜨는 게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어요! 솔직히 그 쾌감이 조금 무서운 정도였어요."

소혜는 얼굴을 홍조를 띄우며 눈을 감고 한 손을 자기 볼에 올렸다.

어제 그녀가 느꼈던 쾌감은 나한테 경외감으로 돌아왔다.

경외. 놀라움과 두려움이 섞인 것. 그녀는 나랑 섹스를 하면서 쾌감에 대한 놀라움과 두려움을 함께 느낀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어제 세계수가 말했던 내용이 생각났다.

'섹스를 해주세요 라니.. 나야 대환영이지만.'

섹스를 통한 놀라운 경험으로 그들에게 경외감을 모아 세계수의 힘을 복구시키고 나는 그 대가로 저주를 푼다.

나도 좋고 세계수 역시 좋은 서로 윈-윈 관계지만 나는 그녀가 했던 말들 중 하나가 마음에 걸렸다.

'엘라시움으로 복귀해 달라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었을까.'

나는 이미 지구로 와있는데 어떻게 내가 다시 그 세계로 간단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가 지구로 왔을 때가 생각났다.

푸른색 게이트. 내가 엘라시움으로부터 도망갔을 때 나를 도와줬던 그것. 아마 그 게이트를 다시 열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지구에서 힘을 모아 저주를 풀고 세계수는 내가 모은 힘으로 게이트를 열어 엘프의 멸망을 막는다.

딱 알맞은 추리아닐까? 자세한 건 세계수가 다시 말을 할 수 있을 때 물어보도록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소혜와 떠들고 있을 때 다시 방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소진이 밖으로 나왔다.

민소매 티와 소혜와 똑같이 돌핀팬츠를 입은 모습은 소진.

흰색 민소매 티라 그런지 저 커다란 가슴에 있는 브래지어가 눈에 띄었다.

그 모습에 아침부터 그녀를 덮치고 싶었으나 나는 옆의 소혜를 생각하며 참았다.

"다들 일찍 일어났네? 슬슬 준비해. 오늘은 할 일이 많으니까. 밥은 밖에서 먹자."

"응 알겠어. 언니."

"시안 너도 씻고 와."

"알았어."

그 말을 끝으로 소진과 소혜가 뒤를 돌아 자기의 방으로 돌아가는 걸 조용히 감상했다.

역시 소혜의 큰 엉덩이는 내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에 만족하면서 화장실로 들어가 몸을 깨끗이 씻고 젖은 머리카락을 위로 올리면서 말렸다.

이제는 당당하게 얼굴을 내놓고 돌아다녀도 괜찮으니 자신감이 차올랐다.

그렇게 온몸을 깨끗하게 씻고 나온 후 거실에 나와 어제 소진이 준 옷들을 입고 기다렸다.

그러자 방문을 열고 나오는 소혜와 소진은 나를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들은 나의 외모에 대해 평가했다.

"와..오빠 외모는 천사를 생각나게 해요.."

"시안의 얼굴은 평생 봐도 안 질릴 거 같네. 큭큭."

평범하게 입고 나온 나였지만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고 그녀들에게 있어 나는 화보로 보인 듯했다.

나도 그녀들의 옷을 봤다.

소혜는 전체적으로 사랑스러우면서도 귀여운 옷들을 치장하고 있었고,

소진은 평범하게 옷을 입었지만, 가방끈이 그녀의 가슴 가운데를 파고들자 그 커다란 가슴이 부각됐다.

두 명 다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고마워. 너네 둘 다 예쁘게 입고 나왔네. 무척 어울린다."

내 말을 듣고 웃는 소혜와 소진.

"그럼 밖으로 나갈까?"

우리는 이제 나가려고 준비를 했다.

"아 잠깐만 기다려봐."

그런 나를 잠깐 멈춰세운 소진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더니 마스크와 모자 선글라스까지 챙기며 나왔다.

"이거 얼굴에 써. 아니다, 내가 씌워 줄게."

"이게 뭔데?"

"우리를 위한 아이템."

그 말을 하고 소진이 내게 가까이 와서 내 머리에 모자와 선글라스, 마스크까지 직접 입혀줬다.

나는 그녀의 눈을 피해 아래로 시선을 내렸는데 풍만한 가슴이 나한테 가까이 왔다가 멀어졌다 했다.

나를 유혹하는 그 풍만한 가슴을 한 손에 꽉 쥐고 싶었지만, 나는 내 옆에 있는 소혜 때문에 억지로 그 가슴에 시선을 돌렸다.

"자 그럼 나가볼까?"

선글라스 때문에 어두워진 시야를 보며 신기해하고 있자 소진은 먼저 현관문에서 신발을 신으며 나갈 준비를 했고 소혜는 내 곁에 섰다.

묘하게 가깝게 느껴지는 거리. 닿을 듯 말 듯한 느낌은 상당히 간지러웠다.

그렇게 먼저 밖으로 나간 소진을 뒤로하고 나는 소혜와 함께 신발을 신으면서 현관문 밖으로 나갔다.

참으로 따사로운 햇살이었다.

*

우리는 밖으로 나가 거리를 구경했다.

병원에서 나가 집으로 갈 때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고개를 아래로 깔면서 지나갔지만, 지금은 내 모습이 부끄럽지 않기 때문에 당당하게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아침에 창 밖을 봤을 때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지금은 점심시간이라서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들의 곁을 지나갈 때마다 우리에게 시선이 모였다. 주로 시선이 모인 사람은 나였다.

얼굴은 연예인처럼 꼭꼭 숨기고 다녔는데 그 작은 얼굴에서는 '나 잘생겼어요' 하는 아우라가 풍겨 나왔다.

키는 장신으로 비율 좋게 쭉쭉 벌어진 다리. 여자가 남자를 지켜야 할 입장이지만, 이상하게 보호받고 싶어지는 넓은 폼까지.

"악! 왜 때려!"

"야 넌 어딜 보고 있는 거야? 날 봐야지!"

가끔가다 커플들이 싸우는 것도 들렸다. 주로 남자가 때리고 여자가 맞는 소리였다.

커플이 파괴되는 현장을 보고 묘한 느낌을 받고 있을 때였다.

"여기서 밥 좀 간단하게 먹을까?"

위를 올려다보니 파스타 집이 보였다. 나는 의외였다. 그녀들은 고기를 주로 먹는 것 같았는데.

"난 괜찮은데.. 시안 오빠는 어떠세요?"

내 눈치를 보고 있는 소진과 소혜. 그럼 그렇지. 그녀들은 내 눈치를 보고 무난한 곳을 선택한 모양이었다.

"응 괜찮아. 파스타는 처음이라 기대되네."

"큭큭, 기대해도 좋아. 여기 맛집으로 꽤 인기 있거든."

그렇게 말하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창가가 있는 곳에 가서 내가 먼저 안쪽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자 소진이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았다.

소혜는 그 모습을 보고 아쉬운 표정을 짓고 맞은 편에 앉았다.

나는 메뉴판을 보며 음식을 구경하고 있는데, 소진이 소혜한테 말을 걸었다.

"소혜야 너는 시안의 신분증이랑 핸드폰 좀 챙겨줘. 나는 얘 미용실 좀 데려다 줄 거니까."

"어..신분증이랑 핸드폰 그거 그냥 아빠한테 부탁하면 안 돼?"

"흠..언제까지 엄마 아빠한테 기댈 거야. 그리고 아빠도 바쁠걸."

"아, 그..그럼! 엄마 도와주는 비서실장님한테 부탁하면 되겠네. 비서실장님께서 부탁할 게 있으면.."

"소혜야."

소혜의 말을 끊고 갑자기 정색하면서 말하는 소진. 그 모습에 소혜는 꼬리를 내렸다.

"아..알았어. 하면 되잖아.."

고개를 숙이고 축 늘어진 강아지처럼 불쌍한 표정을 짓는 소혜.

"요즘 언니가 차가워졌어.."

작게 중얼거리는 그 모습을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워낙 소진의 기세가 무서워 나도 말을 하지 못했다.

'이게 A급 헌터의 기백인가..'

음식을 고르고 잠시 후 우리에게 접시가 놓이더니 기다란 면을 가진 파스타가 나왔다.

나는 포크로 파스타를 찍어 먹자 옆에 있던 소진이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시안아, 그렇게 먹는 게 아니라.."

내 옆에 있는 소진이 내가 들고 있는 포크를 같이 잡아주며 스킨쉽을 했다.

내 손 위로 느껴지는 소진의 손바닥. 그 감촉은 무척이나 포근하고 따뜻했다.

"이렇게.. 빙글빙글 돌려서.."

단순히 포크를 잡고 빙글빙글 돌리는 것뿐인데.. 뭔가 그 느낌이 야릇했다.

그렇게 돌린 포크에서는 파스타가 칭칭 감겨 있었다.

"이렇게 돌린 걸 먹으면 돼. 자."

그렇게 내 손을 잡고 파스타를 칭칭 감긴 포크를 내 얼굴에 내미는 소진.

나는 그것을 보고 잠시 뜸들였다.

"자 빨리빨리."

작게 미소를 지으며 장난기 넘치는 표정으로 나를 재촉했다.

"아..합"

그 모습에 차마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포크에 칭칭 감긴 파스타를 먹었다.

그제야 미소를 짓고 나를 바라보는 소진. 맞은 편에 앉은 소혜는 그 모습을 보고 더더욱 초라해졌다.

그렇게 잠시 신경전이 있었고 우리는 만족스럽게 밥을 먹고 나왔다.

"그럼 소혜야. 나중에 보자."

"응.."

나는 풀죽은 듯 나가는 소혜의 모습이 미안했지만, 내 옆에 있는 소진을 의식했다.

어제 소진과 섹스까지는 안해도 잠깐의 정사를 나눈 후 그녀의 태도가 돌변하는 것을 느꼈다.

태도가 바뀐 건 소혜도 마찬가지였지만, 소진은 그 정도가 더 심했다.

아마 섹스를 하기 직전에 분위기를 깬 소혜에게 작게 복수하는 것이 아닐까 싶지만..

묘하게 그녀가 나한테 집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소혜의 뒷모습을 보며 불쌍하다 생각하고 있을 때, 지금도 내 곁으로 다가와 그녀가 팔짱을 꼈다.

"이제 소혜도 없으니까.. 눈치 볼 필요 없지?"

그렇게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는 소진은 왠지 몰라도 소름 끼쳤다.

소진은 그런 내 마음을 아는건지 모르는 건지 자기 가슴에 내 팔을 끼웠다.

그러자 커다란 가슴에 내 팔을 끼우니 그녀가 어깨에 매단 가방끈처럼 내 팔이 사라졌다.

나는 그 감촉에 내가 방금 전까지 그녀에게 소름 끼쳤다는 생각을 까먹었다.

나는 상당히 부끄러우면서도 팔에 느껴지는 감촉에 푹 빠졌다.

얼굴을 가려도 잘생긴 아우라를 풍기는 나와 도도해 보이면서도 웃는 표정을 짓자 상당히 매력적인 그녀.

우리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시선을 끌어모았다.

"자, 가자."

"어..그래."

그렇게 우리는 소혜를 버리고 미용실을 간다는 핑계로 데이트를 즐겼다.

공원을 걷기도 하며 푸드트럭에서 파는 달달한 음식을 먹기도 했다. 가끔 서로의 것을 바꿔 먹었다.

행복해 보이는 소진이었기에 나는 차마 그녀에게 미용실을 가자고 말을 하지 못했다.

데이트를 즐기다가 가끔 A급 헌터인 소진을 알아보고 오는 사람이 사인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사인을 거절했다.

"왜 사인을 안 해주는 거야?"

"응? 지금은 너랑 같이 있어서 흐름 깨지기도 싫고.. 사인 해주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가끔 나랑 대화하다가 타인과 대화할 때 휙휙 바뀌는 태도는 나를 당황하게 했다.

저렇게 차가운 태도를 유지하면서 사인을 해주는 걸 싫어하는 걸 보면 그녀는 인간에 대한 불신이 있는 것이 아닐까.

나에게 마음을 열어준 그녀가 고마웠다.

"그럼 실컷 놀았으니까 미용실에 갈까?"

"큭큭, 그래."

저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그녀도 나랑 실컷 놀았다는 것을 인정하나 보다.

우리는 공원을 나오면서 우리는 하늘이 주황색으로 물들여 있는 것이 보였다. 해가 천천히 지며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었다.

그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그녀가 안내해주는 미용실로 향했다.

"어서오세..어, 소진 씨 아닌가요!"

미용실에서 꽤 잘생긴 남성 직원 하나가 소진에게 인사했다.

"잘 지내셨나요? 하하. 요즘 저희 가게에 안 오셔서 섭섭했어요. 혹시 머리 하러 오셨나요? 제가 마침 손님이 없는데.."

"아, 네. 반갑습니다. 오늘은 제가 아니라 저희 시안씨 머리 하러 왔거든요. 괜찮으니까 비켜주실 수 있나요?"

귀찮은 듯이 인상을 찌푸리는 소진과 밝게 웃으며 찝쩍대는 남성 직원. 딱 봐도 이 남자는 소진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저희 시안 씨..?"

소진이 언급한 나를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작게 인상을 찌푸리는 남성 직원.

"아, 반갑습니다. 시안입니다."

나는 작게 눈웃음을 지으며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지만, 그는 내 손을 가볍게 무시하고 소진한테 말했다.

"소진 씨, 이분은 누구시죠? 혹시 그.. 남자친구라던가.."

"아! 네, 맞아요. 역시 보는 눈이 있으시네. 제 남자친구 시안이에요."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갑자기 밝게 웃으며 내 팔짱을 끼는 소진.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어울려 주도록 했다.

어차피 곧 내 여자친구가 될 사람이 아닌가. 그러니 미리 남자친구라 해도 될 것이다.

"...이상한데."

작게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노려보던 남성 직원이 갑자기 표정을 지우고 영업용 미소를 지었다.

"하하.. 어쨌든 머리를 깎으러 오신 거죠? 거기 남성분 이쪽으로 오세요."

입꼬리를 파르르 떨며 웃는 그는 나를 의자로 안내했다. 의자 앞에는 내 전신을 보여주는 직사각형의 거울이 있었다.

'참나.. 뭘 그리 꼭꼭 숨겼는지나 좀 보자.'

딱 봐도 진소진씨의 관심 좀 얻으려고 저러는 거겠지. 남성 직원은 그렇게 생각했다.

"모자와 선글라스 마스크 좀 벗고 앉아주시겠어요?"

"아..네."

나는 내 눈앞에 앉은 그를 거울을 통해 얼굴을 가렸던 것들을 벗는 걸 천천히 지켜봤다.

그가 모자를 벗자 하얀색 머리카락이 스르륵 빠 나갔고 새하얀 이마가 드러났다.

그가 선글라스를 벗자 커다란 눈과 눈 끝이 살짝 올라가 약간 날카로운 인상을 주는, 여자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에 위험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마스크를 벗자 높고 오똑한 코와 윤기 있게 붉은빛을 내고 있는 작고 귀여운 입술이 드러났다.

마지막으로 누가 섬세히 조각하듯이 깎아 놓은 턱선까지 나타났다.

나는 그의 얼굴이 드러나면 실컷 비웃을 생각이었는데, 그런 생각도 잊은 체 입을 떡 벌리고 눈을 부릅떴다.

새하얀 머리카락과 뽀얀 피부는 천사를 연상케 했다. 아니 이건 천사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잠시 멍하니 있자 옆에 있는 소진 씨가 그런 나를 보고 피식 웃었다.

"어때요? 제 남자친구 잘생겼죠?"

마치 너 따위는 비교할 수 없다는 듯 물어보는 그녀. 처음으로 본 그녀의 미소는 아름다웠지만, 지금은 그 미소가 얄밉게 느껴졌다.

나는 그녀가 말한 말에 조용히 묵인했다. 여기서 묵인한다는 것은 그를 남자친구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솔직히 성격이 별로지 않느냐, 또는 그가 어장관리를 할 수도 있다는 등 추하게 부정할 수도 있지만..

그는 그런 것들을 모두 커버치고도 남는 외모. 그게 바로 시안이었다.

나는 큭큭 웃으며 나를 비웃는 그녀를 조용히 가위를 들며 무시했다.

이제 그녀한테는 남자친구가 있다. 나보다 훨씬 잘생기고 멋진 사람이 생겼다.

나는 피눈물이 났지만 적어도 애인이 생긴 그녀를 축복해 줘야 할 것이다.

나는 짧게 생각을 마쳤다.

다시 봐도 인간을 초월한 듯한 외모를 보고 전문가의 영혼이 끓는 것을 느꼈다.

나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사람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그한테 머리카락을 어디서 잘랐냐고 물어보고 그가 내 미용실을 언급해 준다면..

내 가게에는 줄이 끊기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거기까지 계산이 마치자 다시 거울을 통해 그를 봤다.

마구잡이로 관리한 머리카락과 예쁜 모양을 한 눈썹. 하지만 관리를 한 번도 안 한 티가 났다. 이 둘을 집중적으로 정리하기로 했다.

그리고 남자들은 자주 화장까지 하지만.. 여기서 화장까지 하는 건 오히려 독이다.

이미 화장을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갖춘 외모이기 때문이다.

어느정도 틀을 잡고 나는 의욕이 가득 찬 눈으로 거울을 통해 그를 바라보고 말했다.

"혹시 생각하신 헤어스타일이 있나요? 없으시죠?"

제발 없기를.

"아..네. 그 소진 씨가 믿고 맡기라고 해서.."

나는 그의 입에서 소진 씨라는 말이 나오자 가슴이 아팠지만 이미 그녀한테는 다른 사람이 있다.

"제가 오늘 최고의 헤어스타일을 해드릴게요."

사각 사각 사각 -

미용실 속에서는 음악 소리와 함께 가위가 머리카락을 자르는 소리가 났다.

*

그런 그들을 옥상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딱 달라붙는 검은색 라텍스를 입어 보기 좋은 몸매를 드러내고 있었고 붉게 물든 머리카락은 웨이브를 그리며 찰랑거렸다.

누가 봐도 예쁘다라고 말할 법한 외모를 가진 그녀는 높은 옥상 위에서 먹잇감을 순찰하고 있었다.

그리고 미용실 속 어느 한 남성을 캐치했다.

자신이 위치한 곳이 높은 곳이라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몸만 봐도 자신의 기준점에 합격했음을 느꼈다.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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