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18 회: 11권 -- >
'큰일이네. 이를 어쩌면 좋아?'
사들고 온 물약을 전부 소진하고 말았다.
귀환주문서도 없기 때문에 왔던길을 되집어 가거나, 행상(돌아다니는 상인)을 만나서 물약을 사야만 했다.
하지만 마족이 득시글 거리는 이곳 바이스 왕국에 행상이 있을리가 만무했다.
'어쩔수 없어. 이판사판이야! 그냥 12구역까지 달려가자!'
몬스터들이 달려들면 맞상대하지 말고 도망쳐야 했다.
지금으로선 그 방법이 최선이었다.
나리는 조심조심 선공형 몬스터들을 피해서 이동했다.
그녀가 선택한 길은 바로 숲속이었다.
대로에는 큼지막한 대형 몬스터들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간이 배밖으로 나오지 않은 이상 대로로 갈수 없다.
모습도 숨겨주고, 살금살금 이동하는데는 숲으로 이동하는것이 훨씬더 안전하다. 그래서 그녀는 숲길을 따라서 조심스럽게 이동을 개시했다.
다행히 숲속에는 고블린 같은 약한 몬스터들만 눈에 보일뿐이었다.
마음같아선 고블린을 죽이고 녀석의 사채를 배낭속에 밀어넣고 싶었지만, 그렇게 한다면 오우거나 오크에게 위치를 노출시킬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고블린도 무시하고 조용히 12구역으로만 발걸음을 옮겼다.
퀘스트를 수행하면서 지도를 받은 덕분에 12구역의 행로는 쉽게 알수 있었다.
'좋아 조금만 더 가자. '
목적지가 멀지 않았다.
나리가 기쁜 마음으로 숲속을 막 벗어나려 할때였다.
갑자기 지척에서 쿵! 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엄청난 크기의 몬스터 한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몬스터는 덩그가 작달만한 무언가를 급히 쫓고 있는 중이었다. 나리의 시선이 두마리의 몬스터에게 향했다.
나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게 도대체 뭐지?'
이곳에서 지내면서 어지간한 몬스터는 다 접해봤지만, 지금 보는 몬스터는 생전 처음 보는 몬스터였다.
너구리 비슷하게 생긴 꼬마 몬스터였는데 눈앞에 있는 숲속 오우거에게 쫓겨 생사가 위태로웠다.
너구리 몬스터는 나무등걸 속으로 쏙 들어가서 몸을 숨겼다.
3미터에 달하는 숲속 오우거가 나무등걸에 숨어있는 너구리 몬스터를 잡아먹기 위해 우뚝솟은 나무에다가 냅다 몸을 들이 박았다.
몸통 박치기 스킬을 시전한 것이다.
나무등걸에 숨어 있는 너구리 몬스터는 부들부들 떨면서 나무가 버텨주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지만 나무는 금세 뽑힐듯 위태로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나무를 향해 몸을 던지고 있는 숲속 오우거의 덩치는 거진 3미터에 달했고, 많이 굶주렸는지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나리는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면서 침착하게 오우거의 레벨을 확인해 보았다.
숲속 오우거.
레벨은 35.
이동하면서 레벨을 10이나 올려 나리의 레벨은 기존보다 더 높은 30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오우거의 레벨이 자그마치 35였다.
레벨차이가 무려 다섯개나 났고, 무엇보다 가지고 있는 물약을 전부 소진한 까닭에 눈앞에 있는 오우거를 상대할수 있을지가 의심스러웠다.
'어쩌지? 구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무시해야할까?'
사실 무시해도 별반 상관이 없다.
아니 오히려 오우거가 너구리를 잡아 먹는다면 배를 채운 오우거가 자리를 쉽게 비켜줄 것이다.
나리는 그틈에 이 숲속을 빠져 나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막상 너구리가 죽는것을 보려니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이라곤 하지만, 귀여운 너구리가 죽는것을 원치 않았다.
특히나 나리는 귀여운것을 매우 좋아하는 여성이 아니던가?
결국 나리는 스태프를 치켜들고 파이어볼 하나를 생성해냈고, 그것을 오우거의 등뒤에 꽂아 넣었다.
넘버원의 특성상 등뒤에서 공격 당하면 무조건 크리티컬 데미지가 터진다.
등뒤를 내준 오우거가 나리의 파이어볼에 격중 당하고 말았다.
크리티컬 데미지가 누락되면서 생각보다 많은 양의 데미지를 받은 오우거가 처절하게 괴성을 내질렀다.
"크와우와!!크와아!!(아 시발 존나아픔)오우거가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감히 숲속의 제왕인 자신에게 뒤치기를 감행하다니!?
공격을 감행한 인간을 잡아 죽이기 위해 오우거가 두 눈을 부릅뜨며 후방과 전방을 살폈다.
"크롸!?"
오우거의 시야에 한 여인이 보였다.
고작 레벨 30에 달하는 천둥벌거숭이였다.
여리여리한 인간 여자가 자신을 공격하자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오우거는 너구리를 버려둔채 마법사 여인에게 달려들었다.
날카로운 송곳니로 목덜미를 단번에 물어뜯을 기세였다.
/
"헉헉..헉헉.."
털썩 주저앉은 나리가 거칠게 숨을 몰아 쉬었다.
옆구리에서 피가 샘솟듯이 배어 나왔지만 지혈을 할 기력조차 없었다.
그녀의 옆에는 3미터 동체의 거대한 오우거가 두 눈을 뒤집고 쓰러져 있었다.
1:1 대결에서 승리한 쪽은 놀랍게도 나리였다.
초반에 파이어볼로 치명타를 가한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나리는 파이어볼 세방을 연달아서 오우거의 머리쪽에 격중시켰다.
그 대가로 옆구리를 물어뜯기긴 했지만 말이다.
사실 그녀가 전투에서 이길수 있었던 원동력중 하나는 마나 재생력 덕분이었다살금살금 숲속을 이동하면서 마나가 알게 모르게 재생되었고 파이어볼을 네방이나 구사할수 있을만큼 모여졌다.
만약 마나가 조금이라도 모자랐다면 지금쯤 오우거의 한끼 식사가 되어 12시간 패널티를 받았을 것이다.
나리는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정신을 가다듬기가 더욱더 힘들어졌다.
옆구리를 물어 뜯기면서 출혈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터라HP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고, 게이지바는 어느덧 10분의1을 가리키고 있는 중이었다.
마나를 이용해 힐을 시전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해 봤지만, 파이어볼을 짜낸터라 마나 수치가 거의 제로에 가까워서 힐을 시전할래야 할수가 없었다.
출혈이 계속 되고 있어서 이 상황이 30초만 더 지속된다면 나리도 죽고 말 것이다. 나리는 슬슬 힘이 풀려가는걸 느꼈다. 눈꺼풀도 절로 무거워졌다.
결국 나리가 두눈을 살며시 감고 말았다.
출혈 때문에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이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 이 따스한 기운은 뭐지?'
몸에서 전해져오는 활력!
그리고 따스한 기운이 전해지면서 차오르는 Hp!
확실한것은 HP가 점점 회복되고 있다는 거였다.
HP가 회복되자 나리가 두눈을 치켜떴다.
놀랍게도 방금전 오우거에게 쫓기고 있던 너구리 몬스터가 자신을 향해서 힐을 시전하고 있는 중이었다.
잠시후, 회복을 끝마친 너구리 몬스터가 나리에게 꾸벅 인사를 건넸다.
말이 통하지 않아서 무슨말을 하는지는 몰랐지만, 손짓을 보니 감사의 인사를 하는것 같아 보였다.
나리가 피식 웃으며 너구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욘석아. 너때문에 이 누나가 죽을뻔 했잖니??
다음에는 절대 혼자 돌아다니지 마. 알겠지??"
나리는 너구리 몬스터의 이름표를 살펴보았다.
자세히 보니 이름표에 [티모]라고 적혀 있었다.
"너 이름이 티모야??"
말이 통하지 않아 의사전달이 되진 않았지만 확실한것은 녀석의 이름이 티모라는 것이다. 티모는 아무런 말없이 멀뚱히 나리의 얼굴만 쳐다볼뿐이었다.
"오우거는 없지만, 이제 해가 곧 저물거야. 너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렴."
숲이라서 어둠이 금발 밀려온다.
게다가 한창 퀘스트 진행중이라서 나리는 얼른 숲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나리가 걸음을 떼자 너구리 몬스터도 폴짝 뛰면서 움직였다.
놀라운 것은 너구리 몬스터의 반응이었다.
너구리가 나리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방향이 같은가 싶었는데, 무려 30분동안 쫓아다니는걸 보니 다른 목적이 있는것 같아 보였다.
나리가 걸음을 멈추면 너구리 몬스터도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이동하면 다시 나리를 따라서 이동했다.
나리가 피식 웃더니 너구리 몬스터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너구리 몬스터는 귀여운 얼굴로 나리를 올려다만 볼 뿐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나리가 너구리 몬스터를 번쩍 치켜 들었다.
"욘석아 왜자꾸 따라와??"
너구리가 무슨 말을 하긴 했지만 알아들을수 없는 언어라서 이해하기 힘들었다. 급기야 너구리는 손짓과 발짓을 이용하기까지 했다.
잠자코 너구리가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던 나리는 그제서야 너구리의 행동을 이해할수 있었다.
"날 따라다니겠다고???"
말이 안통하기 때문에 손짓으로 최대한 말을 걸어보았다.
나리는 자기 자신과 너구리를 가리키고 달리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러자 너구리가 폴짝 폴짝 따라오기 시작했다.
"설마 이녀석이 엄마를 잃어서 고아가 된건가???"
간혹 고아 몬스터들이 종종 눈에 보이곤 했다.
고아 몬스터를 도와주면 간혹 엄마라고 착각하고 따르는 경우가 있는데 너구리 몬스터가 그런것 같아 보였다.
결국 나리는 너구리 몬스터 [티모]를 자신의 마법배낭속에 살며시 밀어 넣었다.
티모가 고개를 배꼼 내밀었다.
그 모습이 마치 귀여운 햄스터가 고개를 쏙 내미는 모습과 유사했다.
"욘석 귀여워서 봐줬다. 그럼 앞으로 잘해보자! 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