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60 회: 12권 -- >
2월이 되었다. 이제 개강날짜도 한달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가끔 들곤한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베스트 프렌드라고 칭해도 손색이 없는 놈으로 이름을 강진영이라고 쓰는 녀석이다.
이녀석은 넘버원 회사에서 주임으로 일하고 있다. 가끔 한번씩 만나 넘버원에 관련된 이야기도 하고 나에게 하소연 하면서 직장상사들을 까곤 했는데, 오늘은 그동안 쌓인 울분이 많았는지 연신 직장상사를 까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저 술이나 한잔 기울이면서 놈의 이야기를 들어만 주었다.
"시발 내가 더러워서 일을 때려치던가 해야지. 최차장 그새낀 진짜박쥐새끼에다가 아오! 말을 말자 말을!"
그렇게 말하면서 술을 자작하고 벌컥벌컥 털어내는 녀석.
문득 최차장이라는 사람이 궁금했지만, 물어보면 더 화를 낼까봐 참기로했다. 맥주를 입속에 털어넣었다.
"그나저나 요즘엔 뭐하냐 너?"
친구녀석은 내가 넘버원을 하는지 2년째 모르고 있다.
사실 말을 하지 않은것도 있었고, 굳이 알리고 싶지도 않아서 그냥 프로그래머를 하고 있다고 둘러대기만 했다.
"그냥 관두고 이참에 넘버원이나 해볼까 해서 말야."
한번 떠보았다. 녀석이 뭐라고 하나 싶어서.
그랬더니 손을 가로 젓는다.
"야야 이제 넘버원도 곧 망할것 같다. 나 그래서 걍 때려치울까 생각중이야
"응? 넘버원이 망하다니?"
2년째 랭킹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초특급게임이다.
그런데 넘버원이 망한다고 한다. 개발자 녀석이 저런말을 하는걸보니 뭔가가 심상치 않아서 두 귀를 쫑긋세우고 물어보았다.
진영이는 술을 벌컥벌컥 마시면서 말했다.
"이번에 곧 대대적인 패치가 이루어지는데, 패치내용중 어이없고 기가막힌 내용이 한개 포함되어 있어. 아마도 그것때문에 말이 정말 많아 질것 같다에효.."
"무슨 내용인데?"
사실 이런건 절대 말하면 안되는 1급 비밀이었지만, 진영이는 많이 취한 상태였고, 설마하니 내가 넘버원을 하고 있을까 싶어서 나에게 거침없이 비밀을 밝혔다.
"그동안 넘버원에서 플레이어가 죽으면 12시간 패널티를 받거나, 카오틱 플레이어는 24시간 패널티를 받아왔거든."
"응 그래서?"
"하지만 이게 전부 없어져 버려. 게다가 아이디, 아니 닉네님 아니아니다캐릭터 자체가 완전히 없어져 버려. 이제 한번 죽으면 그 캐릭터는 영원히 바이바이지."
"응? 그게 무슨소리야?"
"멍청아 한번 죽으면 영원히 끝이라고 끝. 내말 이해 못하냐?"
"그,그러니까, 이제부턴 죽으면 아이디가 삭제된다.. 그런소리야?"
"아이디가 삭제되었다라..? 뭐 그렇게 말해도 틀린말은 아니지.
내참 기가막혀서.. 넘버원은 사실을 추구하면서 게임을 만드는 회사거든.
그런데 간부회의에서 그 의견을 피력한거야. 사실을 기반으로 만들려면 캐릭터가 죽으면 끝이 되어야 한다고. 사실 사람도 한번 죽으면 영영되살아날수 없잖냐?"
"그렇지."
"그러니까 간부들이 그같은 시스템을 도입하자고 말을 한거야.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더이상 죽지 않기 위해서 사력을 다해 플레이를 할테고, 전쟁도 쉽게 일으키지 않을테니까 말야.
너는 잘 모르겠지만, 요즘 넘버원은 예전과 달리 완전히 전쟁만 치르고있어. 공성전은 매번 일어나고, 마룡과 오딘, 그리고 드래곤 로드는 맨날 치고박고 싸우고 있고.. 하루에도 족히 100만명 이상이 죽어나가고있지. 그러니까 간부들은 그게 못마땅한 모양이야.
더이상 죽지 않게끔, 그리고 평화를 찾게끔 전쟁없이 게임을 즐기자 뭐 이런마인드인가봐. 에효 나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이번 패치로 인해서 캐릭터가 죽으면 완전히 아웃되는 시스템을 도입시키려고 해.
조만간 공지에도 뜨겠지. 그렇게 되면 많은 플레이어들이 반발할것은 당연한 이치야. 막말로 몇천만원, 아니지 몇억 몇십억을 쏟아부은 인사들도 많은데 그들이 가만히 있겠냐? 아마도 넘버원 회사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지랄을 해댈껄? 난 그게 걱정이야 그게."
듣고보니 보통일이 아니었다. 100억원을 가지고 있다가 캐릭터가 죽게 되면 말그대로 100억원을 몽땅 잃게 되는 셈이 아닌가?
현금으로 전환하지 못하면 고스란히 날리는 것이니 반발이 심할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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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
"어이 주인??"
"……"
ㅤㅂㅞㄺ구가 헨리를 두번이나 불렀지만 헨리는 멍하니 앞만 응시할뿐 아무런대답이 없었다. 짜증이 난 ㅤㅂㅞㄺ구가 헨리에 귓가에 대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제서야 헨리가 반응을 보였다. 헨리는 인상을 팍 구긴뒤 대뜸 ㅤㅂㅞㄺ구의 뒤통수를 후려 갈겼다.
"야이씨! 깜짝 놀랐잖아 새꺄!!!"
ㅤㅂㅞㄺ구가 뒤통수를 어루만지며 인상을 팍썼다.
"크윽..살살좀 때려라 주인!"
"그런데 왜 불렀어?"
"일렌시아가 비록 죽었지만, 우리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떠나간 여인이다그러니 이제 슬슬 잊어라. 그리고 드디어 도착했다. 이제 내려라 주인."
친구인 강진영이 알려준 넘버원 시스템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ㅤㅂㅞㄺ구의 눈에는 일렌시아의 죽음을 애도하는 모습처럼 비춰진 모양이다. 뭐 아무렴 어쩌랴.
헨리는 라이올라에 도착하자마자 폴짝 뛰어내렸다.
그리곤 드라이언에게 다가가 오성구를 그에게 내밀었다.
드라이언은 크게 기뻐했지만 , 원정대원들의 얼굴은 어둡기 그지 없었다.
화이트 드래곤 에레니아는 일렌시아가 죽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드라이언에게 보고를 올렸다. 곁에 있던 엘프의 수호성자는 참담한 심정으로 얼굴을 돌려세우고 말았다.
"정말 아쉽게 되었구나. 좌우지간 그동안 수고했으니 푹 쉬도록 해라.
헨리 자네도 좀 쉬게나."
"아닙니데 로드. 곧장 6성구와 7성구를 찾으러 떠나겠습니다."
"지금 당장 말인가?"
"예 로드."
헨리는 그렇게 말하며 화이트 드래곤 이리우스와 대천사 카이오 둘만을 대동한채 레어를 빠져나갔다. 요레이와 티모, 그리고 베이가는 몸속에 박힌 냉기를 다스리기 위해서 한동안 요양을 해야했고, 레드 드래곤 프시케도 몸에 쌓인 냉기를 제거하려면 며칠은 푹 쉬어야만 했다.
속성의 특성상 얼음이 극상성이라 그랬다.
때문에 헨리는 비교적 멀쩡한 이리우스와 대천사 카이오만 대동한채하늘위로 날아올랐다.
헨리는 드래곤볼 레이더를 켜고선 위치를 파악했다. 이번에는 예전에 헨리가 잠시 영주로 있었던 라덴 마을 쪽에서 드래곤볼이 감지가 되었다.
헨리는 급히 라덴마을로 향했다. 곁에 있던 이리우스와 카이오가 동시다발적으로 헨리에게 물음을 던졌다.
"왜이렇게 서두르는거냐 헨리?"
"그래 주인. 너무 서두르는거 아닌가? 하루정도는 쉬고 그다음에 드래곤볼을 모으면 되지 않나?"
빙설마인을 잡기 위해서 꼬박 4일 밤낮을 지새웠다. 그런데 조금도 쉬지않고 드래곤볼을 모으려는 헨리의 모습에 이리우스는 문득 걱정이 되었다.
헨리는 둘의 물음에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꼿꼿히 라덴 영지로 향할뿐이었다.
"이,이것을 저에게 그냥 건네주신다는 말씀입니까?"
라덴영지의 영주로부터 육성구를 건네받은 헨리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영주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다행히 라덴 영지의 영주는 지난번 헨리에게 큰 신세를 졌던 NPC로서 이번기회에 은혜를 갚고자 드래곤볼을 거리낌없이 그에게 내놓은 것이었다.
예전에 한번 라덴 영지의 세공술을 발전 시키기 위해 촌장과 부촌장들에게 세공석을 진상한적이 있었고, 헨리의 씀씀이 덕분에 라덴 영지의 영지민들은 대부분 세공술을 익힐수가 있게 되었다.
영주는 그것을 잊지 않고 헨리에게 보은을 전한 것이다.
손쉽게 육성구를 차지한 헨리는 마지막으로 7성구를 찾기 위해 레이더를켰다.
7성구의 위치는 할란드 마을에 있었다.
할란드라면 헨리가 절대 모를수가 없었다. 할란드 마을에서 ㅤㅂㅞㄺ구가 태어났고 윤지와 리나를 만났던 헨리가 아니었던가? ㅤㅂㅞㄺ구로서는 고향땅에 온듯한 느낌이었다.
"오빠!"
"형 저희 왔어요!"
등을 돌려 뒤를 돌아보니 어느덧 페이와 윤지, 그리고 리나가 와있었다.
조금전 할란드로 향하고 있다는 보고를 전하고 그들과 합류하기로 하면서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이다. 요들족과 프시케를 레어에서 쉬게하고, 일렌시아를 잃으면서 전력에 차질이 생겨버렸다. 그래서 전력을 보충하고자 제법 시간이 되는 세명을 불러들인 것이다.
헨리는 먼저 칠성구의 위치를 파악한뒤 잠시 여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강행군을 일삼은 탓에 기력과 마나가 거의 바닥을 치고 있었기 때문에 기력을 회복시키려면 여관에서 잠시 쉬어야만 했다.
"형 그런데 저희에게 할말이 있다면서요?"
"맞아요 오빠. 할말 있다고 했잖아요? 그게 뭐에요?"
"놀라지 말고 내말 잘 들어. 알겠지?"
그렇게 말하니 더더욱 궁금해지는 일행들이었다.
일행들은 헨리의 입을 주시하면서 두 귀를 쫑긋 세우곤 헨리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