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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에서 제일가는 기사가 결투를 신청했지만 스텔리는 금세 꼬랑지를 내리고 뒤로 내뺐다. 1:1 대결에서는 절대로 나이트 기사단장을 이길수 없기 때문이었다. 1황자 스텔리가 꽁무니를 빼자 제 3황자 측은 기가 올랐다.
3황자 스판은 기세를 몰아 총공격을 명령했다.
기사단장 나이트와 그를 따르는 기사단원들이 준마를 몰아 적진으로 치달았다. 대략 1천대 1천에 달하는 기사접전이 펼쳐졌다.
나이트는 가진바의 무예를 입증하듯 닥치는대로 1황자 스텔리측의 기사들을 배어 넘겼고, 나이트가 지나간곳은 시체가 산을 쌓았으며 흐르는 피가 냇가를 이룰 지경이었다.
결국 전투는 나이트 기사단장과 그를 따르는 기사단원들의 힘을 바탕으로 제 3황자측이 대승을 거두었다.
이번 전투에서 3황자 측이 입은 피해는 아주 경미한 수준이었다.
그에 반해 1황자 스텔리측은 대략 700여명의 전사자를 내고 말았다.
단 한판의 승부에서 엄청난 전력차가 발생하고 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황자 스텔리는 황권을 포기하지 않고 영지에 틀어박혀농성전에 임했다.
이제 이 성만 깨뜨리면 황제의 자리에 오를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제 3황자 스판은 기사들을 총 동원해서 공격을 감행했다.
1황자 스텔리를 따르는 기사들이 불사의 저항을 거듭했지만, 결국 숫적인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영지를 내어주고 말았다.
이로써 황자의 자격은 제 3황자인 스판에게 돌아갔고, 스판을 따르던 지방 귀족들과 영주들은 만세를 부르며 새로운 황제의 등극을 만천하에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황제가 된 스판(지금의 베르니카3세)는 이후 자신을 지지해주었던 각지의 영주와 기사들에게 논공행상을 베풀었고, 약속대로 중앙 진출로를 모색해 주면서 자신의 입지를 더욱더 굳혀나갔다.
"그런데 나이트 기사단장은 어쩌실 요량이십니까?"
기사단장 나이트는 베르니카 황제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낙향을 선택했다.
가족들을 모조리 잃었고, 더이상 귀족사회에서 머물고 싶지 않았다.
귀족들은 이득을 위해선 간과 쓸개까지 내다파는 족속들이다.
복수도 마쳤고, 이제는 남은 여생동안 조용히 농사일이나 지내다가 눈을 감을 생각에 베르니카 3세를 알현하고 마지막 말을 전했다.
"신은 이만 고향으로 돌아가 남은 여생을 조용히 보낼까 하옵니다.
그러니 제 뜻을 받아주시옵소서."
"그대의 뜻을 삼가 허락하노라."
허락을 받은 나이트 기사단장은 마지막으로 저택에 들려 물건들을 손수정리하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몇몇 기사단원들이 그를 배웅해 주었고, 개중에는 나이트를 따라 나서겠다는 인사들도 있었지만, 나이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뿐 끝까지 동행을 허락하지 않았다.
"부디 황제폐하를 잘 모시도록 하게나. 내말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들었겠지?"
"종종 고향으로 놀러 한번 가겠습니다 단장님!"
"단장님은 영원한 저의 기사단장님이십니다! 휴가때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허허 사람들 하고는…"
기사단원들을 뒤로하고 나이트는 마차에 몸을 실었다.
종자 둘과, 마부 한명만을 이끌고 그는 고향인 마르셀루 왕국으로 방향을 잡았다.
마르셀루 왕국은 한때 마족의 지배하에 놓였던 왕국으로, 마계와의 경계가 맞닿아 있어 항시 마족들로 인해 속앓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기사단장 나이트가 마을에 돌아온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나이트를 환영하면서 꽃을 거리에 뿌려두기도 했다.
일종의 인사치레였다. 마을을 잘 보살펴 달라는 인사치레 말이다.
하지만 기사단장 나이트가 마족을 상대하기도 전에 일이 터지고 말았다.
제국에 있던 베르니카 3세가 무슨 영문에서인지 나이트 기사단장을 제거하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었다.
특급 자객 10여명이 마르셀루 왕국으로 파견되었고, 나이트 기사단장이 있는 마을에 침투했다.
그들은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기사단장 나이트의 저택에서 불이 꺼지자 한치의 망설임도 습격을 감행했다.
노련한 기사답게 기사단장 나이트는 진즉에 기습을 눈치채고 있었다.
"검술을 보아하니 제국의 검술이 틀림없군.
나를 제거하기 위해 파견된 첩자같은데… "
"우리는 네놈에게 죽임을 당한 스텔리 황자의 복수를 위해 이곳에 찾아왔다!
순순히 목을 늘어뜨려라 이놈!"
스텔리 황자의 수하들은 검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찌르기 위주의 부드러운 검법을 구사하곤 한다.
하지만 습격해온 자객들은 힘을 이용해서 베는 기술이 탁월했다.
그말인즉 스텔리 황자의 수하들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패도를 근본으로 삼은걸 보아하니 현 베르니카 3세의 기사단 소속의 기사가 틀림없다. 어째서지? 어째서 베르니카 황제께서 나를 제거하려하시는거지?'
귀족사회의 물을 오래토록 먹어왔기에 나이트 기사단장은 손쉽게 베르니카3세의 의중을 알아차릴수 있었다.
'일단 몸을 빼내야겠군.'
몇번 검을 맞대보니 열명 모두가 소드마스터 경지에 오른 고급기사들이 틀림없었다. 나이트가 소드마스터 최상급의 경지에 오른 무인이지만 소드마스터 열명을 상대로 싸우기에는 애시당초 무리였다.
지금은 먼저 몸을 빼낸후 뒤를 도모한뒤 휘하의 기사단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었다.
보법에는 자신 있었기 때문에 도주가 용이할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이트의 착각이었다.
파견된 자객들은 배낭에서 무언가를 꺼내들더니 입속에 털어넣기 시작했다.
입안에 털어넣은것은 하얀색의 비약이었다.
제국에서 만들어낸 초특급의 각성제!
먹으면 두배의 힘을 5분간 발휘할수 있다는 효능을 지니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몸놀림까지도 두배로 껑충 뛰어버렸다.
십여명의 자객들은 단숨에 나이트 기사단장을 포위해버렸다.
나이트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졌다.
"아주 작정을 하고 온듯 하군. 오늘이 내 생에 마지막 날이란 말인가?"
하나하나가 감당하기 힘든 적으로 변모한터라 도저히 승산이 없었다.
나이트는 명예롭고 떴떴하게 죽고 싶었다.
검을 대지에 꽂아두고 제국의 황제가 있는 북쪽을 향해서 크게 절을 올린뒤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감았다.
그 모습에 어지간하던 자객들도 크게 감동을 하고 말았다.
"베르니카 황제폐하께서 왜 나를 죽이려 하시는지는 모르겠네만, 이유가 있을거라 생각하네. 내 목을 가지고 베르니카 황제폐하께 공을 청하게나. 내 순순히 나의 목을 늘어뜨리겠네."
말뿐만이 아니었다. 나이트는 정말로 목을 길게 축 늘어뜨리기 까지 했다.
그 모습에 자객들이 머뭇거렸다.
명령이라서 파견을 나오긴 했지만, 그들도 한때는 나이트 기사단장을 존경하고 따랐던 인물이었다.
막상 죽이려고 하니 망설여지는것이 사실이었다.
"기사단장께서는 정말로 황제폐하가 기사단장을 죽이려는 이유를 모르신단말이오?"
우두머리로 보이는 기사 하나가 검을 잠시 거두어들이고 물었다.
나이트는 눈을 지그시 감은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좋소. 그럼 죽기전에 당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알려주도록 하겠소.
그래야 저승에 가서도 억울하지 않을테니 말이오.
당신은 베르니카 황제폐하께 철저하게 이용을 당한 것이오.
아시겠소?"
"이용…?"
"그렇소이다. 베르니카 황제폐하께선 제3황자 신분일때 당신과 제1황자를 초대한 적이 있소. 그때당시 제3황자가 계책을 베풀었지.
그중 한가지 계책이 바로 베어스 기사단을 이끌고 당신의 가족을 몰살시키는 일이었소이다. 당신은 그 소행을 1황자에게 떠넘겼다고 들었고, 그로인해 제 3황자를 도왔다고 들었소.
하지만 그건 잘못 해석된 사실이오.
단장의 가족들은 제3황자. 즉 지금의 베르니카 3세가 죽인것이 맞소이다."
"그,그,그럴리가!?"
놀라움이 컸는지, 나이트 기사단장이 입술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만큼 충격이 컸다는 증거였다.