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70 회: 12권 -- >
"후우. 힘들군."
쇼파위에 몸을 맡기고 오딘이 나지막히 한숨을 쉬었다.
하루종일 의술에 몰두하다보니 몸이 무척이나 노곤했다.
"몇날 며칠을 밤새서 의술을 연마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니 당연히 피곤할수밖에요."
"하핫 하긴 그렇기도 하겠지. 이제 3레벨 남았군. 다른이들도 90레벨에 당도했으니 조만간 기쁜소식이 줄을 지어 날아올 것이야. 핫핫핫!"
"부활만 익힌다면 놈들도 손쉽게 일망타진 할수 있을겁니다 마스터."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그런데 말이야. 요즘따라 넘버원 자체가 너무조용한걸? 국지전은 커녕 일말의 교전조차 일어나지 않아서 무척이나 썰렁해."
"패치로 인해 죽음 패널티가 생겨났습니다. 자칫 죽었다가는 영영 게임을 할수 없을텐데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아마도 다른 플레이어들도 오딘 마스터처럼 의술을 연마하고 100레벨을 달성한후 전쟁을 치를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긴 그럴만도 하겠지. 제국의 용사 헨리도 그럴테고 말야.
하지만 한가지 걸리는게 있어."
"뭐가 말입니까?"
"드라이언이 이끄는 수장들은 전부 NPC로 구성되어 있어.
헨리를 따르는 플레이어가 제법 되지만 그 수는 얼마되지 않지.
거진 7할이 NPC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도 무리는 아냐.
NPC들은 부활스킬을 배울수 없기 때문에 시간을 끌면 저들이 불리해진다는 사실을 헨리가 파악 못했을리가 없어. 그런데 너무 조용해."
나잇살 때문인지 오딘의 의심은 날로 늘어갔다.
제이든이 그런 오딘을 안심시켰다.
"만약 놈들이 쳐들어온다면 전진기지와 베이른 요새에서 무슨 연락망을 띄웠을 겁니다. 그러니 너무 마음쓰지 마십시오 마스터."
"흠. 베이른 요새에 보냈던 유레카 그놈이 조금 신경 쓰이는군."
"자꾸 트러블을 일으키는 그놈 말입니까?"
"그래 그놈. 아무래도 베이른 요새를 놈에게 맡긴것이 걸리는군.
자네의 말을 믿고 맡겼네만 뭔가좀 불안한게 사실이야."
"부활만 익힌다면 유레카의 레드 길드원들을 정리 해야 합니다.
일말의 소문으로는 오딘 마스터를 헐뜯는다고까지 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의술을 익힐 시간을 줘서는 절대 안되지요.
베이른 요새를 맡긴것은 잘한 일입니다 마스터."
"흐음. 하긴 놈도 머리가 있다면 우리들이 유리하다는 사실을 잘 알테니다른 꾐에 넘어가지는 않겠지. 그런데 말야 마룡과 드라이언이 손을 잡고 우리들을 치려거나 그렇진 않겠지?"
제이든이 당치도 않다는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유레카와 똑같은 말을 내뱉으며 오딘을 안심시켰다.
"마룡 릴리스의 어머니 페르니에는 드래곤들의 손에 세상을 하직했습니다.
딸년이 원수들과 동맹을 맺는다는것이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어디?"
"하하 하긴 그렇기도 하겠군. 제 정신이 아니라면 원수들과 손을 잡을 이유가 절대 없지. 뭐, 그건은 되었고, 이제 슬슬 눈을 좀 붙혀야겠군."
밤낮으로 의술만 연마하다보니 잠을 못잔지 꽤 오래되었다.
NPC들과는 달리 플레이어들이라서 때론 넘버원을 빠져나가 수면을 취해줘야한다.
"그럼 푹 쉬십시오. 저는 조금만 더 의술을 연마하고 자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
쿠콰콰쾅!!! 콰콰쾅!!
막 오딘이 말을 이으려던 찰나였다.
갑작스러운 충격파와 함께 천지를 뒤흔드는듯한 굉음이 울렸다. 오딘과 제이든이 있던 사무실 벽에 균열이 생기면서 다시한번 충격파가 전해져왔다.
오딘과 제이든이 몸을 가누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오딘은 급히 쇼파를 부여잡았다.
제이든도 마찬가지였다. 뭐라도 부여잡지 않고서는 몸을 가눌길이 없어 손에 잡히는건 뭐든 가리지 않고 잡아채기 바빴다.
"뭐,뭐지 이건? 도대체 뭐야!?"
"이,일단 밖으로 빠져나가는게 좋겠습니다 마스터!"
제이든이 말하는 와중에도 엄청난 충격파가 연신 귓가를 강타했다.
몽롱했던 눈빛이 대번에 펴지면서 잠이 싹 달아나버렸다.
벽에서 생겨난 균열은 점점더 커져만 갔다. 보다못한 제이든이 얼른 오딘을 이끌고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오딘형님!!"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달려오는 사내는 오딘의 오른팔이자 드래곤 슬레이어군단장인 오스카였다. 오스카를 따르는 무리는 대략 100여명 정도였는데 하나같이 큰 상처를 입고 있었다. 오딘의 놀라움은 한층더 커졌다.
오딘이 급히 오스카에게 물었다.
"어,어찌된 일이냐? 그리고 이 상처는 도대체 뭐야!?"
"크,큰일났습니다 마스터. 마룡 릴리스와 드래곤로드 드라이언이 동맹을 맺고 이곳 엠틀란트를 총 공격하고 있습니다! 현재 동서남북 모든 문이 몬스터들에게 포위되었고, 선두에는 제국의 용사 헨리와 마룡 릴리스, 그리고 드래곤들이 앞다투어 성안으로 밀려들어오고 있는 중입니다!"
"뭐,뭐라고!!?"
"그게 무슨 말입니까 오스카님? 베이른 요새도 있고 전진기지들도 있습니다그놈들이 신호를 보내지도 않았는데 어찌 놈들이 이곳까지 올수 있었단 말입니까?"
제이든이 알수 없다는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스카가 간략히 요약해서 말해주었다.
"베이른 요새를 지키고 있던 레드 길드마스터 유레카가 제국의 용사 헨리의 꾐에 빠져 놈에게 항복했다고 합니다. 놈이 길잡이가 되어서 이곳을 급습한 겁니다!"
오스카의 옆에 있는 소서리스 하나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전진기지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미접속 상태였고, 그나마 접속하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순식간에 드래곤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어요.
그런상황에서 어떻게 신호를 보낼수 있었겠어요?"
"막아라! 어떻게 해서든 무조건 막아내!!"
오딘이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소리를 꽥 질렀지만, 전황은 많이 기울어버린 상태였다. 드라이언은 영리하게도 의술을 익히고 있을 거라는 오딘의 생각을 대번에 꿰뚫었고, 대인공격 최강 마법인 메테오 스트라이트를 적극이 용해서 촌장이 있는곳을 좌표로 잡았다.
레드 길드마스터 유레카가 엠틀란트 성을 꿰고 있었기 때문에 좌표를 잡는것은 매우 쉬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밤이 늦은 시간대라서 경계망이 매우 느슨해져 있었고, 마법사들도 하나같이 의술에 연마하고 있었던터라 그같은 마나의 움직임을 미연에 알아차리지 못했다. 메테오의 기운이 거의 차올랐을 무렵 화염원소들이 급격히 사라지는것을 깨닫긴 했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렸고, 월속성을 지니고 있던 드래곤 두마리의 메테오 스트라이크로 인해 촌장이 있는 중앙광장 지역은 거의 초토화가 되다시피 했다.
메테오 스트라이크의 범위가 방대하나 범위를 축소시키면 거기에 따른데미지의 양이 증가된다. 게다가 월속성은 마법데미지를 무려 두배나 올려주는 엄청난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오딘 길드원 대부분은 의술을 연마하고 있었던터라 제법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몰려 있어서 메테오에 격중된 인물들은 거의 몰살당했다시피 했고, 살아남는 극 소수의 인간들이 그곳을 빠져나오는데 성공했을 뿐이었다. 지금 오딘앞에 나타난 오스카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 드래곤 슬레이어군단이었다.
오딘 길드의 최정예 군단이 바로 그들인 것이다. HP도 높고 마법저항력도 매우 높았다. 그래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날수 있었다.
단 한번의 공격으로 수십만에 달하는 인사들이 죽어나가버렸다.
방금전까지만해도 혼일사해의 꿈을 꾸고 있었던 오딘은 넋이 나가고 혼이 쏙 빠지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직 부활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죽은 플레이어들은 그야말로 더이상 넘버원을 할수 없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언젠간 부활 스킬을 익히고 다른 사람이 부활을 시켜줄수있겠지만, 최소한 몇달은 걸릴터였다.
오스카가 서둘러 오딘의 손을 끌어 잡았다.
"그나마 다행인건 놈들이 메테오의 범위를 축소화 시켜 중앙광장 지역에 있는 플레이어들만 죽었다는 것입니다. 성내부에는 아직도 많은 플레이어들이 있으니 그들과 힘을 합쳐서 이곳을 빨리 빠져나가도록 하십시오!"
"가긴 어딜 간단 말이냐!?"
"예에?"
"수많은 플레이어가 죽었다. 마룡 릴리스와 드라이언이 동맹을 맺은 이상계속해서 나를 쫓아 올것이다.
도망을 가봤자 언젠간 놈들의 손에 죽고 말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제국의 용사 헨리 그놈을 잡아 죽이고야 말겠다이미 수많은 플레이어가 죽은 마당이고 동서남북 네개의 성문이 모조리포위당해 버렸다.
이렇게 된이상 동귀어진의 수법으로 헨리 그놈을 잡아죽여버릴 심산이었다. 모든게 그놈때문에 어그러지고 말았다.
드래곤과 틀어진 이유도 그놈 때문이고, 그놈 때문에 마룡 릴리스를 소생시키고 말았다. 그놈만 아니었다면 일이 이지경까지 몰리진 않았을 것이다.
오딘은 시뻘겋게 충혈된 두 눈을 부릅뜨고선 오스카에게 물었다.
"헨리가 있는 방향이 어디냐?"
곁에 있던 소서리스 하나가 오딘을 말리기 위해 앞으로 한발짝 뛰쳐나오며 소리쳤다.
"마,마스터! 지금은 냉정하셔야 할때입니다. 분기를 가라앉히고 상황을 일목묘연하게 판단 하셔야.."
퍼펑!!
소서리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오딘이 발사한 파이어볼 한방이 그녀의 머리통을 꿰뚫어버렸다. 소서리스는 머리통이 사라진 상태에서 맥없이 육신을 허물어 뜨리곤 털썩 쓰러져 버렸다. 오딘이 타오르는 눈빛으로 오스카에게 재차 물었다.
"헨리가 어딨냐고 물었다!!"
"부,북쪽 성문입니다 마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